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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7화 (7/149)

〈 7화 〉 마법소녀는 꿈과 희망을 줘야해!

* * *

모르는 천장이다.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그런 생각이었다.

정신이 몽롱하고 마치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있던 것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력 상태도 좋지 않다. 마치 다른 게 들어차있던 것처럼 회로가 꼬여있다.

좋지 않아.

기억을 되짚으며 마지막 기억을 떠올린다.

내가 있던 영토를 짓밟으면서 쳐들어왔던 보라빛의 남자.

내 영토에 있는 건 소수의 각성자와 민간인들 뿐.

실질적으로 전투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기 때문에 홀로 민간인들을 지키기 위해 돌격했고, 그 후 남자가 손을 뻗은 후의 기억이 없다.

아, 이거 남자한테 납치당한 루튼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면 내가 묶여있지 않은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누군가 씻고 있는 건가.

또다시 남자가 떠올라 섬뜩함을 느끼지만, 집 안의 가구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만다.

제법 삭막하지만, 평범하게 귀여운 공간.

여기저기 피가 튀어있는 게 옥의 티지만, 그거야 지금은 아포칼립스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이런 와중에 수도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를 뒤지지만, 휴대폰이 잡히는 느낌은 없다.

잃어버리기라도 한 건가.

아직 약정이 한참인데, 같은 생각을 하며 쓰게 웃고 만다.

어차피 전기도 없는데, 있었어도 꺼져있었겠지.

한창 그런 생각을 할 때, 욕실의 문의 열렸다.

ㅡ천사가 있었다.

살짝 젖어있는 긴 은발.

무감정한 연분홍빛 눈동자에 차가운 표정.

입기 편해보이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가볍게 자신이 들고 있던 수건을 의자에 걸면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

그리고 외모에 시선을 뺏기다가 문득, 그녀가 가진 마력의 성질을 본능적으로 읽어내고 놀람을 표한다.

성(?)속성의 마력.

다른 속성과는 다르게 선택받은 마법소녀만이 가질 수 있는 속성의 마력.

그런 속성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는 건... 설마!

시선을 마주친 순간, 나는 확신하며 소리쳤다.

"아, 일어났..."

"마법소녀!? 마법소녀인 거지!?"

"어? 어... 엉."

내 외침에 무표정한 상태로 얼빠진 소리를 내는 게 귀여웠다.

­­­­

얘 뭐야.

갑자기 친근하게 대하면서 내 손을 꼭 잡는 루리에를 보며 나는 눈을 깜박인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시선.

그리고 그 사람이 자신이 원하던 사람일 때 나오는 반응.

...응? 설마.

"기억이 없어?"

"응? 으응, 내가 당했다는 거 밖에 기억 안 나. 그보다 마법소녀 맞지?"

"응."

"드디어 나 이외에 마법소녀가...! 반가워! 난 수해의 마법소녀인 루리에야! 마법소녀 동료라니, 생각도 못 했어!"

"잠깐 기다려."

"응? 아, 내가 너무 붙었나...?"

내 말에 움찔하면서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루리에.

나는 두통이 옴을 느끼며 잠시 머리에 손을 올렸다가 한숨을 내쉰다.

루리에는 몬스터 세력 있었다.

그리고 나와 싸웠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에게 당한 이후의 기억이 없다.

그건 다시 말해, 루리에는 누군가에게 세뇌당했고 그 후로 계속 세뇌당한 상태로 살았다는 의미다.

...분명, 그렇다는 건.

"네가 맡았던 곳은 어디야."

"응? 아, EA­01 구역이야."

"?"

"어라, 몰라? 나름 유명한 곳인데."

"너희 세계 이름이 뭐야."

"으응? 세계 이름이랄까, 당연히 헤르시 행성이잖아? 너도 기억 상실이야?"

"..."

이건 글렀네.

