〈 33화 〉 마법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야 해!
* * *
side 루리에
의왕시의 집무실.
한참 전에 영토 관리를 종료한 나는 눈앞에 떠있는 메세지 창을 보며 잠시 의자에 몸을 기댄다.
"영토전 금지가 걸리자마자 전쟁이라..."
어쩐지 익숙한 방식.
과거 자신과 지속적으로 부딪혀왔던 빌런 집단과 거의 동일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잠시 물의 마력을 끌어올리며 허공에 만들어내는 하나의 수구.
그저 무색의 구체여야함에도 가운데 독이 퍼지는 것처럼 보랏빛이 맴도는 구체를 보며, 눈동자만 잠시 굴리다가 이내 풀썩 하고 완전히 의자에 기대버린다.
"스노우의 정화도 완벽하진 않단 거네."
첫 정화 때는 이런 느낌이 없었다.
정화 이후 사용한 마력에도 보랏빛이 섞이는 느낌은 없었고, 그저 자신이 쓰던 투명한 마력만이 남았을 뿐.
심지어 이번 침식은 저번보다 약한 상태였을 텐데...
"윈이 봉인당해서 그런 걸까."
확인한 바로는 현재 윈은 봉인 상태.
이미 괴물이 되버렸는데 무슨 봉인이냐 싶기도 하지만, 스노우가 이때까지 보인 기적들을 볼 때 기대해볼만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려 '커뮤니티 마법소녀'에 올라온 영상을 본다.
어떻게 찍은 건지 모를 목포 시의 전투 현장.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같이 다녔던 사람들도 죽었다.
최초로 본 스노우의 폭주 장면.
머리 뒤에 분홍빛 거대한 마력의 날개가 펼쳐진다.
눈이 완전히 분홍빛 마력으로 물들고, 이내 무지갯빛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온 몸 주위에 분홍빛 마력으로 된 전격, 빛, 물의 구체가 넘실거린다.
본인은 그런 변화를 모르는 건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
오히려 평소 이상으로 표정 변화없이 고요한 상태.
어째서인지 그녀에게는 스노우가 울고 있는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어째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할 수 있는 걸까.
분명 평소의 스노우는 사랑과 정의를 외치는 이상적인 마법소녀이자, 그럼에도 제법 부끄럼을 잘 타는 소녀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친해진 사람을 잃고, 그에 대해 분노했고, 슬퍼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돌아왔을 때 그 누구에게도 그랬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그저 담담히 자신의 작전을 전달할 뿐.
속이 곯을만한 판단이다.
...듣자하니 스노우는 축제 때 잠깐 모습을 보이곤 그 후로 모습을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고 했었지.
루시에르의 말에 의하면 윈을 처리하기 위해 바로 날아갔다고 했는데, 스노우에겐 아직 윈의 프리즘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럼 스노우는 어떤 목적으로 혼자 빠져나간걸까.
"..."
나한테 좀 기대도 상관없는데...
동생같은 아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스노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자기보다 약한 언니가 필요할 리가 없지.
그래도... 최소한 동료로서 의지해줬으면 좋겠다.
언젠가 나에게 기대고 의지했던 그 아이들처럼.
[영토에 침입자가 있습니다. (0/1)]
"...?"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메세지.
빌런 연합의 영토는 우측일 텐데, 마법소녀도 아닌 사람이 왼쪽에 있는 의왕시에 침입했다고?
어쩐지 섬뜩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파트너인 므네를 손에 쥔다.
영토 지도로 보니 느릿한 움직임.
멀리 돌아오느라 지치기라도 한 걸까.
그렇다면 좋은 기회다.
지금 처단하기로 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비행하기 시작했다.
광주 근처 어느 폐허.
아직 전혀 수리가 시작되지 않은 장소로 도착한 사이네와 아르멘은 서로 동시에 바닥에 안착한다.
그리고는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것처럼, 다시 한 번 자세를 잡는 두 사람.
나는 좀 더 위에서 열심히 팝콘을 씹으면서 그 광경을 바라본다.
"누가 이길까?"
[정황상 둘 다 2성이니까... 비슷비슷하겠죠. 전투 경험치가 승부를 가릴 것 같습니다. 저는 사이네의 승리를 점치도록 하죠.]
"나도 사이네라고 생각하니까 내기가 안 되네."
저 아르멘이라는 마법소녀가 얼마나 많은 곳을 거쳐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이네는 샤브린에게 얻어터지면서 대련 요청을 하던 아이다.
초월자와 계속해서 대련해온 사람과 좀비를 때려잡으면서 생활해온 사람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겠지.
지금 하는 건 대인전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사이네가 먼저 달려들기 시작한다.
전류가 잘 통하지 않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바닥에 전류를 심으며 미끄러지듯 돌진하는 그녀.
덕분에 땅 속에 있던 수도관이 망가진 건지 피슉! 하고 여기저기서 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하지만, 어차피 여기 수도관은 현재 수리된 부분과 연결된 곳이 아니라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 손발에 노란 마력을 띄우는 아르멘.
