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투기장
* * *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치료는 이미 마쳤다. 또한 승리했다.
목표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승리한 자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죄송합니다.”
장이 침묵을 깼다.
“아니... 우리한테 미안할 건 없소.”
“......”
듄이 소파 팔걸이에 팔을 기대고 머리를 받히며 말했다.
기넨은 그의 옆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제가 빨리 정신차렸더라면 패이 씨는 죽지 않았을 겁니다.”
“거... 섭한 소리 마시오. 우리도 모니터로 경기 보고 있었으니까.”
패이가 죽기 직전, 장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백뢰를 노리며 마법진을 전개했다.
하지만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거대한 화염 줄기를 모두 쳐내고 패이에게 전격의 창을 던졌다.
패이는 그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눈이 필드에 깔린 후 패이의 몸놀림은 눈에 띠게 달라졌으니까.
하지만 그는 정통으로 공격을 맞았다. 그의 심장에 휑하니 뚫린 구멍에서 지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곤 눈더미에 넘어졌다.
그게 전부였다.
패이는 그렇게 죽었다. 꽤나 단순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패이를 비웃지는 못했다.
그가 죽기 직전, 백뢰를 밀어붙이고 있었을 때 보였던 위압감은 정말로 두려운 것이었기에.
“뭐... 선배가 마지막 공격을 왜 못 피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당신 탓은 아니오.”
“......”
“그래도... 조금 씁쓸하긴 하구려. 실리주의자인 척은 다 하더니, 마지막은 왜 그리 허무하게 죽었는지.”
“흐, 흐어어어......”
결국 기넨이 울음을 터트렸다.
용사 일행은 모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듄은 용사의 안색을 살피더니, 기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했다. 특히 울상짓는 것은 케일이었다.
“내가 더 강했더라면...”
그녀가 클리브 솔리스를 잡고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비단 패이만을 위한 기도는 아니었다.
음도 구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한때 자신의 스승이었던 그마저도.
“이기장.”
퀸이 주먹을 떨며 일어났다.
장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했다. 그의 눈빛은 죽은 생선 같이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왜 가만히 있었지?”
“...머리가 아팠어.”
“헤인켈이 눈앞에서 터져 죽어서 패닉이라도 왔었나?”
“......응.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거든.”
“네놈의 순두부 같은 멘탈 때문에 패이가 죽었다.”
“언니?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케일이 성급히 고개를 들었다. 귀를 의심하는 듯한 어조.
하지만 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했다. 장의 무능함을 탓하는 것이다.
헤인켈의 시신 앞에서 넋놓고 있지만 않았어도 백뢰 하나 쯤은 패이와 연계해서 잡아내고도 남았다.
“나도 알아. 그래서... 그래서 더 괴로워.”
장도 그를 모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자책감이 배가 되었다.
퀸은 의외의 반응이 왔다고 생각했다. 펙튼을 잃은 이후 거침없이 앞만을 향해 나아가던 장은 이 자리에 없었다. 잔뜩 위축된 어린아이와 같았다.
“한심한 놈.”
그 모습이 너무나도 볼품없어 눈을 돌렸다.
장은 중얼거렸다.
“......힘들다.”
흘리듯 말하는 소리였다. 하지만 거슬렸다.
“다시 말해봐라.”
“...생각할 게 너무 많아. 단순히 나만 강해진다고 모두 지켜낼 수 있는 게 아니야.”
“나와 이지혜, 최성빈은 동료가 아닌가? 우리도 꾸준히 강해지고 있다.”
“알아... 알지만...”
“...어금니 꽉 물어라.”
콰직!
장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 퀸의 주먹은 휘둘렸고, 장은 의자에서 떨어졌다.
오러나 마나를 두르지는 않았다. 퀸의 주먹도 떨리고 있었다.
“언니!!”
“네놈의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콰직 콰직!
장에게 올라타 주먹으로 마구 후려쳤다.
장은 죽은 표정으로 그 주먹을 견뎌내고 있었다.
퀸은 내심 장이 분노하여 덤벼들기를 바랐다.
하지만 또 이런 태도다.
