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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131화 (131/152)

〈 131화 〉 준비

* * *

“재홍이는?”

“안정 취하라고 해뒀어요. 스프라임 때문에 충격이 크더라고요.”

“살려낼 순 없던 거지?”

“네, 오러에 베인 거라 재생이 불가능하고, 또... 오러가 아니었더라도 살아있기 힘든 상처였으니까요.”

김철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투기장에 갔었어야 했을까, 그렇다기엔 에이브(AYV)가 마음을 바꾼 순간부터 일이 망쳐지리라는 건 당연했던지라 달라졌을 건 없을 것 같다.

또 전력을 아직 내비춰선 안 되니까.

“그나마 케다시를 버렸다는 게 다행이려나...”

“그렇죠. 이제 우릴 감시할 자는 없어졌으니까요.”

카티골, 케다시.

그들이 없기에 수련을 마무리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 단계에 치달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더 가르칠 게 없어.’

줄과 홀라도 그렇게 말했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알고 있다.

어느 한 단계만 넘어서면,

그러면 에이브(AYV)를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계획하는 건 전쟁이다.

우리만이 강해진다고 승리할 수 있다는 건 허무맹랑한 소리다.

우리에게도 군대가 필요했다.

마왕군만으로는 부족하다. 스터프가 아무리 마왕군의 훈련 강도를 올렸다지만, 그래도 신군에게 대적하려면 아직도 힘이 딸릴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와 뜻을 함께할 자들이 필요하다.

“얘기해보셨어요?”

김철수에게 물었다.

현재 생각할 수 있는 전력 중 그나마 믿음직스럽고 강직한 자.

타나토스.

그를 따르는 용들까지.

“아니, 만날 사람이 있다면서 급하게 돌아가더라고. 그 이후론 연락도 안 되고, 홀라 씨도 모른다고 하시니까 참... 답답하지.”

“...곤란한데.”

그와 그의 둥지에 있는 가족들이 도와준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을 텐데, 사실 가능성은 적다고 예상해서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홀라와 줄은 우리를 도울 것이다. 지금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전쟁의 선봉장이 되어주겠지.

왜냐면 그에게는 지킬 것이 없으니까.

홀몸인지라 죽음마저도 각오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타나토스는 아니다.

그는 가족을 아낀다.

그게 전부다.

이번에는 내게 김철수가 물었다.

“악마들은?”

“암두시아스가 설득하고는 있는데, 솔직히 절반 이상도 돕지 않을 것 같아요. 에이브(AYV)의 끄나불도 섞여 있을 테니 판별하는 과정조차도 버겁고요.”

악마들도 마찬가지였다.

에이브(AYV)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그들도 가족을 사랑하기에 감히 에이브(AYV)에게 맞서지 않을 것이다.

“홀로 남겨진 기분이야.”

“외롭죠. 마왕군이라는 게 참... 메이블도 이 전철을 밟았을까요.”

“일지에도 안 적혀 있어?”

“따분한 얘기 밖에 없어요. 재홍이랑 디안이 목숨 걸고 가져온 건데, 미안하기만 하죠.”

메이블의 두 번째 일지는 거의 일기 같았다.

단탈리온과 다른 사천왕과의 추억이 담긴 일기.

읽는 내내 감회는 새로웠지만 도움되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혹여나 일지에 룬어로 장난질을 해뒀을까 여러 분석 마법을 가동해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그냥 일기였다.

제기랄.

성장도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제자리이다.

미치겠다. 답답하다.

나와 김철수의 시선이 마주했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는지,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고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안다. 발 동동 굴러봤자 달라질 건 없다. 생각이 이쯤 미쳤을 때,

삐­! 삐­! 삐­! 삐­! 삐­!

요란하고도 불쾌한 소음이 내 귀를 찔렀다.

이어서 나온 것은 기계로 매만진 듯한 목소리였다.

공습 경보! 공습 경보! 공습 경보!

“쫓아라!”

“계집을 조심해라! 특이한 마법을 쓴다!”

경고음을 가시화 한건지,천장의 샹들리에가 요란하게 흔들린다.

나와 김철수는 각기 지팡이와 검을 집으며 창문을 바라보았다.

마왕군들이 어느 한 곳으로 쏟아지듯 다가서고 있었고,

콰앙­! 콰앙­!

그곳에선 옥수수가 전자레인지에서 터져나가듯 구석구석에서 폭발이 일고, 그 충격에 마왕군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처박히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습격이었다. 나는 블링크를 사용했다.우리는 창문 밖으로 뛰쳐나가 얼음으로 길을 깔며 습격자에게로 다가섰다.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그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각종 마도구로 무장한 사내는 각진 군복만큼이나 정갈하게 떨어지는 다각형의 방어막으로 몸을 지키고 있었고, 그 옆에 있는 군복 입은 여성은 마석을 이곳저곳 던지며 터트리고 있었다.

