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마법 용사 장
* * *
“크아악······!”
발목이 잘려나가자 장은 앞으로 엎어졌고, 나는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퉁
얼음 기둥이 바닥에서 솟아나 장의 몸을 띄웠고, 허공에서 손아귀를 움켜쥐자 자이키릭이 장의 몸을 꽉 붙든다.
휑한 그의 발목에서는 피 한방울 새어나오지 않았다. 피가 나오기도 전 얼려버린 것이다.
그 때문인지 장의 표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지나친 냉기는 되려 뜨겁다고 느껴진다.
발목에 흑염을 토해낸들 내 얼음을 녹여낼 수 없으니 지금쯤 지독한 고통이 따를 것이다.
[알고 있었나?]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에게 물었다.
“크, 크흐흐흐······ 뭐! 뭐를 말하는 건데!”
미친 것인지 날 보며 웃는다.
시치미라도 떼기에는 그는 이미 입을 놀렸다.
푸우욱······.
“끄으으으······!”
손아귀를 더욱 꽉 움켜쥐자 날카로운 발톱이 장의 배를 찌르며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피 한방울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로 날개를 펄럭이며 다가섰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장이었다.
“크, 크으윽...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야?”
[똑바로 대답해라. 언제부터 알았지?]
“그러니까 뭐! 뭘 얘기하는지 말해줘야 알 거 아니야?”
[내 제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한 거냐!]
“하하하, 하하하! 우연이라고 하면 믿을 커, 커허억”
장의 목을 꽉 움켜쥐었다.
그의 눈을 바라봤다. 고통에 가득 차 있지만 전의를 상실한 눈은 아니었다.
되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듯한 눈빛. 날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다리가 잘리고, 배가 뚫리고, 적의 기분에 따라 순식간에 숨통이 끊어질 수 있는 이 상황에서 비릿하게 웃는다라. 광기에 사로잡힌 듯하다. 어째서 웃을 수 있는 걸까. 절망해도 모자를 판인데.
‘단순히 심리적으로 날 압박하고 있어서?’
제자들을 본 순간 얼어붙은 건 사실이다.
순간 이성이 날아갈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얼음에 가둬버렸으니 저들을 죽일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나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는 것이 애석할 뿐, 그 이상의 감정이 피어오르진 않았다.
하지만 장의 눈빛은 내게 꾸준히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왜 망설이지? 왜 나를 안 죽여?
마치 그렇게 묻는 것만 같은 눈빛.
장은 켁켁거리기만 할 뿐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그의 의중을 알 것 같다.
그를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시선을 피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나까지 이상해질 것 같아.’
안 되겠다.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차원총을 품에서 꺼냈다.
그 총구를 장의 정수리에 겨눴다.
그제야 자신의 상황을 직면한 것일까.
파랗게 질려버린 그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담았다.
그때 장이 입을 움직였다.
“이, 이렇게 끝내면 곤란하지.”
장이 룬어를 읊었다.
이렇게 끝내면 곤란하다고?
나도 몇 분만 되감는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하지만 네놈의 수준을 보아하니 곤란할 건 없을 것 같다.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내 기준을 만족시켜줬어야지. 안 그래 장?
화르륵
그가 펼친 것은 고작 6서클의 마법. 추가로 룬 문자도 섞지 않았다.
저따위 마법은 내게 있어 위협이 될 수 없다.
내겐 첫 번째 방패가 있다.
없다고 가정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방패에 닿기도 전, 내 비늘을 녹여낼 수도 없는 하찮은 마법이다.
그러나,
[...너, 지금 무슨 짓을]
“하하하하! 볼만한 표정이야 악쿤!”
다른 이들에게 있어 저 마법은 굉장한 위협이다.
[그만둬! 그만두라고!]
그 마법진이 누구를 향하는지 깨닫자 장이 노리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말했다.
“내가 어째서?!”
화르르륵
그 마법진은 내가 아닌 얼음 속 내 제자들을 향했고, 그들의 몸이 화염에 사로잡혀 새카맣게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안돼!]
차원총을 손에서 놓았다.
날개를 펄럭이며 그들에게로 급하강했지만,
[왜... 왜......!]
이미 늦고 말았다.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날개가 움츠려든다. 꼬리는 움직이지 않았고, 온몸의 비늘이 분노에 곤두서는 것 같다.
[어째서...]
분노에 목소리가 떨린다.
[...어째서어!]
격분한 목소리로 장에게 소리쳤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가! 대답해라!]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불타버린 제자들의 몸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속에서 용암이 들끓는 것 같다.
제자들의 곁에 섰다. 눈가가 축축해졌다.
그들의 몸을 부축했다. 그대로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진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들.
손을 뗐다. 제자들을 만지는 게 두려웠다.
이미 늦었다. 많이 늦었다.
진작에 역산했어야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등에 칼이 꼽히더라도 장의 마법을 필사적으로 역산했을 것이다.
