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마법소녀는 마을을 지키는 히어로야!
* * *
목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광주로 가는 방향을 렌에게 묻는다.
대충 북동쪽으로 가면 된다는 건 알지만, 방향을 알아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
이 작전은 속전속결이 중요하다.
심지어 가장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초월자 라크헬름마저 내 영토로 온 상황.
지금이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퀘스트를 제대로 깰 방도가 없다.
"남의 영토로 들어서면, 강제 퀘스트가 발동해. 원래는 영토 주인이 유리한 방향으로."
"...의미가 있을까."
그냥 등급 더 높은 사람이 쳐들어오면, 솔직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계별로 등급 제한이 있는 모양이긴 하지만, 초월자와 싸워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초월자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건 마력이나 스테이터스 차이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전투 경험.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초월자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였다.
"분명 남은 인원은 있지만, 영주가 없어. 퀘스트도 없을 거야."
"응."
"그러니까 바로 찾아내야 해. 이걸 가져가."
그렇게 말하며 손에서 무언가 만들어 내더니, 한창 날고 있는 내 얼굴에 씌우는 유린이. 물체가 안경이라는 걸 깨닫고 나는 곧바로 아이템 정보를 확인한다.
[추적(임시)]
원하는 것의 위치를 찾아낼 힌트를 주는 물건. 모조품이기에 1회용이다.
"..."
얘는 진짜로 뭐하고 살았길래 이런 걸 뚝딱하고 만들어내지? 도X에몽인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유용한 걸 필요할 때마다 만들어내는 건 좀 부럽다.
나중에 나도 크리에이트 활용할 겸 이것저것 물어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제법 날아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무언가 결계를 지나쳤다는 느낌을 받는다.
무언가 퀘스트라도 등장할까 긴장했지만, 영주가 없어서인지 퀘스트가 나타나진 않고 조용한 상황.
날아가면 들킬 게 분명하기 때문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유린이를 잘 안 보이는 위치에 옮기며 변신을 해제한다.
"...? 변신 상태는 유지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영토전 세력들이 내 모습을 아는 걸로 볼 때, 의미가 없어."
이미 내 변신 모습은 알려져있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잠입.
안경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인데, 아예 복장부터 바꾸면서 안경까지 끼면 못 알아보는 사람 제법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유린이의 복장을 살핀다.
검은색과 흰 줄무늬 니트에 무릎까지 오는 연분홍색의 두꺼운 치마.
전형적인 겨울 복장인 것을 깨달은 내가 잠깐 갸웃하다가, 이내 원피스 하나만 달랑 입고 있는 나랑 비교하고는 더더욱 이상한 기분이 든다.
...옷 바꿔 입자고 하려 했는데, 계절이 너무 안 맞는데?
생각해보니 현재 계절은 봄. 아직 꽃샘추위가 제법 기온을 낮추고 있어서 나처럼 원피스만 달랑 입고 다니기에는 쌀쌀한 상태였다.
이제껏 마법소녀들이랑만 다니고, 나 역시 별로 신경 쓰지 않아서 생긴 문제였다.
...마법소녀 패시브에는 적정 온도 유지도 있나?
솔직히 원피스 하나만으로는 추운 게 정상인데, 나는 춥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옷?"
"변장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잠시."
내 말에 유린이가 고민하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인벤토리에서 무언가 꺼내든다.
단추를 꺼내다가 멈칫.
왠 비단을 꺼내다가 멈칫.
실 바늘을 꺼내다가도 멈칫.
어디선가 자꾸 튀어나오는 재봉 재료를 보며 내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볼 때즈음, 그녀는 잠시 나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
"잠깐 볼게."
"...어떤 걸? 햐앙?! 자, 잠... 꺄!?"
뭘 본다는 건가 싶어 내가 되묻자, 그녀는 주저없이 곧바로 내 온 몸을 한번씩 만지기 시작한다.
허리 가슴 엉덩이 다리 순으로 한번 싹 만진 후 이것저것 실을 사용해 옷을 순식간에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유린이.
