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마법소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해!
* * *
시야가 밝아진다.
냉정함이 돌아온다.
눈에 불길이 치솟는 것과 같은 열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머리의 무거움도 변하지 않는다.
대신에ㅡ
[퀘스트 '마법소녀에게 마스코트는 필수야!'를 완료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마법수의 속성 '빛과 소리'에 따라 상시 치유 효과와 무언가의 흐름을 알아냅니다.]
[ㅡ현 플레이어 'Snow'에게 적합한 흐름 확인.]
[스킬 '마력시'를 얻었습니다.]
[스킬 '스킬 합체'를 발동합니다.]
[스킬 '마나시'와 스킬 '마법 이해'가 합쳐집니다. 합쳐진 스킬들은 고유 스킬이기 때문에 소멸합니다.]
[스킬 '순환시'를 얻었습니다.]
['Snow'는 더 이상 NPC가 아닙니다.]
[당신에게 플레이어 '2Yuzm2i'가 축복을 내립니다.]
세상이 색으로 변한다.
모든 바탕은 푸른색.
하늘에 떠있는 녹빛의 마법소녀.
바닥에 있는 건 흐릿한 무지개들의 향연.
시야에 적응하지 못했지만, 어쩐지 마나는 나에게 길을 알려준다.
시계가 느려진다.
여기저기 펼쳐져있는 녹색 구체들이 눈에 띈다.
아마 아까 당한 함정의 표식이겠지.
모든 걸 파악하는 사이 회오리가 근처까지 온다.
렌을 검의 형태로 변형시킨다.
마력의 흐름을 본다.
"죽어. 사이클론킥!"
유레하가 이동하는 마력의 흐름이 눈에 보인다.
느려진 세상에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
몸을 숙여 바람 마법이 담긴 발차기를 피해내고, 속임수라는 것처럼 챠크람이 날아오는 걸 렌이 프로텍션으로 막아낸다.
회오리의 마력 흐름과 반대 방향으로 불의 마력이 담긴 화염을 일으킨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전부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회오리.
하지만 잠시 후, 마력의 결이 전부 꼬여버린 회오리는 화염에 잡아먹힌 것처럼 사라진다.
"무슨짓..."
"렌."
[아쿠아 브레스, 승인.]
입에 물의 마력을 모은다.
뱉어내려는 순간, 윈드 스텝을 작동하려는 유레하.
나는 그걸 본 순간, 곧바로 검을 휘둘러 상대가 이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력 흐름 자체를 끊어버린다.
"캬아악!?"
파아아아앙!
거의 코앞에서 브레스를 맞고 멀리 나가 떨어지는 유레하. 아직 침식을 해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브레스가 끊기는 순간, 윈드 스텝으로 날아가는 유레하를 따라잡는다.
뭔가 큰 마법을 준비하듯 허공에 거대한 녹색 마법이 맺히려고 한다.
그 마법의 흐름을 바람의 마력으로 잘라내자, 그대로 캔슬.
그녀가 눈을 크게 뜨는 순간, 나는 곧바로 전격의 마력을 일으킨다.
"일렉트릭 브레이크!"
파지지직!
물에 젖은 유레하에게 전격을 두른 채로 그대로 내리찍는 나.
그러자 그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쳐박혀버리고, 이내 기절한 듯 축 늘어진다.
"..."
죽은 건 아니겠지?
나는 불안함을 감추고 곧바로 별의 마력을 일으켰다.
"정화, 마석화."
눈에 있던 열기가 서서히 걷혀가며, 나는 마음이 다시 고요해지는 걸 느낀다.
머리도 더 이상 무겁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침식 스킬을 쓰기도 전에 쓰러뜨렸네.
그런 생각을 할 때, 나는 몸에서 묘한 탈진감을 느끼며 비행 고도를 점점 낮춰갔다.
ㅡ시계가 돌아왔다.
"윽..."
머리가 띵함을 느끼며 눈에 느껴지던 열기가 완전히 사라진다.
세상은 아직 여러가지 색을 띄고 있지만, 확실하게 무언가 사라졌다.
이거 세상이 완전 컬러물감처럼 보여서 불편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끈다고 생각하자, 시야가 돌아왔다.
"...응?"
혹시 패시브도 강제로 끌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안정된 정신을 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순환시는 온/오프가 가능하게 만들어진 무언가일 뿐인 모양이다.
냐옹!(안뇽!)
"안녕."
마석화가 끝나고 인벤토리에 마석을 넣어버리는 순간, 고양이가 냐옹하면서 나에게 점프해온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자, 내 가슴에 얼굴을 부비는 냐옹이.
얘가 마스코트라고...?
아니, 그보다 왠지 무슨 의미인지 실시간으로 번역되는 거 같은데.
냐옹냐옹~(주인, 말랑말랑해서 좋다냐!)
"..."
내 마스코트가 변태라니, 그럴리가.
