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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137화 (137/152)

〈 137화 〉 격투 용사 ­ 퀸

* * *

“군단장이다!”

“군단장이 나타났다!!”

군단의 선두에서 병사들이 피와 같이 얼룩져, 토막난 채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느껴지는 것은 강대한 기였다. 때문에 내가 상대해야 할 자임을 알 수 있었다.

폭풍검무, 다르칸, 군단장.

‘이명은 퍽 오그라든다만.’

주관적인 얘기다.

그의 박력과 어우러지면 폭풍검무라는 이명은 날카로운 서슬 벼린 칼날 같은 인상을 준다...는데.

‘어쨌거나,’

이명을 떠나서 가장 위협적인 사천왕임에는 틀림 없다.

그를 막아서야 했다. 인파를 파헤치며 그에게로 다가섰다.

화아악­

강풍이 몰아치듯,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의 방대한 오러가 느껴진다.

어두컴컴하면서도 끈적한 그것. 무척이나 불쾌한 그것이 내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든다.

“어... 반가워.”

다르칸이 피범벅이 된 검을 들고 멍청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 모습은 어째서인지, 무자비한 사천왕보다는 어리버리한 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내가 네놈의 상대다.”

“의외야. 바비룬을 잡겠다고 할 줄 알았어.”

오른팔의 복수. 생각 안 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다르칸을 막을 자는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왼주먹을 말아쥐었다. 성큼성큼 다가섰다.

오러를 터트렸다. 마나도 함께.

당장 몇 발짝만 뻗으면 맞닿을 거리.

다르칸은 대검을 머리 위로 천천히 들어올렸다.

“살살 부탁해.”

말과는 달리, 검에서 뿜어져나오는 거대한 오러는 날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처럼 넘실거린다.

목에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검이 내려쳐진다.

그에 맞춰 공기가 갈라졌고,

검이 나를 비껴가며 땅에 닿았을 때, 땅이 쪼개지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

쾅­! 쾅­!

키이잉­

저 검을 받아내서는 안 된다. 파워로는 확실히 밀린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내가 내린 정답은 그 모든 검을 피해내며 정타를 꽂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그의 검은 물 흐르듯 다음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대검의 특성상 동작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격이 빗나가면 빈틈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지금도 그렇다. 대검이 바닥을 내려쳤고, 나는 몸을 틀어 좌수로 녀석을 후려치고자 자세를 잡았고 휘둘렀다. 하지만 되려 앞으로 다가오며 검을 세우고 그걸 방패삼아 내 주먹을 막아낸다.

후에 검을 휘둘러 거리를 벌리고, 곧 자신에게 있어 최적의 거리를 다시 유지한다.

그리곤 또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른다.

나는 한대라도 맞으면 즉사다.

저 사내의 검이 묵직하다고해서 둔탁하다는 것도 아니기에 언제까지 피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 다르칸 류 공격술 제 1식 ­ 퇴근길 ]

이지혜와 대련했을 때보다도 더욱.

검을 휘두르는 방식은 카피했다해도 믿을만큼 유사하지만 큰 차이는 검의 깊이라고나 해야 할 것 같다.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도 모르겠으니. 또한 잔술수를 부릴 수 있을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니.

눈앞의 태산을 어떻게 부숴내야할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막막해서 숨이 막혀온다.

“안타깝게 생각해.”

후웅­!

대검이 내 머리를 노리고 휘둘렸다.

그는 원심력을 이용해 한 바퀴를 더 돌며 이번에는 하단을 노렸다. 살짝 뛰어오르며 피해내자 내 발밑의 눈이 풍압에 저 멀리로 날아간다.

“그 오른팔... 있었더라면 나도 꽤나 고전했을 텐데...”

지금은 무척이나 상대하기 쉽다는 듯한 말투.

안타깝지만 허세가 아니었다.

나는 타격 자세를 취하지도 못하게끔 공격을 몰아치는 탓에 제대로 된 공격은 단 한 번도 꽂지 못했고, 반면에 다르칸의 공격은 겨우 피해내고는 있지만,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이니까.

때문에 긴박한 건 나였다.

검을 휘둘러도 전혀 지치지 않는 다르칸에 비해, 나는 심리적 압박감도 배로 받고 있으니까.

