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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143화 (143/152)

〈 143화 〉 궁술 용사 ­ 빈

* * *

“하,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왜 쳐 쪼개.]

[그야 웃길 수밖에!]

빈의 모습이 변한다.

흉측한 날개가 돋아났고, 그의 등에 가지런한 돌기는 위협하듯이 일제히 일어섰다.

그의 면상에는 톱니 같은 날카로운 이가 보인다. 주둥이가 앞으로 쭉 뻗었다.

몸 주위에는 세 개의 금빛 찬란한 구체가 둥실둥실 떠 있었다.

‘저게 케다시의 본모습.’

마주한 건 처음이다. 느낀 인상은 퍽 징그럽다는 것이었다.

‘최세린의 본모습은 인간에 가까웠는데, 저 녀석은 괴수라고 불러도 되겠어.’

애초에 몬스터였다. 신을 포식했다할지언정 본모습은 흉측할 수밖에.

‘그 계집애가 양반이었네.’

카티골에 대해 생각하자 케다시가 입을 열었다.

[재밌는 생각이야, 아버님의 눈에 안 닿는 곳에서 날 잡으려고 했다니.]

쿵­ 발을 구른다.

[근데 임마들아.]

화아악­!

그의 주위에 떠 있던 세 개의 구체가 강한 빛을 발한다.

[그게 가능할지 먼저 생각해봤어야지.]

말이 끝나기 두렵게,

콰가가가­!

강한 빛줄기가 나와 워 울프, 벡터에게 쏟아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피하는 데 성공했으나, 워 울프와 벡터는 아니었다.

“끄아아악­!!”

전조도 없는 공격이었다. 그나마 케다시가 좋다고 떠들었으니 그것만이 유일한 신호탄이었지만, 그가 입을 다무는 동시에 쏟아진 빛줄기는 반응 속도만으로 피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워 울프와 벡터를 바라봤다.

워 울프의 오른편 어깨는 반 이상이 타들어갔고, 벡터의 왼발은 아예 사라져버렸다.

한순간이었다. 케다시가 말했다.

[카티골이랑 나를 동급으로 취급했다면, 이 정도의 전력이 나를 상대하기에 걸맞긴 해. 맞지, 그게 맞아.]

쿵, 쿵­

발을 구를 때마다 땅에서 금빛 구체가 둥실 떠오른다.

[근데 대단히 큰 착각을 하고 있어. 나는 녀석을 형제처럼 여기지만, 글쎄. 동일 선상에 둔다는 것 자체가 썩 불쾌한걸?]

쿵­ 쿵­

4번의 발짓, 총 7개의 구체.

각기 우리를 향한다. 그중 3개의 구체가 내 주위를 둘러싸곤 빛을 발할 준비를 마쳤다.

[녀석은 그림자야.]

의미불명의 대사.

[나는 빛이고.]

화아악­!

다시 빛이 쏟아진다.

[내가 없으면 카티골도 없어. 그녀의 권능은 어린아이들 소꿉장난에 불과해.]

그 빛줄기가 쏟아진 곳은 그대로 소멸했다.

[카티골도 제압하지 못하는 주제에 같잖은 미물 세 마리가 나를 노리다니, 하. 기가 차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닿아선 안 되는 것처럼, 항마력이며 오러이며 따질 것도 없다는 듯 그대로 소멸시킨다.

그는 이 심연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의 빛이 지나간 곳마다 균열이 생기고, 무너진다.

절망감이 든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저 녀석은 에이브(AYV)처럼 신도 아니다. 권능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 스스로를 달래자 용기가 샘솟았다.

발톱을 내세우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통과되었다.

[그렇게 내가 미웠어?]

목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렸다.

케다시는 어느새 워 울프의 곁에 다가서곤 그의 턱을 잡아당기며 묻는다.

“그걸 말이라고­!”

[워, 워. 진정해. 대화 좀 하자고.]

워 울프가 폴암을 난폭하게 휘둘렀으나,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케다시는 그를 달래듯 말했다. 그에 굴욕감을 느낀 워 울프가 화염을 터트렸으나, 이미 케다시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아버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야. 근데도 그리 원망스럽디?]

닭살이 돋아난다. 그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린다.

