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 진 키아라
* * *
“이름이 뭐라고?”
“암두시아스(Amdusias)...”
“나는 진 키아라라고 해. 반가워.”
이름을 듣자 암두시아스의 표정이 일순 공포에 물들었다.
인간의 뜻을 대변하는 4명의 용사.
그들 중 가장 잔혹하다는 암기 용사 진 키아라.
그 이름을 들어서 겁난 것이겠지.
하지만 혼란에 빠진 듯, 머리를 감싸고 무어라 중얼거리듯 말했다.
“...진 키아라? 키아라는 나쁜 사람이야?”
사실 키아라는 성이다. 진이 이름이고.
어려서 모르는 건가. 그러려니 넘어갔다.
“나쁜 사람의 기준이 뭔데?”
대신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도망쳤는지는 나중을 위해 아껴두기로 하고,
지금 당장에 떠오른 궁금증 해소가 우선이었다.
“그... 마왕군을 해치운다든가... 누군가에게 친절히 대한다든가...”
마왕군은 악이 아니던가?
대답의 모순이 웃겼다.
마왕군을 처부수면 좋은 사람 아니던가, 도망쳤더라도 마왕군 소속이라 충성을 바치는 건가.
“그럼 좋은 사람은 뭔데?”
“누구를 다치게 하거나, 죽인다거나...”
“반대로 말하고 있네. 평화를 해치는 마왕군을 부수는 건 정의롭고 좋은 사람이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도 좋은 사람이고.”
“...다치게 하는 건?”
“당연히 나쁜 사람이지. 그리고 사람을 죽여? 누군가에게 피해 입히는 거 자체가 나쁜 사람이야. 죽인다는 건 더 말 할 가치도 없지. 그동안 암두시아스 너는 잘못 알고 있었어. 스스로 느끼잖아?”
말하고서도 모순됐다는 걸 느꼈다.
암두시아스는 ‘누군가’로 ‘인간’을 지칭한 것이 아니니까.
몬스터라면 굉장히 많이 죽여왔다. 손으로 셀 수도 없이, 이제는 앞자리의 단위조차 헷갈릴 정도로.
그리고,
설령 누군가의 대상이 인간이었어도 똑같다.
진 키아라는 인간을 죽인 적 없다. 하지만 카티골은 수많은 인간을 죽여왔으니까.
하지만 말하지 않더라면 모른다.
암두시아스의 앞에서는 착한 사람을 연기하고 싶어졌다.
“...그럼 나는 나쁜 사람이야?”
그래서 다음 암두시아스의 질문에, 재미 없게 봐왔던 만화 속 주인공을 연기하게 될 수밖에.
“누구 죽여보거나 괴롭혀본 적 있어?”
“아니.”
“그럼 착한 사람...이라기에는 좋은 일도 안 했네. 백지 상태야 너는. 보통 사람.”
자신은 아니다.
“...응. 보통 사람.”
암두시아스는 고개를 떨궜고 카티골은 그녀의 머리를 뿔을 피해서 쓰다듬곤 빵 하나를 건넸다.
조금 눅눅해진 빵이다.
하지만 스프에 찍어 먹으면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그 방법을 알려주며 모닥불에 장작을 던졌다.
“이게 빵... 맛있다.”
암두시아스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빵을 묵묵히 먹었다.
감정이 복받혔는지, 목이 막혔는지 딸꾹질이 들려온다.
잠시 그녀가 진정하길 기다리다가 다른 주제를 꺼냈다.
“그래서.”
가장 궁금한 게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순간 분위기가 변한 것을 암두시아스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잘 대답해야 돼. 웃기지만, 그녀를 속으로 응원하며 말했다.
“왜 마왕성에서 도망쳤어?”
“응?”
“그보다 어떻게 도망쳤어?”
“어? 음... 음......”
얼버무리려는 듯하다.
목소리에 밖에 몰아치는 칼바람만큼이나 서늘한 어조를 실어 말했다.
“대답해봐. 어서.”
그녀를 바짝 몰아세웠다.
하지만 기세에 밀려 거짓말을 뱉어서는 곤란하기에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암두시아스는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초라했다.
“암두시아스.”
“...무, 무서워서 도망쳤어.”
실망스러운 대답이다.
미안, 여기서 끝이겠네.
“너로 인해 죽어날 마계 악마들은 생각 안 해봤고?”
하지만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렇게 몰아세우면 너는 어떻게 대답할까?
바짝 겁에 질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을까?
어리니까 생각난대로 본심도 숨기는 법도 모른 채 내뱉을까?
만화 속 캐릭터들처럼 재미없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틀에 맞춰서, 캐릭터에 맞게, 혹은 대답이라고 여기기도 싫을만큼 조잡한 것을 뱉을지도 모른다.
“......”
