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포칼립스의 마법소녀-1화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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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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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난 나는 어쩐지 띵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제 술 마시고 잔 것도 아닌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래...

몸살끼가 있어서 그런가 싶지만, 그냥 단순 두통. 몸은 오히려 평소보다 가볍다.

다만 평소랑 좀 다른 점은 등쪽에 뭔가가 자꾸 거슬린다는 점일까.

별 생각없이 등을 긁으려다가, 뭔가 있다는 걸 알고 그걸 잡아 당기려다가, 머리칼에 느껴지는 약간의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잡은 걸 바라본다.

은색 머리칼.

잠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이던 나는 이내 점점 눈을 크게 뜨기 시작한다.

"뭐야?"

내가 얼빠진 상태로 중얼거리자, 평소와는 다른 미성이 목에서 들려온다.

눈을 깜박이다가 주위를 둘러보자 보이는 건 책상과 컴퓨터, 책장이 있는 심플한 방의 모습.

하지만 내 방이 아니란 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의 모습에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를 나선다.

뭐지? 개꿀잼 몰칸가?

그러자 보이는 건 분홍빛 파자마를 입고 있는 나의 모습.

가슴이 약간 볼록한 걸 보고 얼굴을 찌푸린 채로 좀 더 아래를 보자마자 나는 현 사태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ㅡ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여자가 된 모양이다.

"이렇게 차분하게 할 생각은 아닌데."

머릿속에 복잡해지지만 어째서인지 묘하게 차분한 감각.

일단 이 소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로 가자, 그곳에는 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소녀가 그 자리에 서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긴 은발.

고요하고 차분한 분홍빛이 멤도는 눈동자.

햇빛을 자주 보지 못한 것과 같은 새하얀 피부.

그리고 그녀가 입고 있는 분홍 파자마는 소녀의 귀여운 매력을 좀 더 부각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남은 두통에 잠시 이마에 손을 댔다가 뗀 나는 다시 화장실을 나와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는다.

어제 이런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딱히 그런 조짐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22살이었던 내가 16살즈음 돼보이는 소녀로 변하는데 조짐같은 게 있을 리가 있겠냐만은.

아무튼 어제 한 일이라고는 소설 써서 올리고, 소설 보다가 그대로 잠든 기억밖에는 없는데...

"소설?"

이런 TS 소설들은 제법 있기 때문에 내가 봤던 소설들의 시작지점을 떠올려본다.

보통 이상한 리뷰를 쓰거나, 혼자 조회수 적은 소설을 본다던가...

그것도 아니면 가상현실 같은 게임 후속작에 초대받는다던가 하는게 대부분.

아니, 그냥 자고 일어났는데 변한 케이스는 드물잖아.

왜 하필 그런 케이슨데.

어제 마지막으로 본 소설에 대해서 떠올려보지만, 그 소설에 은발을 가진 캐릭터가 등장했던 기억은 없다.

그럼 그 소설에 뭔가 있던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아무튼 뭔가 힌트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휴대폰 문자가 도착했는지 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폰인가.

일단 이 소녀에 대한 정보가 어느정도 있을지도 모른다.

"패턴은 안 걸려있고... 보자."

먼저 연락처를 보자 적혀있는 건 1,2,3이라는 숫자.

...다시 살펴보자.

지금 연락처 킨 거 맞지?

다시 메인 화면으로 넘어갔다가 연락처를 누르자, 여전히 숫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애는 뭐하는 아이였을까.

어떻게 사람을 숫자로 기억하고 있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다음으로 살핀 건 코톡.

...들어가자마자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라고 뜨는게 불길하다.

휴대폰 인증을 마치자 보이는 건 친구 없음이라는 글자.

다만 다행히도 들어가있는 톡방은 남아있었다.

아니, 다행인 건가?

톡방에 있는 건 단 한 사람.

그나마 이 아이의 지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채팅을 하려다가, 이내 콰아아앙! 하는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에 놀라 창밖을 바라본다.

ㅡ폐허가 있었다.

보이는 건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들 천지.

도로에 있던 차들은 연쇄폭발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전부 불타고 있었고, 그 도롯가에는 녹색 이족 보행 괴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 여기저기에는...

"..."

ㅡ시체들이 넘쳐났다.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죽어나간 사람들.

몇몇 사람들은 저항하다 죽은 건지 삽이나 막대기 같은 게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지만, 결국 전부 죽은 시체로서 남아있었다.

여기저기에 있는 괴물들은 그런 사람의 시체를 먹으면서 낄낄 거리고 있고, 아까 폭발 소리의 원인으로 보이는 버스에는 불타죽은 사람들과 억지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들도 곧바로 죽은 건지 움직임이 없어졌지만.

"이게 무슨 상황일까."

그럼에도 마음에는 전혀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원래의 나였다면 벌벌 떨면서 토라도 했을지도 모를 광경이건만, 내 목소리는 평온했고,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휴대폰을 켜 최근 기사들을 살핀다.

아직 인터넷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곧바로 보이는 각종 기사들.

동해에 나타난 시련의 탑.

거의 모든 나라에 등장한 게이트와 영토.

여러가지 능력을 가진 능력자들의 등장.

조금은 다르지만 헌터물과 비슷한 사태에 처해있는 세계를 보며 나는 다시 두통이 올라오는 걸 느낀다.

...문제는 이 모든 뉴스 기사가 새벽과 아침이라는 것.

아무래도 나는 아포칼립스 세계의 시작점으로 떨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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