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마법 용사 장
* * *
풍경이 되감긴다.
째깍 째깍
장의 마법에 얻어맞아 움푹 패인 바닥은 새 살이 돋듯 뽀송뽀송한 눈더미가 올라왔고, 내 눈보라에 휘말려 무너지던 마왕성 일부가 수복되었다.
째깍 째깍
하지만 시간 역행과는 다른 개념이었다.
이 시간대 전체가 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특정한 곳만 시간이 되감긴다.
‘장소에 제한이 있는 건가?’
째깍 째깍
아니다. 저 멀리에 떨어졌던 장의 운석 마법.
그곳도 시간이 되감긴다.
반대로 블링크 마법만 사용해도 닿을 수 있는 짧은 거리, 부서진 무기와 각 군의 시체들이 즐비한 전장은 그대로였다.
째깍 째깍
고요한 방 속에서 시계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듯이 저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내 귀를 휘감는다.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장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냈다.
돌아오지 않을 터인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질문을 던진 순간부터 장의 몸 또한 되감겼다는 걸 눈치챘으니 돌아오지 않을 터인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겠지.
“알면서 뭘 묻나.”
빛에 휘감겨 사라져가던 장의 신체가 재생된다.
자이키릭의 발톱에 찢겨나간 그의 상처가 돋아난다.
그의 로브가 이어진다. 핏기가 사라진다. 처음 마주했을 때와 똑같아진 장을 바라봤다.
[시그니처.]
“정답.”
그가 중얼거린 룬어를 곧장 읽으면 시계 태엽, 혹은 시계 장치 정도로 들을 수 있다.
공간의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이라면 확실히 시그니처라 불리어도 될만하다.
딱 그 정도의 감상이었다.
연이어 발생하는 현상을 보기 전까지는.
“어... 어라?”
“살았어? 분명 죽은 줄 알았는데? 뭐야, 뭐냐고!”
잿더미가 올라오더니 형태를 잡는다.
‘말도 안돼.’
목소리를 높이는 자들은 제자들이었다. 그들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혀 올라온다.
[...시간의 파편을 쓴 건가?]
“대답할 의리는 없지.”
검은 촛불을 손에 든 채 이죽거린다.
그곳에서 흘러내린 촛농이 장의 손을 타고 흐른다.
그는 당혹어린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실실 웃고 있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돌아와서 안심했어?”
아니, 안심하기엔 이르다. 그들은 과연 온전히 돌아온 것인가?
단순한 환영일수도 있다. 진정으로 돌아왔는지 확인하고자 마나를 감지했고, 그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자 무언가 울컥하는 듯하다.
“꼼짝없이 죽은 줄 알았는데...”
“도망치자! 우리가 끼어들 수준이 아니야!”
진정으로 살아돌아왔다.
당황했을 때 체내의 마나가 튀는 현상. 그것이 내 비늘을 통해 느껴져온다.
지금쯤 환각을 봤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이들은 곧장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나, 당신 좋으라고 살린 게 아니거든.”
내 안심한 반응을 지켜본 장이 내뱉었다.
말의 뜻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δετερο συσκευ(두 번째 태엽) γργορη προθηση(빨리 감기) }”
째깍째깍째깍째깍
방금까지 들리던 태엽 소리보다도 훨씬 빨라진 그 소리에 내 심장 박동도 덩달아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고, 고개를 돌리자 방금 되감겼던 내 제자들에게 다시 화염의 창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마법진 만들어지는 속도가 2배는 빨라진 것 같다.
하지만 각오가 달랐다. 이번에는 저 마법을 무조건 역산한다.
그때 장의 모습이 사라졌다.
허공에 마법진을 잠궈둔 채 모습을 감춘 것이다.
어디에 있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역산이 우선이다. 마나를 느끼며 저 마법진에 쓰인 룬어를 역순으로 하나, 둘 풀어가고 있을 때쯤.
“이거 좋은데?”
장의 목소리가 내 눈앞에서 들렸다.
“천하의 참모장이 제자한테 정신 팔려서 자기 몸 하나 못 가누게 되다니.”
크르르륵...
동굴처럼 깊은 울음소리가 내 귓전에 생생하게 들린다.
“{ λκο φλγα 화염 늑대 (υ,τ) }”
크르르륵!
콰직 콰직!
뒤에서 나타난 늑대들이 내 몸에 이빨을 구겨넣는다.
비늘이 막아주곤 있지만 일시적이다. 룬어까지 추가로 섞은 마법인지라 온전히 방어할 수는 없었다.
[크으으... 끄아아악!]
깨갱 깽!
역산이 끝나자마자 마나를 터트리며 화염 늑대를 모두 부숴버렸다.
장이 웃고 있다. 아까 전 마주했던 광기 어린 그 시선으로 말이다.
“악쿤! 이래서야 되겠어? 저 삼류도 못 되는 마법사들 때문에 당해서야 되겠냐고! 하하하하!”
장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악당이 보일 법한 비열한 웃음이었다.
“어, 어째서 마법 용사가 우리를 공격하는...”
제자들도 당황했다. 그를 따르던 군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래서야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흑백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뿌연 회색. 나도 마찬가지, 장도 마찬가지.
“나도 이럴 생각은 없었어. 그냥 당황만 시킬까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네가 반응이 좋더라고. 내겐 쓸 수 있는 패가 하나 늘어난 셈이지.”
날 향해 하는 이야기이다.
그의 주위에 생겨나는 검은 마법진들, 그것들은 공포라는 감정을 먹어치우며 몸집을 부풀리고 있었다.
“제자들이 죽을까 두려워? 그럼 막아! 제자들을 향한 마법도 막고, 너한테 던지는 마법도 모두 막아보라고!”
