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마법소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해!
* * *
잠에서 깨어난 건,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 때문이었다.
머리칼이 약간 부스스해졌다 싶었는데, 자연스럽게 몸에서 살짝 빛이 나며 마치 빗으로 빗은 것처럼 깔끔해지는 머리칼.
나는 눈을 비비적 거리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자, 냐옹? 하며 왠 고양이가 나를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내 다리 위에서.
"..."
냐옹?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고양이를 보며, 나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내민다.
그러자 내 손에 뺨을 부비적거리는 냐옹이.
왠진 모르겠지만 냥줍을 하게 된 느낌이...
"미안, 지금은 너랑 놀아줄 수가 없어."
고양이를 살짝 쓰다듬어주다가, 나는 이내 계속해서 떠있는 시스템 창을 확인한다.
자는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하면서 창을 보다가, 이내 표정이 굳어지는 나.
뭐야, 이거. 언제!?
[마법소녀는 사람들을 도와야 해!]
마법소녀 파이렌이 쓰러졌고, 또다른 마법소녀인 유레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당신을 찾기 위해 모든 인간들에게 정찰을 명해놓은 상황.
마법소녀여, 유레하가 다시 인간들을 모아 노역을 시키거나 학살하기 전에 그녀를 침식에서 해방시켜라!
그래야만 당신은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할 수 있을 테니까.
달성 조건 : 마법소녀 유레하 사망 or 마법소녀 유레하 정화
실패 조건 : 현재 목포 측 인간 50% 이상 사망.
보상 : 목포 시와 성남 시를 연결하는 텔레포트 게이트가 2시간 동안 열리게 됨, 목포 시 시민들 전부 성남시 귀화.
실패 시 : 목포 시가 몬스터의 도시로 전환되며, 어느 차원의 지배하에 놓이게 됨.
남은 타임 리미트 : 5시간 33분 25초
"윽..."
몇 시간 잠든 거지?
휴대폰을 꺼내들다가 완전히 녹아서 너덜거리고 있단 걸 알고 그대로 바닥으로 던져버린다.
폭발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잠에서 깨기 위해 고갤 흔든다.
저 말은 즉 시간이 지나면 혹은 다 지나기 전에 유레하가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인간들이 나를 찾고 있단 소리다.
"...협력 요구는 안 들어주겠지."
이미 사람들에게 쌍둥이 마법소녀는 공포의 대상일 터.
나에게 협력하는 것보다 마법소녀를 적대하게 되는 걸 더 위험시여길 확률이 높다.
실제 전력을 아는 유레하와 확실하지 않은 내 전력을 비교했을 때, 당연히 유레하를 선택할 테니까.
"흐으..."
잠시 고개를 몇 번 젓고, 확실하게 잠에서 깨어난 나는 파이렌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한다.
나름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건지, 새근거리면서 잠들어 있는 파이렌.
편하게 잠들어 있는 게 조금 불합리하다 느끼며 잠깐 콕하고 뺨을 찔러버리고 싶어지지만, 그럴 때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렌을 잡고 변신한다.
일단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심스럽게 파이렌을 안아들자, 냐옹 하면서 다시 다가온 고양이가 내 다리에 뺨을 부빈다.
"...나랑 같이 있으면 위험해, 고양아."
냐옹
"..."
내 말에도 가지 말라는 것처럼 계속해서 몸을 부비는 냐옹이. 계속 그렇게 비비면 마음이 약해지는데...
"...이리온."
나는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담고, 몸을 낮춘다.
그러자 알아들었다는 것처럼 폴짝하고 파이렌의 위에 올라타더니, 몸을 둥글게 마는 고양이. 자연스럽게 사람 위에 올라타는 걸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그대로 날아오른다.
빠르게 날아다닐 순 없겠네.
최대한 고양이를 떨어뜨리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며, 천천히 비행을 시작하는 나.
조금 비행하자, 뭔가 아래에서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ㅡ아, 그렇구나.
어차피 유레하는 나를 찾고 있다.
괜히 파이렌을 안전한 곳에 놔두려고 움직일 필요도 없다.