“너를 감시하던 병력도 사천왕과 마왕에게 처형당하겠지.”
“...으, 으으......”
“도망치지 못한 마왕 후보들에게 더욱 강한 포박과 정신 지배 마법이 내려질지도 몰라.”
“으, 으으으!!”
“모두 죽을 거야. 너가 책임감 없이 도망쳤다는 이유만으로. 자, 암두시아스. 대답을 들려줘. 이걸 생각하고 도망쳤어? 무슨 이유에서?”
“.........”
대답이 없다.
바짝 겁에 질렸다.
이만 죽여야겠다. 모닥불이 만드러애는 카티골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날카로운 형태를 취한다.
서서히 고개를 무릎에 묻고 있는 암두시아스에게로 다가선다.
“나도 도망치기 싫었어!!”
“...뭐?”
그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건 뭔데?
“하지만 모두가 도망치라고 했어. 부디 나만이라도 끔찍한 마왕성에서 도망쳐서 때를 기다리라고 했어!!”
“그래서 그들을 놔두고 이기적이게 도망쳤다는 말이야?”
“맞아. 그래서... 그래서...... 흐아아앙!! 너무해! 너무해!! 나는 같이 죽고 싶었어. 아프더라도 꾹 참고, 모두가 죽을 때 나도 같이 죽고 싶었어!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게끔 내 행동을 강제했어! 피투성이가 된 주제에 나를 도망치게 하고, 마지막으로 날 보며 웃었다고. 그래서... 그래서......”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목 메인 소리를 겨우 짜냈다.
“너무 아파... 여기가 너무 아파 키아라...... 나 어떡해?”
길 잃은 미아처럼, 암두시아스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가관이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그 얼굴, 그런 서글픈 표정으로 자기 가슴에 손을 올리며 쥐어짜내듯 말을 이었다. 지금 아니라면 말할 수도 없다는 듯 간절한 목소리로.
“차라리 죽고 싶은데, 날 내보내기 위해 버려진 목숨이 너무 많아. 그래서 아픈데... 이 아픔을 계속 참으면서 살아가야 돼? 차라리 주사바늘과 날카로운 나이프가 내 살을 찌르고 자르는 게 나았는데... 이 고통은 참을 수 없어. 너무 아파, 아파서, 아파서... 아파서......”
“......”
“......나보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래. 그 말이 너무 무거워... 그래서 살아야 돼. 그러니까 살려주라 키아라... 제발, 제발 살려줘... 뭐든 할게. 다 필요 없어. 살려만 줘. 내 뿔을 잘라도 돼. 내 피부를 찢어도 돼. 양쪽 눈알을 모두 빼내도 돼. 설령 오물을 줘도 마시고 먹고 환하게 웃을 수도 있으니까 제발 죽이지만 말아주라. 난 아직 그들에게 죽어도 된다는 허락을 못 받았어. 나 진짜 살아야 돼. 그러니까... 그러니까......”
치마 밑으로 내려온 레깅스에 얼굴을 묻으며 구걸하듯 말했다.
그걸 보자 평소 무미건조하던 카티골의 얼굴이 난생 처음으로 가득 구겨졌다.
그녀는 말했다.
“안 죽인다고 했잖아.”
죽일 마음이 싹 사라졌다.
재미 있는 대답을 원했는데, 그녀는 감정에 호소하고 있었다.
재미 없었다.
재미 없으면 죽이려고 했는데, 그 감정이 사라졌다.
어째서일까, 왜 암두시아스를 내보내고자 다 죽어난 것일까.
역시 혼자서 도망친 게 아니었다.
그녀를 밖으로 빼돌리고자 수작질을 펼친 이들이 존재했다.
누구? 사천왕 중 하나인가?
암두시아스를 사랑했나? 다른 악마인가?
뭐든간, 에이브(AYV)를 거스르며, 목숨마저 내던지며 암두시아스를 내보냈다.
그녀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리고... 이 어린 아이가 무얼 바꿀 수 있다고.
“하나만 더 물을게.”
그래서 목끝까지 해선 안 되는 말이 차올랐다.
지금부터 내뱉을 질문은 어찌보면 아버지를 배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암두시아스가 우는 것을 보며 역류하는 이 궁금증을 도저히 떨쳐낼 수 없다.
그래서 물어봤다. 이후는 아직 생각하지 않았다.
“에이브(AYV)를 거스르겠다는 거야?”
“...응.”
“어째서?”
“그야... 잘못됐으니까.”
뭐가, 뭐가 잘못됐다는 것인가.
그가 정의다. 그가 유일한 신이다.
그가 내뱉은 것은 절대적이다. 진리이다.
절대로 거슬러서는 안 된다. 그 끝에는 파멸밖에 없다는 걸 옆에서 지켜봐온 카티골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뭐가 잘못됐는데?”