[물러서라! 너희가 이길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나는 마나를 목소리에 담아 소리쳤다.

그러자 군이 물러선다. 습격자의얼굴이 모자 챙 밑으로 그림자진 채 보인다.

각진 군복을 입은 우락부락한 사내였다. 그의 볼에 있는 문신이 눈에 들어온다. 'S'지의 뱀 문신.

그가 내게 악수하자는 듯 손을 뻗으며 말헀다.

“반갑네 악쿤 토든. 나는 북대륙의 총독 벡터다.”

“저는 리아에요.”

벡터, 그리고 특이한 여성 마법사.

그들이 마왕성에 찾아왔다.

*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다. 하지만 그대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더군.”

“왜 찾아왔지?”

서로간의 거리는 제법 멀었다.

대략 100미터 남짓, 이것은 내게 있어 최적의 거리다.

만약 저들이 더 소동을 피운다면 마법진으로 얼려버리고, 김철수가 내려가 목을 베어내기 딱 좋은 거리.

이리도 저들을 경계하는 이유는 벡터가 실렉티스이기 때문이다.

그 지긋지긋한 놈들을 다시 마왕성에 들이는 건 어떤 일이 있어도 사양하고 싶다.

“제안할 것이 있어 왔는데... 일단 들여보내주면 안 되겠나?”

그러니 저 제안이 같잖게 느껴질 수밖에.

에이브(AYV)가 보낸 새로운 감시역일 게 분명하다.

최세린이 제발로 벗어났고, 케다시는 용사의 곁으로 돌아갔으니 북대륙에서 가장 가깝고 실력 좋은 벡터를 보낸 거겠지.

“늙은이들의 사주인가? 그렇다고 총독을 직접 보내? 지도자가 없어진 지금, 조금의 마왕군만 보내도 북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는 충분하겠군. 덕분에 검은 마나를 모으기 수월하겠어.”

그의 대답에 응해주기는 커녕 비웃기까지 해줬다.

하지만 그는 미약하게 미소를 띠며 옆의 여성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듬직한 보디가드가 있잖나.”

30대 중반쯤으로 되어보이는 여성, 리아가 으쓱하자 분홍빛 머리칼이 그녀의 어깨에 닿아 찰랑거렸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벡터는 아니어도 저 여성은 마왕성에 들이고 싶다.

여러 묻고 싶은 것도 많고, 그녀의 몸 곳곳이며, 마나를 구성하는 심장이며 해부해보고 싶은 충동이 들 만큼 그녀는 특별한 존재였다. 잠시 마주한 게 전부지만,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가 사용한 마법에 있었다.

마석을 직접 터트리는 마법.

소수 일족만 사용한다는 그 마법을 내 눈앞에서 보인 것이다.

그녀와 눈이 맞았다.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어째서 쳐다보냐는 듯한 눈빛.

벡터의 물음에는 무시했지만, 그녀의 눈짓에는 대답해주었다.

“보석 마법사의 일족인가?”

살짝 놀랐다는 듯 몸을 들썩였다가, 눈매를 얇게 세우곤 나를 바라봤다.

“제 일족을 아시나요?”

떠보는 듯한 말투.

“마왕군에게 멸망했지. 정확히는 실렉티스라고 해야될까? 너 옆에 있는 벡터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저희를 이간질이라도 하시려나본데 악취미에요. 그 정도야 이미 알고 있답니다.”

“그래? 너 옆에 있는 사내는 원하는 게 있으면 수단 방법 안 가리는 놈이잖나.동료마저도 칼로 찔러 죽여낸 잔혹한 놈이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면 다행이지.”

벡터가 총독이 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해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물론 소문에는 살점이 붙는다지만, 감안하더라도 그의 잔혹함에는 전대륙이 전율했다.

“주 정치층인 늙은이들을 제외하곤 모두 죽였지. 전우마저도, 부하마저도, 한때는 상관이었던 자들도 남김없이 싹 청소했지. 그 총독이라는 자리 때문에.”

“경쟁자였을 뿐이야.”

“뭐가 중요할까. 너 옆에는 아무도 없다는 게 중요하지.”

“맞아. 내 옆에는 아무도 없지. 그래서 그런가, 옆구리가 시려워. 당신이나 다르칸이 채워주면 안 되겠어?”

“그렇게 시간이 남아나진 않은지라 사양하지.”

“자존심 상하는군. 얘기나 들어보고 거절하지그래.”

“내 부하가 실렉티스에게 죽어서 지금 기분이 상당히 언짢거든? 너랑 몇 없는 보석 마법사를 잃기 싫으면 신속히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이건 경고다.”