그녀가 있던 세계는 아마 우리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

그 세계도 저 탑이 나타나면서 침략 당했고, 그녀가 현재 다른 세계에서 이쪽 세계로 넘어왔단 의미는...

ㅡ이미 그녀의 세계는 없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알리는 게 좋을까?

어차피 알리든 알리지 않든 그녀는 빠른 시일 내에 알만한 내용이다.

그도 그럴게, 애초에 행성 이름도 다르고 지역명도 다르잖아.

대화가 통하는 거 자체가 기적이다.

"헤르시라는 곳은 몰라."

"헤? 무슨 소리야?"

"이곳은 지구야. 넌 다른 차원에서 왔구나."

"? 에이, 이렇게 말이 통하는데 무슨 소릴..."

내 말에 장난인 줄 알고 넘기려던 그녀는 내가 별 표정 변화없이 계속 바라보자, 이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찡그리는 루리에.

이내 그녀의 눈이 떨리기 시작한다.

"진...짜?"

"응."

"진짜로... 여기는 지구라는 곳이야?"

"응."

"...그럼, 우리 세계는..."

"이미 멸망한 거겠지."

"..."

내 단언에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털썩. 하고 소파에 그대로 앉는다.

심란해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머뭇거리는 나.

머리라도 쓰다듬어줄까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어린애 취급하는 거겠지.

그녀의 눈에 눈물이 서서히 맺히는 걸 보며 나는 그녀의 곁에 앉아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러자 멍한 표정 그대로 눈물을 서서히 흘리면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소녀.

잠시 멍하니 눈물만을 흘리던 그녀는 이내 내 품에 와락하고 안기더니 내 옷을 눈물로 적시기 시작한다.

비명이나 통곡같은 건 없었다.

무언가에 짓눌린 것과 같은 조용한 울음.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무겁다.

무슨 생각으로 울고 있는 건지, 난 모른다.

공감해줄 수 없다.

다만, 그저...

"그래, 울어둬."

"..."

그녀가 흘리는 눈물을 받아줄 뿐이었다.

­­­­

제법 시간이 흐르고 소녀는 흘릴 건 다 흘렸다는 것처럼 애써 웃으면서 나에게서 멀어진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푹. 내쉬다가 잠시 나를 바라보는 그녀.

내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루리에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미 지나간 건 어쩔 수 없지! 마법소녀 동료라도 만난게 어디야!"

"..."

뭐냐, 이 긍정주의는.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처했으면, 100% 나는 집에 박혀 있었을 거다.

...응? 생각해보니 나도 상황은 그다지 다르지 않은게?

갑작스럽게 다른 사람 몸에 들어와서 갑작스럽게 아포칼립스를 당하고 갑작스럽게 마법소녀가 됐다.

심지어 전생의 나는 남자.

솔직히 지금까지 패닉에 빠지지 않은 게 이상하다.

아마 각성 전부터 평온한 정신인가 뭔가 하는 게 계속 발동하고 있던 게 분명하다.

"근데 이름은 언제 알려줄 거야~? 나는 알려줬는데!"

"아..."

루리에의 말에 나는 머뭇거리면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쉰다.

저 아이는 본인을 마법소녀 명으로 소개했으니까, 나도 마법소녀 명으로 소개하는 게 낫겠지?

"별무리의 마법소녀, 스노우야."

별무리의 마법소녀라는 건 아까 갑작스럽게 생각난 호칭이었다.

마법소녀 등장! 이라는 스킬을 쓰려는 순간, 나한테 강제로 주입된 느낌이라고 할까.

싸울 때마다 새하얀 빛의 별 탄막을 화려하게 뿌려대니까, 나를 정확하게 정의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는 둘째치고.

아마 플레이어인가 뭔가하는 애들이 지은 별명이겠지.

"스노우... 스노우... 응, 좋은 이름이네."

"루리에도 좋은 이름이야."

"그렇지? 우리 세계에선 '바다'라는 의미야."

