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마법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야 해!
* * *
"...그래서 데려왔다고요?"
"아이, 그럼요그럼요. 저희가 배에 간 건 사람이 있어서지 딱히 식료품을 노린 건 아니래두요?"
"알겠어요. 일단, 제가 이야기해보죠."
자신의 눈앞에서 싱긋하고 웃고 있는 소녀를 보며, 미류는 불편한 기색으로 그런 그녀를 바라본다.
속내를 전혀 알 수 없게 만드는 미소.
푸른 눈동자의 소녀는 어쩐지 눈 앞의 소녀에게 섬뜩함을 느낀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제 이름은 이미 주님에게 바쳤답니다. 현재는 그저 '아르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죠."
"아르멘... 저는 '하 미류'입니다."
"동양식 이름에는 익숙하지 않네요. 하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냥 미류라고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류."
"..."
제법 마이페이스로 보이는 수녀를 보며 미류는 그저 쓰게 웃고 응접실의 반대편에 앉힌다.
그리곤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티 세트를 꺼내들며 홍차를 따라서 건네는 미류. 그 모습에 아르멘은 살짝 놀라면서도 홍차를 들어 향을 맡고는 이내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이후 다시 차를 내려놓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훌륭하군요! 눈요기에 향, 맛까지 완벽해요! 어느 집안 메이드라도 하셨나요?"
"...프랑스에 있을 때 살짝."
"대단하군요! 그래서 제가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신가요? 류 자매님은 그리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니, 가능하면 들어드리겠습니다만."
"자매... 네, 부탁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자신 역시 홍차를 한 모금 하면서 잠시 숨을 고르더니, 조용히 말하는 미류. 그러자 아르멘은 말해보라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고, 푸른 눈동자의 소녀는 미묘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한국에 오신 이유가 있습니까?"
"아, 한국에 온 이유! 군인 분들의 호위로 왔습니다~! 아쉽게도 군인분들 중 순교자가 있어 자는 사이 전부 순교하셨지만요!"
"순교...?"
"네! 순교하시고도 땅을 밟으려는 열렬한 신자분들이라, 전부 저한테 맡기라고 하곤 성불시켰습니다!"
"..."
순수와 광기에 사이에 선 대답에 들려오자, 미류는 다시 한 번 홍차를 마신 후 마음을 안정시킨다.
저 대답에 대한 의미는 '목적은 잘 모르겠는데 나 데리고 오더라.'에 가까웠으니까.
군인들이 전부 죽어버려 이 여자가 미국에서 온 의미를 모르겠다고, 미류는 생각했다.
"그럼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신가요?"
"노우! 아까 보아하니 이곳에도 불신자가 많은 거 같군요! 주인의 말씀을 전파하기 최적의 장소에 왔으니, 전도를 위해서 움직일 예정입니다!"
"불신자?"
"인간의 형상을 띄면서도 인간을 벗어난 자들을 말하는 겁니다!"
"아... 그렇군요."
고블린이나 오크를 말하는 모양이라고, 미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 그렇다면 괜찮네요. 그럼 저희를 조금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주님의 영광에 위배된 일은 할 수 없습니다만..."
활발하게 말하다가도 부탁이라는 단어에 곧바로 진짜 수녀처럼 조곤조곤 말하는 아르멘을 보며, 미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린 후 한국 지도를 펼쳐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영역에 대한 전체 지도.
각각의 색으로 다른 사람의 영토를 표시한 그녀는 현재 빌런 연합의 영토와 가장 가까운 영토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듣자하니 아직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이 왕국에 많다고 합니다. 자매님이 직접 가서 전도를 하는 게 어떨까요. 물론 불신자가 아니라 아직 신자가 되지 못한 자들을 말하는 겁니다만."
"음~ 이미 불신자들을 처리한 곳이군요! 영주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왕국명은 'Snow'. 영주의 이름은..."
뭔가 가지고 있는지, 허공에서 손을 한 번 터는 미류.
그러자 어느새 그녀의 손에는 사진 한 장이 만들어지더니, 그대로 영토가 위치한 장소에 떨어져내린다.
"전자의 '사이네'라고 불리는 자입니다."
[왕국 '빌런 연합'에서 왕국 'Snow'에 선전포고했습니다!]
[왕국 '빌런 연합'과 왕국 'Snow'가 전시 체제에 돌입합니다!]
[퀘스트 '마법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야 해!'가 시작됩니다.]
[서브 퀘스트 '마법소녀는 악당을 용서해서는 안 돼!(2)'가 시작됩니다.]
[서브 퀘스트 '마법소녀는 언제나 동료와 함께야!(2)'가 시작됩니다.]
"?"
모예요, 갑자기.
다음 날 아침.
음식 자판기에서 양송이 스프를 뽑아 얌전히 우물거리고 있던 내 눈앞에 떠오르는 무수한 창의 악숙 세례.
나는 귀찮다는 듯 휙휙 치우려다가, 내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한숨을 내쉬며 창을 전부 활성화시킨다.
[마법소녀는 많은 사람들을 지켜야 해!]