체력도 다르칸이 우위에 있고 오러마저도 그렇다.

나는 소드 익스퍼트. 반면에 저쪽은 전대륙에서 두 명만이 존재하는 그랜드 마스터.

단순 수치만으로 승패가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체급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양이나 음, 이지혜보다도 정갈한 검술.

사용하는 검술이 거의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기에 그 차이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전투인데... 이왕이면 제대로 싸우고 싶었어. 바비룬이 원망스럽네.”

빈말은 아닌 듯했다.

제대로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의 성격을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멍한 감은 있지만 강직하다는 것.

그래서일까, 넘지 못할 벽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

고개를 절렜다.

내 적을 스스로 키워서는 어쩌자는 거야.

이 순간에 집중해야 했다.

지금껏 다르칸이 두려운 상대라는 근거만 쏟아냈지만, 내게도 두 가지 정도 이점이 있었다.

“{ Ενσχυση του φλγα ­ 신체 강화 火 (α,τ,ρ) }”

하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 오른팔에 대한 것을 저쪽이 멋대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

아직 내 오른팔은 로브에 가려진 채다.

팔꿈치부터 잘려나간 맨들맨들한 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저 자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후우웅­!

검이 내 몸을 노리고 휘둘린다.

고개를 숙였다. 다르칸의 무릎이 내 시야에 보인다.

왼팔로 막아내며 다시 그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삽시간에 가까워진 거리.

타격 자세는 제대로 취할 수 없기에 주먹을 제대로 휘두를 수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내 오른팔에 있는 이것이라면 다르다.

나는 로브를 젖히며 오른팔을 그의 얼굴에 가져갔다.

건틀렛,

그것을 거꾸로 끼웠다.

건틀렛의 장착 부분, 주먹을 밀어넣어야 하는 부분이 다르칸의 얼굴을 향했다는 것이다.

마나를 불어넣는다. 오러를 불어넣는다.

지글거린다. 그것은 대포의 포구와 유사했다.

외형적으로나, 기능적으로나.

{ Ελευθρωση φλγα ­ 방출 火! }

화아아악­!

맹렬한 불줄기가 솟구쳤다.

*

1년 전, 파라소스에 검둥이를 치유하고자 찾아갔을 때.

검둥이는 그들의 둥지에서 맡기로 했고, 이기장과 이곳의 주인끼리는 무슨 말을 마친 듯했다.

우리로서는 이제 볼 일이 다 사라진 셈이었다.

저들도 마찬가지로 검둥이를 돌려받았으니 우리는 불편한 손님일 뿐이다.

그래서 떠나려 했다.

“목적지는 있어?”

그때 타나토스가 말했다. 인간 모습이었으니까 피아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그의 말에 우리는 신경쓰지 말라는 태도를 보이며 다시 벗어나려고 했는데, 그가 내 어깨를 잡았다.

오른팔의 어깨.

멋대로 로브를 젖히며 내 잘려나가 휑한 팔을 바라봤다.

“바비룬 짓이구나. 사천왕 중 이런 짓을 할 놈은 녀석밖에 없지.”

홱!

팔을 빼며 불쾌감을 표출했다.

하지만 타나토스는 여전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해보니 어땠어?”

그는 내 눈치를 살피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니면 드래곤이라는 종족 자체가 이러한가?

모르겠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앳되고 미숙하여 의도치 않게 분위기를 박살내는 그런 식의 화법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뭐랄까, 다 알고 있으면서 떠보는 듯한 어른들의 화법.

좋아하진 않는다.

“조롱하는 것인가?”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 그냥 궁금해서.”

“그래? 그렇다면 말해주지. 커다란 벽을 느꼈다. 녀석과의 격차가 너무나도 극명해서 따라잡을 수도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없고, 그에 좌절하는 내 모습에 다시 한번 좌절했다. 어때, 대답이 됐는가?”

“응. 좋은 대답이야.”

좋은 대답이라.

허세라도 부렸으면 그건 안 좋은 대답이라고 했을 것인지.

