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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142화 (142/152)

〈 142화 〉 궁술 용사 ­ 빈

* * *

날카로운 바람을 머금은 화살이 바비룬의 목덜미를 노리고 쏘아진다.

표적은 무척이나 거대했기에 정확히 조준할 필요도 없었다. 눈앞의 것은 괴조라고 불리어도 될 정도로 거대하면서 웅장하고, 또한 난폭하며 한편으로는 흉측하다.

그를 마주하며 궁술 용사 빈.

아니, 케다시는 생각했다.

‘강해졌긴 했어. 역시, 아버지가 요주의하라고 했었던 용사.’

성장의 한계가 없다는 그.

여지껏 있었던 용사들 중, 유일하게 한계점이 없다는 그 용사가 자신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케다시가 보기에 귀여운 악쿤이나 고분고분한 다르칸.

이들에 비해 지금 바비룬이 더 강하다고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한 100년?

아니, 넉넉잡아 500년이나 1,000년쯤 흐르면 바비룬은 확실히 그들을 압도할 정도로. 어쩌면 자신과 카티골, 그를 넘어 아버지조차도 위협할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약하단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저놈은 내 손에 죽는 시나리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바비룬은 오늘 명을 다할 것이다.

[빈­!]

그 필멸자가 소리쳤다.

귀를 찌르는 듯한 소리에, 바람의 정령을 부려 귀를 막으며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퀸의 팔을 잘라?!”

[목을 못 자른 게 한이다!]

“그 시건방진 주둥이부터 잘라주지!”

빈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화살을 쏘아낸다.

바비룬은 피하거나 막아내며 진격했고, 그와 비행정과의 거리가 맞닿을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케다시는 비행정에서 뛰어내리며 허공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슛.”

쐐애액­!

강렬한 화살이 바비룬의 날개를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주춤하지도 않는다. 분명 정통으로 처박힌 화살이었을 터고, 그에 담긴 바람의 주술은 그의 살갗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음이 분명한데 오히려 더욱 맹렬하게 돌진하여 케다시의 코앞까지 다가오고 있다.

‘하여간 괴물같은 놈.’

브룩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뭐, 그때는 봐주느라 힘겨웠었지.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휘이이이­

오른손에 화살을 하나 집었다.

바비룬의 부리가 케다시의 몸통을 노리고 들어온다.

그때 공기의 흐름을 읽었다. 이건 빈의 전투방식이다.

바람으로 활을 고정하고 시위에 케다시는 발을 올렸다.

그리곤 밀었다. 그러자 그의 몸이 허공으로 급격히 솟구친다.

쐐애액­!

바비룬의 거대한 몸이 케다시의 밑으로 스쳐지나간다.

입으로 주술을 읊자 스톰브링거가 그의 손에 장착되었다.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휘이이이......!

고요히 몰아치는 활.

활이 부러지거나 케다시의 팔이 부러지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서로 힘을 겨루다가 그는 시위를 놓았다.

폭풍의 눈이라 이름 붙인 그 기술.

눈에 보이는 칼바람, 그것을 머금은 화살이 바비룬의 등줄기에 마치 한 줄기의 빛처럼 재빠르고도 정확하게 내리꽂힌다.

콰직­!

화살에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바비룬의 몸이 꺾인다. 케다시는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곤 주술을 발동했다.

난폭한 태풍, 그것이 그려진 화살집이 빛난다.

케다시가 손을 허리춤에서 시위로 다시 가져온다.

그에 맞춰 실로 이은듯 화살이 허리춤에서 촤르륵 쏟아져나온다. 그것들은 순번을 기다리는 것처럼 시위로 다가오고 있었고, 케다시는 시위를 당긴 채 그 손으로 핑거스냅을 했다.

˚ 폭풍의 시 ˚

콰가가가각­!

촤라라라락­!

화살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바비룬의 몸통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들은 그의 외피에 모두 박힌 채 강렬한 바람을 내뿜었고, 바비룬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케다시는 빙긋 웃었다.

바람의 흐름에 몸을 던지며 허공에서 비상한다.

여전히 화살들은 모두 바비룬을 향한다.

이토록 순조로울 것 같았다. 바비룬의 전력은 이게 아닐 것인데도.

‘내가 빈의 모습이니까 그에 맞춰서 스스로 제약을 걸어둔 거겠지.’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다.

지금 상태의 바비룬도 충분히 강하다.

딱 빈이 어찌저찌 노력하여 힘겹게 잡아낼 수 있을 수준이다.

그를 증명하듯 바비룬의 몸에는 잔상처는 많았지만, 결코 치명상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상처는 없었다.

조금 더 강한 공격을 날려야 할 것인데,

그를 행하려면 바비룬이 반격을 한 번쯤은 해줘야 한다.

어디 해봐, 조금은 당해줄 의향이 있으니까.

