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마법소녀는 마을을 지키는 히어로야!
* * *
"때가 됐군."
옥상에서 오늘도 시위하고 있는 군대를 내려다보던 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곧바로 자신의 군대를 건물 앞에 대기시킨다.
그러자 평소에 없던 행동에 흠칫하면서 공격을 멈추는 군인들.
그러자 남자는 그저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쓸어라.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간악한 자들에게 응징을."
위이이이잉 콰과과과광!
아래에서 엄청난 소음과 비명소리가 들려오지만, 남자는 그저 플레이어 방송을 킨 채로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보이는 건 룰렛이 돌아가는 것과 당혹스러운 눈을 한 스노우의 모습.
그녀가 3성이 됐다는 소식에 그의 입에서 감탄이 튀어나오고, 영토전 지역이 3곳이라는 사실에 긴장하며 룰렛을 바라본다.
"이봐이봐이봐, 선예씨. 저거 조작 못해? 조작 해야 돼. 다른 놈들한테 스노우가 짓밟히는 걸 볼 수 없어!"
"진정하세요, 2번째 룰렛, 제가 볼 때는..."
그녀가 채 말을 끝내기 전에 2번째 룰렛에 철컥하고 걸리는 류 현성이라는 이름을 보며, 주먹을 꽉 쥐는 남자. 그리고 잠시 후, 3번째로 걸린 이름을 본 그는 허. 하면서 입을 열었다.
"유명한 보라돌이 씨구만."
"...피오레."
"뭐, 좋아. 아주 좋지. 차라리 저 녀석이라면 물량으로 밀어붙이기 편하니까. 처음 나온 라크헬름은 누군지 모르겠다만... 아마 적이겠지."
그렇게 말하며 밖의 상황이 정리된 걸 확인하는 남자. 그리고 잠시 후, 건물 앞에 새겨진 마법진을 보며, 그가 말했다.
"마음 같아선 직접 가고 싶은데... 수비측 승리조건 중 하나가 제일 강한 사람의 죽음이군. 혹시 모르니 그냥 기계 군단만 보내야겠어."
"센터에 들어가 계실 겁니까?"
"말은 전달해야할 테니까."
"무운을 빌죠."
"그래, 나도 잘 됐으면 좋겠네."
그렇게 그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마법진에서 나타난 한 사람.
단 한 사람의 소녀를 보낸 건 다음 아닌 '피오레'의 마법진이었다.
마치 한 명이면 다른 자들과 스노우 측까지 모두 쓸어버릴 수 있다는 것처럼.
"스노우."
사랑과 정의를 외치며 가장 앞서 날고 있는 마법소녀를 보며, 소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공허해진다.
잠시 후, 비행.
마법소녀들의 전문 스킬인 비행으로 날아오른 그녀가 스노우에게 쇄도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직행으로 싸우려고!"
파지지직!
이미 마법소녀라는 걸 짐작한 건지, 그 경로를 사이네가 막아선다.
그러자 보랏빛 트윈테일을 휘날리는 소녀의 손에 잡히는 보라색 마력.
그걸 본 사이네가 흠칫하면서 근접전을 포기하고 손을 뻗는다.
"일렉트릭 아이!"
파직!
노란 번개가 떨어져 내리지만, 손에 모여있던 마력으로 퍼억! 하고 번개를 쳐내는 소녀. 그걸 본 사이네의 눈이 동그랗게 되고, 양손, 양발에 마력을 두른 보랏빛 소녀가 그대로 달려든다!
"일렉트릭 태클!"
"나이트메어 카운터."
퍼억!
"컥!?"
사이네의 돌려차기를 왼팔로 능숙하게 흘려냄과 동시에 오른 주먹이 그녀의 명치를 꿰뚫듯 들어간다.
그러자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는 사이네. 그런 그녀에게 소녀가 내리찍기를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아쿠아 필라!"
사이네의 밑에서부터 솟아난 물기둥 2개가 보랏빛 소녀를 밀어내고, 동시에 사이네를 루리에가 회수.
그와 함께 루리에의 손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나면서 사이네의 숨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침식?"
사이네의 주변에 파직 하면서 약간씩 타오르듯 감싸지는 보랏빛 기운와 소녀의 기운을 보며, 루리에는 굉장히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잠시동안의 대치.
이내 보랏빛 소녀는 별 감흥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난 스노우한테만 볼 일 있어."
"우릴 뚫어야 스노우를 볼 수 있겠지?"
"그럼... 뚫어야겠네."
그렇게 말하며 소녀의 손에 왠 멋스러운 검은 빛깔을 보이는 기관단총이 잡힌다. 그러자 사이네와 루리에 역시 전투 태세를 취하고, 이내 세 사람은 서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빨리 말하고 가야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금 망설이지만, 전투는 이미 시작됐다.
성벽에 있던 원거리 플레이어들이 마법이나 화살을 날리고, 땅에 있는 유저들은 방어를 펼친 후 역공을 날리는 추세.
게임으로 치면 장수급인 사이네와 루리에가 왠 총을 든 마법소녀에게 발이 묶였다.