"바다, 어울리네."

"아하하, 고마워. 스노우는... 눈이구나?"

"응."

"그렇네에­ 마법소녀 명이랑은 별개로 그 이름은 어울리는 걸?"

내 복장과 머리카락을 한 번 스윽하고 바라본 루리에의 말에 나는 가만히 머리카락을 한 번 만진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칼.

확실히 내 모습을 보면 어쩐지 새하얀 눈이 연출되는 게 사실이다.

그걸 본인도 알고 있었던 건지, 옷장에도 새하얀 옷이 가득했고.

마법소녀 전용 패시븐지 뭔가로 아무것도 안 묻고, 색이 변하지 않는 게 마음에 들더라.

"상태는 어때."

"음, 역시 여기저기 상태가 안 좋은걸. 억지로 마법을 여러가지 캔슬당한 느낌이야."

"그래?"

그건 아마 내가 저 애 마법을 전부 쳐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는 수룡까지 강제로 없애버렸고, 부작용이 생길만도 하지.

"그래도 괜찮아. 마력 회로가 망가진 건 일주일 정도면 될 거고, 몸 상태는 3일이면 낫겠지. 마법소녀는 만전이여야 한다면서 회복되는 속도가 빠르니까."

"..."

그런 기능도 있어? 처음 듣는데.

루리에의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마법소녀 클래스는 여기선 처음 만들어진 게...

"마법소녀 클래스는 처음 만들어진 게 아냐?"

"응? 글쎄? 우리 세계에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만, 마법소녀라는 클래스 자체는 존재했는데?"

"그래."

아마 세계마다 마법소녀라는 클래스가 새로 만들어질지도. 아니면 관리자에 따라 바뀐다던가.

...그러고 보면 그 변태 관리자는 뭐하는 녀석이려나.

"아무튼 우리 집은 창문 깨진 거 말고는 문제 없으니까, 쉬어."

"으, 응. 근데 혹시 영토 가지고 있어?"

"응? 응."

"그런가,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어?"

"렌한테 맡겼어."

"렌?"

"내 마법 지팡이."

"엥, 마법 지팡이가 관리도 해줘? 짱이다."

내가 말하면서 렌을 소환하자, 그녀는 감탄하면서 지팡이를 만지려다가 움찔하며 손을 뗀다.

...방금 뭔가 파지직하고 전기가 일으켜진 거 같은데.

"에고가 강한 친구네. 확실히 이 정도면 관리도 하겠다."

"?"

"마스터 아니라고 만지지 말래."

"그렇구나."

새삼스럽게 렌을 바라보지만, 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얘도 약간 전용 무기 느낌이란 말이지.

퀘스트에 계속 전용 무기인가 뭔가의 지도 조각이 적혀있지만 사실 필요한가 싶다.

"아무튼 영토 관리를 대신해주는 애가 있으면 다행이네. 지금 이쪽 세계 시련이 시작된지 얼마 됐어?"

"음... 8~10일 사이."

"그래? 아직 1단계네."

"1단계?"

"초월자들이 영토 확장조차 못하는 타이밍."

"?"

"아직 노멀 몬스터도 고블린 뿐이지?"

"응."

"그래, 그럼 1단계가 맞아."

그렇게 말하며 잠시 고민의 기색을 보이는 루리에. 단계, 단계인가...

아마 게임처럼 단계별 웨이브 같은 게 날아다니는 걸지도 모른다.

눈보라 사의 모 게임에 많은 디펜스 류 유즈맵 마냥 나중에 엄청 센 애들이 나오는 건가?

그럼 레벨업 열심히 해야겠네.

...마력 최대치가 99인 걸로 봤을 때, 만렙도 99려나.

"아무튼 쉬라는 말은 잘 받아들일게. 일단 씻어도 돼?"

