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마법 용사 장
* * *
마왕군의 존재의의.
세계를 혼돈으로 이끄는 뭐 대충... 그런 느낌이지. 대외적으로는 말이야.
마왕군은 용사에게 고난과 역경을 선사한다.
몬스터를 풀어 사람을 죽이고, 한 마을을 괴멸 상태로 이끌고, 인간을 절망에 빠트려야만 용사는 우리를 증오한다.
근데 말이야.
‘멍청한 놈.’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너희가 막 전송됐을 때, 차원문을 통해 몬스터를 던졌을 그 첫 침공.
그때 코볼트나 고블린같이 약한 몬스터가 아닌, 웨어울프 한 마리만 풀어도 너네를 단박에 찢어죽일 수 있었다는 얘기야.
그때야 뭐,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써선 안된다느니 뭐라느니 주접 떠느라 그렇 수 있다고 쳐.
하지만 너희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지.
전송자라는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때 용사보다도 성장력이 빨랐어.
지금도 봐.
“{ λκο φλγα 화염 늑대 (υ,τ) }”
7서클의 마법을 내게 막 퍼붓잖아.
용사가 전송된지는 막 2년 남짓.
빈은 예외로 치더라도 퀸과 케일도 오러와 서클, 이것을 제하더라도 무시 못할 전력으로 성장했다. 부관들이 진심으로 달려든들 꽤나 고전할 거라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그 중심에는 장이 있었다고 단언한다.
서클 8에 오른 마법의 천재.
그런 그들을 어찌하여 우리가 살려두는가. 이제는 우리 사천왕을 위협하는 존재로 거듭났는데, 더 강해지기 전에 짓밟지 않았냐는 거다.
그리고 현 용사들은 어째서 그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가.
‘사실 의심을 품더라도 손아귀 안에서 놀아난다는 건 변함 없지만 말이야.’
다시 정리해서.
‘마왕군은 용사에게 고난과 역경을 선사한다.’
한 줄로 요약한 마왕군의 의의. 사실 이 문장에는 한 단어가 숨어 있다.
‘마왕군은 용사에게 ‘적당한’ 고난과 역경을 선사한다.’
지나쳐서도 안 되며, 부족해서도 안 된다.
아슬아슬하게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수준까지 그들을 몰아세운다.
그러나 자칫 ‘적당한’의 기준을 잘못 잡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이들을 과소평가했다면 차라리 다행인데, 그 반대의 경우라면 용사가 사고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럼 어떡하냐고?
당연히 거기까지도 생각했지.
카이루스의 아들 다타리오.
용사가 잘못될지도 몰라 심어둔 보험.
그는 역할을 다하고 파라소스로 돌아갔다.
이젠 사고에 휘말릴정도로 약한 놈들이 아니니까. 이들은 내 예상 이상으로 훌륭하게 성장했으니까.
그러니까,
[네놈이 이토록 날뛸 수 있는 건 내 덕이 크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생색 좀 내자고.
나는 사실 네가 마음에 안 들거든.
“뚫린 입이라고 멋대로 지껄이는구나. 뭐라고 궤변을 늘어놓을 셈인지 들어는 보겠어.”
저 봐봐, 건방진 저 태도를 보라고.
내가 네놈의 후원자다 이놈아.
[거 눈물나게 고맙구나.]
내가 하고싶은 말은 저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는데는 내 역할이 컸다는 거다.
[너는 마법을 어떻게 배웠지?]
스승을 말하는 게 아니다.
“펙튼 포르시아. 위대한 마탑주. 그분에게 배웠지. 네놈이 무참히 살해한 내 스승님 말이다!”
[하아... 내가 그걸 모를까.]
그 말고 어떻게 공부했냐고 묻는 거야.
교본을 얘기하는 거라면 이해하려나?
장의 실력은 훌륭하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로.
그의 성장도가 낮다 가정하더라도 그는 영특한 마법사다. 또한 우등생이다.
저놈만큼 마법을 잘 이해하는 놈은 살면서 4명 밖에 못 봤다. 그럼 말 다 했지.
아, 그 4명이 누구냐고?
당연히 스승님이랑 메이블이지.
다른 두 명은 내 수제자인 디안. 그리고...
‘내 아픈 손가락.’
스프라임.
백뢰라는 오그라드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 허연 녀석.
‘나도 절대빙결이라 불리니까 할 말은 없나.’
여하튼,
장의 재능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건 굉장히 후한 평가였다.
그 진짜 천재들과 견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저놈은 모를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네가 사용하는 그 마법 방식.]
군더더기 없고, 쓸 데 없는 룬어는 모두 생략하여 실용성을 중시한 그 마법 방식.
[책을 읽었구나.]
“...역시 그 책은.”
[눈치가 완전 꽝은 아닌 모양이야.]
뭣도 모르던 시절,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한다느니 뭐라느니 떠들면서 완성했던 6개의 교본.
[펙튼 같은 삼류보다 나를 스승으로 두었으면 좋았으련만.]
“......네놈이 만든 교본이었나?”
[그래, 마탑에서 골치 좀 썩었지.]
숨겨 뭐하랴.
저 녀석도 어렴풋이 눈치챘던 모양이지만.
어딘가의 대마법사.
ONE(?)에서 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웠을 때 내가 만들어둔 교본은 수수께끼의 인물이 만든 교본으로 인식되었다.
줄이 만든 교본이다,
한때 아콜드가 정립해둔 것이다. 어쩐다 저쩐다 말은 많았지만, 베일에 쌓여있을수록 신비함이 느껴지는 법.