놈은 흑마법을 익혔다.
용사, 아니. 마법사라면 배워서는 안될 금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물론 가능하다면 말이야.”
크르르륵!
다시 화염 늑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략 열 마리. 그것들은 두 방향으로 갈라섰다.
절반은 나를 향해.
절반을 제자들을 향해.
“비겁하다 욕할 자존심도 없나? 하기야, 네놈이 어찌 입을 놀릴 수 있겠어.”
그에는 동의한다.
마왕군이 어찌 비겁을 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말쯤은 던질 수 있었다.
자신을 믿고 따라와준 이를 장난감 다루듯 대하는 저 태도는 심히.
[역겹구나.]
“하하하! 내게는 칭찬으로 들려!”
크르르릉!
시커먼 늑대가 공기를 밟으며 돌진한다.
이곳은 전장이고, 다른 이의 마나를 빼앗는 흑마법을 통해 마나를 보충하고 있으니 저 늑대는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끄으으으...!!]
늑대의 이빨이 날카롭다. 그리고 뜨겁다.
하지만 제자들을 우선해야 했다. 나는 이 공격에 몇 번 노출된들 쉽사리 죽지 않지만, 저들은 한 번만 맞아도 죽는다.
빨리 도망쳐줬으면 하는 바램이 일었지만, 공포에 질린 건지, 혼란에 빠진 건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을 보자 예전 버릇이 나왔다.
[도망쳐라!]
“참모장이 우리를 돕는 건가...?”
[도망치라지 않나! 칼리오! 네놈이 마탑주 아닌가? 빨리 놈들을 데리고 도망치란 말이다!!]
“당신이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그야!]
내가 네놈들의 스승이었으니까.
당연한 소리를 내뱉지 못한다. 말한들 이해하지도 못 할 것이고, 저들의 앞날에 마왕군의 제자라는 꼬리표가 붙을지도 모른다.
[그야...]
말을 잇지 못한다.
그래도 칼리오가 빨리 정신을 차린 듯하다.
지금은 용사를 믿어선 안 된다. 내게 의지하진 않더라도 장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결론에 겨우 다달은 것이다.
“이 결계가 방해야! 이걸 부숴야 도망칠 수 있다!”
“그, 그렇지만 이 결계는 역산해야 합니다! 어디서부터? 아니, 범위가 이렇게 거대한데 촘촘하기까지 하니까, 한쪽에 구멍을 뚫는 게 쉽지 않은”
“어떻게든 해봐! 이대로 불타 죽을 거야?! 왠지 몰라도 참모장이 장을 막아주고 있을 때 어서!!”
칼리오가 방어막을 펼치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가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고 있을 때 가장 결계 마법에 능숙한 휴만이 머리를 싸매며 이리저리 수식을 대입하고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역산을 해?”
“끄아악!”
콰앙!
불덩이가 휴만에게 떨어진다.
칼리오의 방어막에 막혔지만 저것도 시간 문제다.
언제까지나 장의 마법을 막을 수는 없다.
나도 늑대의 수가 많아질수록 저들을 지키는 게 불가능해진다.
빨리 감기, 그리 말한 기술을 사용한 순간부터 놈의 연성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내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만들기 시작함과 동시에 완성되는 말도 안 되는 마법진을 어떻게 역산한단 말인가. 그건 불가능하다. 지금도 그렇다. 마법진이 완성되고 발산하며 사라짐과 동시에 새로운 마법진이 생겨난다.
메이블일지라도 저런 기예는 부리지 못한다.
아니, 내 생각이 짧았다.
‘그러니 시그니처겠지.’
시계태엽, 위협적인 기술임은 통감했다.
저걸 어떻게 처부술까. 나 혼자라면 몰라도 인질이 있으니 저걸 어떻게...
“어, 어! 결계가!”
그때 휴만이 기쁜 표정으로 외쳤다.
난 죽어가는데 그런 웃음이 나오냐? 생각한들 너는 의미도 모르겠지만, 예전이었다면 딱밤이라도 한대 쳐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 4x ταχτητα 4배속. }”
눈으로 쫓지도 못할 마법진 수십 개가 허공에 둥실 떠올라 일제히 칼리오 일행을 향하고 있었고.
[...막아!]
첫 번째 방패를 클론에게 쥐어준 채 집어던지며 그를 막아보려고 했지만, 눈앞의 늑대들에게 포위당해 움직일 수 없었다.
좌절감이 몰려오며 심장이 격하게 요동치고 있다.
이대로 끝인가.
“...진짜 악취미.”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푸쉬히이이익!
장의 마법과 무언가가 격돌하더니 엄청난 수증기를 내뿜는다.
물 마법? 아니, 바람 마법도 섞여 있다.
복합 마법, 마법사들이 시그니처만큼이나 다루기 어렵다고 일컬어지는 그 경지.
“못 본 새에 괴팍해지셨네요 장.”
“...네년에게도 할 말이 많지.”
“저는 할 말이 없지만요.”
칼리오 일행의 중심에는 둥그런 물방울 형태의 방어막을 전개한 푸른 머리칼의 여성이 있었다.
“장, 잊은 건 아니겠죠?”
“...?”
“제가 당신에게 마킹 해뒀다는 걸요.”
“......이런 제길.”
장이 다급히 방어막을 펼치기 시작했다. 4배속이라는 속도 답게 금방 완성되었지만, 그 방어막의 내부에서 푸른색 마법진이 생겨난다.
“{ τρνο παζω 기차놀이. }”
쿠구구구구!
마법진 속 칼바람이 행렬을 이루며 장에게 쏟아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