냉기로 열기를 식혀본들 그들이 살아나진 않는다.
그저 굳을 뿐이다. 사실 더는 인간의 몸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망가진 그들이었다.
그러나 인정할 수 없었다. 사실 알고 있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애써 눈 감고 아웅거린들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어째서.’
어째서 이들을 죽인단 말인가?
의문 가득한, 또한 절망 가득한 눈으로 장을 바라보자 그는 호쾌하게 웃고 있었다.
“하하하! 절망스럽나?”
[장!!]
내 제자들에겐 아무런 죄가 없다.
설령 죄가 있다고 한들, 벌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스승님을 잃었을 때 느꼈던 감정. 네놈도 느끼길 바랬다.”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내 제자를 해쳤단 말인가?
[용사라는 놈이 따라온 이를 내친단 말인가?!!]
“따라오다니? 이해 관계가 일치했을 뿐이야. 저들은 마왕군을 쳐부숨으로써 인정받기를 원했고, 우리는 병력이 필요했지. 그뿐이야. 전쟁터에서 사람 하나 죽는 게 대수로운 일이던가?”
[네놈이 죽였잖는가!!]
“네놈을 뒤흔들 수 있다면 뭐를 못할까. 그래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어떠냐고?
놈의 말마따나 절망스럽다, 한스럽다.
장은 이들이 내 제자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인 것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이유가 없다.
오로지 내 감정을 뒤흔들기 위해 소모품으로 썼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아니었더라면... 너희가 내 제자들이 아니었더라면......
짝!
양볼을 후려쳤다. 얼얼한 기운이 내 몸을 감싼다.
‘정신 차려. 되돌릴 수 없어.’
온몸이 분노에 파르르 떨리지만 가만히 절망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냉기의 마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분노가 조금, 정말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걱정 마. 너도 저들처럼 만들어줄 테니까.”
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장이 입을 놀렸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만족하는지, 그는 초승달처럼 눈가를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내 스승을 모욕한 값은 치뤄야지 않겠어?”
[너 또한 마찬가지다.]
날 압박하려 들다니, 기가 찬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사지가 절단나서 길거리의 개똥처럼 굴러다녔을 네놈이 감히?
‘마지막 전투, 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방금 이런 것들은 진작에 내버렸다.
꽈아악
“끄아아악! 그래, 분노해라! 더욱 분노해라!!”
장의 몸을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그에 더해 사슬 마법까지 동원하여 그를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태로 만들곤 차원총을 들었다.
“그래, 죽여! 당장이라도 날 죽여보라고 악쿤 토든!”
물론 감정에 몸을 맡겼더라면 그랬겠지.
하지만 약속한 게 있다. 그래서 죽이진 못한다.
그러나 차라리 죽고 싶어질만큼의 고통을 보여줄 수는 있지.
자이키릭이 발톱을 내세워 장의 몸을 난도질한다.
그의 눈에 초점이 풀려간다. 여전히 웃고 있다.
‘웃을 수 없게끔 찢어발겨주지.’
싸아아아...
토막난 그의 신체에 강렬한 냉기를 퍼부었다.
피는 흐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지금쯤 온몸에 감각이 없을 것이다. 독이 퍼지듯 장의 온몸에 퍼지게 된 서리.
그치지 않는다. 냉기를 더욱 강렬하게 쏟아부어 후회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하하, 표, 표정이 험악... 험악하구나 악쿤 토든.”
[닥쳐라.]
“아끼는 제자들이었나? 그랬더라면 마왕성에 데려왔겠지... 실패작들인 저, 저들 때문에 분노한 걸 보면... 쿨럭! 네, 네놈은 절대빙결이라는 이명과는 어울리지 않게 저, 정이 많은 모양이야. 그, 그래서야 나를 죽일 수 있겠... 쿨럭! 쿨럭!”
말을 온전히 잇지도 못한다.
‘우습지도 않아. 목소리 내는 것도 버거운 주제에.’
[온갖 허세는 다 떠는군. 걱정마라. 곧 편하게 만들어줄 테니.]
장에 대한 평가가 방금 바뀌었다.
천재? 내 눈이 잘못되었다.
저놈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
놈이 실컷 떠든 복수가 고작 내 눈앞에서 제자들을 죽이는 거였다라.
실망이 크다.
적어도 날 죽일 포부는 가지고 있었어야지. 제 목숨 바쳐 내 기분만 불쾌하게 만드는 게 그가 숨겨둔 전부였다.
한심한 놈.
쓰레기 같은 놈.
‘......’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성장을 위해 그의 스승을 눈앞에서 죽였다.
장이 내게 한 짓은 같은 결이었다.
하지만 무게가 다르다.
참모장과 마법 용사. 장이 한 짓은 용사가 해도 될 짓이 아니었다.
그 이름을 달고 있을 때만큼은 정의로운 척이라도 했어야지.
이중성 아니냐고?
