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마법 용사 장
* * *
“살아서 보자.”
멋대로 떠든 주제에, 나부터가 못 지킬 것 같다.
“악쿠운!!”
장의 마나가 심상치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8서클의 것. 하지만 헤인켈의 것보다도 더욱 우위에 있는 그의 마나를 느끼자 전송자는 전송자고, 마법 용사로 차출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증명했다.
쩌엉 쩌엉!
붉은 화염구가 난폭하게 떨어진다.
그것들은 일제히 나를 노려온다.
이곳은 설원이고, 더군다나 내 온몸에는 냉기가 가득했지만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첫 번째 푸른 방패.
이것이 없었더라면 내 몸은 불타 한줌의 재가 되었겠지.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네놈을 죽이고자 지옥 속에서만 살았다!”
미숙했던 예전에 내뱉은 말이었더라면 귀엽게만 느껴졌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정말로 나를 죽이고자 하는 복수심만으로 살아왔다는 것인지, 그의 마나는 무척 강렬하고 뜨거웠다.
손아귀를 꽉 쥐었다. 그곳에서 피어난 마법진.
냉기의 사슬이 장을 묶고자 달려들었지만, 그는 내 마법진을 곧장 역산했다.
‘이런 미친’
회전율을 떨어트리지도 않았는데, 투자한 마나와 내 입모양만을 보고서 역산한 것이다.
웬만한 배짱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괴한 전투 방식.
만약 내가 사용한 것이 다른 마법이었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인데, 그것을 생각하고 움직인 것인지 아닌지는 당장에 확인할 수 없었다.
“{ λκο φλγα 화염 늑대! (υ,τ) }”
크르르륵!
흑빛의 아지랑이를 흘리는 늑대 서너 마리가 허공을 밟으며 내게로 달려든다.
방금 마법이 역산당한 참이라 무방비해진 내 목을 노리며 톱니처럼 날카롭고 삐뚤삐뚤한 이를 들어냈고, 그 기운은 가히 강렬한 것이었다.
“크으윽”
방패로 막아섰다.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내 몸이 뒤로 밀린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마나 감지를 펼쳤다. 장은 어디에 있지? 전방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마나는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어디야, 어디지?
뒤. 뒤다.
그것도 무척이나 가깝다.
“{ τηλεμεταφορ 텔레포트. }”
마법진이 그려지고, 그곳에 차원문이 생긴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장. 그가 오른손에 마법진을 머금고선 내게 달려들었다.
“{ μαρο κερ 검은 촛불. }”
흑염으로 이루어진 불줄기가 내 몸을 휘감았다.
*
“너는 어쩔 생각이냐?”
최종 결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재홍이 물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과자를 하나 씹었다.
마지막 과자였었던가, 암두시아스가 열을 내며 내 다리를 퍽퍽 때리기 시작했는데, 상대해주기 귀찮아 그녀의 머리를 밀며 부주방장에게 연락을 넣었다.
“어쩌긴 뭐를 어째.”
“장이랑 싸울 때 어쩔 거냐고.”
“싸우면 싸우는 거지 뭐. 아무리 강해져봤자 녀석은 아직 내 발끝도 못 따라와. 걱정 안 해도 돼.”
“아니, 네가 강하냐 약하냐의 얘기가 아닌 걸 알잖아. 새끼, 답답하게 하네.”
“그럼 언약 얘기야?”
“그래. 우리랑은 다르게 너는.”
철수 형과 재홍의 시선이 마주했다.
먼저 고개를 내린 쪽은 재홍이었고, 조금 자신감이 없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이 걸려 있잖아.”
“뭐, 그렇지.”
성심성의껏 용사를 키워내고, 마지막에는 그들에게 죽어야 한다는 그 언약.
그것을 내 양심상 이뤄내지 못한다면 나는 심장이 불타 죽는다. 언젠가 자이키릭이 죽었을 그때의 내 감정을 동료들이 느끼게 될 것이다.
‘뭐, 자이키릭은 언약이고 뭐고 없었겠지.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은 거였으니.’
이미 다 죽어가기도 했었고.
어쨌거나, 온몸이 불타 죽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을 것 같다.
언약을 지켜 장의 손에 죽는다고 쳐도 그의 화염에 불타는 것은 다름 없겠지만 말이다.
마지막이 화형이라는 것은 이리 구르나 저리 구르나 달라지지 않겠구나.
“기껏 걱정해줘도 시발, 도대체 왜 내가 가슴 졸이고 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거냐.”
“신경쓰지 마. 어떻게든 해결될 테니까.”
“뭔가 생각해둔 거는 있는 거지?”
“글쎄, 내 양심에 달렸지.”
“또 뭉뚱그려 말하네, 진짜 죽이고 싶다.”
“악쿤, 죽어?”