그리고 적중하기 직전, 사이네의 눈 앞에서 파직. 하고 전류가 튄다.
"뇌령폭주! 일렉트릭 브레이크!"
온 몸에서 100만 볼트마냥 전기를 뿜어냄과 동시에 그대로 돌진하는 사이네.
그 모습을 본 아르멘이 그 미소를 깨지 않으면서도 놀란 눈을 슬며시 보이지만, 이내 웃으면서 무언가 읊기 시작했다.
"주여, 저에게 신앙의 가호를."
스킬명이 아닌 영창.
효과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굳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노란 빛이 조금 더 진해진 정도.
아마 버프 계열 마법이 아닐까?
"화려하긴 합니다만, 저에게 닿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그리고 사이네와 아르멘이 격돌한다.
일렉트릭 브레이크로 인한 전격 파장을 손에 빛을 감싼 채로 능숙하게 흘려넘긴다.
"뭣..."
후에 이루어진 전격 펀치 연타마저 수상한 빛의 마력이 하나하나 작게작게 나타나며 막아지고, 별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던 아르멘의 팔이 움직인다.
"주님의 의지를 받아보시길."
"일렉트릭 웨이브!"
손바닥을 펼친 채로 밀어내듯 휘둘러지는 손에 그대로 발을 차올리면서 일렉트릭 웨이브를 발동하는 사이네.
주변 범위 공격인 일렉트릭 웨이브가 그대로 다리에 응집되더니, 그대로 손바닥과 부딪히며 파지직! 하고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번엔 피해를 입은 건지 최초로 얼굴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는 아르멘.
"흐음... 주님의 가호를 뚫다니, 제법이네요."
"헹. 그렇게 전기 뱀장어 마냥 타고 있으면서 여유로운 척 하긴!"
"주님, 나약한 자에게 구원을."
팟.
"...사기치지마!"
아르멘의 기도에 곧바로 사라지는 전격을 보며, 사이네는 얼굴을 찌푸린다.
상태 이상 회복기 같은 건가? 스킬이 어째 다 버프류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전격으로 상대에게 부담을 얹는 사이네랑 상성이 그리 좋은 적은 아니다.
"아무래도 주님의 자비가 필요해보이시는군요."
"앙? 난 무교라고. 자꾸 주님주님 하는데, 신이라는 작자가 진짜 있었으면 이 꼬라지가 일어났겠어?"
"주님은 언제나 인간들에게 시련을 주고, 구원해주시는 존재입니다. 저희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자신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시련을 내리신 거겠지요."
"웃기고 있네 아주, 그렇다고 치자고? 그럼 지금 죽어나가는 사람들은 뭔데? 그 사람들은 왜 구원하지 않는 거야?"
"무슨 소리시죠? 주님께선 언제나 구원하고 계십니다."
"하?"
사이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평소와 같은 상냥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 손을 뺨에 슬며시 대는 아르멘. 그리고 그녀의 마력이 조금 더 증대되기 시작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현세에서 떠난 영혼들은 주님의 보호를 받고, 천상의 주민으로서 생활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교자가 이다지도 많은 거겠죠. 고통스러운 현세에서 구원받고, 천상에서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요."
"...너 정신 문제있어?"
아르멘의 발언에 소름이 돋았는지, 사이네가 흠칫하면서 몸을 슬쩍 물린다.
와, 방금 발언은 나도 좀 섬짓한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르멘이라는 작자는 광신도다.
그것도 '현세는 고통스러운 곳이기에 구원을 위해 모두 천상으로 보내야한다'라는 마인드를 가진 광신도.
그렇다면 조금 의문인데.
"문제라뇨, 전혀요."
"그럼 묻자, 내가 장소를 이동할 땐 왜 순순히 따라온 거야?"
"네? 그건 당연하지 않나요?"
불길한 감각이 등을 타고 올라온다.
열심히 찍고 있던 카메라를 거두며, 곧바로 도시를 바라보는 나.
그리고 그 도시의 하늘에는...
"ㅡ당연히 당신만 붙잡아두면 되니까요."
굉장한 숫자의 기계 군단이 하늘에서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네요.
"젠장, 이걸 통수맞네."
광주시로 떨어져내리는 기계 군단의 영상을 보며, 그는 혀를 차면서 자신의 안드로이드 부대를 끌고 날아간다.
모 영화사의 아이X맨마냥 기계 슈트를 입고 날아가는 현성의 모습.
그를 뒤따라 수십기의 안드로이드와 몇 대의 로봇이 뒤따르지만, 제법 빠른 속도임에도 도착까진 글렀다고, 그는 생각했다.
"역산해봐. 저 부대가 완전히 투하되고 도시가 전멸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광주시 능력자 데이터가 부족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1~2성 능력자라면 10분 정도 걸리겠군요.
"스노우는 지금 어디야?"
광주시 안에 있습니다. 현재 기계 군단을 보고 날아가는 중인 모양입니다.