벡터가 있는 그곳. 다리를 잃고 바닥에서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그의 머리칼을 꽉 쥐곤 뒤로 당겨 강제로 시선을 맞춘다.

[감히 누굴 탓하는가, 너희가 나약했던 것을 탓해야지.]

사뭇 달라진 말투, 그는 벡터를 놓아주곤 다시 사라졌다.

어디에 있지? 두리번거리다가 느껴지는 강대한 생명력에 이끌려 고개를 들었다.

[미천한 필멸자들아. 이제는 내가 두렵지 않느냐?]

그곳에는 마치 빛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한 영험한 존재가 보였다.

그의 날개는 8개였으며, 그의 얼굴은 더는 면상이라도 불리어도 될만한 것이 아니었다.

‘...더 바라보기엔 위험하다.’

고개를 돌렸다. 케다시의 외견은 첫인상과는 달리 무심코 아름답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그의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금빛 빛에 저도 모르게 다가서고 있었다.

워 울프도 마찬가지다. 벡터도 마찬가지다.

순전히 케다시와 에이브(AYV)를 증오했기에 뜻을 함께한 자들.

그들마저도 홀린다. 이미 무슨 술수를 부렸음이 틀림없다.

‘홀려선 안돼.’

속으로 생각한들, 수없이 곱씹은들 자꾸만 시선이 그에게로 향한다.

종교를 믿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에이브(AYV)의 형제를 찬양하던 종교는 모두 괴멸했다.’

그때 줄의 대사 한 줄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성스러운 기운에 취하기 전,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후각까지 정지시킨 후 오로지 생명력만을 감지한다.

형변을 풀었다.

인간과 다름없어진 몸.

전투를 포기한 게 아니다.

인간의 모습이기에, 유일하게 이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주술을 온몸에 두른다.

쿵­

심장이 요동친다.

쿵­

북을 치듯, 박자에 맞춰 내 몸이 진동한다.

쿵­

온몸에 열기를 둘렀다.

화염이 나부낀다. 주위를 살폈다. 생명력이 꺼져가는 벡터와 워 울프.

‘고작 공격 한 번에 이렇게 됐단 말이지.’

금방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들의 생명력.

그의 빛에 잠식되어가는 아공간.

압도적인 존재감.

이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퍼석­

그때 내 팔이 날아갔다.

바닥에 철퍽, 하고 떨어진 그것은 꿈틀거리며 피를 쏟는다.

그러나 주춤하지 않았다.

멀쩡하다는 듯 그에게로 다가선다.

[죽을 셈이냐 바비룬?]

퍼석­

발이 날아간다.

태도는 여전했다. 몸은 엎어졌지만, 엉금엉금 기며 그에게로 다가섰다.

[호오, 멈추지 않는다 이거지?]

퍼석­

이번에는 오른편 어깨가 완전히 날아갔다.

휑한 그 감각을 느끼기도 전,

[이래도?]

퍼석­

허리가 꿰뚫린다.

[이래도?!!]

퍼석­

성한 곳이 없었다.

지독한 격통이 나를 휘감는다.

여전히 내 외형은 인간이다.

죽음을 각오했다는 듯, 오히려 허탈한 얼굴을 지으며 그에게로 다가서고 있었다.

[네놈은 정녕 미친 것이냐!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그러자 당황한듯 케다시는 격양된 어조로 말을 뱉었다.

그에 피식 웃었다.

그 미소를 느꼈는지, 케다시는 주춤했다.

하지만 머잖아 성난 표정을 짓곤 내게 빛 구체를 던졌고,

그에 따라 내 온몸이 찢어진다. 태워진다, 소멸했다.

두 눈은 이제 감을 필요가 없었다.

강렬한 빛에 휩싸여 시력이 사라졌다.

걸을 필요도 없었다.

다리는 이미 다 사라져 뭉툭한 끝이 남았을 뿐이다.

손을 뻗을 수고도 없었다.

감각은 이미 휑했고, 고통만이 따른다.

하지만 난 웃고 있었다.

케다시는 절망적인 얼굴을 지었다.

유일하게 남은 멀쩡한 신체부위,

입술을 달싹였다. 조용히 주술을 읊었다.

그리곤 놈을 향해 조롱하듯 말했다.

“내가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냐?”

­!!