“상대랑 자신의 격차를 통감하는 감각은 무척이나 중요하지. 나도 인간 시절, 무모하게 덤볐다가 깨졌던 게 한두 번이 아니거든. 죽을 뻔한 적도 많았고.”

이건 그가 피아로 활동했을 때의 얘기.

“네가 지금 그 상태인 것 같아. 자기 실력을 자만할 때. 그 버릇을 바비룬이 고쳐줬네.”

“타나토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너한테는 할 말 다 했어. 나는 퀸이라는 이 격투 용사한테 볼 일이 있는 것뿐이야.”

“바비룬과의 격차는 저희도 잘 알고 있었어요. 다른 사천왕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어요. 당신이 멋대로 버릇이라고 떠드는 거 솔직히 불쾌해요.”

“어쩌겠냐, 있는 그대로 말한 것뿐인데.”

“저 양반... 아니, 저 용이 정말!”

[감히 아버지 앞에서 목소리를 드높이는가 궁술 용사!]

일행이 나를 배려해 떠들어줬지만, 어째서인지 정작 나는 무덤덤했다.

틀린 말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실력을 자신했고, 바비룬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몰아세우고 있다며 대단히 큰 착각에 빠져있을 때 바비룬은 앞발을 휘둘렀고, 내 팔은 당연하다듯이 툭 떨어져나갔다.

그게 전부였다.

녀석이 맘먹으면 내 팔따위 자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는 거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방심했기에.

바비룬을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에 들뜨고 있었기에.

피할 수 있을 공격을 피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극도의 긴장감 속, 스탠스 상태에 빠져들만큼 그를 의식했더라면.

이 휑한 감각을 느껴볼 일도 없지 않았을까.

“그래서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 물론 거절해도 좋아.”

타나토스는 내게로 다가섰다.

손가락으로 내 허리춤을 가리킨다. 그러자 사슬에 매달려있던 내 두 개의 건틀렛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그의 손길에 맞춰 그에게로 다가섰다.

이어서 장착한다.

제것이라는 듯, 매끄럽게 끼워진 그 건틀렛을 보고 나서야 투기장에서 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것은... 타나토스의 물건이라고 했었지.’

어느 기사단원의 낡은 건틀렛.

그 아티팩트의 주인. 타나토스. 인간 기사단원이었으면서 마법을 배우고자 발버둥쳤던 멍청한 피아.

그의 무기. 보잘것 없던 건틀렛 한쌍.

그걸 장착하며 화염을 내뿜었다.

그 기세에 내 머리칼이 흩날린다. 바닥의 잡초가 바싹바싹 마르며 고개를 떨군다.

“나한테 좀 배울래?”

그는 내 스승이 되기를 자처했다.

*

“너랑 나랑은 비슷한 게 많아.”

“같은 주먹을 쓴다는 점.

오러와 마나를 동시에 다룰 수 있다는 점.

그 오러와 마나 속성이 화염에 어울린다는 점.”

“뭐, 이런 것들이야 남들도 눈치챌 수 있겠지만.

내가 너를 거두고 싶었던 건 다른 이유야.”

“무리에서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점.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법을 모른다는 점.

그 이유가 과거의 배신 때문이라는 점.

그리고... 오만한 그 성격까지도.”

“나와 판박이야.

그래서 나는 너가 만족하며 이 세계를 떠났으면 좋겠어.”

“아, 네가 죽는다는 뜻이 아니야.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그래, 캐물으면 곤란해.”

“아무튼.

바비룬한테 복수할 거야?

생각 없다니, 의외인데.

하지만 그런 점도 마음에 들어.”

“다르칸. 군단장. 알고 있지?”

“너는 그 녀석을 상대해야 돼.

왜냐니? 당연한 걸 물어.”

*

대포처럼 발사된 화염에 주춤 물러나는 다르칸이 보인다.

자세를 잡고, 허리를 돌리며 왼손의 한점에 모든 현상을 끌어모았다.

피아.

그가 마법 학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마법.

*

땀으로 범벅이 된 내게 수건을 던져주곤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녀석이랑 네가 일행 중 가장 강하니까지.”

*

φλγα γροθι.

그 마법을 내 식대로 변형했다.

[ 화권. }

강렬한 주먹 모양의 화염구가 다르칸의 몸통에 꽂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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