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마법소녀는 악당을 용서해서는 안 돼!
* * *
파이렌을 보낸 후.
나는 할 일이 없다는 걸 자각하며 파이렌이 누워있던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기 시작한다.
흙먼지야 아까 제거했고, 조금 찜찜한 부분도 물의 마나로 어떻게든 처리 완료.
스프링이 조금 불편한거 빼곤 평범한 침대가 되서 그런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졸음끼를 느끼면서 시스템 창을 열어본다.
"플레이어..."
플레이어라는 게 되면서 날아온 축복.
그리고 아예 닉네임 같은 방식으로 내 이름이 새겨졌던 게 마음에 걸린다.
'별에게 소원을'을 발동했을 때, 본 닉네임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리고... 내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는 메세지를 보낸 것들을 생각해볼 때, 나를 지켜보고 있는 플레이어들처럼 나도 다른 애들을 지켜볼 수 있어야 정상 아닐까.
"렌, 플레이어가 됐을 때 할 수 있는 건."
[다른 NPC들이나 플레이어들을 방송을 통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응."
[끝입니다.]
"?"
모예요, 관음증 환자밖에 못해요?
"후원 플레이어나 그런건."
[플레이어 후원과 담당 플레이어를 정하는 건 4성부터입니다.]
"4성...?"
[플레이어 등급입니다. 마스터 같은 경우 2성으로 시작해서 현재 3성이 됐죠.]
"어떻게 올리는데."
[방법은 많습니다. 레벨을 올려도 되고, 자기보다 강한 적과 싸워도 됩니다. 아니면 업적을 달성한다던가, 퀘스트를 좀 더 깨는 방향도 있겠죠. 그것도 아니면 깨달음을 얻어도 되고요.]
"..."
그거 서울대 가려면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시면 되요랑 같은 의미지?
그나마 깨달음을 얻는다는 게 좀 특이한 사항일 뿐, 대부분 정석적인 이야기다.
게임 판수 많을 수록 실력 늘어나!
한 시간이 오래될 수록 실력 늘어나!
같은 의미니까.
"플레이어 보는 건 어떻게 해."
[현재 볼 수 있는 건... 그렇네요. 사이네와 루리에, 파이렌을 볼 수 있습니다.]
"..."
아무래도 3성이라는 거에 지인밖에 못 본다는 제한도 있는 모양... 아니, 잠깐.
"마법소녀만 볼 수 있는 건가."
[네, 현재 마스터가 볼 수 있는 건 클래스 '마법소녀' 소속인 지인 뿐입니다. 저도 확신은 못 가집니다만, 4성이 되시면 지인이 아닌 마법소녀들, 가까이 있는 마법소녀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괜찮네."
왠지 모르겠지만 퀘스트에서 지속적으로 마법소녀를 모으게 하고 있는데, 4성이 된다면 좀 편하게 모을 수 있을지도.
"다른 질문이지만."
[말씀하십시오.]
"이 세계는 뭐야."
렌은 내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며 잠시 침묵을 유지한다.
나는 아까 미경이에게 이야기하면서 '누군가가 게임으로 삼은 세계'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건 순수하게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말이었을 뿐.
지금 내 생각이 맞다면...
"이 세계는, 게임이야?"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니."
게임이라고 하기엔 사람들이 너무 현실적이다.
아포칼립스치고는 착한 사람들만 보아온 것도 같지만...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너무 현실적이라고 할까.
초반에 일어났던 학살.
같이 다녔던 사람의 죽음.
그리고 유레하가 일으킨 학살까지.
고어 게임이라는 말로 납득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가상 현실 게임이라는 게 갑자기 세상에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AI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가 게임이냐고 의심하는 이유.
"상태창 시스템과 마법소녀 패시브라는 게 의심스러워."
렌이 마법소녀 패시브라고 말한 것.