뒤돌았다. 김철수도 검집에 손을 가져간 채 벡터를 바라보다 내 뒤를 따랐다.

그때 보석 마법사가 중얼거리며 룬어를 읊었다. 미세한 소음이었지만 분명히 들었다.

나는 얼음 길에서 떨어지며 그녀의 회전하고 있는 마법진을 확인했고, 즉시 역산하려했지만 그건 공격성을 띤 마법이 아니었다.

“이제 듣는 귀가 없어요, 총독님.”

“고맙군, 리아.”

펼쳐진 마나 장벽. 그 속에는 4명만이 있었다.

벡터는 적개심을 풀풀 풍기는 나와 김철수를 보며 팔짱 끼웠다.

“워 울프 말이 맞았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말을 잇는다.

“사천왕들은 경계심이 너무 심하다더라고.”

*

“그걸 우리가 어떻게 믿지?”

탁탁탁탁,

검지로 탁자를 두드리다 언짢은 표정을 보이며 관자놀이부터 윗머리까지 쓸어넘겼다.

벡터는 회중시계에 달린 사슬을 붙잡고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힘들겠지. 하지만 힘을 합치면 그보다 든든한 우군이 있겠냐는 거다.”

“참나, 용사의 편에 서서 우리에게 총구를 겨눌지도 모르는데 내버려두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야.”

“헛소리. 그럴 거였다면 이곳에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뭣하러 마왕성을 침공하려는데 선전포고를 하나? 그대를 비롯한 사천왕의 강함에는 전대륙이 벌벌 떨고 있는데.”

긍정적인 대답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로 치켜세워주는 건가.

그렇다면 노선을 잘못 정했다. 나는 아부라면 질색이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푸흐­ 일부러 벡터의 얼굴에 연기를 뿜었다.

순간 리아가 움찔했지만, 벡터가 손을 척 뻗어 그녀를 만류했다. 그녀는 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어쭈, 굽히고 들어오는구나.

어지간히 내 신의를 사고 싶나 보네.

노력은 가상하지만 그런 3류 연극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다.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 에이브(AYV)님께서 마음먹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죽었어. 사천왕이 무슨 대수일까, 초월자도 아닌 이상 신의 전능함 앞에서는 한낱 인간인 건 변함 없는데.”

“세상에, 당신이에이브(AYV)에게 존칭을 사용할 줄은 몰랐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연기할 셈이야. 나는 그대 편이라고.”

“너야말로 그분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예를 지키지 않는 것 자체가 반역이다. 그분이 두렵지 않은가? 하기야, 우리는 직접 겪어봤지만, 너는 그분의 목소리조차 못 들었겠지.”

“맞아. 나는 에이브(AYV)의 목소리를 들은 적 없지.”

“하하하!웃기지도 않아.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에이브(AYV)를 죽이자고?

내 방에 들어오고서부터 벡터가 주장하는 바이다.

그를 땅으로 끌어내릴 때가 다가온다고.

워 울프를 비롯해 이곳저곳 협력자를 모으고 있고, 모두가 힘을 합쳐 반역을 꾀하자고 나를 꼬드기고 있다.

굳이 권하지 않아도 그럴 거다.

신살, 마왕군을 창설했을 때부터 생각해온 거다.

그러나 실렉티스와 함께하진 않는다.

그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보다도 불안한 일이다.

더군다나 눈앞의 자는 동료마저 죽이고 자리에 오른 벡터다.

배신자의 대명사. 그런 자의 말을 덜컥 믿을만큼 ONE(?)에서 평화를 누리고 산 것은 아닌지라그가 무슨 말을 하든 믿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꺼져.”

“너무한데.”

“꺼지라고 말했다. 스터프! 거기 있는가?!”

“부르셨습니까 참모장님?”

벌컥 문을 열고 스터프가 들어왔다.

그의 어깨에는 막 마계에서 복귀한 암두시아스가 있었다.

“손님이야?”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예쁘게 땋은 두 갈래의 머리칼이 그녀의 고개를 따라 바닥에 출렁인다.

“손님은 무슨. 불청객이야. 곧 쫓아낼 거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악쿤, 화났어?”

“아니.”

“거짓말. 지금 기분 안 좋잖아.”

“착각이야. 내 표정은 원래 이래.”

단순한 무표정 혹은 이마에 잔뜩 주름진 심란한 표정.

이 두 개가 내 얼굴의 비중을 커다랗게 차지한다. 에이브(AYV)만 생각하면 골치 아파서.

“그건 그래.”

납득한 듯하다.

암두시아스는 묘하게 예리한 면이 있으니까, 벡터 앞에서 입을 다물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로 벡터에게 여지를 줄까봐 말이다.