그걸 알아챈 나는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파이렌을 눕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그와 함께 도시가 있던 방향으로 고속 비행.
고양이가 따라오려다가 냐옹!? 하면서 밀려난 거 같지만, 나중에 쓰다듬어주기로 하자.
"나와! 유레하! 난 여기다!"
제법 거리가 떨어지는 순간, 나는 내가 눈에 띄도록 슈팅 스타를 사방에 펼친다.
모든 조준은 렌에게 전담.
도시에 남아있는 고블린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온 사방으로 슈팅스타가 날아간다.
그리고...
"뭐야뭐야! 숨어있는 건 포기한 거야?"
녹색의 마법소녀는 어느새 내 눈앞에 떠오른 채로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파이렌이... 당했어?"
소파에서 뒹굴거리다 말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풍령의 마법소녀.
그 모습에 긴장한 상태로 졸고 있던 여자아이는 몸을 살짝 떨며 그녀를 바라본다.
마치 분노한 것처럼 서서히 녹색 빛이 온 몸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유레하.
이내 자신의 챠크람을 들고 날아오른 그녀가 어두운 도시에서 날아오르더니, 그대로 녹색 마력을 흩뿌리며 소리쳤다.
버러지 같은 인간들! 잠이나 쳐자고 있을 때냐! 전부 쳐 일어나!
"꺄윽!?"
귓가에 대고 소리치는 것과 같은 외침에 소녀는 귀를 막으며 곧바로 몸을 일으킨다.
말을 듣지 않으면 죽는다.
아마 모든 인간들에게 낙인처럼 새겨진 그 감정이 그녀의 몸을 일으킨 것이리라.
하, 못 일어난 인간들은 쓸모없는 노예구나?
그런 말과 동시에 유레하가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수십개의 바람 칼날이 어딘가로 날아가고,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모습에 덜덜 떨면서 그녀를 바라보는 갈색 소녀.
하지만 녹색 마법소녀는 그 상황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처럼 얼굴을 찡그리면서 바로 소리쳤다.
지금 영토에 별무리의 마법소녀가 침범했다! 단체로 빨리 움직여서 찾아내! 찾아낸 놈에겐 포상을 주마!
그렇게 소리친 후, 녹색 마법소녀는 바닥으로 내려서 소파에 앉고는 곧바로 턱을 괴며 다리를 덜덜 떤다.
불안한 사람에게서 자주 보이는 증세.
하지만 그녀를 계속 봐온 소녀는 녹색 마법소녀가 지금 불안에 떨고 있는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생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아니여도 알았겠지만.
"그, 저기..."
"뭐야뭐야? 우리 미경이는 움직이지 않아? 내 포상이 필요없어? 반항기야?"
"아뇨아뇨! 움직일게요!"
"농담이야~! 미경이는 괜찮아. 싸울 때, 상대 생각이나 읽어줘."
"네에..."
마치 애완동물을 다루듯 우쭈쭈하면서 턱을 건드리는 유레하의 행동에 미경이는 긴장한 모습으로 몸을 떤다.
그러자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턱을 탁. 하고 잡고 눈을 감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 풍령.
그리고 이내 피식하고 웃더니 턱을 놓으며 유레하가 말했다.
"말 잘 듣네! 계속 잘 들어야 돼? 내가 필요한 건 네 눈이니까! 나한테 향해선 안 되지만!"
"네, 네..."
"좋아좋아! 하아, 스노우, 스노우... 파이렌을 쓰러뜨렸단 말이지? 엄청 대단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유레하. 그 모습에 미경이는 섬뜩함을 느끼며 대상이 된 사람에게 애도를 표한다.
...유레하의 행동 패턴을 봐온 그녀로서 애정을 받아낸 사람의 결말을 전부 보았으니까.
사실 소녀 역시 능력이 아니었으면, 진작 당했을 일이었고.
"그렇지, 이거 들고 있어."
그렇게 눈을 감고 있는 미경이를 향해, 유레하는 무언가 던진다.