신체 결손이 일어나지 않고, 상처가 날 상황이나 더러워질 상황에도 언제나 청결함을 유지하고 멀쩡하다.
게다가 파이렌의 말이 맞다면 체력 5%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한,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일반적인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 아니다.
물론 내가 일반적인 인간을 벗어났다는 건 알고 있지만... 솔직히 그렇지 않아?
ㅡ사람의 체력이나 상태가 어떻게 퍼센트라는 걸로 표시될 수가 있어.
"솔직히 그것만 보면 정말 게임이라고 생각이 들어.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야."
[맞습니다, 이 세계는 게임 세계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딱히 렌은 정답을 말해주진 않았다.
아마 렌도 잘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질문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건 역시...
"관리자라면 알고 있을까."
[그렇겠죠?]
"만날 방법은 있어?"
[이번에 2단계가 되면서 영토전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제한이 풀리는 수치가 좀 이례적인 일이니 아마 관리자가 그때 나타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 이야기가 가능할까?"
[모르겠습니다. 원래 관리자를 본격적으로 만나려면 탑을 오르셔야 하니까요.]
"탑..."
렌의 말에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본다.
이 세계가 아포칼립스화 되면서 생겨났다는 시련의 탑.
그곳에 가면 내가 갑자기 이런 세계에 떨어져버린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정도는 알 수 있을까?
"솔직히 별 생각은 없었어. 안정된 정신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습니까?]
"응, 그냥 소설에서 흔히 나오는 빙의구나... 같은 생각만 들었달까."
...생각해보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다.
안정된 정신은 내가 빙의되자마자 얻은 스킬이 아니라 각성하고 얻게 된 스킬.
각성 전부터 정신에 흔들림 하나없이 그저 아포칼립스 세계에 떨어졌구나 하고 납득했다?
게다가 고블린을 처리할 때의 내 반응도 엄청 차분했다고 생각한다.
3마리나 쳐들어왔는데, 당연하다는 것처럼 처리했다.
내 전생이 평범한 회사원이었다는 걸 생각해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혹시나 하는 이야기지만 렌."
[네.]
"너는..."
내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풀숲을 울리는 거대한 폭발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함소리.
그리고 내 눈앞에 나타나는 창 하나.
[당신의 정령 '파이렌'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서브 퀘스트 '마법소녀는 악당을 용서해서는 안 돼!'가 시작됐습니다.]
[마법소녀는 악당을 용서해서는 안 돼!]
자신의 속죄를 위해 목포시에 있는 몬스터의 씨를 말리던 파이렌!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파이렌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도 살아남는다는 장담을 하지 못할 정도!
현재 파이렌은 많은 숫자의 사람들에게 공격받기 시작했다.
마법소녀여, 당신의 동료를 죽이고 당신을 해코지하려는 무리를 물리쳐라!
달성 조건 : 목포시를 침략한 사람들을 전멸시킨다(0/100)
패배 조건 : 본인 사망 or 파이렌 사망 혹은 생포 당함
보상 : 목포시 영토에 편입, 새로운 마법 획득(랜덤 성(?)속성)
패배 시 : 목포시가 침략자 영토에 편입, 마법소녀 '스노우', '파이렌', '유레하'가 해당 영주의 소속이 됩니다.
아무래도 파이렌이 위험에 처한 모양이다.
"너희는 또 뭐야!"
"포획 부대! 빨리 디버프든 뭐든 뿌려!"
"커스 라이트닝!"
"슬로우!"
"아이스 프리즌!"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마법사들의 마법에 파이렌은 얼굴을 찌푸리며 공격을 방어 스킬로 억지로 막으며 마법을 발동한다.
사용한 스킬은 플레어 썬.
그나마 빠르게 발동할 수 있는 범위 스킬을 발현하다가 문득, 파이렌은 자신의 새 주인이 이야기하며 지어보였던 침울함이 섞인 표정이 기억나 쏘아내는 걸 망설이고 만다.