"좋아, 시간만 끌어주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말하며 안드로이드들을 보내더니, 홀로 허공에서 양팔다리를 앞으로 뻗는 현성.
그러자 그의 기계 슈트 모든 부위에서 미사일 포 같은 게 튀어나오며, 동시에 미사일이 내려오고 있는 적의 기계 군단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거리 이 정도여도 맞출 수 있지?!"
저를 뭘로 보는 겁니까? 현성. 출력이 떨어져도 제 연산 기능은 멀쩡합니다.
능숙하게 앞서가고 있는 아군 기계 군단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피해내며 도시로 날아들기 시작하는 미사일 세례. 그걸 본 그는 다시 부스터를 키며 도시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콰과과광!
착륙 중인 기계 군단을 보며 급박하게 도시로 돌아오자 보이는 건, 착지 전에 격추당하는 기계 군단들.
거의 반절에 가까운 기계 군단을 쓸어버린 미사일을 보며, 나는 곧바로 순환시를 기동한다.
세상이 갖가지 색의 퍼진 물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선이 아닌 면으로, 그저 색채만이 남은 세상.
기계로 추측되는 모든 객채에게 보이는 푸른 원과 푸른 실들을 보며, 나는 곧바로 슈팅스타를 하늘에 띄운다.
동력원.
저런 기계에서 마력을 쓸만한 건 동력원밖에 없다.
"렌!"
[슈팅 스타]
렌의 저장 기능과 내 마력으로 슈팅 스타를 최대치까지 띄우자, 100발이 넘는 별 탄막이 하늘을 수놓는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하는 별무리.
인간으로 보이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물감을 전부 피해내며, 기계 군단만을 정밀하게 솎아낸다.
여기저기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느끼다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현기증에 곧바로 순환시를 해제하는 나.
머리가... 아프다.
"오래 쓸 건 못 되겠네."
[저번에 그 상태가 아니라면, 무리입니다.]
"그 상태라면."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죠. 아직 안 끝났습니다.]
"응."
제법 많은 숫자의 기계 군단을 걸러냈지만, 남은 기계 군단은 아직 많다.
게다가 이번엔 나를 확실히 적으로 인식한 건지, 모든 기계 군단이 기관총을 나에게 겨누고 있는 상황.
어라?
투다다다다!
"아쿠아 실드!"
[프로텍션]
기관총들이 나에게 집중된 걸 깨닫고 급하게 실드를 펼치자, 코앞까지 온 탄환들이 전부 튕겨나간다.
그리고 뒤에 있던 왠 거대한 포를 들고 있던 녀석이 나를 겨누고...
"윈드 스텝!"
거기서 날아온 레일건을 위치를 변경해 피해내는 것에 성공한다!
내가 기관총을 전부 막아내자 모든 기계 군단의 무기가 변경된다.
내가 레이저를 피하는 걸 보고 알았는지, 전부 포 형태의 무기로 변형하는 녀석들.
나는 쓰게 웃으면서 파이렌의 방어구인 플레임 아머를 몸에 입히고, 계속 윈드 스텝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투쾅! 투쾅!
내가 있는 위치를 정확히 조준해서 날아드는 거대한 대포환들.
이동할때마다 날아드는 그 포환들을 나는 재빠르게 피하다가, 못 피할 거 같은 공격은 전부 일렉트릭 웨이브로 터뜨려버린다.
...쟤들 기계지?
그리고 문득 든 생각.
그걸 자각한 순간, 나는 곧바로 바닥에 안착해 소리쳤다.
"아쿠아 실드! 아쿠아 웨이브! 썬더 웨이브!"
미안, 수도관은 알아서 수리 좀 해줘.
마음 속으로 사이네에게 사과하며 소리치는 나.
잠깐 순환시를 켜 현재 주변에 있는 모든 인원에게 실드를 전개한 후, 거대한 전격의 해일을 일으킨다.
수도관을 통해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물을 이용해 해일을 일으키고, 그 해일에 일렉트릭 웨이브의 업그레이드 판을 투척.
날아드는 포환과 탄약들이 전부 해일에 쓸려나가며 오히려 기체들을 전부 폭파시키기 시작하고, 그런 포탄에 맞지 않은 기계들도 전부 파지지직 거리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삐걱대기 시작한다.
다행히 성공인가.
순환시에 잡힌 사람들이 전부 생존한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며 순환시를 해제, 아까보다 심해진 두통에 잠시 정수리를 꾹하고 누른다.
그리고 잠시 후.
예의 안드로이드 군단이 도시에 도착하는 걸 보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곤 그쪽을 바라본다.
기계 군단을 많이 폭파시킨건 현성 쪽인가.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멍청아! 멍때리고 있지마!]
"?"
[오른쪽 하늘!]
그의 말에 멍하니 시선을 위로 올리는 나.
그리고 그곳에서는 파직하는 전류와 함께 허공에서 등장하는 거대한 우주선의 포가 나에게로 떨어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