“그치만 들리는 선율은 무척이나 난폭한걸?”

아니었다. 짜증이 확 올라오는 걸 느끼며 그녀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너 멋대로 듣지 말랬지.”

“저절로 들리는 걸 어떡해!”

“입 밖으로 안 내면 되잖아!!”

“그게 무슨 소리지?”

벡터가 흥미롭다는 듯 암두시아스에게 다가간다.

그러자 스터프와 김철수가 그의 앞을 막아섰고, 나는 리아를 바라보며 허튼 짓 못하게 막았다. 하지만 벡터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왕, 방금 선율을 듣는다고 했나? 그게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 내게도 알려주면 좋겠는데.”

김철수에게 눈짓했다. 벡터에게로 두 발짝 더 다가서며 오러를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조금... 아니, 많이 피곤했다.

“꺼지라고 말했는데 귀가 안 좋아? 친히 모셔다드릴까?”

“아니, 선율이 들린다고? 사람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건가?”

“...안 되겠다.”

“처리하겠습니다.”

성큼성큼, 스터프가 다가오자 벡터는 고개를 처들어 그의 핏기 없는 얼굴을 바라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마왕, 내 속내도 읽어주면 안 되나? 악쿤에게 신의를 사야 하거든.”

암두시아스에게로 이목이 쏠린다.

그녀는 귀를 기울이며 벡터를 바라보다가 점차 얼굴을 구겼다.

“윽, 완전 엉망진창이야. 듣기 힘들어!”

암두시아스가 말한 순간부터 판별은 끝났다.

저 자식은 역시나,

“믿을 놈이 못돼. 그분을 따르는 실렉티스이니까 못 죽이는 게 유감이야. 스터프. 정중하게 내쫓아라.”

“본부대로!”

“잠깐, 잠깐!!”

“따라와라.”

“잠시만, 잠시만! 리아 시간 좀 벌어줘!”

“...그렇다면­”

리아가 허공에 자수정을 흩뿌렸고, 그 사이사이에 선이 이어지며 마법진을 만들어낸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낸다 생각하며 그를 역산하고 김철수가 등의 검집으로 손을 뻗었을 때.

“암두시아스! 나는 에이브(AYV)를 죽일 것이다!”

미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조차도 입 밖으로 시원하게 내뱉기를 꺼려하는 그 말을, 실렉티스가 말한 것이다.

충격적이긴 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소리를 저리 당당하게 외친다는 것 자체가 이질감이 심했다.

“으, 으음... 으음?”

그래서 뇌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암두시아스는 입가를 일그러트리며 굉장히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양옆으로 시계추처럼 기울이고 있다.

“내 말에 거짓이 있는지 부디 증명해다오. 마왕군이 합류해주지 않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란 말이다!”

“음. 으음... 음...... 윽.”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인상을 찌푸리다가, 잠깐 웃다가, 슬픔과 혼란, 그 사이의 애매한 표정을 짓다가 암두시아스는 말했다.

“...선율 자체는 너무 엉망진창인데......”

“그럴 리가 없다!”

벡터가 외쳤지만, 다르칸의 검은 그에게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에 마도구를 사용해 방어막을 펼친다.

까각, 까가각.

풍전등화, 머지않아 벡터의 몸 중 어딘가가 베어지리라는 건 당연했다.

당연히 리아의 제압은 이미 마쳤고.

그때 암두시아스가 고개를 흔들기를 멈췄다. 귀에 손바닥을 짝 붙이며 집중하여 듣더니 드디어 그의 속내를 들어낸 것이다.

나는 당연 거짓말이다, 혹은 시커먼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등의 반응을 예상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네.”

멈칫.

벡터는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고, 리아는 혀를 차며 내 손을 팍 쳐내며 포박에서 벗어났다.

“거봐. 말했잖나.”

벡터는 고개를 돌렸다. 리아와 벙찐 표정의 나를 향해.

“에이브(AYV)를 죽이겠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황당함이 너무 커 가슴이 술렁인다.

저 말이 진실이라고?

“그쪽도 언제나 생각하는 거면서 시치미는, 그보다 이제야 내 얘기를 믿는 눈치구나. 설마 마왕 덕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참으로 다행이야.”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팔자 주름이 주욱 그어진다.

“부디 잠시라도 사이좋게 지내자고. 아 참, 소개할 사람도 한 명 더 있으니까 나와는 달리 그는 좀 반겨줬으면 좋겠어.”

멋대로 지껄이곤 수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무전을 보냈다.

[총독! 이제 들어가도 되나요옹~?]

귀를 찌르는 하이톤의 목소리, 진중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경박한 말투.

나는 저 너머의 사람이 누군지를 알고 있었다.

그 생각을 읽어냈는지, 벡터는 나를 보곤 턱짓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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