못 받아내는 순간 일어날 일을 생각하며 살짝 눈을 떠 날아오는 물체를 받아내는 미경이.
날아온 물체는...
"무전기...?"
"스노우는 너무 강해서 말야~ 싸움 일어나면 아마 결계를 펼칠 거야! 실시간으로 상대가 쓸 스킬, 알려줘!"
"..."
답안지를 보면서 싸우고 싶단 말에 미경이는 어이없음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유레하는 흐흥~ 하면서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린다.
...결국 소식이 들려온 건, 6시간은 지난 시간이었지만.
"결계는 안 펼치는 거야~? 아래에 사람들이 좀 있다구? 정의의 마법소녀 씨."
"..."
내 결계 사용 조건을 잘 모르는 유레하가 능글맞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한숨을 내쉰다.
쓰다보니 조금은 익숙해지는 거 같... 을 리가 없지.
왜 시동어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마스터, 현재 체력은 40%정도입니다. 주의하시길.]
"...알아."
공중에서 가만히 대치하다가, 나는 주저하며 렌을 앞으로 내민다.
그러자 씨익하고 미소를 보이는 유레하. 그 모습을 보며 시동어를 외치려는 순간, 그녀의 몸이 사라졌다.
"!?"
"여기야!"
파앙!
[프로텍션]
"느려!"
퍼억!
"읏...!"
어느새 내 사각으로 이동해 챠크람을 휘두르는 그녀의 공격.
렌이 곧바로 프로텍션으로 막아내지만, 이미 공격이 끝난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시 그 각도에서 사라지며 정면에서 나에게 발차기를 날린다.
급하게 렌으로 막아내지만, 제법 충격이 느껴지며 공중에서 밀려나고, 다시 사라지는 유레하를 보며, 나는 아쿠아 웨이브를 일으켜 주변 전체를 공격한다!
"위야!"
퍼억!"
"꺄윽?!"
내가 범위 공격을 퍼뜨리는 순간, 어느새 내 머리 위로 가볍게 비행한 그녀가 곡예를 하듯 한 바퀴를 돌아 내리찍기를 날린다.
이번에는 직격.
그대로 땅으로 떨어져 내리다가, 땅에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멍하니 여길 보고 있는 걸 깨닫는다.
하늘에 보이는 건, 녹색빛을 흩뿌리고 있는 유레하의 모습.
대놓고 마법을 사용하겠다는 징조를 보이는 그녀를 보며, 나는 급하게 소리친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늦다구!"
"별무리의 마법소녀! 스노우! 여기에 등장!"
나에게 쏟아져내리는 녹색 칼날들을 보며, 나는 결계를 펼치자마자 아쿠아 실드를 펼친다.
급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감싸는 건 나 뿐.
그래도 결계를 펼쳤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치지 않았...
"..."
결계 밖을 바라본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이 육편이 되어 흩어진다.
내가 결계를 펼쳤을 때는 이미 바람의 칼날이 결계를 지나친 시점.
내가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이 전부 죽어나갔다.
머리가 뜨겁게 타오르다가, 차갑게 식어간다.
저 마법소녀는 고의로 이런 상황을 일으킨 거다.
그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마법소녀.
아무리 침식에 당했다고 하지만, 나는...
"와! 와! 무서워! 스노우가 무서워졌어!"
"..."
전기를 일으킨다.
평소와 다르게 분홍빛이 감도는 전격이 일어나지만, 아무래도 좋다.
속도가 모자라다.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다.
체력이 바닥을 기려고 한다.
분노한다고 공격이 닿는 게 아니다.
머리를 차갑게 식힌다.
지금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스킬은 없다.
그렇다면...
"별에게 소원을."
[별에게 소원을 발동,]
[플레이어의 빛을 모집합니다.]
[...당신의 요청에 플레이어 2353419명이 승인했습니다.]
[무작위 플레이어의 힘을 받습니다.]
[타이틀 '길거리의 성자' 플레이어 '루인'의 힘을 받아들입니다.]
"잠깐, 그들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자."
[플레이어 '길거리의 성자'가 '새크리파이스 리저렉션'을 발동합니다.]
