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5화 (5/149)

〈 5화 〉 마법소녀는 꿈과 희망을 줘야해!

* * *

"그래?"

"인간, 마법사다. 빛, 뿌린다."

오크 주술사의 설명에 앞에 있던 푸른 머리칼을 길게 늘인 여성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기색을 보이던 그녀는 자신의 창을 탁. 하고 바닥에 찍으며 일어나며 말했다.

"빛? 그건 또 확실히 마물들과는 맞지 않아."

"그렇다."

"하지만 나는 빛에 영향을 받지 않다는 거, 알지? 이길 수 있어."

"수하들, 죽는다."

"죽겠지. 하지만 우리가 공격하지 않는다고 저 녀석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잖아. 마법소녀라는 이름으로 마물들을 학살하고 다녔으니까."

"그렇다."

"그러니까 선제 공격이야. 우리가 먼저 공격해서 그 마법사를 나락으로 추락시키는 거야."

"마법사, 난다."

"걱정할 거 없어. 어차피 우리 둘 다 마법계잖아. 네가 저주로 느리게 만들고, 내가 격추 시키는 거야. 격추 후엔 수하들을 전부 보내서 잡으면 돼."

"알겠다."

그녀의 설득에 주술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한숨을 한 번 푹 내쉬고는 중원구의 방향을 바라보는 여성.

그녀의 눈에는 검은 빛깔의 무언가가 맴돌고 있었다.

"마법소녀, 마법소녀... 클래스가 생기고 나도 마법소녀에 소속됐는데 말야. 잘 됐네. 마법소녀는 침식의 여지가 있어. 동료를 만들 수도 있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여성은 가만히 자신의 창을 들여다본다.

연보라색 사이에 희미하게 보이는 푸른 빛깔.

잠시 과거를 회상하듯 계속해서 창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자신의 뒤에 몰려있는 고블린들을 보며 소리쳤다.

"출정이다! 목표는 우리의 동포를 쓸어버린 마법소녀! 고작해야 한 녀석이다! 떨어뜨리고 떨어뜨려서 우리의 제물로 만들자!"

끼에에에에엑!

고블린들의 기괴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걸 들으며 여성은 씨익하고 웃고 먼저 전면에 나섰다.

­­­­

[서브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퀘스트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가 갱신되었습니다.]

이건 또 뭔...

한창 괴물의 군세를 포착하고 날아가던 도중 들려온 메세지에 잠시 허공에 멈춰서는 나. 퀘스트 명이 굉장히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며 나는 잠시 팔을 비빈다.

소름 돋았어. 퀘스트 이름 정하는 사람 누구야? 아재야?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놀랍게도 현재 상대 진영에 악에 물든 마법소녀가 있는 것이 확인되고 말았다.

아아, 침식당한 동료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도 운명.

타락한 마법 소녀를 정화시키거나, 섬멸해라!

그것이 마법소녀의 동료애일지니!

승리 조건 : 마법소녀 '루리에' 사망 or 마법소녀 '루리에' 정화

실패 조건 : 침식율 10% 이상 획득

보상 : 스킬 '마법소녀 등장!' 획득.

*특이사항 : 이번 전투 한정으로 마법소녀 등장! 스킬을 획득합니다.

[마법소녀 등장!]

그 누구도 마법소녀의 전투를 방해할 순 없다!

화려하게 자신의 특징 속성, 마법소녀 명을 외치며 등장할 경우, 상대 군대는 강제 일기토 상태가 된다.

이 스킬은 상대 측에 마법소녀가 있을 경우에만 발동하며, 발동 시 콜로세움이 형성돼 1:1 전투로 전투를 전환한다.

추가로 모든 속성 마법의 성능이 20퍼 증가한다.

사용 조건 :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OO의 마법소녀, OOO 여기에 등장!을 외친다.

"..."

그게 뭔데, 이 씹덕아.

대놓고 나를 수치사시키려고 작정한 대사를 보며 나는 잠깐 혀를 찬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저런 대사를 칩니까?

차라리 죽고 말지.