"응."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 그러자 소녀는 잠시 허공에 무언가 누르는 행동을 하더니, 이내 그녀가 입고 있던 푸른 가죽 갑옷이 사라진다.

곧바로 속옷만 남은 그녀를 보며 곧바로 시선을 피하자, 루리에가 말했다.

"갈아입을 옷은 있어?"

"...가슴이 안 맞아."

"아, 그렇구나? 음... 조금 찝찝하긴 한데 어차피 자동으로 깨끗해지니까. 뭐..."

내 말에 속옷을 입은 채로 그대로 욕실로 들어서는 루리에. 내 몸을 보는 건 상관없었는데, 다른 여자애의 몸을 보니 얼굴에 열이 오른다.

어라, 별 생각 안 드는 건 나 한정인 거야...?

­­­­

어느 한 성.

현대에 존재한다기에는 제법 이질적인 긴 성벽과 성이 세워진 한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복장은 현대의 복장과 옛날 서양의 복장이 섞인 장소.

확실하게 보이는 건 현대 복장을 입은 사람들은 뭔가 두려움을 떨고 있고, 서양 복장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평온하고 행복해보이는 장소였다.

"보고드립니다, 영웅이시여."

"말하게."

"현재 북쪽에 나타난 새로운 영토의 주인은 NPC. 수상한 마법 기기에 보인 장면으로 볼 때, '마법소녀 스노우'라는 명칭을 가진 자가 영주인 모양입니다."

"흐음, 마법소녀 스노우... 인가. 무슨 의미지?"

"이쪽 원주민에게 심문한 결과, 마법사와 눈을 뜻하는 모양입니다."

기사의 말에 검은 갑주를 입은 남자는 잠시 고민의 기색을 보이다가 말했다.

"마법사 영주인가? 1단계에 마법사라면 마력이 많이 모자랄 텐데..."

"이미 보인 마법의 가짓수도 많고, 사용한 마력량도 엄청나지만 마력 부족에 허덕이는 장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세계 융합이 일어나기 전부터 마법사였던 게 아닐지 추측되옵니다."

"호, 재밌군. 그래서 별은?"

"현재 2성으로 보입니다."

"시작부터 2성이라! 그건 굉장한데."

사나운 인상을 더 사납게 일그러뜨리며 웃는 남자. 그 행동에 기사는 얼굴이 창백해지지만, 그 자리를 벗어나진 않는다.

잠시 턱을 한 번 쓸면서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는 영웅. 이내 잠시 눈을 감는가 싶더니, 남자는 손을 뒤로 넘긴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나타나는 한 소녀.

마치 무희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검은 머리칼 소녀가 그의 뒤에 나타나자, 남자는 눈을 뜨면서 입을 열었다.

"들었나?"

"네."

"2단계가 되면 네가 직접 가서 데려와라. 혹여나 거절하면 죽이고."

"알겠습니다, 주인님."

"2단계까지 앞으로 20일 가량. 병사 준비는?"

"현재 몬스터의 숲에 나오는 고블린에게 훈련시키는 원주민들까지 합치면 총 1000명 정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 각성했다고 날뛰는 놈들까지 제거한 숫자인가?"

"그렇습니다."

"좋아, 지금 타이밍에 이 정도 병사를 가진 녀석들은 없겠지. 빨리 2단계로 넘어가면 좋겠군."

기사의 말에 씨익하고 웃는 남자.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예의 소녀를 데려가며 자리를 떠난다.

남자가 갈 때까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기사. 영웅이 사라지자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일으키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마법소녀, 마법소녀인가. 영상을 찍은 자는 그녀를 희망이라고 했지..."

아까 올라온 영상을 다시 살피며 그는 가만히 화면 속 소녀를 바라본다.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도 화려한 은발을 휘날리며 결국 승리한 소녀.

그 영상을 보던 기사의 눈 앞에는 '마법소녀 스노우의 팬클럽에 가입하시겠습니까?' 라는 푸른창이 떠있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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