[...미쳤습니까, 플레이어?]
[현재 체력의 절반을 사용, 5분 안에 사망한 사람들을 멀쩡한 상태로 되살립니다.]
[30분 동안 모든 능력 대상자, 능력 사용자는 10분에 10%씩 체력을 회복합니다.]
기적이 일어났다.
새하얀 빛의 폭류.
몸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지만, 동시에 바닥에 조각나있던 사람들의 육신들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결계 밖에서 다시 인간의 형태로 빗어지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는지, 멍한 상태로 어리둥절하게 자기 몸을 만지는 사람들.
그 모습에 나는 잠시 눈을 깜박이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깐 몸을 멈춘다.
"...렌, HP는?"
[현재 8%입니다.]
"..."
진짜 위험하다.
한대라도 맞으면 빈사가 되거나 죽는다.
물러날까?
아니, 물러날 수 없다.
상대가 나보다 속도가 빠르다.
그나마 다행인 건 30분이라도 버티면 체력이 38%가 된다는 거 정도?
...퍽이나 희망적이군.
"뭐야, 뭐야~? 스노우, 설마 죽은 사람을 살리겠다고 네 수명을 깎은 거야?"
"..."
"꺄하하하하! 진짜로 저런 웃긴 애가 있다고? 아포칼립스에서 사랑과 정의를 외칠 때부터 알았지만..."
광기에 차서 웃던 그녀의 표정이 싸악 하고 변한다.
어이없는 듯, 경멸한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유레하.
잠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싱긋 웃은 그녀가 말했다.
"자기가 죽기 직전인데, 사람을 구해? 병신이야?"
렌, 방법이 있을까?
[레벨업 직전입니다. 레벨업하면 50%정도 회복되겠죠.]
"그렇데, 스노우! 지금 근처에 네 경험치를 채울 수 있는 건..."
어떻게 렌의 말을 들었는지, 유레하가 말을 받으며 바닥을 가리킨다.
그녀가 가리킨 건 내가 부활시킨 사람들.
저 사람들을 죽이면 내가 레벨업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ㅡ곧바로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와아아!?"
설마 달려들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지, 순간적으로 유레하의 몸이 굳는 게 느껴진다.
숲의 땅에서 거대한 해일이 일어난다.
온 몸에 전격이 일어나며, 동시에 하늘에 무수한 별탄막과 화염구가 새겨지며 쏘아진다.
파도를 타고 그녀에게 가속해 날아간다.
그 때즈음 그녀는 몸을 굳혔던 걸 풀며 회피 기동. 내 시야에서 유레하가 사라진다.
렌을 검으로 바꾸며, 몸을 완전히 숙이고 그대로 한 바퀴 돌면서 휘두른다.
스걱. 파지지직!
"일렉트릭 브레이크!"
그와 함께 무언가 닿는 순간, 그대로 전격을 온 사방에 퍼뜨리는 나.
그리고 그에 적중한 듯 유레하가 피를 토하며 물러나다가, 살벌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그 자리에 사라진다.
ㅡ이미 마법을 읽어냈다.
"토네이도!"
"윈드 스텝."
내 머리위로 사라졌던 건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솟아오르는 회오리를 바람을 밟으며 피해낸다.
그러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유레하를 발견.
그걸 보며 다음 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이었다.
파아아앙!
"캬흐...!?"
"꺄핫! 꺄하핫! 바보 스노우! 하필 피한 곳이 트랩이 있는 곳이라니, 운도 없지!"
의식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렌이 정신 차리라는 것처럼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억지로 비행을 조종해 허공에 몸을 고정한다.
머리가 무겁다.
눈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눈동자가 뜨겁다.
어차피 여기서 떨어져도 죽는다.
체력이 남았으니까, 아직 생각이 가능한 거야.
생각해.
생각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 지를 계속 생각해.
인간을 죽이는 저 생명체를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을 지 생각해.
그래야만...
"냐옹~"
딸랑.
ㅡ그런 생각을 하는 내 귓가에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방울소리가 들려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