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격투 용사 퀸
* * *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스산한 기가 바닥을 잠식하며 마왕성을 무너트린다.
아래로 무너져가는 그것을 보며 식은땀을 흘릴 새도 없이,
귀신 같은 다르칸의 붉은 안광이 내 목덜미를 바라보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의 손에는 서슬 벼린 날이 빛나고 있었다.
한손검이니 막아낼 수 있을까?
후우우.
이미 대검으로 바뀐 뒤였다.
콰아앙!
건틀렛에 마나와 오러를 모두 터트리며 막았지만 충격에 대비하진 못했다.
내 몸은 저편으로 날아갔고, 등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을 때 다시 눈앞에 다르칸은 눈에서 붉은 선을 흘리며 내 앞에 검을 꽉 쥔 채 있었다.
이번에는 좁은 곳이니 대검을 휘두르지 못할 테지.
라는 생각에 미치니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딱 알맞는 크기의 양손검이 되어 있었다.
쐐애액!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이니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내 머리 위의 벽이 부드럽게 잘려나가곤 기울며 바닥에 쿵 떨어졌다.
단면도마저도 기계로 잘라낸 듯 무척이나 깔끔한 그것이 내 목에 닿았으면 어찌 됐을지 상상할 여유조차도 없었다.
다르칸의 속검은 계속하여 날 조여왔고, 오른손의 포구를 그에게 겨우 향했을 때, 그는 검의 폼멜로 내 왼팔을 팍 쳐내어 방향을 강제로 바꿨다.
퍼엉!
공격이 틀어졌다.
빈틈이 생겼다.
다르칸은 놓치지 않았다.
그의 몸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무너진 벽 뒤로 이동한 그는 다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서걱
닿는 즉시 당연하다는 듯 모두 잘라내는 그의 검,
겨우 피해냈지만 이것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체력을 가다듬는 것인지, 더는 몰아세우지 않고 조용히 날 지켜보는 다르칸.
그의 붉은 안광을 마주하자 들짐승을 마주한 것처럼 온몸이 바싹 얼어붙는다.
그 들짐승은 내게 송곳니를 보이며 으르렁거렸다.
“이제 한 눈 안 파네.”
“...허억 ...허어억.”
“벌써 지치면 곤란해.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후욱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르칸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휘둘렸다.
콰자작
땅이 무너진다.
쐐액!
아래에서 위로, 사선을 그리며 휘둘렸다. 벽에 맞닿았다.
서걱
궤적을 따라 통째로 잘려나간다.
“아차, 힘이 너무 들어갔어. 쓸데없이 힘 쓰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인데.”
그는 중얼거리며 자신이 잘라낸 단면도를 어루만졌다.
나는 거리를 벌리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역시 저 검은.’
내 착각이 아니라면 지혜와 양, 음이 보였던 그 동작과 완전히 똑같다.
양이 말했던 것이 떠오른다. 다르칸에게서 검술을 따왔다고 흘기듯이 말했던 그것.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다르칸의 검술은 그들과 같았다.
사실 그걸 깨달은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문점 때문에 쉽사리 인정할 수 없었던 탓이다.
대체 같은 동작에 무슨 차이가 있기에 이토록 무거운 압박감이 느껴지는지를 해소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들과는 달리, 다르칸의 검은.
‘자유자재로 바뀌니까.’
검의 크기 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휘두르는 방식. 또한 힘의 크기마저도 자유자재다.
언제는 활화산 속 마그마처럼 난폭했고, 언제는 부드러운 물처럼 유연하다.
언제는 모든 걸 짓밟는 코끼리처럼 거대했고, 언제는 날렵한 고양이처럼 정교했다.
자기 마음대로다.
검을 쓰는 자와는 자주 겨뤄봤지만, 지금만큼은 저 검의 깊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그래서, 자꾸 도망만 칠 거야?”
자꾸만 그에게서 벗어나려는 내 모습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다르칸은 검끝을 내게로 겨눴다.
그의 안광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눈동자의 색에 무언가 다른 변화가 있는 걸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다음 합에 내 목이 달아나는 걸까.
