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투기장
* * *
“허억... 허억... 지, 지랄도 정도껏 해야지.”
장은 거리를 벌리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온몸에는 상흔이 가득했다. 폭발에 의한 상처들. 난폭하게 찢어진 피부에선 피가 뭉텅이로 쏟아져나온다.
“도망가시게요?”
“허억... 허억...... 그 마법에도 사거리는 있겠지.”
“좋을대로 생각하세요.”
두 손바닥을 겹쳐 나비 모양을 만들며 룬어를 읊자 또 장의 근처에 시퍼런 마법진이 수어 개 생겼다.
이를 빠득 물며 방어진을 펼쳤다. 짙붉은 화염이 그의 몸을 감쌌으나, 이번에도 디안의 마법진 속 모습을 드러내는 조그마한 나비는 방어막 내부에서 형성됐다.
“쾅.”
쾅!!
“끄으윽!”
위력이 대단하진 않지만 쌓이면 치명상이다.
피를 너무 흘렸다. 시야가 어지러웠고, 눈앞의 여성이 정녕 6서클이 맞는지 의혹이 들었다.
헤인켈과 맞붙었을 때에도 이렇게나 절망적이진 않았다.
고등 서클의 마법사를 상대할 때에 필요한 건 전략이다. 숨겨놓은 한 방이다.
하지만 상대는 하등 서클의 마법사다. 저쪽이 잔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틈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해야 정상일 터인데, 어째서 체급도 낮은 마법사가 본인을 이토록 몰아세운단 말인가.
“아...”
디안은 휘청거렸다. 마나 탈진 현상 중 하나인 현기증이 온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마력만 보면 6서클의 마법사가 확실하다.
하지만,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방어막 마법의 알고리즘은, 심장에 있는 마나를 외부로 방출하여 막을 쌓는 것이다.
그러니 심장에서부터 방어막 사이의 공간은 오로지 시전자만의 공간이다.
다른 마법이 관여할 여지가 없다. 설령 초근접거리에서 마법진을 세우고 발동시킨들 방어막이 몸 외부로 발산되면서 그 마법진을 밀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디안의 마법은 달랐다.
마법진과 시전자가 따로 노는 듯한 발동 방식.
그녀는 장에게 마나를 흘려보내지도 않았다.
확신했다. 전투가 시작한 뒤 한순간도 감지 마법을 꺼트리지 않았다.
이 얼토당토 않은 마법을 설명하자면 뭐랄까,
디안이 방어막 내부로 순간이동하여 마법진을 만든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하지만 디안은 한순간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손을 겹쳐 어린아이들 그림자 놀이하듯 나비 모양을 만들곤 룬어를 읊는 게 마법 발동 조건의 전부였다.
그런 마법은 없다.
공식 자체가 깨져버린 것이다.
주술도 아니다. 흑마법도 아니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마도구냐?”
유일한 결론이었다.
디안은 피식 웃었다.
“대답할 이유가 있나요.”
“빌어먹을...”
계획이 틀어졌다.
디안을 재빠르게 제압하고 본대에 합류해야 한다.
하지만 애먹고 있다. 아니, 압도당하고 있다.
디안의 가파랐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다시 손으로 나비 모양을 만들었다.
빌어먹을 마법, 처음 들어보는 마법 나비춤.
저딴 마법이 있다니... 마왕군이 만들어낸 마법인가? 그런 것도 가능하던가?
스스슥
고민할 겨를은 없었다.
장의 옆구리, 허벅지, 등, 가슴팍.
총 4개의 마법진이 생겼다.
이번에도 방어막 내부를 통해 들어왔다.
장은 마법진을 해제하고 패이의 흉내를 냈다.
부분 신체 강화. 마나를 두 다리에 끌어모으고 땅을 밀어내며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나비 폭탄을 피하기 위함이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마법진이 장의 몸놀림을 따라 자연스레 끌려온다. 신체의 일부라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한순간의 공백도 없이, 그 즉시. 곧바로.
“쾅.”