고양이라서 아마 가슴이라는 부분을 잘 모르는 걸테지.
미야아옹!(정의의 마법소녀는 언제나 인정이다냐!)
"응."
냐옹?(주인 원래 그렇게 무뚝뚝하냐옹?)
"아마."
냐옹... 냐옹... 냐옹!(무뚝뚝 마법소녀냐옹... 흐으... 좋은 거시다냐!)
처음 가지게 된 마스코트는 생각보다 이상한 아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예요."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
사랑과 정의다냐!
그건 제발 하지 말아줘.
어떻게 본 건지 내가 결계를 펼칠 때 대사를 그대로 외치는 소녀를 보며, 나는 얼굴이 쩌적하고 굳어버린다.
이번에 싸울 때는 제법 본 사람이 많았지.
영상을 찍은 사람이 없길 바랄 뿐이다.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게이트에 들여보낸 후, 나는 잠시 폐가 쪽을 스윽하고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숨겨놓은 두 쌍둥이 마법소녀.
목포시 사람들에게 이미 원한을 산 두 사람이다.
목포시 사람들을 전부 시민으로 받아들인 나로서 두 사람은 껄끄러운 아이들일 뿐.
원래 성격이 좀 멀쩡하다면 얌전히 구석진 곳에 데려다놓긴 할 텐데...
"...저, 저기!"
"응."
누군가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갈색 머리칼을 가진 소녀가 눈을 감은 채로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아까 그 맹인 소녀구나.
눈을 감은 채로 숲에 있던 어떤 기둥에 무전기를 들고 있던 걸 데려왔는데, 왠지 내가 손대는 걸 무서워해서 약간 떨어져서 데려온 기억이 있는 사람이다.
진작 넘어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있었구나.
"그... 저도 가도 되는 건가요? 다른 두 마법소녀는요?"
"너는 다른 마법소녀와 함께하던 사람이구나."
"...맞아요. 그 아이들은, 저를 근처에 두고 있었어요."
"그렇구나."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스노우 씨, 제가 눈을 감고 있는 이유를 아시나요."
"몰라."
말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제 능력은 생각을 읽어요. 자동으로 그 사람의 생각을 읽죠. 이게 무슨 의민지 아시나요."
"...?"
"풍령, 그 아이가 당신의 공격을 전부 피한 건 제가 알려줬기 때문이예요. 말하자면, 스노우 씨의 상대는 저도 포함이었다는 이야기예요."
"그렇구나."
"화내지 않으시나요? 당신은 저 때문에 죽을 뻔 했는 걸요. 그런 제가 가도 되나요? 두 마법소녀들이 따라가지 못하는데, 그저 직접 싸우지 않았다고 제가 안전한 곳으로..."
"그만."
"..."
"어차피 다른 두 사람도 데려갈 거야.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불안 증세를 앓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에 나는 그녀의 말을 딱 잘라낸다.
그녀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알겠다.
결국 아까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린 유레하의 행동에 자신도 관여했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
자칫 잘못했다가는 모두 죽였을 지도 모르는 간접적인 살인마가 된 것에 대한 불안.
그런 불안을 품은 상황에 두 마법소녀들까지 내가 데려가지 않으니, 더 불안해졌던 모양이다.
"데려... 가나요?"
"침식에 당했었다고 하지만, 마법소녀 동료야. 데려가지 않을 이유는 없어."
"그렇...군요."
"다만, 사실 나도 고민하고 있어. 침식 상태로 그 아이들은 살인을 저질렀지. 과연 그건 죄가 아닐까. 그 사실을, 나도 지금 잘 모르겠어."
"...그건 죄예요.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말을 한다고 해서 그녀들이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죄를 지은 사람은 다른 사람인데, 그 아이들이 벌을 받는 건 잘못 됐다는 이야기도 할 거야."
"하지만...!"
내 말을 부정하려는 기색을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 하지만 나는 그저 고요한 미소만을 입에 담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정답은 없어. 나도 지금 고민중이고."
"..."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저 속죄를 위해 다른 사람을 더 구해내는 방향으로 갈 생각이야."
"더... 구해요?"
"지금 우리 세계는 뭔지 모를 무언가에게 침략을 당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걸 막기 위해 우리들은 각성이라는 걸 하게 됐지."
단계별로 나뉜 기간.
단계가 올라갈 수록 서서히 난이도가 올라가는 구도.
초월자라는 개체를 만들어내는 탑.
땅따먹기와 같은 영토 시스템.
무엇보다... 상태창에 적힌 플레이어.
"우리 세계를 배경으로 누군가 게임을 만들고, 하고 있는 걸지도.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지.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선명하게 보인다. 그럼 그냥 고어 게임일 뿐이야."
"그런..."
실제로 '플레이어'라는 자들이 우리를 보며 게임을 하고 있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쪽은 내가 플레이어가 되면서 추가로 사용하게 된 기능들을 살피다 보면 알 수 있겠지.