그녀가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할 때부터 무표정에 희미하게 섞여 느껴진 슬픈 감정.
어쩐지 그녀는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음을 느끼고 던지는 걸 망설이고 만다.
"지금이다!"
푸욱!
"쿨럭!?"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들이 팔, 다리, 어깨에 박히고, 그대로 플레어 썬은 파이렌의 발밑으로 떨어져내린다.
많이 망설인 탓에 땅에 있던 인간들은 모두 피해내는데 성공.
역으로 몇 가지 마법이 발동해 파이렌에게 그대로 날아든다.
"크으...!"
화살은 마법소녀 패시브로 인해 저절로 뽑혀 땅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통증은 그대로.
애초에 회피라는 행동에 익숙하지 못한 그녀에게 날아드는 각종 마법들은 그녀가 피하기엔 너무 빠른 공격들이었다.
멍청이.
파이렌은 적을 앞에두고 망설인 자신을 자책하며 최대한 화염구를 띄워 마법들을 요격하지만, 몇몇 공격에 적중.
HP가 나락까지 떨어져내림을 느끼며 뒤늦게 도망치려 하지만, 이미 활시위는 당겨진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돼! 쏴라!"
하늘을 수놓은 화살들과 몇 가지 마법들.
파이렌은 막아줄 유레하가 없다는 걸 깨달으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고, 그 순간이었다.
"아쿠아 실드, 슈팅 스타!"
찾아와야 할 고통이 느껴지지 않으며 들려오는 목소리.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의 목소리에 그녀가 살며시 눈을 뜨자, 그곳에는 백의 마법소녀가 있었다.
머리 위에 분홍빛으로 타오르듯 펼쳐진 마력의 날개.
새하얀 빛의 기사 예복과 분홍빛으로 일렁이는 마력을 가진 눈동자.
자신이 일어났을 때보다 훨씬 강렬해진 마력광과 마력의 날개를 보며, 파이렌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스...노우 님?"
"..."
눈동자에 담긴 건 고요함.
하지만 파이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맹렬히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새끼들이 미쳤나.
머리가 무겁다.
눈동자가 타오르는 것처럼 뜨겁다.
머리가 뜨거워지다가 차가워지기를 반복한다.
오늘만 3번째 느끼는 미칠 거 같은 기분.
슬슬 체력이 바닥나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분노라는 감정을 안정된 정신이 계속 잠재울 정도로 불태우기 시작한다.
차라리 목포 시 사람들이 파이렌을 공격한 거라면, 나는 그래도 분노하진 않고 수긍하며 그녀가 죽지 않는 방향으로만 중재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목포 시 사람들과 쌍둥이에겐 서로 풀어야할 골이 있다.
그저 약간의 폭력 정도로 그걸 풀 수 있다면, 더할 나위없는 결과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당하고 있는 건 일방적인 폭력.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는 사람들이 마치 몬스터를 상대하듯 레이드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니, 아무런 감정이 없진 않지.
ㅡ음심이나 욕망 같은 것도 감정이니까.
눈동자의 열기가 거세지는 느낌이 들지만, 뜨겁다는 감각은 들지 않는다.
머리에 오르던 열이 잠재워지며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한다.
상대는 100명.
전부 각성자.
날아온 화살 숫자로 볼 때 궁수 관련 23명. 마법이 날아온 숫자는 12개.
나머지는 지상에 떨어졌을 때를 대비한 근접 계열.
일단 장거리 스킬로 그녀를 떨어뜨리고 근접 계열들이 완전히 봉쇄할 전략이었던 모양이다.
"왜 망설였어, 바보같이."
"미안해, 스노우 님. 나도 모르게..."
"적은 적이야."
적은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사람들도 적인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지금 우리를 공격한 사람들처럼.
다른 영토에 소속된 사람들처럼.
그래, 역시 아포칼립스니까 저런 사람들도 존재하는 거겠지.
