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 격투 용사 퀸
* * *
화염구에 얻어맞은 다르칸이 뒤로 물러난다.
제법 데미지가 있는 듯하다, 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 기세로 몰아넣는다.
쾅! 쾅!
화르르르륵...
꼿꼿하게 세운 대검에 주먹이 두 방 막혔지만, 이제는 주도권이 내게로 넘어왔다.
다시 오른손의 포구를 검 사이로 밀어넣으며 녀석에게 향했다.
“흡!”
검을 치켜세우며 공격을 빗나가게 했다.
꺾인 화염 기둥이 마왕군에게 직격했고, 그 경로에 따라 눈이 움푹 녹아내린다.
후웅! 후웅!
녀석은 다시 거리를 쟀다.
대검이 휘둘릴 때마다 공기가 찢어진다. 나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제길,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이렇게 놓치다니.
비장의 수 하나를 공개하고야 말았다. 이제 내 오른손은 녀석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설 수 없을 것이다.
“놀랐어. 건틀렛을 무슨 그렇게 쓰는 거야?”
“폼 잡을 생각은 없거든.”
간절한 전투다.
이번에 녀석을 죽이지 못한다면, 죽는 건 나다.
나만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게 아니다.
우리를 따라와준 수많은 병력들 모두가 목숨을 내던지고 나왔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서 돌려보내야 한다. 피해자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어깨가 무겁다.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려면 다르칸을 죽여야 한다.
“뭐... 의지가 굳건한 건 알겠는데, 우리 참모장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거든.”
태도만으론 달라지는 게 없다고?
동감한다. 각성 같은 건 만화에서나 나올 얘기다.
“그리고 너만 간절한 게 아니야. 우리도 그래.”
그렇겠지, 저들도 목숨 걸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다음 다르칸이 내뱉는 말을 듣고나서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모티브는 록맨이야?”
“?”
“아, 록맨 모르나? 한쪽 팔로 빔 같은 거 도도동~ 하고 쏘는.”
“......”
“재미가 없었나...”
지극히도 없다.
하지만 놀란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다.
지구에서의 캐릭터다. 그걸 다르칸이 어찌 알고 있는지, 나는 추궁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용사들끼리 정보를 공유하지 않나봐. 장 녀석이랑 우리 참모장 차이가 벌써 드러나는걸.”
“너 전송자인가?”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느린 건ㅈ”
[ 화권! }
“으악!”
그가 전송자라는 사실을 알자 혼란이 가중되었지만, 그 생각을 금방 떨쳐내듯 내 왼주먹은 화염을 내뿜었다.
다르칸이 당황스럽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아지랑이와 회색 연기를 내뿜은 왼주먹을 그에게 겨누며 위협하듯 말했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지?!”
“달라진 건 전송자라는 점 하나 밖에 없는데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네.”
“뻔뻔한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ONE(?)에서 태어났던 놈이라면 이 세계 자체가 혼란스러우니까 각별한 사연이라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네놈이 지구에서의 전송자라면 이런 짓을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 않는가!”
“전송자라고 사연이 없을 거라는 판단은 너무 섣부른 거 아니야?”
“네놈들 마왕군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아는가?”
“알지 왜 모르겠어.”
“그만한 짓을 벌일 사연이 있다고? 네놈에게?!”
“있고말고.”
그윽 극
대검으로 바닥에 선을 여러 개 긋는다.
그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다르칸이 대검을 어깨에 들쳐매며 시선을 끌었다.
“너, 동료를 베어봤어?”
“팬 적은 있다만.”
“아니, 다툼 같은 게 아니라 정말 죽일 기세로 베어봤냐는 거야.”
“그런 적은 없다.”
“난 있어.”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떠드는가.”
“내 의지가 아니었거든. 그게 중요해. 내 의지가 아니었다는 거.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 밀려오는 죄책감이 얼마나 날 괴롭게 만들었는지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르칸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지만, 이 대화는 내게 이로웠다.
그의 대화에 응해주며 천천히 마나를 회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를 눈치채지 못한 다르칸은 혀로 앞니를 훑더니 쩝, 소리를 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왜 거짓말 해?”