‘주위 사람들은 신경쓰지도 않는 이기적인 태도.’
자신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
동료에게 정이라곤 일절 주지 않고, 본인만의 힘으로 살아남으리라 다짐했던 퀸.
동료와 협력하여 이 세계에서 살아남자고 큰소리치던 장.
반대가 되었다. 누구보다 동료에게 기대지 않는 것은 장이었다.
“네가 그리 잘났나?”
“......”
“또 혼자서 뭘 숨기고 괴로워하고 있지? 그래놓고선 힘들다고? 언제 털어는 놓았나?”
“정보는...”
입을 열었다. 말할 수 있게 주먹질을 잠시 멈췄다.
“항상 공유했어. 이, 이번 가면무도회가 마왕군이라는 것까지도. 슈가리아가 마왕군과 내통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지금 내 숙소에서 잠자고 있는 검둥이가 카이루스의 자식이라는 것도.”
“안다.”
“뭐가 더 필요해...? 네가 말해 봐.”
“......”
콰직!
말 없이 주먹이 휘둘린다.
케일은 그녀의 주먹을 잡았지만, 근력으로 퀸을 이길 수는 없었다.
“씨발 새끼.”
“...뭐, 뭐가 문제냐고.”
“개 같은 새끼.”
“언니! 이러다 진짜 오빠 죽어요!!”
“알아서 방어막 펼치라지, 그래봤자 역산해서 또 팰 거지만.”
“언니이!!”
퍽 퍽 콰직 콰직!
바닥에 피가 튀긴다. 케일은 그녀에게 애원하듯 매달렸고, 퀸의 태도는 굳건했다.
“후우... 후우...”
조금은 분이 풀렸는지, 퀸은 주먹을 거뒀다.
케일이 장에게 달려들어 그를 껴안으며 계속 눈물흘렸다. 퀸은 말했다.
“너는 우리를 동료가 아니라 장기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도 생각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알고, 위로할 줄 안다.”
“...그게 어쨌다고.”
“한 번도 우리에게 기댈 생각이라곤 못 했는가? 케일이 매일 기도하고 있는 건 아는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퀸은 주먹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너는 약하다.”
“...내가 약해? 나는 7서클이야.”
“아니, 너는 약하다. 8서클이 되어도, 시그니처를 완성해도, 설령 암두시아스를 죽일지라도 너는 약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인간은 모여서 산다.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행복을 나누고 공감하면서 모여 산다. 몬스터들에게 굴복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지. 그들은 약한 만큼 똘똘 뭉칠 줄 알았기에. 그렇기에 인간은 강한 것이다.”
“...그래봤자 나보다 서클 높은 사람은 이제 없는걸.”
헤인켈이 죽었으니, 8서클의 인간 마법사는 없다.
사실 그마저도 인간은 아니었으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너야말로 이상해. 강해져야 살아남는다고 주장하던 건 너였어.”
“용사끼리 뭉쳐야 한다고 주장하던 건 너였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차라리 예전의 네가 나았다. 이도저도 아닌 병신새끼.”
“...그만 싸워요.”
목소리가 묻혔다.
“헤인켈의 죽음에 충격받은 건 이해한다. 한때는 우리의 우군이었으니, 실제로 많은 도움도 주었지. 하지만 말이야. 전장에서 한눈 팔고 있는 건 어떠한 상황을 갖다붙여도 설명되지 않는다.”
“나도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그때만큼은...”
“스승이 겹쳐보였나? 펙튼 포르시아가 악쿤에게 죽었던 그날이 떠올랐나?”
“...선 넘지 마.”
“그 태도로 마왕군 토벌에 임한다면 나는 너에게 등을 맡길 수 없다. 아니, 당장 다음 경기도 승리할 수 있을까, 믿을 동료가 이지혜밖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해?”
“간단하지. 헤인켈이 죽은 그 순간 백뢰에게로 시선을 돌렸어야 했다.”
“그만해요...”
“너는 그게 말처럼 쉬워?”
“아니, 하지만 너처럼 한심하게 있지는 않았을 거다. 눈 마법은 뭐지? 패이의 서포팅이었다고 개소리하지는 마라. 헤인켈의 시체라도 묻어줄 셈이었나?”