당신은 4개의 영토를 얻고 조그마한 소국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영토전의 위협이 없어진 지금!
당신은 땅을 넓힐 시간이다!
마법소녀로서 자신이 지키는 구역을 늘리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해내라!
달성 조건 : 경기도 전체 점령(동맹자 포함)
보상 : 전용무기 조각x2, 경험치, 10만 pt
[마법소녀는 악당을 용서해서는 안 돼!(2)]
당신의 왕국을 침략하려는 세력이 등장했다!
영토전에서 자유로워진 것을 틈타 공격해오려는 왕국이 있다.
그들에게 영토를 뺏겨버린다면, 왕국민들이 고통받는 건 당연한 이야기.
영토를 뺏으려는 적들을 모두 물리쳐라!
달성 조건 : 왕국 '빌런 연합'과 전쟁 종료
실패 조건 : 왕국 영토 전체 점령
보상 : 비밀 상점 이용권, 왕국 등급 상승
실패 시 : 모든 마법소녀의 목숨 찬탈권이 빌런 연합에게 넘어갑니다.
[마법소녀는 언제나 동료와 함께야!(2)]
많은 마법소녀들을 끌어들인 당신!
드디어 마법소녀 시스터즈가 6명이 되었다!
이제 7명째 마법소녀 동료를 얻고, 3단계를 대비하라!
그 마법소녀는 당신에게서 제법 가까운 곳에 있으니!
달성 조건 : 마법소녀 영입(6/7).
보상 : 시련의 탑 출입증x7
"...?"
이게 다 몬 소리지.
일단 영토전이 더 걸리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렸었는데, 아예 선전포고는 막아주지 않는 건지 전쟁이 걸려왔다.
당연히 초창기라 전쟁이라는 게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와서 당황한 건지, 영토를 넓히라는 퀘스트와 막으라는 퀘스트가 동시 발생.
그리고 당연한 것처럼 마법소녀가 빌런 연합에 소속된 건지, 마법소녀를 모으라는 퀘스트도 주어진다.
...근데 이거 무지개색인가.
이번 마법소녀의 마력색은 노란색.
빨주노초파남보인데, 빨간색이 파이렌, 주황색이 사이네, 노란색이 수녀, 초록색이 유레하, 파란색이 루리에.
남색이나 보라색이 윈과 마이라고 치면...
"..."
분홍색 혼자 너무 튀지 않아요?
잠깐 의식의 흐름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상황을 파악한다.
결론적으로 마법소녀가 빌런 연합 측에서 쳐들어온다는 이야기.
저번에 유린이에게 받은 추적을 꺼내들자, 한국 전체 맵같은 게 팟 하고 펼쳐진다.
응? 일회용 아니였냐고?
유린이가 지금 나한테 떠넘긴 추적이 50개 정도 된다면 답변이 될까?
이번에 찾아내는 건 아까 봤던 수녀.
즉, 퀘스트 대상자다.
"...응?"
보이는건 오른쪽에서부터 쭉하고 날아오는 노란빛의 점.
속도가 차량 이상인지 깨작깨작 움직이는게 실시간으로 보이는게 무섭다.
가장 먼저 도착할만한 지점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자, 확실한 건 사이네의 영토인 광주로 도착할 거라는 점이다.
"렌, 사이네가 현재 어딨는지 알아?"
[영토에 있지 않겠습니까? 집엔 없었으니까요.]
"그러네."
그럼 사이네랑 그 격투 수녀님이 부딪힌다는 의민데...
응? 재밌겠다.
"찍으러 가자."
[...]
내 말에 최초로 렌이 할 말을 잃고 침묵하는 걸 볼 수 있는 귀중한 날이었다.
[미확인 마법소녀 영토 진입중]
"앙?"
광주에 있는 집무실.
열심히 영주창을 만지작하던 사이네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디바이스, 시리의 말에 영토 지도를 펼쳐 확인하기 시작한다.
보이는 건 왠 노란빛이 영토 동쪽에서 진입중이라는 표식 하나.
사이네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표정을 찡그리다가, 이내 좀 전에 떠오른 '빌런 연합'의 선전포고를 생각하곤 짜증이 담긴 한숨을 내쉰다.
"그보다 마법소녀라고? 그 놈의 마법소녀는 대체 몇 명이나 있는 거야..."
[클래스가 만들어졌으니까 엄청 많을걸.]
"그러냐."
"무슨 일 있어?"
사이네가 시리와 대화하고 있자, 부영주로서 일하고 있던 연희가 그렇게 물어왔다.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바로 변신 스킬을 사용해 주황빛 드레스를 구현하는 사이네. 그 모습에 그녀는 의아한 표정이 짙어진다.
"침입자."
"응? 영토전은 한 달동안 안 받아진다고..."
"전쟁인가봐, 아예."
"전쟁!? 또 어떤 X발 것들이야?"
"..."
욕설을 뱉으며 인상을 찌푸리는 연희의 모습에 잠깐 시선을 향하다가, 그녀는 창틀을 밟고 그대로 날아오른다.