콰아앙!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폭탄은 터졌고, 물보라가 장을 휘감았다.
도망칠 힘도 없어졌다. 합류는 꿈꾸지도 못한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디안은 천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천왕이 아니다.
악쿤의 부관일 뿐이다. 그럼 악쿤은 저 여성보다도 강하다는 말인가.
“체력은 다 빼놓은 것 같고...”
손을 내렸다.
그리곤 잠시 고민하며 체내의 마나를 정돈했다.
마무리를 고민하는 것이다.
일어서 있는 것도 자기 의지인지 아닌지도 모를 저 상태의 마법 용사를 어떻게 끝장낼까.
“이게 좋겠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교차되게 감싸곤 오른손의 약지와 소지를 살짝 벌린다.
그 모양을 알고 있었다. 그림자 놀이의 개.
그에 맞춰 장의 옆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겼다.
짙푸른 마법진은 맹렬하게 회전하다가 이내 회전을 멈췄다.
그 가운데에는 룬어로 ‘개’가 쓰여져 있었다.
“물어.”
크르르륵
동굴 같이 낮은 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그림자가 장을 휘감았다.
그곳에선 짙푸른 물로 만들어진 개가 아가리를 벌리고 장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뿌드득
개는 입을 다물었다. 장은 그 속에 삼켜졌다.
동시에 기절했다. 촤아아악
개는 형상을 잃고 바닥에 물을 쏟으며 사라졌다.
“휴우... 더 일어나진 못하겠지.”
죽일 목적이 아니었지만, 죽어도 이상하진 않았다.
장의 항마력을 믿을 수밖에. 신체는 온전해보이니 빨리 바비룬에게 합류하고 경기를 끝내면 의료팀이 알아서 치료해줄 것이다.
“아... 나도 한계구나.”
쿵.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후련했다. 악쿤을 욕보인 마법 용사를 순전히 자신만의 실력으로 때려눕혔다.
“건방지게...”
시그니처도 완성하지 못한 주제에 악쿤을 욕보이다니.
과잉 진압에는 디안의 사심이 섞여 있었다.
혹여나 징계가 내려올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녀는 기꺼이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어디 불구로 만든 것도 아니니까 징계 자체도 크지 않을 것이다.
‘조금만... 쉬다가 가야겠어.’
아콜드의 책을 펼쳤다. 그러자 책에서 푸른 기운이 나와 디안의 몸을 훑는다.
그 기운은 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그녀의 심장으로 빨려들어갔다.
조금은 괜찮아졌다. 아직 어지러운 건 여전하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꿈틀.
그때 장의 손가락이 약간 떨린 것 같았다.
디안은 두 팔을 뒤로 뻗어 몸을 지탱하다가 곧장 자세를 바로잡았다.
‘설마.’
잘못 본 것일까?
순간 장이 움직인 것 같았다.
아니, 아닐 거다. 그는 분명히 기절했다.
괜한 기우일 것이다.
하지만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어 그를 지긋히 바라봤다.
장은 하늘을 바라보며 엎어져 있었다.
숨 헐떡이는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나는 느껴지니 죽지는 않았다. 그러니 분명히 기절했다.
그렇고 말고.
“......”
디안이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장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고뇌에 빠져 있었다.
의식은 잃었다. 그가 있는 영역은 그의 무의식이다.
그는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행성 없는 우주 같이 공허한 곳.
아무것도 없는 무저갱에서 그는 떠돌고 있었다.
‘내가 졌나?’
불현듯 든 생각이었다.
마지막 기억은 눈앞에 물로 이루어진 개가 탐욕스럽게 입을 벌렸던 장면.
그 이후로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은 사후세계일까. 최성빈을 구하기는 커녕 먼저 죽다니.
‘...애들 볼 면목이 없네.’
퀸과 이지혜는 바비룬 필라이트와 피터지게 싸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본인은 부관한테 쓰러진 것이다. 한심하게.
이번 투기장을 온 이유도 장의 검은 촛불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늑대의 용병 패이가 죽었다. 지금쯤 듄도 고된 전투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을 벌려놓은 장본인이 죽다니. 이보다 한심할 수 있을까.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안일하게 싸우지 않았을 텐데.