“거짓말?”
“네가 동료를 해친 적이 없어?”
“영문 모를 소리만 하고, 싸울 마음은 있는가?”
“짚고 넘어갈 건 짚고 넘어가자고. 내가 말한 동료가 현 용사들을 말하는 줄 안다면 경기도 오산이야.”
“...실없는 녀석. 내가 너를 잘못 봤다.”
마나는 회복했다.
쓰레기 같은 대화를 이어가기 싫어 땅을 밀어내며 다르칸에게로 달려들었다.
꽈아악
그의 움직임은 예상대로다. 아까부터 다르칸의 팔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봤다.
왼편에서 오른쪽으로 대검을 휘두르려는 자세. 오러를 둘러 살짝 길어지는 도신까지 계산하면 지금이 타이밍이다.
“{ Σκαλωσι 발판. }”
내 발 앞치에 조그마한 턱이 생겼다.
그걸 오른발로 즈려밟고 발판을 밀어내듯 힘을 주어 뒤로 물러서자 대검이 내 코앞을 스치며 지나간다.
이때 생긴 작은 틈.
놓쳐서는 안 됐다.
오른팔을 뒤로 뻗었다. 그리곤.
“{ Ελευθρωση 방출! }”
화아악!
어깨가 부러질 것 같지만, 신체 강화 덕에 버틸 수 있다.
부스터를 켜듯, 내 몸은 앞으로 밀려난다. 허공에서 자세를 잡았다. 오른발에 모든 오러와 마나를 끌어모으며, 왼손에 끼워진 건틀렛을 내 발치로 집어던지며.
슈팅하듯,
발등으로.
찬다.
“[ 화구(火?)! }”
콰아앙!
정통으로 먹혔다. 아까의 화권만큼이나 타격감이 느껴졌다.
다르칸을 중심으로 눈바닥이 녹아내린다.
또한 녀석의 몸이 쭉 밀린다. 그가 지나간 길의 눈이 모두 녹아내리는 것을 넘어 모조리 타오르기 시작했다.
‘끝까지 날아가라.’
콰아아앙!!
그대로 밀려난다. 마왕성의 벽이 부서졌다.
그대로 골인.
길을 터놓듯 양옆으로 타오르는 그 불길 속을 천천히 거닐며 중얼거렸다.
“돌아와.”
휘이이이
철컥!
건틀렛은 내게로 되돌아와 왼손에 안착했다.
그대로 달려갔다. 녀석을 다시 밖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휑한 장소는 대검을 휘두르기에 최적이다.
장애물이 많은 실내로 들어가야 한다. 그 때문에 녀석과 대치하며 링 끝으로 몰듯 마왕성을 등지게끔 조금씩 방향을 바꿨다. 그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지금 결착낸다!’
커다란 구멍, 겉면이 타오르는 그곳으로 몸을 던졌다.
“아... 말하고 있는데 너무하네.”
흠칫 몸을 떨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난다.
‘뭐지?’
싸늘한 그 감각.
등골 서린 이 감각, 마치 귀신을 마주하는 듯한 쎄한 그것이... 온몸을 휘감는다.
무서웠다.
내 왼손에 피어오르는 화염도 이 공포에서 날 벗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미지에 대한 공포.
내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그 미친듯이 따갑고 눈 돌리지 못하게끔 하는 그 감각이.
온 피부를 더듬는다. 그제야 내가 벌벌 떨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아... 너한테 이 감각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
철컹
철컹
철컹
그의 철로 만든 군화 소리만이 들린다.
함성 소리와 비명 소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메테오와 휘몰아치는 눈보라 따위의 소음은 귀를 물에 담궜다가 뺀듯 먹먹하게 들려온다.
오로지 녀석에게만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존재감 앞에서는... 시커먼 오러를 가득 내뿜는 그를 마주하고 나서는 말이다.
“네가 느끼는 건 공포야. 근데 공포에도 종류가 있다? 너는 지금 멋대로 귀신 같은 걸 생각하고 있을 텐데... 틀렸어.”
시커먼 기운이 내 팔목, 발목을 붙잡고 끌어들이는 것 같다.