그 낭만 넘치는 설정이 ONE(?)의 주민들도 마음에 들었는지, 내 교본은 어딘가의 대마법사씨가 만든 교본이 되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그 교본은 완성도가 아주 높았다.
그 교본을 통해 마법을 배웠으니, 장이 저만치 성장할 수 있었다는 거다.
[네놈은 강하다. 그러나... 나를 넘어서진 못해.]
“말하는 것치곤 꽤나 궁지에 몰린 것 같은데?”
고개를 내려 내 상태를 마주했다.
마법에 찢겨나간 너덜너덜한 날개. 볼품없이 잘려나간 뿔, 화염에 익어버려 변색된 꼬리.
등등, 만신창이라 불리어도 될 정도로 장이 날 몰아세우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장은 생채기 하나 없다.
여기까지 본다면 확실히 내가 수세에 몰리고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잖아.
[네놈의 오만함에는 웃음만 나온다.]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이 녹아내린다.
흐물거리기 시작하더니, 얼음이 녹듯이 그대로 바닥에 흡수되었다.
“...이상하다 싶긴 했지.”
장이 허심탄회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껏 상대했던 건 내가 아니라 내 클론이었다.
내 클론 주위를 멤돌던 벤시 하나의 모습이 역변한다.
로브의 후드를 젖혀 그림자 가득했던 얼굴을 보여주자 그 표정이 더욱 구겨진다.
[내가 아무리 감이 떨어진들 시그니처도 없는 놈에게 밀릴까.]
장은 천재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너무 성급했다고. 아직 나한테 도전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
나도 아쉬움이 안 남는다면 거짓말이지.
장의 성장을 보며 골치아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헛발질을 하고 있을때 답답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런 녀석이기에 한때 메이블을 상대했던 것처럼 가슴 벅차오를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마지막 전투인만큼 나도 저 녀석에게 전력으로 상대해줄 생각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였다.
장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시그니처를 발동해선 안 됐나. 아니, 그래선 언약을 어기게 되니까 별 수 없겠지만 자이키릭의 심장을 박은 내게 장은 몸풀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재미가 없다.
더 기다린들 달라질 것도 없겠지.
지금 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태도만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그러니까 장은 저 수준의 마법만 사용할 것이다. 끽해야 8서클, 위협적인 건 맞지만 최근까지 스승이랑 홀라를 상대로 맞붙은 수련, 그것을 몸이 기억한다.
최종 전투?
말은 멋지다.
퍽이나,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었다.
슬슬 끝내자.
다른 용사들도 빨리 보내고, 진짜 마지막을 준비해야...
‘...어라.’
그때였다.
일순 장의 표정이 바뀌었다.
‘착각인가?’
어째서 웃는 거지?
생각이 이에 미쳤을 때, 장이 중얼거렸다.
“...지금!”
장이 고개를 처들었다.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즐거운 아이처럼.
반면 내 표정은 굳는다.
내 온몸에 커다란 색색의 사슬 마법이 달려들어 온몸을 옭아멨다.
그것들의 마법 형식은 내가 그간 보아왔던 것들이었다.
그냥 사슬 마법이 아닌, 한층 더 강화된 사슬 마법.
내가 자주 사용하던, 또한 제자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던 그 포획 마법이 나를 휘감고 있다.
미간이 꿈틀거렸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감히 이런 짓을 하다니.
“참모장을 막아라!”
“마법 용사님! 데미투 마탑의 마법사들이 가세하겠습니다!”
옛 내 제자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퍼석
내가 손짓하자 끊어지는 이 사슬들처럼 나는 이성이 끊어지는 걸 느꼈다.
[...죽인다.]
내 말투와 태도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장이 다급하게 마법진을 만든다.
그 뒤를 따르는 데미투 마탑의 마법사들 또한 마찬가지로 어떤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수어 개의 마법진들을 동시에 곧바로 역산했다.
그야, 저 마법 또한 내가 정리해둔 마법이다.
심지어 내가 직접 가르쳤던 그 마법진...
장이 자신의 마법진이 사라지자 내 마법진에 개입하려고 했다.
내가 그걸 허락할리 없었다. 실력이 좋다지만 메이블보다는 역산이 느리다.
마법진은 무사히 가동됐다. 하늘을 뒤덮은 눈보라. 그 사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그림자.
덮쳐라.
이제는 룬어를 일일히 읊을 경지조차 지나쳤다.
마법진에서 머리부터 꾸득꾸득 기어나온다.
시그니처를 사용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흑마법.
심장의 주인의 육신을 불러오는 것.
자이키릭.
거대한 고룡이 하늘을 향해 포효했고, 눈보라가 거세져 하늘을 어둡게 물들였다.
일제히 마법사들을 뒤덮었고, 눈보라가 차츰 진정되자 온몸이 얼어붙어 동상처럼 가만히 있는 마법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몰라보는구나.’
용사에 대한 기억을 지웠을 때 같이 지워진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속이 쓰라리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짭짤한 것이 느껴진다. 입술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절대빙결, 마왕이 하사한 이명.”
눈보라 속, 흑색 불길 한 줄기가 치솟는다.
“굉장히 어울리네. 얼음 마법을 사용한다는 점도 그렇지만.”
그 가운데서 장이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뒤에 얼어붙은 마탑의 마법사들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자기 제자들에게도 인정사정 없다는”
베어라.
퍼석
바닥에 마법진, 그곳에서 얼음 칼날이 튀어나와 장의 발목을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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