[마스터, 몬스터 3972마리가 스캔되었습니다.]

"? 다 끌고 왔어?"

[그런 모양입니다.]

쉣.

그래도 필드 보스들이 영토라는 개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걸 알아채서 전부 데려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숫자가 많다.

저 미친년은 지금 이 전투에 사활을 걸었다는 이야기겠지.

돌겠네.

숫자 스캔 량을 보자마자 나는 곧바로 슈팅 스타를 풀 출력으로 준비한다.

풀 출력이라고 해봐야 쓰러뜨릴 수 있는건 50마리 안팎이겠지만, 어차피 대공권은 나한테 있다. 시간은 나의 편이란 말씀.

꼬우면 맞춰보시던가.

"네가 마법소녀야?"

[적대 마법소녀, 루리에 발견.]

"네가 루리에."

"맞아, 내가 루리에야. 좋은 무기 들고 있잖아."

푸른 머리칼을 허리까지 길게 늘이고 삼지창을 들고 있는 소녀.

그냥 액면가로는 근접 전사로 추측되는 아이지만, 혹시 모른다.

게임 같은 곳에서 삼지창이라는 무기는 늘 물을 다루는 녀석들의 전용 무기였으니까.

"딱히 쳐들어갈 생각은 없어. 물러나."

"그 말을 어떻게 믿고?"

"믿지 않으면 죽어야지."

"네가 날 이길 순 있고?"

"날지 못하는 마법소녀는..."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어디선가 날아드는 붉은 글자들.

자연스럽게 비행으로 피해내지만, 아마 유도 기능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따라붙는 글자들을 보며 나는 잠시 혀를 찬다.

그냥 프로텍션으로 막으면...

[저주입니다, 능력치 감소 저주여서 방어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건 좀 귀찮은데."

"귀찮아야지, 그럼!"

루리에가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 강에서 물기둥 5개가 솟아올라 그대로 내 퇴로를 막아서며 쫓아오기 시작한다.

역시 마법사.

애초에 마법소녀라고 했을 때 이미 예상한 상황이라 직격탄인 물기둥을 프로텍션을 정면으로 막아서며 그대로 뒤로 쭉 후퇴한다.

그리고 내가 보호막을 정면으로 키는 순간,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돌덩이, 화살, 독침 세례.

프로텍션을 한 방향으로만 쓸 수 있단 사실을 어디서 알아낸 건지는 몰라도 제법 귀찮은 공격이다.

"스피드 스타."

[승인.]

내 말과 동시에 마치 드릴처럼 내 주변을 회전하기 시작하는 새하얀 별모양 탄막.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하는 탄막이 날아드는 것들을 많이 쳐내기 시작하지만, 이걸로도 부족해 피부를 살짝씩 스치는 게 늘어난다.

팔이 찌릿찌릿하다. 독침이 스친 모양이다.

다른 쪽으로 보호막을 돌리기엔 지속적으로 부딪히는 물기둥이 좀 더 위험.

나는 곧바로 슈팅 스타를 추가로 소환해 날아드는 투사체들을 쳐내기 시작하고, 그 타이밍에 또 다시 붉은 글자들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그건 좀 귀찮네...!"

이번 디버프는 뭔진 모르겠지만 불길한 기분이 든다. 저걸 맞으면 위험한가...!

이미 주변을 돌고 있는 글자는 4개 이상.

아직 물기둥의 반탄력을 역 이용해 느릿한 저주 글자를 맞진 않았지만, 슬슬 기둥도 전부 사라지고 피할 곳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제대로 해보자, 마법소녀."

"...!?"

계속 회피하며 쳐내는 동안 뭔가 준비한 건지, 또다시 강에서 솟아오르는 물기둥.

이번 물기둥은 왠지 눈이랑 수염같은 게 있는 게.... 용의 형상을 하고 루리에를 그 위에 태우고 있다.

말 그대로 수룡이네.

그 와중에 편하게 조종도 되는 건지, 뭔가 원형 물 구체를 본인에게 씌우고 수룡과 함께 나에게 창을 겨누며 날아온다!