내 앞까지 다가온 다르칸. 그의 눈동자가 시커멓게 물든다.
“살인자를 마주했을 때의 공포. 대충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
퍼어억
그의 폼멜이 내 복부를 짓눌렀다.
쿨럭! 구토하듯 침이 바닥에 쏟아진다. 하지만 여전히 내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얼어붙은 것처럼.
“이건 아까 물었던 질문과 연결돼. 무슨 말인지 슬슬 알겠지?”
꾸우욱
힘을 준다. 그러며 날 벽으로 몰아세운다.
퉁 벽에 몸이 닿았다. 더 물러날 곳은 없었다.
배를 찔러오는 폼멜이 뼈를 부수는 것처럼 날 억누른다.
숨 막혔다. 어지러웠다.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난 반항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내가 죽는지, 사는지는 단순 그의 변덕에 달렸다.
“커, 커헉...”
나는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아니고서야, 이 지긋지긋한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다.
“연쇄살인마 김희수. 너 이름이잖아.”
콰앙!
다르칸이 검등으로 날 후려쳤다.
‘!’
순간 세상이 하얘졌었는데,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둠이 바닥에 주욱 깔렸다.
“네가 지금 느끼는 게 그들이 느낀 감정이야. 어때? 너 목숨이 남한테 달렸을 때의 기분은?”
콰직!
대검을 내 머리 옆에 처박았다.
쩌적 쩌적
땅이 쪼개진다. 고개를 돌리자 시커먼 오러가 내 얼굴까지 넘실거리고 있었다.
“목소리도 안 나오지? 비명도 못 지르잖아. 하지만 알 수 있어. 너 엄청 겁먹었구나. 눈동자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아.”
꽈아악
그는 내 머리칼을 붙들고 허공에 들었다.
머리 피부 전체가 찢겨나갈 것 같다. 버둥거렸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날 유심히 지켜보다가 바닥에 내던졌다. 무너진 벽 파편 위로 나뒹군다.
철컹
철컹
철컹
들리는 건 지독한 발걸음 소리.
몸을 겨우 돌렸다. 일어나고자 왼손으로 무릎을 짚었지만 힘이 쭉 빠져 그대로 엉덩방아 찧었다.
“내가 하나 잘못 말했네. 동료가 아니라 가족이었지. 아빠, 엄마, 그리고 여동생까지 모두 죽였잖아. 너 운명도 참 기구하다.”
“......”
“그들이 그렇게 미웠어?”
“...그만.”
“무참히도 죽였더라. 칼로 난도질하고, 마지막에는 가스 터트려서 죽였다며?”
“.......그만해.”
“그래서 용사들한테 본명을 숨겼던 거야? 김희수라는 이름은 뉴스에서 아주 떠들썩했으니까.”
“...그만해!”
“뭐, 장난은 여기까지. 나도 슬슬 힘에 부쳐서.”
화아악!
시야가 맑아진다.
온몸을 뒤덮었던 그 한기가 걷어진다.
“다크 오러라는 게 너는 알려나 모르겠지만 정신력을 꽤나 잡아먹거든.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는 그렇게 말하곤 어깨를 으쓱했지만, 여전히 내 몸을 뒤덮었던 공포는 남아 있었다.
다르칸에 대한 두려움?
그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두려운 건.
“너 동료들도 너 정체를 알 권리가 있잖아?”
그들에게 버려지지 않을까. 라는 내 연약한 생각.
날 바라보는 시선이 돌변할까, 아니면 배려해주는 척 뒤에서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까.
어느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나는 가족을 죽였다.
버려질 거야.
버려질 거야.
버려질 거야.
꽉 쥐면 터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움.
심장이 고장난 것처럼 가쁘게 뛰어오른다.
숨 쉬는 법이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의식해야 됐던 거였었나? 그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괴로워. 괴로워. 숨막혀. 숨막혀. 제발. 제발. 그러지 마. 제발. 제발. 제발.
“지금쯤 내 동료들이 다 말해줬을 거야.”
나는 세상이 무너진 듯 온몸에 힘이 풀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