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격투 용사 퀸
* * *
다르칸의 손에 감긴 한손검.
그걸 빙글빙글 돌리더니, 감각을 찾았다는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섰다.
양이 순간 움찔했지만, 그는 날 흘겨보더니 다시 말했다.
“가만히 지켜봐요.”
벽의 파편을 꼭 쥐고 있는 손.
그 손을 움켜쥐더니 다르칸의 품으로 달려든다.
후웅
그때 다르칸이 손을 휘둘렀다.
그걸 맞받아치기보단 옆으로 더 파고들었다.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듯한 담력.
조금만 망설였더라면 어깨째로 베였다.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더라면 목부터 잘려나갔다.
최적의 타이밍에 파고든 것이다.
그에 전율이 돋았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전투 방식이었다.
품으로 파고든 그는 오른손을 다르칸의 얼굴로 휘둘렀다.
주먹이 아닌 손바닥을 휘두른 것이다.
그러자 건물의 파편이 그의 손에서 비상하며 다르칸에게 향했다.
고작 돌조각이었다. 위협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오러를 담는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 돌조각들은 각기 하나의 탄환이 되어 맹렬하게 날아섰고, 다르칸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순간 자세가 무너졌다.
양의 검에 오러가 휘감긴다.
[ 양(?)류 두 번째 춤사위 광수(??) ]
찌르기!
복부를 노린 그 공격.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돌조각에 당황하여 순간 자세가 무너지는 것까지 염두에 둔 이 공격은 전투의 결착을 지었어야 함이 마땅했다.
하지만 다르칸의 검은 유연했다.
빗나갔다는 걸 인지한 즉시 왼손으로 검집을 쭉 빼어 그 찌르기를 정통으로 막았고,
쩌어엉
검집과 양의 검이 맞닿았을 때, 귀를 때리는 공명음과 함께 공기가 뒤흔들렸다.
그리곤 팔을 당겼다.
검을 역수로 고쳐잡고 역으로 뒤에서 찔러온다.
그때 양은 검집을 팔로 붙잡고, 찔러오는 환도를 발로 밀쳐내며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아까의 검술의 자세까지 연결되었다.
[ 양(?)류 첫 번째 춤사위 과교선(???) ]
카각
닿지 않았다. 다르칸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또 그거야?”
검집으로 검을 빗겨 막아내곤 그대로 힘으로 짓눌러 바닥에 향하게끔 했다.
교묘하게 엇갈린 탓에 양은 검을 포기하거나 넘어지는 것 둘 중 하나를 해야 했고, 이때 정석적의 방법은 검을 포기하는 것이다.
양이라면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검을 내려놓고 물러서야 했다. 그리고 도망쳐야 목숨을 건질 수 있다.
“크윽.”
넘어졌다.
양은 검을 그대로 쥐고 넘어졌다.
“죽을 생각이야?”
“글쎄요, 지금은 아닌...데요!”
힘으로 대항한다.
이길 수 있을리 없었다.
오러를 터트렸다.
급이 달랐다.
그럼에도 발버둥치고 있었다.
양은 태극류의 바탕인 극효율의 움직임만을 추구했고, 이 움직임을 배워야 ONE(?)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또한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을 권했다.
동료가 죽어도 주저없이 그 시체를 밟고 적에게 대적할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고, 인간성을 포기한만큼 따라오는 것들은 추후에 영광을 쥐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검을 버려.”
“끄으으윽!”
“안 그러면 너 죽는다.”
“알, 알고 있습니다!”
양은 이를 빠득 깨물며 다르칸에게 대적하고 있었다.
땅이 거미줄의 모양처럼 쪼개진다. 그를 등으로 받히는 양은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멈칫했다.
건틀렛은 내 손에 있다.
도와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몸에 서린 공포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발이 내디뎌지지 않는다.
다르칸은 내게 있어서 거인처럼 느껴졌다.
“잘 들어!”
그때 양의 목소리가 울렸다.
여지껏 보여왔던 딱딱했던 그 어조가 아닌, 감정이 가득 서린 목소리.
“포기해야 될 것들은 분명히 있어. 내게 아무리 소중할지라도 포기해야 할 것들은 분명히 있다고.”
“나는 그런 것들을 모조리 놓았어. 손에 익었던 검이며, 내게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이며, 한때는 동고동락하며 먼 훗날 살아남기를 약속했던 동료이며, 모조리 베고, 죽이고 그것에 만족했어. 그래서 나는 지금 살아있는 거니까.”
“근데 이젠 알았어.”
“목숨과 맞바꿔도 아깝지 않을 것들도 분명히 있어.”
“그것들을 잃고 나서야 후회감이 밀려왔어. 그 생각에 잡아먹힐수록 좌절감만 커질 뿐이었다고.”
“그러니 부디 너는...”
쩌적
쩌저적!
검에 균열이 생긴다.
다르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양은 어째서인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킬 수 있을 때 지켜.”
“유언은 끝났지?”
휘릭
검집을 세운다.
후!
입김을 불자 그 끝이 날카롭게 변한다.
그것은 양의 목을 향했다.
그때 양은 어째서인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그는 입을 꿈뻑거리며 무언가를 말했다.
하지만 귀를 때리는 공기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 화권 }”
콰아아앙!
몸이 움직였다. 화염이 작열했고, 다르칸은 저편으로 날아갔다.
바닥에 검집이 덜그럭 떨어진다.
그것을 발로 짓밟았다. 지렁이가 몸부림치듯 격하게 꿈틀거린다.
“허, 허억... 죽는 줄 알았네.”
“양! 괜찮나?!”
“당신이 조금만 늦게 정신 차렸으면 안 괜찮았을 거예요.”
“그러니 왜 그런 위험한 짓을...”