“누군가를 슬프게 하잖아.”
“모두가 웃을 수는 없어.”
“......더 많이 웃을 수는 있잖아.”
“네가 에이브(AYV)를 몰아내고 신이 되겠다는 거야? 감히?”
“아니야!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뭐야.”
“난... 에이브(AYV)를 혼내줄 거야. 그게 날 마왕성에서 내보낸 이유니까...”
‘오만해.’
오만하기 그지없다.
한낱 어린 악마 주제에.
인간에게도 죽을뻔한 악마 주제에.
에이브(AYV)를 몰아내겠다는 것이, 이 얼마나 오만하기 그지없고 얼토당토 않은 얘기인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기골 있는 아이인 줄 알았더니 허무맹랑한 꿈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꼬맹이였다.
괜한 것을 물었다.
“...그러니 도와줘.”
지금 누구에게 말하는지는 알고나 있는 건지.
‘나는 에이브(AYV)의 자식이다. 사천왕보다도 더욱 너에게 위협적인 존재라고.’
실컷 비웃었다.
암두시아스는 눈을 똘망이며 품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어. 그러니까 도와줘 키아라...”
“싫어. 승산 없는 싸움이야. 그리고 넌 얘기할 상대를 잘못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어.”
“......아니야, 이 얘기는 키아라한테 밖에 못해. 그야...”
“내가 용사라서?”
듣지 않아도 대답을 알았다.
하지만 안타까워서 어쩌나?
나는 용사 중 유일하게 인간이 아닌 자인데.
4분의 1 확률에 당첨돼서 너는 아버님에게 벌 받게 될 텐데.
“...아니야. 용사라서가 아니야.”
하지만 암두시아스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그리곤 울먹이며 말했다.
“...신 포식자 카티골... 현재 신에 가장 필적한 자......”
“.........”
“...날 도와줘.”
“............”
뒤통수가 얼얼하다.
암두시아스는 훌쩍인다.
지금껏 내가 에이브(AYV)의 자식인 것을 알면서도 따라왔다는 것인가?
무슨 배짱으로? 그 작은 몸집 중 어디에 숨겨두었던 거지?
내가 조금만 기분이 안 좋았더라면 단숨에 죽었다.
대답을 조금만 잘못했더라면 단숨에 죽었다.
행동이 조금만 거슬렸더라면 단숨에 죽었다.
목소리의 높낮이, 얼굴의 미묘한 주름마저도.
조금만 달랐더라면 단숨에 죽었을지 모르는데.
나를 따라와서 도와달라고 말한다고?
제정신인가?
“......그야... 너 마음속으로 에이브(AYV)를 욕하고 있는걸.”
“헛소리 마!”
싸르르르르
동굴 위에 덮혀있던 눈더미가 무너진다.
땅이 뒤흔들린다. 눈이 떨어지며 동굴 입구를 완전히 뒤덮었다.
이어지는 것은 산사태였다.
눈덩이처럼 불어나 아래로 이동하며 모든 것을 난폭하게 집어삼키기 시작했고, 그것이 카티골의 마음과 같았다.
죽여야겠다.
아니, 죽인다.
외형이 변한다. 카티골의 모습으로.
[눈을 감고 목을 뻗어라. 마지막 자비다.]
날카로운 그림자가 동굴의 벽을 타고 암두시아스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울먹이면서도 무척이나 진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훌쩍. 아까부터 동요하고 있잖아.”
[멋대로 생각을 읽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면 가장 괴롭게 죽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눈을 감고 목을 뻗어라.]
“미안해. 이건 멈출 수가 없어... 그야, 저절로 들리는 걸.”
들려?
무엇이?
“카티골에게서 들리는 노래는... 굉장히 어지럽고, 난폭해. 그리고 구석진 곳에서...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어. 그 선율만큼은 선명하진 않지만, 너무 아름다워. 그게... 카티골이 바라는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깊은 곳에서 3명의 목소리가 들려. 한 명은 무척 난폭한 말을 하고, 한 명은 어째서인지 풀이 죽은 채고, 한 명은... 편안하고 침착한 목소리를”
“자, 거기까지!”
동굴 안쪽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시선을 돌렸다.
또각 또각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브룩.
아니, 케다시가 있었다.
“휴, 얘 찾느라 고생했는데 네가 보고 있었구나 카티골.”
[...케다시?]
“도, 도와줘! 카티ㄱ”
툭
암두시아스의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벽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는 두 개로 갈라졌다.
카티골의 손끝과 발끝에 붉은 선이 또르르 달려와 간지럽힌다.
“이렇게 될 거면서 멍청하게 왜 도망친대. 그보다 오랜만이다?”
[......어?]
“응? 뭐라고?”
카티골의 그림자가 어지러히 춤춘다.
[....왜 죽였어?]
그것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