악쿤 부관의 마법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을 때 전력을 다했어야 했는데.
차라리 동귀어진이라도 노렸더라면 결과가 나쁘지 않았을 텐데.
이상한 마법을 제외하면 그녀는 6서클의 마법사니까 이길 수도 있었을 텐데.
‘...한 번만 기회가 더 쥐어진다면.’
의미 없는 되새김질이지만, 그래도.
악쿤에 대한 분노만큼 미련이 남았다.
‘...아닌가.’
그보다는...
동료를 두고 먼저 떠나간다는 게 마음에 더 걸렸다.
여지껏 분노심만으로 움직이는 줄 알았지만,
어제 퀸이 주먹질을 해가며 울분을 토해내고 이지혜도 눈물을 흘렸을 때.
이상하게 자신의 가슴이 더 아프게 조여왔다.
목이 메었다. 왜?
왜냐니.
무언가 다시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대로 죽으면 안 된다.
아직... 역할이 남았다.
기회가 한 번만 더 있다면.
한 번만... 정말 마지막 기회를 준다면......
“...지독하네 진짜.”
누구를 향하는지도 불분명한 그 기도가 닿은 것일까.
시야가 트인다. 축축하게 젖은 옷과 몸이 느껴진다.
손을 들었다. 물에 피가 닦여나간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렸다. 악쿤의 부관이 보였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자를 빠르게 쓰러트리자.
봐주고 뭐고 할 것도 없이, 내 전력으로 당장.
“{ ξεκνα 시동 }”
치익...
무언가 조용히 점화했다.
품 안에서 꺼냈다.
물기가 가진다. 장의 주변 땅이 바싹바싹 마른다.
“...그걸 어떻게?”
커다란 디안의 눈동자가 장의 오른손에 있는 물건으로 향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그 물건을 기울였다.
뚝, 뚝뚝.
무언가가 장의 손에 떨어진다.
시커먼 연기도 잠시, 그 손에서 굳어버린 것은.
촛농이었다. 그러니까 밀랍.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평범한 초였다.
하지만 그 위에 조용히 타오르는 불꽃은 하염없이 시커멓다.
검은 촛불이다.
그것이 장의 손에 있었다.
“미안해. 대충하려고 해서.”
상황을 파악하기 전, 우선 장을 저지해야 한다.
그의 손에 없어야 할 검은 촛불을 최우선으로 회수해야 한다.
“{ χορ πεταλοδων 나비춤. }”
디안은 시그니처를 발동했다. 장의 주위에 마법진이 넘실거렸다.
하지만 그는 방어막을 펼치지 않았다. 의미 없는 짓이라는 걸 받아들였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는 무작정 돌진했다. 굳은 촛농이 있는 왼손을 뻗으며 디안에게로 달려왔다.
“폭발!”
콰앙! 콰아앙!!
마나를 가다듬은 덕에 폭발의 위력은 배가 되었다.
물보라가 요란하게 피어오른다. 정통으로 맞았다.
이래도 기절하지 않는다면 더 강한 마법을 쓸 수밖에 없다. 디안은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며 그가 물보라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물보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이동 마법을 쓴 흔적은 없다.
느껴지는 마력은 없다.
“뒤?”
그 순간 장의 방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그의 입에서는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자신을 안개로 두르며 마나 탐지를 피해낸 것이다.
‘방어막을...’
재빠르게 펼쳐냈다.
디안 본인을 감싸는 것 한겹, 그리고 장을 감싸는 방어막 한 겹,
이로써 그는 강력한 마법을 펼치면 방어막에 막혀 자폭하게 될 것이다.
‘사람 놀라게 하고 있어.’
정신력은 인정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아티팩트를 어떻게 얻었는진 몰라도
“{ λκο φλγα 화염 늑대 }”
크르르륵!
시커먼 늑대는 두 방어막을 한순간에 모두 녹여버리고 디안을 덮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