“그래야 이 전쟁에서 이기니까죠. 나름 효율적인 행동이었”
그는 말을 이으려다가 내 얼굴을 보곤 너털웃음을 지었다.
손을 들었다. 움찔했는데, 그 손은 내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이런 표정 처음 보네.”
“나도 처음 보는 표정이다.”
“그런가요.”
“당신이 그런 미소도 지을 줄 알았던가.”
“당신도 눈물 흘릴 줄 알았을 줄은 몰랐네요.”
양의 터져서 까칠해진 손은 머리칼에서 천천히 내려와 내 얼굴로 향했고, 그것은 눈가에 닿았다.
엄지만을 움직여 눈가를 닦아주고는 다시 미소지었는데, 그 미소는 무척이나 환했다.
“마지막에 뭐라고 했었지?”
조금 진정되자 궁금증이 터져나왔다.
입만 뻐끔거리며 말했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것만은 어떻게든 듣고 싶었다.
마지막임을 각오하고 한 얘기 같아서. 흘겨들을 수는 없었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양은 시선을 피했다.
그의 볼을 붙잡았다. 시선을 강제로 맞추며 말하라고 압박을 넣었지만, 그는 손끝으로 내 이마를 밀어내곤 손바닥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잡담 따위 나눌 때가 아니잖아요.”
시선을 정면으로 향하자 음험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다르칸은 땅이 꺼질듯 한숨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그가 분노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양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검을 붙잡곤 넌더리가 난다는 투로 말했다.
“분명 정타였는데 벌써 회복했나 봅니다. 정말이지, 징글징글하네요.”
“그야, 사천왕이니까.”
“당신은 그에 맞서는 용사잖아요.”
“저 남자는 강하다. 마치 태산 같아.”
“못 이길 것 같습니까?”
“힘들긴 하겠지.”
“가능은 하다는 말이군요.”
“잡념만 떨친다면.”
그래, 잡념만 떨친다면.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이 전투에서 패배하면 뒤따를 ONE(?)의 멸망.
그에 대한 내 책임.
또한 내 과거.
그를 알게 된 성빈, 지혜, 기장의 반응.
이따위 것들을 모두 내 속에서 연소시키고, 오로지 다르칸에게만 집중한다면.
“이긴다.”
주먹을 쥐었다.
그래, 잃지 말자.
다르칸을 무너트리고 이 세계를 지키자.
그것이 내 동료를 지키는 길이다.
무조건 승리하자. 끝까지 발버둥치고 이빨로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승리하자.
그리 다짐하자,
놀랍게도 마음이 씻겨진 것처럼 편안해졌다.
“비겁하게 2 대 1로 싸우다니.”
다르칸이 어둠 속에서 나왔다.
허나 그의 모습은 어둠보다도 더욱 시커멓다. 온몸이 다크 오러에 뒤덮힌 상태였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양을 바라봤다. 그의 따스한 오러의 열기가 내게 전해진다.
그에 복받아 내 몸에서도 오러가 스멀스멀 나온다.
따스한, 따뜻한, 뜨거운, 아주 뜨거운, 마치 태양처럼 주위를 모두 녹여내릴 것 같은 강렬한 오러가 나온다.
...무언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새 성장했네. 괴물 같은 워록 같으니라고.”
다르칸이 중얼거린다.
그리고 난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
그 등급에 도달했다.
힘이 샘솟는다. 엉망진창이었던 몸이 완화된다.
“그립네. 나도 그때는 세계 최강이 된 기분이었지.”
그극
그극
야외에서 대화했을 때처럼, 다르칸은 검끝으로 복도 바닥을 스윽 스윽 긋고 있었다.
양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는 내게 다급하게 무언가를 외치려 했는데
“이 모조품이 감히!!”
콰아앙!
벽면을 뚫고 칠흑처럼 시커먼 갑옷으로 온몸을 둘러싼 누군가가 나타났고, 그는 거대한 철퇴를 휘두르며 양에게 달려들었다.
스터프였다. 군단장의 부관.
콰아앙!
복도에 포탄 터지는 듯한 난폭한 소음이 부서진다.
“저거 못 하게”
“닥쳐라, 모조품!!”
양이 또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철퇴로 바닥을 내려치며 그를 방해하고 있었다.
스터프는 벽을 가볍게 부숴내며 그를 몰아내고 있었고, 나는 양에게 가세하려고 했지만, 그때.
“...감히.”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다르칸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지껏 진중하지 못했던 그것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미약하게 분노가 전해져온다.
어째서일까, 다크 오러 때문에?
아니다, 이건 본능이다.
무언가 온다.
그걸 직감했을 때, 다르칸이 서 있는 바닥에서 시커먼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 참모장도 그렇게는 못 했어.”
쿠구구구
“그런데 감히, 너 따위가.”
쿠구구구구
공기가 떨린다. 마왕성이 흔들린다.
“나를 앞에 두고.”
쿠구구구구구구!
진동은 더해져 무너질 것처럼 요동쳤다.
마왕성 전체를 뿌리뽑으려는 것인지, 그 진동은 균형을 잡기도 어려울만큼 거대했다.
“한눈을 팔아?”
화아악!
다르칸의 몸에서 오러가 터진다.
나도 오러를 터트리며 그것을 방어했다.
스산하고 두려운 기다.
그 때문에 건물이 뒤흔들리는 거라면...
[ 다르칸류 오의 ]
아니, 아니야.
시선을 다르칸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해야 했다.
나는 뛰어올랐다. 발끝에서 전해져오는 그것에 절대로 닿아서는 안 된다고 본능이 소리친다.
[ 땅 고르기. ]
가시화한 오러가 바닥을 모두 잘라냈다.
마왕성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