샤브린에게 시선을 옮기자 보이는 건 학살의 현장. 다만 능력치 제한이 걸려서 그런지 마력을 정말 희미하게만 운용하고 큰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루시에르는... 공격하지 않고 성벽 위 전체에 방어만 두르고 있는 추세고.
결국 우리 쪽에서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건 나랑 쌍둥이들 뿐인데, 내가 나서는 순간 저 기계 군단이 움직일까봐 두렵고, 쌍둥이는 아직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다.
"...왜 안 움직이지?"
의문.
성벽에서 꽤나 먼 거리에 방치되어있는 기계 군단을 보며, 나는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그 쪽만을 살핀다.
다른 팀의 전력이 깎이고 나서 오려는 건가 싶은데... 저 전력이면 굳이 그럴 필요 없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아예 가동이 멈춘 건 아닌게, 가끔 날아드는 마법을 기계들이 당연하다는 것처럼 빔을 쏴 격추하거나, 직접 움직여 쳐내고 있다는 것.
그것만 봐도 AI가 있거나 조종사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왜 공격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지?
그런 생각을 할 때즈음, 갑작스럽게 기계 군단 진영에서 단 하나의 안드로이드가 나에게로 날아왔다.
"슈팅"
스톱! 스노우 씨, 잠깐!
"?"
안드로이드가 아닌 다른 곳에서 통신을 하고 있는 수준의 음질로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눈을 깜박이며 마법 시전을 중단한다.
전투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처럼 양 손을 위로 향하고 있는 모습.
...적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쟁 중에 적한테 공격하지 말라는 건 무슨 경우야."
적이 아니라면?
"?"
내가 스노우 씨 팬이거든. 사랑과 정의의 마법소녀, 얼마나 좋아?
그렇게 말하며 안드로이드의 얼굴 부분에 데헷? 하는 표정의 이모티콘이 생겨난다.
이건 또 뭔...
귀여운 표정을 짓는다고 인간형 기계가 귀여워 보일 리도 없는데, 이런 이모티콘을 달다니 약간 정신 상태가 의심된다.
그러니까, 저것들 내가 다 쓸어줄게. 대신에 동맹 맺자.
"...동맹?"
그래, 동맹. 애초에 지금 인터넷 가능한 것도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거고, 전기 쓰는 것도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거다? 무상으로 썼는데 동맹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아, 이 사람이 그 서울에 있는 건물 주인인가.
그의 정체를 깨닫고 나는 잠깐 고민하며 안드로이드를 주시한다.
대뜸 나를 보자마자 팬이라고 외치는 걸 믿어야 할까?
물론 지금 하는 행동만 봐도 그다지 적대적이진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무슨 꿍꿍이인지 감이 안 잡힐 뿐.
나름 기계 군단이라 우리에게든 적에게든 큰 피해를 줄 수 있는데, 움직이지 않는 일에는 플러스 점수를 줄 수 있다.
[플레이어 'Ryuhyeon'이 플레이어 'Snow'에게 동맹을 요청했습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es/No]
아무래도 진담이었는지 내 앞에 메세지가 나타난다.
그걸 보며 Yes 버튼을 누르자, 녹색 빛이 기계 군단에게 퍼져나가고, 이내 기계 군단의 안광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진군을 개시한다.
노리는 목표는 라크헬름 측에서 온 사람들.
그걸 본 적들에게 동요가 퍼지기 시작하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샤브린이 검에 마력을 주입했다.
"레벨리온!"
[Rebellion sight]
붉은 마력의 섬광이 적진을 휩쓸고, 그야말로 범위 내에 일자로 피의 길이 펼쳐진다.
수십개의 실드에 막혔음에도 전부 뚫어내고 쓸어버리는 압도적인 섬광.
동요하고 있던 적에게서 분열이 일어나는 걸 느끼며, 샤브린은 가볍게 성벽 위로 점프해 올라온다.
"아군이라도 된 모양이군."
"맞아."
이거 참... 실제로 싸웠어도 힘들었겠는데.
샤브린이 일으킨 사태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샤브린은 별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은채 입을 열었다.
"1파는 이거면 정리됐군. 사기가 떨어졌으니, 남은 건 다른 각성자가 해낼 터다."
"다른 마법소녀들을 도우면..."
"아니, 저 넷이면 충분하다. 애초에 셋 일때즈음까지 대등이었으니까. 전투 경험은 필요한 법이지"
"...그래?"
어느새 유레하와 파이렌까지 합류해 4:1로 싸우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생각보다 쉬운 전투 양상.
이러면 굳이 내가 생각한 전략을 쓸 필요도 없이...
쿠웅!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거대한 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전멸당했던 진영으로 향한다.
검은 풀 플레이트 메일.
거대한 묵빛 대검.
검은 투구에서 보이는 흉흉한 붉은 안광까지.
신장이 2m에 달하는 누군가의 등장에 혼란에 빠졌던 진영이 안정된다.
그와 함께 남은 인원끼리 초반 대열을 유지하기 시작하는 적들.
그걸 본 샤브린이 흥미롭다는 미소를 입가에 담는다.
"호, 이런 전투에 초월자가 등장하는가? 좋구나."