마왕성에서 지냈던 그 기간 동안 바비룬은 자신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듯했다.

악쿤 토든의 살가운 태도는 온전히 케다시를 향하고 있었다.

다르칸의 충성심도 온전히 케다시를 향하고 있었다.

반면 케다시에게 반감을 지니고 있던 바비룬은 찬밥 신세였다.

그게 불만이었는지, 퀸의 팔을 잘라내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에 대한 대가로 그의 부관을 처참하게 죽였다.

그로써 벌을 주었다. 이건 온전히 케다시의 의견이었다.

스프라임을 죽인 건 케다시라는 말이었다.

그러니 원망스럽겠지.

자신의 동료이며, 자신이 아끼던 부하이며.

모두 내게 잃었으니까.

하지만 어쩌겠나.

감히 신에게 송곳니를 내비춘 바비룬은 그 정도의 처사가 마땅했다.

하지만 조금은 가여웠다. 하지만 어여삐 여길 생각은 조그만치도 없고, 따지자면 동정심? 먹다 남은 찌꺼기 정도는 던져줄 의향이 있었다.

그 찌꺼기는 지금 바비룬이 준비하는 공격을 몸소 맞아주는 것이다.

어디 해봐.

날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이리 생각하자,

[휘감아­!]

바비룬이 외쳤다.

허공에 흩날리는 바비룬의 깃털에서 무언가 꾸멀꾸멀 나온다.

덤불이었다. 날카로운 가시 덤불.

그것이 케다시의 몸을 휘감았다.

‘저건 분명 카넬루아에게서 받은 권능.’

따지자면 아버지의 권능.

이것이 에이브(AYV)가 바비룬을 견제하여 심어둔 폭탄인 것이다.

쓸모 있는 능력일지언정, 이 능력 때문에 그는 아버지에게 거스를 수 없다.

뭐, 저 들짐승이 그걸 깨닫는 일은 없겠지. 그 전에 내 손에 죽을 테니까.

빈은 적당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바비룬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부리가 빈의 복부를 강타한다. 조금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럭저럭 빈의 육체가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크윽­!”

아버지가 보고 있어.

라 곱씹으며 적당한 반응을 보였다.

바비룬은 기세등등하게 앞에서 날개를 퍼덕인다.

그 모습은 제법 봐줄만했다.

늠름하고 거대하고 용맹하다.

마치 케다시가 연기했었던 브룩처럼.

그 정도의 경지까지는 올라왔다.

하지만 곧 죽어야 할 것이다.

이쯤에서 각성한 척,

활시위에 휘감긴 바람을 더욱 강화하고.

녀석을 슬슬 죽일까.

아니, 조금만 더 괴롭힐까.

어떻게 할까? 마음먹기 나름이다.

고통스러운 표정의 가면 속 케다시는 곤란하다는 얼굴로 바비룬을 훑고 있었다.

어느 정도로 해야 네가 안 죽을까?

조금은 더 싸워야 사천왕의 위신이 살지 않겠어?

내가 브룩일 때에도 꽤나 고전하는 척하다가 죽어줬으니까.

그 정도까지는 가야지.

그래, 그게 맞지.

조금만 더 이 연극을 즐기자.

마지막은 내가 기꺼이 화려하게 장식해주지.

촤락­

덩굴을 찢었다.

바람을 밟으며 허공에서 자세를 잡았다.

모든 바람이 케다시의 활에 이끌리듯 뭉친다.

그것은 한점에 모였다. 화살촉.

휘이이이이­!!

재해라고 불리어도 될 정도의 바람이 응축된 화살.

그것은 바비룬을 향하고 있다.

이 정도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겠네.

생각하곤 활시위를 놓았다.

바비룬은 체념했는지, 눈을 감았다.

*

마지막 회의를 떠올렸다.

“케다시. 녀석을 붙잡아줘.”

“야이 시발, 걔 최세린이랑 똑같은 놈이잖아. 그런 괴물을 나보고 상대하라고?”

“응, 네가 상대해. 재홍아.”

정윤상을 지긋하게 노려보다가 내가 먼저 피식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곤 정윤상과 김철수도 실실 웃었다.

알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매칭이다.

그야 당연하잖아?

내 손에 들린 화분만 보더라도 나는 그와 맺어질 운명이었다.

뭐, 용사라고 떠들고 다녔을 때도 정작 그놈을 상대했었으니.

“괜찮지?”

“안 괜찮아 시발!”

“괜찮다는 거네.”

“흐흐.”

“흐흐흐흐...”

“쪼개지마.”

“네가 먼저 쪼갰어.”

“그런가?”

“그래.”

다시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보면 미친놈들인줄 착각할 수도 있겠다.

뭐, 목숨이 걸린 도박을 하는데 맨정신으로 하기도 어렵겠지.

최근에는 술을 좀 멀리했다.

또한 여자도 멀리했다. 그냥 집중했다.