갑작스런 자극에 내가 정신을 못 차리다가 멍하니 그걸 바라볼 때즈음, 그녀는 나에게 옷 한 세트를 건네주며 말했다.
"갈아입어."
"...여기서?"
현재 광주시는 영토 덮어쓰기로 인해 현대식 건물이 없는 중세 시대의 풍경.
사람들이 어지간하면 보지 않는 다리 아래 강 근처에 내렸지만, 뭐랄까 옷을 갈아입기에는 조금 그런 감이...
"어차피 갈아입을 거 였잖아."
"..."
하긴 어차피 옷을 바꿔 입든 옷을 만들어 입든 여기서 갈아입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디 집에 들어가서 갈아입을 것도 아니니까.
유린이의 말에 나는 결국 그 자리에서 갈아입기 시작한다.
흰 원피스를 벗어 곧바로 인벤토리에 넣고, 유린이가 준 옷을 곧바로 입는다.
남색 스웨터에 청색 치마.
긴 은발을 숨기기 위해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붉은 모자가 포인트인 나름 귀여운 복장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걸 입었다는 거 정돈가.
어차피 평소에 원피스를 입고 다녀서 큰 거부감은 없지만, 뭐랄까 잃어서는 안 될 걸 잃은지 오래된 느낌이 든다.
그렇게 은발까지 숨긴 후 유린이가 만들어낸 거울로 본 모습은... 확실히 내 얼굴을 기억하는게 아닌 이상 알아보기 힘든 연분홍 눈동자의 미소녀 하나가 탄생했다.
근데 판타지 세계관 같은데 현대 복장 입어도 되는 건가.
잠깐 그런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이내 라크헬름이 직접 오기 전 쳐들어온 병력들이 전부 현대 복장이었으니 아마 괜찮겠지. 생각하며 우리는 본격적으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촉수 괴물이라니 악몽이다.
루리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날아드는 탄환을 피한다.
일반적인 촉수 괴물이라면 촉수를 하나하나 잘라내며 싸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빌어먹을! 지성 가진 채로 괴물이 되기만 하는데, 정신이 멀쩡한 건 이상하잖아!"
사이네의 말처럼 저 괴물은 정말 평범한 전투 방식을 벌이고 있다.
인간일 때 쏘던 총을 10개의 촉수 전부에 든 채로 그대로 마법소녀 측 방향으로 난사.
총 종류도 다양해서 어떤 탄환은 큰 타격이 들어오지 않지만 침식도가 올라가고, 어떤 탄환은 파괴력에 치중된 듯 실드를 파괴하면서 들어온다.
사이네는 이미 침식도가 20%가 넘은 상황이라 오른쪽 팔이 말을 듣지 않고 있다.
근접 전투를 좋아하는 그녀로서는 치명적이었다.
"닥쳐!"
뭔가 들리는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사이네. 그리고 잠시 후 전격을 일으키며 어거지로 탄환을 뚫고 들어가다가 파괴력이 강한 탄에 오른팔이 훅! 하고 뒤로 튀어나간다.
침식도가 올라가긴 하지만, 이미 침식당한 부위인데다가 파괴력만 높지 침식도는 낮은 탄이라 무시하고 날아간다.
그걸 보던 유레하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와아☆ 무식하기 짝이 없네!"
"그런 말 하면 안 돼, 유레하. 저 사람도 애쓰고 있잖아."
누가 들어도 조롱같은 대사를 하지만, 바람 함정과 화염구가 사이네에게 닿는 탄환을 차례차례 막아내는 게 보인다.
가만히 지켜보던 루리에의 상황 파악은 끝.
사이네의 필사의 돌격이 닿도록 지원하는 마법소녀들에 괴물의 공격이 사이네로 점점 집중되기 시작한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기습하는 일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걸 깨닫고 루리에는 몰래 저공 비행으로 찬스를 노린다.
사이네가 멈추지 않고 코앞까지 달려오자, 모든 촉수에 총이 순간적으로 사라지며 보라빛이 맺힌다.