포효를 내뱉자 시야가 밝아진다.

팔의 감각이 돌아온다. 두 다리가 느껴진다.

앞을 바라봤다.

빛은 여전했지만, 전처럼 찬란하지는 않았다.

왜냐면 이 모든 것이, 그가 보여준 환상이었으니까.

“일어나 씨발.”

꿈틀거리는 벡터의 복부를 발로 찼다.

“너도 새끼야.”

절망하고 있는 워 울프의 머리를 후려쳤다.

놈들은 신음을 흘리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때 보았던 케다시의 표정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어, 어떻게 내 아공간에서...]

“그거 너 애비도 한 거잖아. 맞지?”

[감히 아버지를­!]

“아, 시끄러워. 입 좀 닥쳐.”

귀를 파는 시늉을 하곤 놈을 마주했다.

굉장한 얼굴이다. 주름이 가득한데 아주.

“끄으윽...”

그때 귀찮은 놈들의 신음이 들렸다.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자, 워 울프는 목을 잡곤 켁켁거렸고, 벡터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주술 파훼했다. 이제 일 좀 하자. 응?”

“고, 고맙다 바비룬.”

[헛소리!!]

케다시가 소리쳤다.

갑자기 왜 저러냐는 듯,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하자 분하다는 듯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병신아.”

[네놈이 내 주술을 파훼했다고?]

“보이는 대로 아니야?”

벡터와 워 울프를 가리켰다.

그들의 사지는 멀쩡하다. 당연한 거였다. 내가 보던 환상 속에서의 그들이 당한 모습이었으니까.

“봐, 멀쩡하잖아.”

나도 주술에서 풀려났고, 이들도 주술에서 풀려났다.

이게 주술을 파훼한 게 아니라면 뭐겠는가?

케다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 뭐랄까.

‘감히 하찮은 네놈이 내 주술을 파훼해?’ 라는 식의 업신여김, 언제나 자기가 우위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고약한 심보이다.

[무슨 술수를 부린 것이냐, 똑똑히 말하지 않으면 심판을 내려주마!!]

“뚹뚹히 마라지 아누면 쉼파늘 내려줘마~”

[...네놈의 건방짐은 도를 넘었다.]

한껏 약올렸다. 케다시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욱 험악해졌다.

이거 재밌네. 혼자서 쿡쿡거리자, 반응은 격해진다.

구체가 찬란하게 빛난다.

아까와 비슷한 양상.

다시 환상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 테고, 이번엔 직접적인 공격을 하려는 것이 분명해, 더는 장난스러운 태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손에 쥔 것을 더욱 꽉 쥐었다.

케다시의 날개가 펄럭인다. 그가 우리에게로 다가선다.

워 울프와 벡터가 각기 무기를 들었다. 나도 손에 쥔 것을 깨트렸다.

주륵­

진액이 손바닥을 타고 흐른다.

그것은 내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손바닥을 통해 삼켰다.

형언할 수 없는 고양감이 차오른다.

공기가 바뀐다. 오감이 극도로 발달되었고,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무언가라.

굳이 따지자면 생명력이겠지.

[내 친히 네놈들을 심판하리라!]

저놈이 원래 저런 말투였던가.

본색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은 것이겠지.

그야 이곳은 에이브(AYV)의 눈조차도 닿지 않는 곳이니까.

ONE(?)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정확히는 만들어지다 말았던 버려진 세계.

그리고 이 세계에는 신이 없다.

˚ 형변(??) ­ 신(?)! ˚

그러니 이런 변화조차도 가능해졌다.

온몸에 그득그득 가시 덤불이 올라온다.

내 하반신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는 뿌리가 튀어나와 바닥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몸이 비대해진다.

손등이 가뭄이 든 것처럼 쩍쩍 갈라진다. 두툼한 외피가 형성된다.

눈앞을 바라봤다.

케다시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저 녀석을 이렇게 놀라게 할 정도면 성공적인데?

˚ 모델 ­ ˚

하긴, 안 놀라면 그거야말로 서운했지.

내가 이날만을 기다렸는데.

˚ 세계수, 바비룬 필라이트. ˚

세계수의 수액은 모두 내 몸으로 흘러들었다.

내가 턱짓하자 거대한 나무 줄기가 케다시를 휘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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