한 목소리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이가 부모에게 출근하냐고 묻는 듯한 일상적인 대화투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암두시아스였다. 그녀는 뚱한 표정으로 리필해온 과자를 씹고 있었다.
“아마도 그럴걸?”
“누구한테 죽는데?”
“우리 수호대장님이 나 죽이고 싶다잖아. 머잖아 단명할 것 같네.”
“그런 것 치고는 선율이... 이익! 머리칼 건드리지 말라고!”
“싫은데~”
“아, 하지 말라니까!”
그녀의 머리를 난폭하게 헝클이자 성질을 내며 마구 마기를 내뿜지만, 날 해칠 생각은 없었는지 마나를 두르지도 않은 맨몸인데도 버틸만했다.
“윤상아, 우리 안 죽으려고 노력하는 거 아니야?”
암두시아스와 열띤 사투를 벌이고 있자, 침착하면서도 어딘가 다운된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철수 형이었다. 대검에 몸을 파묻고는 졸린 듯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그렇죠. 형이랑 재홍이, 암두시아스랑 마왕군 병사들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고자 형이나 나나 밤새면서 수련하는 거고요.”
거울을 못 봤지만, 아마 내 눈에도 다크서클이 가득한 것이다.
이미 눈이 반쯤 풀린다.
나나 철수형이나 좀 자고 나서 얘기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것저것 실험도 해야 하고, 최종 결전에 대한 것도 신경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내 개인 수련도 아직 끝마치지 못했고, 혹여나 메이블 그 변태 같은 자식이 일지에 숨겨놓은 암호 같은 게 있을지 다시 분석해봐야 하고
“근데 왜 자꾸 죽는다는 소리를 해.”
더보기를 누른 댓글처럼 좌르륵 쏟아지던 내 사고가 철수 형의 냉소적인 목소리에 멈췄다.
그는 미약하게 분노한 것 같았다.
“하여간 저새끼, 주둥이를 꼬매버려야 돼.”
옆의 재홍이 녀석도 마찬가지, 눈을 가늘게 뜨며 날 바라보는데 그것은 짐승의 것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나는 안 죽으면 죽는데?”
말장난이었다. 살아남고자 발버둥... 가만보자, 내게 발버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기는 할까?
장을 죽이려면 지금 당장에도 죽일 자신이 있다.
그가 전송자인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야 나도 전송자니까.
물론 내 서클은 한계점에 도달했고, 레벨도 더는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겠지만, 경험이라는 게 있고, 내가 쏟아온 마학 연구는 헛되지 않았다. 하물며 한때 마탑주까지 지냈던 몸인데.
아무튼.
나는 살아남고자 장을 죽이면 그 순간 죽는다.
언약에 의해 말이다.
이래저래, 목숨이 담보로 잡힌 상황에서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거다.
스승님도 내게 말했었다.
아무리 강해져봤자 언약이 걸려있는 한 에이브(AYV)의 말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한데 뾰족한 수가 있냐고.
‘넬피나 이그니스를 통해 언약을 파기할 수는 없나?’
하나의 가설을 세워봤었는데 머잖아 기각되었다.
비교적 약한 저주(실렉티스의 문신 정도?)라면 모를까, 에이브(AYV)와 직접 맺은 언약은 파기할 수 없다고 넬피가 강하게 말했다.
그러니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부디 에이브(AYV)의 말에 따라달라고 그녀가 간곡하게 부탁했었지. 내 목숨인데 왜 그런담. 과거에는 그렇게 못살게 군 주제에.
‘다른 것도 있었지. 시간의 파편으로 과거로 건너간 후 신분을 숨기고 장을 도와 그의 손으로 과거의 나를 죽이면 어떨까.’
과거의 나 또한 나이기에 언약을 지킨 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는데, 이 가설을 들은 디안은 기겁했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현재 참모장님도 죽잖아요.’
디안은 시간 역행 마법을 한 번 겪은 후, 나보다도 더욱 연구에 매진했다.
청출어람이라고, 이제는 시간 역행 마법에 대해 나보다도 지식이 빠삭했다.
그렇다고 내가 무지하다는 건 아니지.
여러 조건만 성립시킨다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기에 곧장 반박에 나섰다.
‘죽였다가 살려내면 그만이야. 금기 마법 중에는 사람 살리는 마법도 있어.’
물론 준비물부터가 장난 없다.
머리가 세모난 뱀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인 독사초, 불사조의 친적 쯤이라 볼 수 있던 화조의 깃털, 죽은지 10분도 지나기 전 추출한 벤시의 혼령 등등, 다 말하자면 입 아프다.
또한 벤시처럼 살려내고자 하는 사체는 사후 10분을 넘겨선 안 되며, 그 말고도 이것저것 수많은 조건이 따르기에 무척이나 까다롭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가능하기는 하다.