그리고 주황빛 마법소녀에게 집중해서 날아드는 공격.
그걸 본 순간, 루리에는 그대로 우회 공격을 개시했다!
"아쿠아 쓰러스트!"
"일렉트릭 브레이크!"
자신에게 날아드는 촉수를 전부 박살낼 것처럼 하나하나 전격을 일으키며 쳐내기 시작하는 사이네와 그걸 노리고 뒤에서 물기둥을 일으키며 들어가는 루리에.
더 이상 지원이 필요없다는 걸 알고 있던 두 마법소녀가 합동마법을 준비하고, 그걸 본 촉수 괴물의 유일한 눈이 가늘게 떠진다.
그리고...
"어?"
사이네가 반응하기 전에 상상도 못한 곳에서 벌려지는 입.
순식간에 콰직! 하고 사이네가 물리고 루리에의 아쿠아 쓰러스트가 녀석을 찌르는 순간, 괴물의 온 몸에서 전격이 파지지지직! 하고 온 사방에 퍼져나간다!
"꺄아아악!?"
물과 관련된 공격을 하고 있던 탓에 완벽하게 감전당해 추락하는 루리에와 깨물린 상태로 어거지로 힘을 발휘해 입을 열고 있는 사이네.
그런 상황을 보며 마법을 시전하던 유레하가 혀를 차며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합동 마법을 준비하던 파이렌 역시 시전하던 마법을 다른 공격으로 바꾼다.
"누구멋대로 깨물고 지X이야아아아! 뇌령폭주!"
파지지지지직!
"우왓☆ 무서워♡!"
사이네를 구하기 위해 괴물의 위로 점프해온 유레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대로 몸을 물리고, 입 안에서 전격이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괴물이 몸을 물린다.
최초의 고통스런 반응.
사이네는 몸의 절반 이상이 보랏빛으로 물든 상태로 몸을 물리고, 모두가 떨어진 걸 확인한 파이렌의 마법이 괴물에게 날아든다!
"플레어 썬!"
나이트메어 이터.
거대한 태양이 나타나 괴물을 삼키기 위해 움직이자, 물러나지 않고 보랏빛 마력을 일으키더니 그대로 그 마력은 거대한 이빨을 가진 구체가 되어 플레어썬을 먹어치우기 위해 움직인다.
그걸 보며 씨익하고 웃는 유레하.
그리고 아직까지 시전 대기중이었던 그녀의 마법이 보랏빛 마력의 방향으로 터져나간다!
"토네이도!"
화염을 삼키려는 보랏빛 마력이 아닌 화염을 향해 날아든 폭풍.
폭풍은 그대로 화염과 합쳐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회전하며 온 몸에 불을 붙인 화염 폭풍이 돼 나이트메어 이터를 회피해 괴물에게 날아든다.
그걸 보며 모든 촉수를 앞으로 모으더니 모이기 시작하는 마력.
스노우에게서 비슷한 마법을 본 적있는 사이네가 눈을 크게 뜨며 곧바로 회피 기동을 시작한다!
"레이저 류 마법이다! 피해!"
나이트메어 이레이저.
위잉
그대로 합체마법을 요격하며 힘겨루기를 시작하는 보랏빛 광선과 화염폭풍.
사이네가 입에 고인 피를 한번 토해내더니, 아직도 온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격을 한 손에 모으기 시작한다.
"일렉트릭 퍼니쉬먼트!"
그와 동시에 모든 전격이 괴물의 방향으로 터져나가며 쏘아져나가고, 괴물은 그걸 보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처럼 화염 폭풍에 집중.
오히려 전격을 맞은 괴물의 기세가 강해지기 시작하면서 유레하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진다.
"트롤링하지마☆ 너 물리고 나서 전격이 마력 회복용 기술이 됐나봐!"
"유레하, 말이 너무 심... 우왓?!"
"젠...장."
레이저가 결국 화염 폭풍을 뚫고 파이렌을 저격하지만, 간신히 회피에 성공.