자신들이 아니면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더러운 족속들.
"나는 별무리의 마법소녀, 스노우. 물러날 거라면, 지금 물러나. 다음 기회는 없어."
"생각보다 더 예쁘잖아! 그 당당한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생각하면, 크~ 꼴리는데!"
"..."
남자의 말에 비웃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내가 지팡이를 하늘로 올린다.
선제 공격은 슈팅 스타.
저 사람들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전부 쏴!"
내가 하늘에 별무리를 소환하자마자, 남자가 손을 젓는다.
그러자 하늘을 향해 방패를 세우는 자들과 화살, 마법을 날리는 사람들.
아마 내 공격은 방패로 막아내고 화살이나 마법으로 날 격추시키고 싶은 모양인데...
"그런 느린 공격, 맞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아쿠아 웨이브, 승인.]
땅에서 파도가 솟아오르고 그 위에 서있던 자들이 물살에 휩쓸린다.
그와 함께 떨어져내리는 별무리에 죽어나가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머리가 터져나갔다.
어떤 사람은 막아낸 방패째로 팔이 날아갔다.
어떤 사람은 몸통에 박혀 피를 흩뿌린다.
내가 일으킨 사태에 눈을 떼지 못한다.
구역질 날 거 같아.
하지만, 망설이지 않는다.
"썬더 웨이브."
파도가 사라지기 전에 또다른 파도를 일으킨다.
원래 있던 파도에 크기를 더하는 거대한 해일.
누가봐도 명백하게 전격을 품고 있는 거대한 해일을 보는 적들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얼음 마법사가 해일이 다가오기 전에 얼리려고 하지만, 물리적으로 너무 커서 바로 깨져나간다.
막아낼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자들이 후퇴하지만 글쎄.
ㅡ해일이 사람보다 느리다면, 쓰나미로 도시가 피해를 입는 일은 없지 않을까?
파지지지직!
해일이 모든 인간들을 휩쓴다.
그와 함께 일어나는 분홍빛 전격.
분홍빛을 띄는 전기라니, 조금 의문을 가지게 되지만 아무래도 좋다.
"스노우 님?"
"...미안. 잠깐만 시간을 줘."
안정된 정신이 쉬지 않고 발동한다.
구역질 날 거 같아.
멘탈이 흔들리면서 동시에 안정화된다.
안 좋은 감정이 떠오르려다가 사라진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이 떠오르려다가 잠재워진다.
머리에 열기가 올라오다가 사라진다.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사람을 죽였다.
몬스터를 죽일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직접 손에 닿지 않았으니까.
저건 죽여야하는 생물이니까.
게임적 감각으로 그렇게 전부 죽이고, 사람들을 위해 죽였다.
지금은 다르다.
우리를 공격하려는 사람이 있었기에 죽였다.
분명 생포하는 방향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죽인 거야.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나를 공격해온다.
생포같은 소리하네.
1명이 100명을 생포한다니, 나는 그런 편리한 마법을 알지 못한다.
내가 익힌 마법은 몬스터를 죽이는 마법.
내가 익힌 마법은 HP로 살아남는 마법소녀들과 싸우기 위한 마법.
일반적인 사람들이 맞았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나는 알지 못했다.
ㅡ정말로 몰랐어?
구역질이 올라오다가 안정된 정신이 그걸 막아낸다.
몰랐다는 건 거짓말이다.
애초에 유레하가 일으켰던 사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사태가 일어날 거라고도 알고 있었으면서 행한 일이다.
ㅡ생각 이상으로 멘탈이 약하네. 조금 도와줄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정신이 흐릿해진다.
강제로 잠드는 느낌.
변신이 풀려나간다.
더 이상 비행 마법의 효과를 받지 못하고 육신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한다.
놀라서 그런 나를 붙잡는 파이렌이 보인다.
그걸 끝으로 내 의식은 어둠 속에 가라 앉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