“...맞아.”
“내 상상 이상으로 머저리 새끼였구나. 한 사람의 죽음에도 그리 동요하면 마왕군과의 전쟁은 어찌 계획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 무리에서 떠나겠다. 네놈이 이끄는 용사 집단은 가망이 없어.”
“......”
“최성빈 구출은 내가 알아서 진행하겠다. 이젠 볼 일 없었으면 좋겠군.”
“...둘 다 내 말 안 들려? 그만하라고!!”
콰과가아!
방이 흔들렸고, 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은 바닥에 엎어졌다.
콰장창창!
안에 있던 모든 유리와 거울이 동시에 깨졌다. 그 요란한 소리에 케일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왜들 그러는 건데!! 그냥 서로 슬퍼하고 안아주면 안 돼? 왜 못 물고 뜯어서 안달인데!!”
“이지혜.”
“언니, 언니야말로 뭐야? 매번 혼자 강해지겠다고 우리한테 등 돌렸을 때가 반년 전이야. 이제야 마음 열었다는 건 고마워. 그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지만...”
숨을 고른다. 울컥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눈물은 이미 질질 흐르고 있었다.
“언니가 오빠한테 따질 처지가 돼? 나는 아직도 언니 이름도 몰라. 퀸이라는 이 뭣 같은 ONE(?)에서 쓰는 이름밖에 모른다고!!”
“지혜야, 잠시만 너 지금 너무 흥분...”
“오빠도 똑같아. 나는 패이 씨 죽은 거에 대해서 오빠한테 추궁할 생각은 전혀 없어. 나도 능력이 부족했으니까 스승님도 구하지 못했고, 패이 씨도 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기넨 씨가 말했어.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패이 씨가 선택한 죽음이었으니 동정하는 것조차 그에겐 모욕일 수 있다고. 진정 그를 위한다면 우승할 생각부터 하라고 말이야. 그래서 입 닫았어. 괜히 오빠, 언니들에게 짐 안겨주는 것 같아서 입 닫고 있었다고 근데... 근데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씩씩거린다. 얼굴이 시뻘겋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곤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였다.
산발 같은 꼴이 되고 나서야 케일은 말을 마무리했다.
“왜 싸워 왜... 왜들 싸우냐고!! 성빈 오빠 구해야지!! 이럴 때일수록 단합해야지!!”
“......”
“그만해. 제발 그만해. 다음 경기가 마왕군이야. 사천왕인 바비룬 필라이트라고. 지금 싸울 시간이 어디 있어. 검은 촛불부터 얻어낼 생각해야지.”
“...그거 말인데.”
“뭐.”
케일의 싸늘한 되물음에 잠시 위축되었다가, 얼굴에 묻은 핏기를 닦으며 장은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일행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퀸은 입을 멍청하게 벌리고 장을 바라보았고, 케일은 더욱 비명지르며 의자를 깨진 유리창에 다시 던졌다.
“장난해?!! 장난하냐고!!!”
“미안해. 근데... 말해서는 안 됐었어.”
“왜! 왜애애!!”
“내가 그러라고 했으니 말이다.”
목소리와 함꼐 문이 끼이익 하고 열렸다.
그는 바닥을 보더니 “오우, 난리를 쳐놨군.”이라 중얼거리며 앉을 곳을 물색했다.
없었다. 모든 의자는 박살나거나 창 밖으로 나갔고, 소파는 유리 파편 투성이다.
결국 그는 그냥 선 채 허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뭐... 자기소개할 필요는 없겠지? 피차 유명인사 아닌가.”
“...패이 씨 일은 죄송하게 됐습...”
“그만. 그런 소리나 들으려고 온 게 아닐세.”
그가 폴암을 바닥에 쿵 찍으며 장의 말을 끊었다.
그의 위압감에 일순 일행은 입을 다물었다.
“못 끝낸 사업 얘기나 마무리하자고. 그리고 검술 용사. 그렇게 때려부수면 곤란해.”
늑대의 길드장 워 울프.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독수리는 늑대에게 잡아먹힐 거니까.”
*
결승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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