비행 속도가 마법소녀 중 유난히 느린 그녀치곤 재빠른 회피에 유레하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그대로 괴물에게 내리찍기를 날리다가, 어느새 공격모드를 풀고 날아오는 촉수에 힉. 하며 공간을 점프한다.
"아앙... 그런 큰 거 들어오면 곤란하다구♡!"
"..."
잠깐 사이네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유레하를 보자, 그녀는 데헷. 하면서 파이렌의 근처로 돌아온다.
그새 잠깐 기절했던 루리에가 깨어났는지, 식은땀을 흘리면서 다시 날아오르고 사이네는 더 버티기 힘든지 점점 비행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하며 헉헉 거리기 시작한다.
"너희 쓸모 없으니까 그냥 쉬는 게 어때★?"
"뭐...라고...!"
"아니, 쟤 말이 맞아. 사이네. 적어도 너는 쉬어야 돼. 너 지금 온 마력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는 건 알아?"
"..."
루리에의 말에 자신의 근처에 파직 거리는 전격을 잠시 바라보는 사이네.
이미 보랏빛 전격이 노란 전격보다 더 많이 일어나고 있는 걸 보며, 그녀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입술을 깨문다.
어쩐지 몸이 말을 안 듣더라니.
사이네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결국 성벽에 루시에르가 결계를 펼치고 있는 쪽으로 후퇴한다.
"회복만 하고 올 테니까, 좀만 버티라고!"
"전격에 면역 생겼는데 와도 도움 안 된다구~☆ 그냥 쉬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다시 공간을 점프.
온 사방에 휙휙하고 보였다 사라졌다하면서 바람의 마력을 설치해대는 그녀를 보며, 루리에는 보랏빛으로 물든 다리를 살짝 털어본다.
직접적으로 공격을 맞은 것도 아닌데 침식도가 올라간 것과 통증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리지만, 이내 수원을 탐색해 마력을 일으킨다.
상성적으로 맞지 않는 불 마법사가 있고, 그걸 휘저을 바람 마법사가 있다.
루리에가 해야 할 일은 그녀들의 화력에 방해되지 않게 적을 혼란시키는 것.
그걸 확실하게 자각한 순간, 그녀는 창을 아래로 휘두르며 찾아낸 수원에서 마력을 일으킨다!
"아쿠아 드래곤!"
콰아아아!
땅에서 전투하고 있던 적들을 휩쓸며 솟아오르는 수룡에 시선이 끌리며 어느새 윈에게 들어올려진 총구의 절반이 루리에를 향한다.
그리고 이뤄지는 난사.
침식이 아닌 화력 위주로 쏘아내는 듯 수룡의 몸 이곳저곳이 터져나가지만, 확실하게 연결된 수원을 통해 지속적으로 몸체를 회복하며 그대로 괴물에게 쏘아지기 시작한다.
그 때였다.
"마법소녀들! 전부 후퇴해!"
지상에서 크게 울려퍼지는 루시에르의 목소리.
그 소리에 루리에는 공격하던 도중 순간적으로 고도를 낮추고, 다시 한 번 태양을 만들어내던 파이렌의 눈에 의문이 솟아오른다.
...어느새 유레하는 성벽 근처까지 후퇴한 상황.
그걸 보며 루리에가 상황 판단이 되지 않은 상태로 성벽으로 기술까지 쓰며 후퇴하자, 촉수 괴물이 인상을 찌푸리며 땅에서 싸우고 있는 전장을 주시한다.
그 순간.
"Ich sitze allein in der zerstörten Welt und graviere mir das Ende der Welt in die Augen.(나는 멸망한 세계에 혼자 앉아 세계의 마지막을 눈에 새긴다.)"
누군가의 영창 소리.
루리에가 성벽까지 빠르게 후퇴하며 뒤돌아본 곳에서 보인 것은...
"Ending Grab.(끝의 무덤)."
새까만 어둠이 모든 전장을 휩쓸어가는 모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