그와 함께 거의 날아가듯 남자에게 쇄도하는 샤브린.
투포환급 무지성 돌진에 어느새 다가와 잡으려던 루시에르가 얼굴을 부여잡고, 그 뒤에서 유린이가 멍하니 날아가는 샤브린을 바라본다.
그리고 한숨.
"일단, 작전대로. 기계 군단. 현성?"
일단은 그런데.
"우리 대신 적들을 막아주면, 믿을게."
"..."
어차피 그럴 생각이다.
아니, 그걸 판단하는 건 네가 아니지 않냐.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지만,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에 조용히 침묵한다.
작전대로인가.
생각해보면 어차피 전투가 쉽든 쉽지 않든 퀘스트 때문에 다녀오긴 해야 하니까.
전투 양상도 그렇게 어려워보이지 않고, 라크헬름이 직접 등장한 것으로 보이니까, 지금이 적기다.
"...부탁해."
제대로 된 마법소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내가 제대로 보고 있을게. 다녀와."
응? 아예 어디로 빠지는 건가?
"영토전이 끝나면 알려줄게."
그런 말을 남기고 나는 유린이와 함께 본부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뒤를 돌아보니 기계 군단과 적의 병력들의 전투가 시작됐고, 루시에르의 지휘하에 아군 역시 라크헬름의 부대를 폭격하기 시작한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유린이를 안아든 채로 방향을 튼다.
목표지는... 라크헬름의 영토인 광주다.
스노우가 사라진 직후.
4명의 마법소녀와 싸우던 소녀의 눈이 맹렬하게 불타기 시작한다.
이기지 못한다는 현실에 대한 절망.
스노우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는 절망.
그리고 이대로 실패해서 돌아갔을 때 상황에 대한 절망.
어느샌가부터 총을 사방으로 끝도 없이 난사하기만 하는 그녀를 보며, 네 명의 마법소녀는 기가 질려 살짝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마탄이 피아 구분없이 쏘아지고 맞는 건 적군 뿐.
아군이야 루시에르가 단단히 지키고 있고, 마법소녀들 역시 소녀가 난사중일 뿐이라는 걸 알고 방어 마법으로 막아내며 슬며시 회피 중이었다.
"뭐야, 쟤 왜 저래?"
"아마 정신놓은 거 같은데!"
"꺄핫~☆ 미치광이랑 싸우고 있었던 거야!"
"무, 무서워!?"
눈에 초점조차 잡히지 않은 채로 난사만 하고 있는 그녀를 보며 마법소녀들은 잠깐 고민에 빠진다.
침식탄을 쏘아내고 있지만, 그녀 역시 그저 평범하게 침식당한 마법소녀.
정화해서 도와주고 싶었지만, 스노우는 현재 이곳에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보내기엔 다음에 쳐들어왔을 때 걱정된다.
그런 복잡한 상황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냥 죽여버리자♡!"
"안 돼, 유레하. 우리는 이미 죄를 많이 지었다고 스노우 님이..."
"하지만~ 저 애는~ 적인걸?"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손을 앞으로 뻗는 유레하.
그와 함께 그녀의 주변에 바람의 칼날들이 무수히 새겨지기 시작하고, 그걸 보며 파이렌도 한숨을 쉬며 그 모든 칼날에 화염을 입힌다.
그걸 보고도 잠깐 고민하기 시작하는 사이네와 루리에.
사이네는 엄지를 살짝 물면서 고민하다가 이내 전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쯧. 꿈자리가 사납겠네."
"할 거야?"
"해야지. 우린 정화시키는 방법도 모르는데, 저걸 끝까지 냅두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잖아."
"..."
고민하듯 창을 어색하게 쥐고 있던 루리에도 사이네의 말에 결국 창을 쥐며 물기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물기둥에 전부 입혀지는 전격.
두 쌍의 듀오 마법이 쏘아지려는 순간이었다.
"하"
소녀의 음울한 한숨.
어느새 소녀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단 걸 깨닫고, 네 사람은 설마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처음부터, 희망은, 없었구나."
타앙!
당연하다는 것처럼 방아쇠를 당기고, 소녀의 머리가 순간적으로 확! 하고 옆으로 튄다.
그에 마법을 사용하던 것도 잊고 놀라는 루리에. 하지만 사이네가 뭔가의 징조를 알아채고, 유레하와 목소리를 겹치며 소리친다.
"바로 쏴!"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쏴야해!"
그들의 말에 마법이 날아간다.
총을 맞고 머리가 확하고 밀려났음에도 그대로 비행이 유지되고 있는 소녀.
그런 그녀가 마법에 적중당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절망의 마법소녀, 윈."
모든 마법이 보랏빛 파동에 삼켜지기 시작한다.
파동의 가운데 그녀의 눈에 남은 건 공허와 음울함 뿐.
소녀가 축 늘어진 상태로 잠시 다른 마법소녀들을 바라보다가, 그저 한탄하듯 하늘을 바라본다.
"모든 마법소녀들의 포식자...라고 하더라."
그 말이 끝난 후, 소녀의 몸은 형체도 없이 찢어지며 거대한 육괴 덩어리의 무언가가 그 자리에서 솟아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