하늘로 날아오르자 희미하게 보이는 노란빛의 무언가.
아무런 방해조차 받지 않고 영주 집무실로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마법소녀의 모습에 사이네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 날아다니는 건 아무도 예상 못했구만?"
"어머나, 당신이 사이네인가요?"
마치 드래X볼에 나오는 사X어인마냥 노란 마력을 온 몸에 두르고 있는 여성.
팔다리에 보이는 절제된 근육과 손발에 집중된 마력을 보며 사이네는 곧바로 전기를 몸에 두른다.
상대가 근접 격투계라는 걸 깨닫은 모양.
눈에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며, 참기 힘들다는 것처럼 양주먹을 툭. 하고 마주치자 그 주먹에서 전류가 파직! 하고 튀어오른다.
"확실히 그 사람들 말대로 주님을 믿지 않는 분이신가 보네요. 이렇게 사나워서야 다가오던 사람도 물러나겠어요."
"남이사! 쳐들어왔으면 덤비기나 하시지?"
대치한 상태로 그저 미소만 입에 담고 있는 여성을 보며, 사이네는 몸이 근질거리는 걸 느끼곤 허공에서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그저 상냥한 미소를 유지한 채로 양 팔다리에 마력을 모으는 여성.
상대도 할 생각이 넘친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뻐하면서 전투 태세를 취한다.
"전자의 마법소녀, 사이네! 간다!"
"성광의 마법소녀? 라고 했던가요. 네, 성광의 아르멘입니다. 경건한 전투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됐다.
[안 도와도 괜찮습니까?]
"위험할때."
[...알겠습니다.]
내 짤막한 말에 렌은 순순히 포기한 채로 그렇게 답한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싸움이 시작돼있었다.
그렇다고 막 드래곤X처럼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면서 부딪히는 건 아니고, 말 그대로 무술로 싸우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마법소녀인데 마법을 쓰지 않고 싸우는 두 사람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이네가 상체로 주먹을 휘두르며 시도한 다리걸기를 한 쪽 다리를 들어올리는 걸로 슬쩍 피해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솟아오른 니킥이 사이네의 공격 시도를 쳐내고 그대로 얼굴을 향해 펀치.
그걸 스치듯이 피한 사이네가 전격의 마력을 일으키며 팔꿈치로 그녀를 내리치려 하고, 그걸 아르멘이 자연스럽게 고도를 낮추는 걸로 회피한다.
덕분에 발 위치와 얼굴 위치가 일치해져 그대로 허공에서 다리로 내리찍지만, 팔을 돌려 자연스럽게 흘린 후 노란 마력을 일으키며 그대로 옆차기.
뒤로 회피 기동을 하며 다시 거리가 벌려진다.
마법소녀(웃음)인데 이거.
마법소년데 마법은 안 쓰고 마력만 일으키며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슬쩍 아래쪽을 바라본다.
나름대로 수리된 건물이 많은 지역이다. 잘못 싸웠다가는 민간인 피해가 만만치 않을 텐데.
두 사람이 마력만 일으켜서 싸우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법소녀는 사람들을 지키는 자들이니까, 아무리 적이라곤 해도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힐 생각은 없는 거겠지.
적이라면 모를까, 밑에 있던 시민들도 구경이나 하고 있지 딱히 적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
그건 좀 위험한 발상같은데, 각성자 아저씨들...
왠지 코피 흘리면서 빤히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 있어보이는 건 기분탓이겠지?
"..."
하긴 쳐들어온 아르멘이라는 저 사람은 몰라도 사이네는 드레스니까 다 보이겠지 아래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 복장을 한 번 슥하고 보게 된다.
"어라."
생각해보니 사이네보다 내 복장이 아래서 봤을 때 더 선정적인 느낌이다.
아, 그래서 하늘 날아다닐때마다 사람들 시선이 집중...
영토민들과 진지하게 대화 좀 나눌 필요가 있겠다.
"렌, 마법소녀 복장은 누가 만든 거야."
[관리자 M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구나."
그 변태 작자면 바로 납득이 간다.
근데 그러면 왜 아르멘은 슈트인 거야...?
혼자 노출도가 낮은 옷을 입은 마법소녀라는 느낌이 강하다.
약간 권법가나 그런 걸 생각하고 만든 걸까.
마법소녀마다 개성을 넣고 싶었던 건 좋지만서도.
[아이돌이 짧은 치마를 입거나 살짝 노출이 있는 건 기본입니다.]
"아이돌 아니야."
[마법소녀는 모두의 아이돌이죠.]
"..."
초창기에 렌도 이상한 애였지라는 걸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오늘 또 새삼스럽게 느끼고 마는 나였다.
아무튼 계속해서 몸을 부딪히다가 두 사람의 거리가 벌어진다.
한 명만 멀어진 게 아니라 동시에 대치 상태를 유지하는 사이네와 아르멘.
뭔가 이야기가 됐던 건지 천천히 두 사람이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하는 걸 보며, 나는 그대로 카메라를 든 채 졸졸 따라가기 시작한다.
이러니까 뭔가 스토킹하는 거 같지만,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