오히려 금기 마법이라는 점이 살짝 걸렸었는데, 생각을 정리해보니 그것도 문제될 게 전혀 없었다.
시간 역행 자체가 금기이다. 한 번 저지르든 두 번 저지르든 그게 그거니까 상관없고, 어차피 나는 마왕군 참모장 따위인데 금기 따위야 수백 번 저지른들 스승님 정도가 아니고서야 누가 날 욕할 수 있을까.
아, 이그니스는 잔소리할 수도 있겠네.
‘알아요. 금기 마법인 소생. 하지만 그건 흑마법이에요.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 신체가 멀쩡하길 기대하는 건 요원한 것이고, 또한 벤시의 혼령과 섞여 인격이 바뀔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 소생 마법은 애초에 네크로맨서들이 사역마를 늘리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에요. 노예로 만드는 그런 마법을 과거의 참모장님한테 현 참모장님이 사용할 거라고요?’
‘정확해.’
‘참모장님... 제가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하는데, 미친 소리에요.’
미친 소리라는 건 자각하고 있었지만, 디안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 이후, 시간 역행과 소생 마법에 대한 것은 입밖으로 일절 내지 못했다.
“그래도 무작정 죽겠다는 건 아니야.”
방법은 있다.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편법이지만, 언약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방법을 떠올린 후부터,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거라 생각할 정도로 완벽한 답이었다.
*
“...죽었어?”
장의 마법진을 두른 손이 내 심장을 관통했다.
강렬한 화염이 내 피부를 태운다. 내 피가 끓는다.
쿨럭!
장의 시커먼 로브에 내 피가 쏟아졌다.
나는 그에게로 몸을 기댔다. 장의 눈동자는 어째서인지 여진이라도 생긴 것처럼 진동하고 있었다.
“이, 이렇게 쉽게 죽는다고?”
왜 기뻐하지 않지?
나는 죽어간다.
내 심장을 움켜쥔 장의 손이 벌벌 떨린다.
냉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마법을 꺼트린 채니까.
이로써 죽어줬다.
숙제는 마쳤다. 시야가 흐트러진다. 곧 죽는다. 확실했다. 내 심장은 기능을 정지한다.
“...강해졌구나.”
“어째서, 어째서 이토록 쉽게... 죽어주는...”
“......쿠, 쿨럭.”
“대답해. 왜, 왜? 왜 방어하지 않았지?”
“......나는 진심으로 널 상대했어. 그냥 네가 내 생각보다 강했을 뿐이야.”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 생각보다 장은 강해져 있었다.
어쩌면 진심으로 상대했어도 제법 치열했을지도 모른다.
“악쿤, 악쿤! 악쿠운! 나는 너를 죽이기 위해 살아왔다!!”
“소, 소원 이뤘네... 축하한다.”
“날 우롱하는 거냐!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죽어줄 거였으면 애초에!”
“뭔진 몰라도... 미안하다.”
내가 왜 사과하는 걸까?
나조차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 허망하게 죽어주는 것 자체가 그에게 굴욕을 준 것인지, 허망감을 준 것인지, 어쨌거나 불쾌한 무언가를 준 것이 확실해졌다.
그래서 사과한 건가. 모르겠다.
졸리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예전에 한 번 느꼈던 감각이었다.
철수 형과 싸웠을 때도 이랬었지.
그때 내 몸은 한 번 죽었다.
“근데 말이야... 장.”
그러니 언약은 지킨 셈이 된다.
심장이 타들어간다. 내가 스스로 불태운 것이다.
졸음이 달아난다. 서늘한 냉기가 내 심장에 자리한다.
“그렇게 실망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아.”
그득, 그득
몸에 무언가 이변이 일어난다.
장은 당황한 듯 했지만, 그의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가 자리했다.
아하,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걸 원치 않았던 거였구나.
그래, 나도 그래.
이 전투가 너랑 나의 마지막일 텐데, 이렇게 싱겁게 끝나서는 안 되지.
“너도 이걸 원했지?]
그득, 그드득
아까 온몸에 일어나던 그것이 더욱 빠르게 자리한다.
비늘. 비늘이었다.
등의 로브를 젖히고 무언가가 일어난다.
날개였다.
엉덩이춤에 굵직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꼬리다.
뿔이 생긴다. 눈동자가 파충류의 그것처럼 날카로워졌다.
앞을 바라봤다.
장은 촛불을 든 채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확실히 웃고 있었다. 확실히 기쁜 듯했다.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αντικατσταση τη καρδι(심장 교체)
웃기는 놈이네.
이 모습을 보고도 절망하지 않다니.
Ver χιονδη παλι, δρκο! (설산의 고룡, 자이키릭!)
콰하아아아!
하늘이 눈보라로 덮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