이건 못 피해!

"세이프티 존!"

곧바로 세이프티 존을 펼쳐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풀어내고,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물기둥을 보며 저주 글자를 피해낸다.

상대는 코 앞.

하지만 저주 글자를 쓰는 녀석은 세이프티 존을 키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저주가 유도탄이라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모양인지, 또 다시 하나가 추가.

저 녀석부터 조지고 싶은데...!

[프로텍션]

콰아아앙!

세이프티 존 유지 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깨져나가며 그대로 창과 충돌.

그와 함께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던 몬스터들이 다시 나에게 투사체를 쏴아대기 시작하고, 나는 이를 악물며 오른손을 앞으로 내민다.

"마법소녀 씨,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알아?"

"버스터!"

[오버 히트 버스터, 승인.]

무작정 마력을 때려박아서 제로 거리 레이저를 날린다.

그러자 마력을 느낀 건지 크게 놀라면서 실드가 깨지기 전에 황급히 고도를 낮춰버리는 루리에. 칫, 생각보다 실드가 단단했어.

오른손이 엄청 욱신거린다.

화상이라도 입은 건지, 완전히 붉어진 손바닥. 하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다음 마법을 발동한다.

"스타더스트 스트라이크."

내 시동어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거대한 빛줄기.

마치 위성 포격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빛의 기둥이 정확히 루리에에게 쏟아지지만, 그녀는 내가 시동어를 다 읊기 전에 이미 자리를 피해내며 간신히 회피에 성공한다.

[디버프에 당했습니다. 마력 스텟이 2 감소합니다.]

[디버프에 당했습니다. 최근 사용한 '스타더스트 스크라이크'가 30분 동안 봉인됩니다.]

[디버프에 당했습니다. 성(?)속성 마법의 화력이 20% 감소합니다.]

[디버프에 당했습니다. 중력을 2배로 받습니다.]

"!?"

순간적으로 등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확 고도가 낮아지는 나. 그걸 본 루리에가 다시 한 번 물기둥들을 솟아오르게 하며, 동시에 자신도 그대로 돌격해오기 시작한다.

에바야.

화살이야 아슬아슬하게 전부 쳐내고 있지만, 독침은 막지 못했는지 여기저기가 저리다.

디버프에 마비독까지 중첩된 상태에서 저걸 어떻게 받아내라고...?

"아쿠아 쓰러스트!"

지금은 자존심을 가릴 때가 아니다.

이때까지 시동어조차 외치지 않던 애가 시동어까지 외친다는 건, 이번 공격은 치명적일 확률이 높다는 증거.

어차피 지금 보고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부끄럽지 않은 걸!

"사, 사..."

카아아아아 쨍강!

"꺄아아아아!"

창의 데미지는 전부 보호막이 막아냈지만, 뒤따라온 물기둥들에 그대로 적중당해 허공을 난다.

배가 관통되는 것과 같은 고통.

입에서 핏물이 튀어나오는 걸 느끼며, 그대로 나는 강으로 떨어져 내려간다.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내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았는지, 공격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바다로 돌진해오는 수룡.

렌이 내 체력이 바닥이라는 걸 알리고,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걸 바라본다.

잘못하면 진짜 죽겠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정신 상태는 이상할 정도로 평온.

빌어먹을 퀘스트가 나에게 어떤 스킬을 쓰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엿같은 상황에 나는 하. 하면서 헛웃음을 짓고 만다.

나도 모르겠다.

"뭐가 웃긴진 몰라도 여기서..."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

비행을 억지로 유지하며 루리에를 가리킨다.

입가에는 핏물이 흐르고, 정신은 흐릿흐릿하면서도 평온.

제정신이라면 있을 수 없는 상태다.

루리에의 미친년을 보는 눈이 아프다.

"별무리의 마법소녀, 스노우! 여기에 등장!"

그러니까 이건 절대로 내가 외친 게 아냐.

저주할 거니까, 이딴 스킬 만든 녀석.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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