내가 가진 힘에 대해, 또한 내 아티팩트의 활용법에 대해.

그에 대해 고민하고 친해지고자 다가갈수록 꼬인 매듭이 조금씩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득도 같은 느낌? 주술에는 서클이나 오러처럼 단계가 따로 있지는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만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너랑 철수 형이랑 고생하는데 나도 고생해야지. 오케이, 케다시는 너랑 형까지 고생하게 만들진 않을게.”

호기롭게 말했다.

허세는 아니었다.

방법은 있었다. 내 강함으로 짓누른다, 따위 뭣 모르는 개소리는 아니고.

내가 가진 주술에 대해서 고민하다보니 내 능력 중 하나인 가시 덤불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 것이다.

카넬루아에게서 받았던 그 능력.

즉, 에이브(AYV)의 꼭두각시에게서 받았던 그 능력이라는 말이 된다.

어찌 보면 실렉티스의 것인만큼 확실히 강력하다.

하지만 이걸로 에이브(AYV)에게 위해를 가할 수는 없다.

그럴려고 하면, 내 몸이 뒤틀리고 심연에 떨어진다나 뭐라나.

하여간 죽는다는 말이었다.

이것이 줄이 한때 말했던 선천적으로 에이브(AYV)에게 덤빌 수 없다는 이유였다.

스스로 버리는 방법도 없는 능력이니 뭐, 신살 계획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자연스레 퇴장이다. 주연은 윤상이 녀석과 철수 형이라는 말이 된다.

‘뭐, 당장 알았을 때는 씁쓸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조연에게도 조연만의 역할은 있다.

나 또한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최선의 결과를 맺을 수 있겠지.

그래서 짐을 덜고자 했다.

그것이 케다시를 묶는 것이다.

이를 물었다. 감았던 눈을 떴다.

눈앞을 바라봤다.

맹렬한 화살이 보인다.

기세등등한 케다시의 얼굴도 함께.

[...]

이쯤이면 됐나?

[묶어.]

꽈아아악­

케다시의 몸이 묶인다.

그는 적당히 당황한 척을 하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는데, 미안하지만 이제 그 여유는 사라질 거다.

꽈아악­

꽈아악­

꽈아아아악­!

수많은 가시 덤불이 그를 휘감는다.

또한 몸집을 부풀리며 녀석과 나. 그리고 몇몇 인원들을 덤불로 만들어진 공간 속에 가뒀다.

그리곤 입을 쩌억 벌렸다. 내 목구멍에서 무언가가 꾸멀꾸멀 올라왔고, 이것의 이름은.

‘차원총.’

신을 죽이기 위해 만든 병기.

하지만 내것은 총이라기엔 좀 많이 거대하다.

대포라고 하기도 뭐하고, 굳이 이름붙이자면 차원포?

아니, 포환이다.

포는 내 몸 자체이니.

까득­

이를 악 물었다.

내 입에서부터 새하얀 빛이 터져나온다.

다 왔겠지?

주위를 둘러봤다.

몇몇 놈들이 나와 눈이 마주친다.

좋아, 됐다.

케다시를 죽일 시기가 왔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디로 날 데려가는 거냐?!”

눈이 감겨 발버둥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케다시가 말했는데,

너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구나.

용사 놀이는 끝났고, 사천왕 놀이는 끝났어.

네가 알 일은 없겠지.

화르륵­

우락부락한 사내의 손에 들린 창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치이잉...!

군복을 입은 사내의 손에서 마도구가 빛난다.

화륵­ 화르륵­

내 목구멍에서 화염이 맹렬하게 타오른다.

그것은 일제히 빈이 아니라 케다시를 노리고 있었다.

좋아, 언제까지 연기할 수 있나 볼까?

[꼬리독­!]

“발포­!”

˚ 포효!(??)! ˚

치이이익­!

우락부락한 사내의, 워 울프의 폴암 끝이 살아있는 것처럼 휘며 케다시를 노린다.

콰아앙­!

군복 입은 사내의, 벡터의 손에서 빛나는 마도구에서 강렬한 마탄이 발사된다.

­!!

천둥 치는 듯한 괴성이 전율했다.

그것은 일제히 케다시를 향했다.

그 다가오는 공격들을 느끼고나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덤불을 풀어헤치려고 몸부림쳤지만, 이미 늦었다.

­!!

귀를 찢는 듯한 폭음이 터졌고, 주위를 감쌌던 내 덩굴은 모두 찢어졌다.

그러자 우리가 전송된 공간이 어디인지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곳.

다른 말로는 공허.

그곳의 좌표를 따냈고, 그곳으로 전송했다.

이곳이라면 에이브(AYV)의 눈이 닿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어나, 이 씹새끼야.]

연기가 걷히고, 그 안에 있는 인영이 보인다.

바닥에 대자로 엎어져있는 그것. 케다시이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는 널브러진 채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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