“부탁이니 시시하게 그러지는 마. 나는 이 전투를 제법 기대했단 말이야.”
진정으로 아쉽다는 말투, 이것도 빈말은 아닌 듯하다.
그는 내가 더욱 몸부림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다 죽어가는 사냥감이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지 지켜보는 듯한 포식자의 모습이었다.
다르칸에게 있어서 나는 언제든지 숨통을 끊을 수 있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대답이 없네.”
없을 수밖에.
나는 지금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
내가 다르칸보다 우위에 있는 유일한 한 가지.
다르칸이 작게 한숨쉬고 터벅 터벅 내게로 걸음을 옮겨 머잖아 몇 발짝만 앞으로 내딛으면 검이 내 몸에 닿을 거리가 되었을 때.
“{ ...... }”
조용히 마법을 발동했다.
그 룬어를 읊자, 다르칸의 뒤에 하나의 붉은 무언가가 생겼고,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앞에 다르칸의 검을 방어하고자 모든 현상을 끌어모았다.
이 공격만 막아내면 빈틈이 생긴다.
그의 뒤에서 조용히 주먹을 휘두르는, 나와 판박으로 생긴 마법.
κλνο 클론
화염의 클론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다르칸의 뒤통수에 주먹을 휘둘렀
“내가 그 마법을.”
석 석
두 번의 칼질.
클론은 X자를 그리며 4토막이 났고, 허공에서 불타오르며 사라졌다.
“얼마나 많이 봤는지 너는 모를 거야.”
다르칸은 빙긋 웃으며 다시 뒤돌았다.
나는 방어막을 펼치고 있었기에 반격할 타이밍이 없었다.
그러니 다르칸의 검은 끝없이 내 숨통을 조일 것이고.
방어막이 무너지는 즉시.
내 명도 끝을 다하고.
용사 중 한 명은 이곳에서 끝난다.
‘뭐, 대충.’
이런 스토리를 다르칸의 머릿속에 그리게 만들었다면 성공이다.
이건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 화권 ]
“...!”
쩌어엉!
다르칸이 내 클론을 감지할 것이라 확신에 건 도박.
정통으로 맞췄다.
작열하는 화염이 다르칸의 온몸을 휘감았고, 그가 몇 발짝 물러났을 때 나는 재빨리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퍽
좌수가 그의 턱에 꽂힌다.
퍼어엉!
포구에서 맹렬한 화염이 튀어나와 그를 옭아멨다.
퍽 퍼억 퍽
스트레이트, 로우킥, 이어서 한 바퀴 돌며 그의 관자놀이를 걷어찼다.
그가 중심을 잃었을 때 다시 거리를 좁히며 그의 턱을 또 후려쳤고, 그의 몸이 뒤로 기울었을 때 오른팔을 그의 복부에 꽂아넣고 다시 건틀렛을 작동시켰다.
콰아앙!
거대한 폭발, 나마저도 그 열기에 눈살을 찌푸렸다.
눈앞을 바라보았다.
검은 연기와 함께 마왕성의 잔해에 묻힌 다르칸, 그에게선 지독한 오징어 탄내가 진동했다.
당연히 이 정도로 죽이진 못했겠지.
그랜드 마스터다. 기초적인 체력이며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 지당하다.
왼팔의 건틀렛을 탈착했다.
발치로 던진다.
오른발을 뒤로 뻗는다.
목표는 다르칸이었다.
{ 화구 ]
콰아앙!
건틀렛이 재빠르게 날아가 그에게 처박혔다.
“돌아와.”
슈욱
건틀렛이 내 왼팔로 돌아온다.
팔로 쳐내며 다시 발치로 향했다.
{ 화구 ]
다시 차냈다.
“돌아와.”
발치로 향한다.
{ 화구 ]
다시 차냈다.
“돌아와.”
발치로 향한다.
{ 화구! ]
다시 차냈다.
“돌아와!”
발치로 향한다.
{ 화구! ]
다시 차냈다.
“돌아와!!”
발치로 향한다.
이를 반복했다.