"마법소녀는 처음부터 강한 힘을 가지게 되는 이레귤러 같은 존재들이니까, 그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자신이 죽인 사람 이상의 사람을 구하는 것 뿐이겠지."
"...스노우 씨도 그런 생각으로 사람을 구하고 있나요?"
그녀의 눈에 살짝 떠진다.
아마 내 진심을 보고 싶은 모양인데... 아쉽게도 그녀가 더 이상 내 생각을 읽는 경우의 수는 없다.
[스킬 '안정된 정신'이 타겟 '정 미경'의 능력 '마인드 리딩'을 막아냅니다!]
"어...?"
"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존재하진 않지만,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구하고 싶다고 생각해."
내 생각이 전혀 읽히지 않은 것을 깨달았는지, 미경의 눈이 크게 떠진다.
그녀가 놀라건 말건 고요한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는 나.
계속해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가, 미경이는 잠시 생각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한 번 푹 숙이면서 말했다.
"일단, 저도 가볼게요."
"마음은 정한 거야?"
"네, 그 아이들도 같이 간다면, 저도 안 갈 이유는 없으니까요. 속죄해야하는 건 그 아이들 뿐만이 아니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천천히 게이트로 걸어간다.
푸른 게이트로 천천히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소녀.
그걸 잠시 바라보고 있던 나는 내 품 안에 고롱거리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조심스럽게 다시 비행을 시작했다.
깨어나지 않는다.
게이트 열리는 시간이 남은 건 20분 정도.
침대 2개에 나란히 누워있는 붉은색과 녹색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곤 잠시 소파에 앉는다.
침식이 길었기 때문일까.
18시간이 지났음에도 일어나지 않는 파이렌의 상태를 보며, 잠시 열이라도 있나 이마에 손을 얹지만 상태는 양호했다.
냐옹?(안 돌아가냐옹?)
"일어나야 같이 가. 잠들어 있는 애들을 데려갔다간, 목포시의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가 없어."
냐옹...(상관없지 않냥...)
"상관 있어. 두 사람이 잠든 채로 있다가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거랑 두 사람이 깨어나서 누군가에게 발견되는 건 제법 다르거든."
잠들어있는 그녀들은 목포시 사람들의 원망의 대상이 되기 쉽다.
어차피 보호하는 건 나와 다른 아이들이라 안전하긴 하겠지만... 분명 계속 마법소녀들을 모으라는 점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날 확률도 높고, 지금 다른 영토에서 쳐들어오는 것도 확정되어있다.
우리 영주민들에게 미움 받은 채로 생활한다면, 그녀들은 계속 힘든 삶을 살게 되리라.
적어도 그녀들은 목포시 시민들에게 사과해야했다.
루리에 때와는 다르다.
루리에는 그저 몬스터를 이끌 수 있는 포지션이었을 뿐, 딱히 시민들을 스스로 죽이고 다닌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쌍둥이들은 시민들 앞에 전면적으로 모습들 드러내고, 무수한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으니까.
"..."
하지만, 깨어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잠든 채로 이 녀석들을 그대로 데려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은인인 나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었다.
사실 셋이서 짜고 쳤다느니, 원래 같은 팀이었는데 세탁하려고 연기했다느니, 그런 구설수가 오를지도 모른다.
직접 본 사람이야 내가 죽기 직전까지 갔었으니 괜찮다고 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의심을 충분히 가질만 했으니까.
"하아..."
게이트 지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데리고 가는 건 무리.
기껏 돌아가기 좋은 게 생겼는데, 사용이 불가능한 운명이 되버린 모양이다.
...애초에 유레하는 깨어날 수 없을 테니 예상한 일이긴 해.
애옹.(얘들이 일어나는 시간을 알고 싶은 건가옹?)
"응."
냐옹냐옹(빨간 앤 2시간, 녹색애는 20시간후다옹.)
"?"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런 의문을 가지지만, 고양이는 그저 잘했지? 잘했지? 하면서 쓰다듬어달라는 것처럼 내 배에 몸을 부비적거린다.
그런 반응에 잠시 쓰다듬어주면서 두 사람을 관찰하다가, 문득 마스코트의 속성이 '빛과 소리'였다는 걸 기억하며 말했다.
"소리로 안 거야?"
냐옹냐옹...(빛에 반응하는 상태를 보고 알았다냐.)
"...그렇구나."
일단 대충 이 고양이가 엄청 뛰어나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근데 사람한테 엄청 들러붙는 게, 강아지 같네...
"아무튼 그러면 게이트 사용은 무리구나. 다 같이 날아서 가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를 뒤지다가, 문득 바닥에 던져놓은 휴대폰을 기억해내며 한숨을 내쉰다.
연락 수단이 없어서 곤란하다.
다른 사람들만 보내고 나 혼자만 돌아오지 않으면 분명 걱정할 텐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