맞아. 그렇게 욕해도 좋다.
그야 사실이니까.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내 역할을 다했을 뿐이니까.’
이렇게 자위하는 내 모습마저도 나 스스로가 혐오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것도 진실이다. 아무리 욕한들 내겐 표가 나지 않는다. 이미 마왕군을 세운 순간부터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지 오래다.
[이만 작별할 때다.]
제자들의 복수랍시고 장에게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었다간 정말 죽겠다 싶을 경지까지 압박을 넣었다.
더 괴롭히고 싶지만, 정말 죽으면 곤란한지라 보내줄 때가 되었다.
“쿠, 쿨럭... 커, 커허억”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장이 보인다. 그의 초점은 풀려 있었다.
고개는 축 처졌고, 얼어붙어 딱딱히 굳은 그의 머리칼은 찰랑거리지도 않는다.
그에게 차원총을 다시 겨눴다.
잠시 흥분했지만, 다시 할 일을 해야 할 때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망설임 없이 당겼다.
타아앙......!
묘하게 화약 터지는 소리가 느리게 들리는 건 기분 탓이겠지.
촤륵
총알에 직격한 장이 피를 토했다.
끝이구나. 끝이야.
‘......끝이라고? 아니.’
정신 차려. 이제 시작이지.
제자들을 다시 바라봤다. 그들에게로 다가섰다.
그들은 새카만 재가 되어 눈에 뒤섞이고 있었다.
그 눈더미를 손으로 들었다. 눈가에서 무언가가 흐른다.
[미안하다.]
내 목소리가 닿을 수 있을까.
닿는들 나를 알아볼 수는 있을까.
지극히도 외로웠다.
세계가 내 존재를 잊는다는 게 얼마나 고독한 싸움인지 장은 모를 것이다.
놈은 앞으로도, 평생토록 모를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까 더욱 질투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흐릿해진 시야로 그를 바라봤다. 부럽다. 부럽다고.
[......]
서서히 사라져가는 장이 보인다.
[......제길.]
이 싸움이 끝나면 제자들을 위한 묘비를 세워줘야겠다.
아무래도 보존할 필요가 있겠지.
그들의 시신을 마나를 조작하여 꾹꾹 담아 그대로 얼렸다.
내가 못나서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야 온전히 보존할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는다.
미안해. 잠시만 이대로 있어줄래. 금방 끝내고 돌아올테니까.
[...후우.]
주위를 둘러봤다.
우리 병사들과 인간 병사들이 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
저들은 지금 어찌할 수가 없다.
마력도 아껴야 하니 조금이라도 덜 죽길 기도할 수밖에.
‘철수 형은 어떻게 됐지?’
눈을 감고 마나를 감지했다.
그는 퀸이랑 전투하고 있었다.
스터프랑 양도 같이 있는 모양인데, 그들은 애초에 연기자들이니까 상관 없고.
중요한 건 형이 온전한 컨디션으로 퀸을 제압할 수 있냐는 것.
[의심해 뭐하겠어.]
그의 강함은 내가 뼈저리게 알고 있는데.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곳의 전황을 살폈다.
케일, 그리고 최세린.
이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전투하고 있던 곳이 어디인지는 짐작이 갔다.
클리브 솔리스만의 아공간.
그곳에서 싸우고 있겠지. 걱정도 되지 않는다. 최세린이 진지하게 임했을 때 패배할 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걱정이 앞선다.
그녀가 내 부탁을 들어줄 것이냐는 의문.
‘차원총을 통해 케일도 보내버려야 한다.’
그것을 부탁했다. 그때 마주한 최세린의 표정은 복잡했었다.
‘...기도할 수밖에.’
손 쓸 방법이 없다.
설령 그러지 않는들 나중에 보내도 되는 일이다.
슬슬 가부좌를 틀고 마력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재홍이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 자, 그럼 이제 최우선해야 할 일은......
째깍 째깍
그때였다.
째깍 째깍
[...응? 이게 무슨 소리...]
째깍 째깍
잘못 들었다기엔 무척이나 생생하다.
내 귀에 가져다댄 것처럼 다른 소음에 비해 너무나도 선명했다는 말이다.
‘이건 마치...’
시계가 작동하는 듯한.
째깍 째깍 째깍
그 소리를 들으며 주위를 살폈다.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나, 둘.
틀린 그림을 찾듯 내가 있는 곳의 모든 것을 더듬기 시작하자 오래가지 않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공간이 이상하다.’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보는 게 맞겠지.
허공에 잡혀가는 둥그런 실루엣.
그 안에서 맞물린 채 일제히 움직이는 새카만 톱니바퀴들.
[......완성했구나.]
사라졌을 터인 장.
그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μηχανισμ ωρολογιο(시계 태엽) }”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룬어.
“{ πρτη συσκευ(첫 번째 태엽) επανατλιξη(되감기) }”
째깍 째깍
풍경이 되감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