천장이 쿠구구 흔들린다.
돌조각이 내 머리이며 어깨를 소나기처럼 요란하게 두드리기 시작했고,
슬슬 이 행위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느꼈다.
다르칸의 약해져가는 기가 무너져가는 벽 너머로 느껴진다.
건틀렛은 다시 내 발치에 있었다.
카앙
차올리곤 왼팔에 장착했다.
직접 마무리를 짓자.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이곳에서 끊자.
벽을 몸으로 밀치며 다르칸이 있는 곳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엎어진 채 대검마저도 놓치고 온몸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에게서 탄내가 진동한다. 그의 주위는 불바다였다.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왼팔에 모든 것을 끌어모으며.
타나토스가 흘기듯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워록만의 기술을 사용한 적 있어?”
“워록만의?”
“마나와 오러의 융합. 그게 완성되었을 때 순간적으로 나오는 폭발적인 힘. 사실 섞는다는 표현도 모순이야. 애초에 그것은 같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말로는 설명이 안 돼. 그저 깨닫는 수밖에...”
지금은 그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붉은 오러와 화염의 마나가 섞인다.
아니, 섞이는 게 아니다. 분리되었던 그 두 현상이 하나로 되돌아간다.
이리저리 얽히며 서로를 밀쳐냈다가 끌어당겼다가를 반복하다가.
끝내 내 왼손에 그것들은 뭉쳤다.
구체였다.
매끈하고 완전한 녹빛 구체.
이것이, 마나와 오러의 근간.
무척이나 부드러운 그것은 마치 싱그러운 잎사귀 같다.
그것을 꼭 감쌌다.
내게 힘을 빌려준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듯이 내 왼손에 흡수되었고.
그것은 하나의 현상이 되어 다르칸을 노린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다.
주먹을 휘둘렀다.
사르륵.
그것이 다르칸에게 맞닿았을 때.
이 기나긴 전투가 끝났음을
...타앙!
사고가 정지됐다.
“...위험해.”
어깨에 통증이 인다.
“확실히 위험해.”
내 몸이 가루로 사라지는 듯한 기분.
“순간 진심으로 상대해야 할 뻔했어.”
눈앞의 다르칸은 검을 바닥에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목을 양옆으로 흔들더니, ‘이제 좀 낫네.’라고 중얼거리곤 나를 똑바로 마주했다.
나는 털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조금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만이 전부다.
허나 들리는 것만은 선명하다.
다르칸이 말했다. 똑똑히 들으라는 듯한 확실한 발음으로.
“내 이름은 김철수야. 너처럼 전송자고.”
검을 바닥에 박곤, 그에 등을 기댄다.
“난 누구와는 달리 죽는 연기까지는 어려워서 이 정도 당해준 거에 감사하라고.”
“아, 자존심 상할 필요는 없어. 너 진짜 강하더라. 비슷하게 ONE(?)에 전송됐으면 진심으로 덤벼도 내가 죽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선배로서 꼴사납게 질 수는 없잖아? 또 너네와는 달리 우리는 커다란 숙제를 마주하고 있거든.”
“그래도 후련하지? 잠시나마 나를 이겼다고 착각했잖아.”
“음... 이런 말을 해서 후련하지 못하려나. 아무렴 어때.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받는 건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아, 맞아. 너뿐만 아니라 다른 용사들도 똑같이 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이게 무슨 말인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냥 긴 꿈을 꿨다고 생각해.”
“안녕, 격투 용사.”
내 시야는 흐릿해져갔고.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을 그의 얼굴로 향했을 때.
*
“허억!”
발작하듯 몸을 튕기며 일어섰다.
내 오른손은 내 몸을 뒤덮은 이불을 꽉 붙들고 있었다.
“...허, 허억... 여, 여기가 어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꿈뻑인다.
호흡이 가다듬어질수록,
어째서인지 나는 진정할 수 없었다.
이곳은 고시원이었다.
퀸이 아닌 김희수로 살아갔을 때의 그곳.
“...아아아아아악!!”
머리를 감싸안고 비명질렀다.
오러나 마나는 터져나오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