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투기장
* * *
공격을 피하는 것도 한두 번이다.
멈출 줄 모르는 노도 같은 백뢰의 공격에 패이는 온몸에 상처가 가득해졌다.
“저, 저 시발...”
“키메라냐 어쩌냐 떠들더니, 꼴이 왜 그래?”
대련장은 허허벌판이다.
숨을 곳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자니 모두가 혈전을 펼치고 있다. 케일은 음과 같이 어디론가 사라지곤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대로 죽나?’
패이는 돈 받고 일하는 용병이다.
그깟 보수 때문에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
신체 강화의 속력을 더욱 올렸다. 그러나 애초에 봐주고 있었다는 듯 그에 맞춰 백뢰도 템포를 올린다.
빠직!
“크윽!!”
어깨를 뚫고 전격의 창이 지나갔다.
피가 시커멓게 타오른다. 뜨거워서 미칠 것만 같은 격통이 온몸을 휘감는다.
바닥에 엎어져 도끼눈을 뜨며 백뢰를 바라봤다. 그는 룬 문자가 새겨진 눈으로 패이를 바라봤다.
“곧 죽겠네. 이제 늑대 쪽에서 의뢰 받기는 힘들겠는걸.”
“아쉬운... 척 하지 마.... 너 돈 많잖아...”
“고객은 많을수록 좋지. 돈도 많을수록 좋고.”
백뢰는 천천히 다가섰다.
신체 강화 없이도 곧바로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는 그만치나 가까운 거리.
패이의 도망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백뢰의 손에 들린 전격의 창이 빠직거린다.
“좀 점잖게 도망쳤어야지.”
“점잖은 도망이라는 게 있나...?”
“몰라, 아무튼 날 짜증나게 했다는 거야.”
창을 천천히 머리 위로 들고 바닥에 웅크린 패이에게 향한다.
패이는 항복을 외치고자 숨을 고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변이 생겼다.
“저 미친 할아버지... 죽고 싶어 환장했나?”
“...?”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곤 패이에게서 멀어진다.
전격의 창을 든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선 바닥에 엎어져있는 장과 가만히 서서 고통스러워하는 헤인켈이 보였다.
‘왜 저래?’
항복은 잠시 미룰까.
헤인켈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꿈틀거리며 바닥에 각혈을 쏟았고, 목을 틀어쥐었다.
자해는 아니었다. 장도 놀라 그에게 다가갔고, 백뢰는 성난 발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가, 가믹, 가, 가... 가학”
그는 분하다는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펑! 터져버렸다. 그의 시체가 바닥에 흩뿌려진다.
“윽 시발.”
너무도 잔혹하게 죽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
바람에 그의 피비린내가 섞여 장에게도 다가온다. 기분이 썩 착잡했다.
하지만 이로써 선취점은 용사 팀의 것이었다. 게임 자체는 긍정적으로 흘러간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백뢰는 혀를 차더니 장에게로 다가갔다.
“헐.”
큰일이다. 장은 얼핏 보기에도 전투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었다.
헤인켈의 몸이 터진 후 그는 공허한 눈으로 그의 시체를 어루만지며 애환 담긴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다.
“장! 정신 차려요!!”
제 몸이 석자지만, 패이는 정신만은 온전했다.
장의 부상도 만만치는 않지만... 그라면 백뢰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찍어누를 수도 있다. 장은 다름 아닌 용사 아닌가. 그 괴물 같은 용사.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 왜, 왜?!”
하지만 멘탈이 박살난 채였다.
어딘가 위태로워보이는 그는, 자신에게 백뢰가 다가서고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헤인켈이랑 친분이 있었다고는 들었어.’
하지만, 그건 그의 스승 때문이다. 스승의 죽음도 아닌데 어째서 장은 눈물 흘리는 것인가.
용사라는 자들이 다 저러한가? 선한 인품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나?
아니, 패이가 느끼기에 그렇지 않다. 장은 상당히 난폭한 인품이다.
지금껏 그의 경기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상대방을 찍어눌렀다. 강함을 과시하는 듯.
뭐... 여까지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후에 그가 가진 태도가 문제였다.
‘빙긋 웃고 있었어.’
상대방을 통구이로 만들곤 입가를 씰룩인다.
그런 사람이 헤인켈 하나 죽었다고 눈물 흘린다는 건 패이가 보기에 모순되었다.
‘아차,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야.’
백뢰가 창을 겨눴다.
장은 중얼거리며 새하얀 마법진을 손에 머금고 있었다.
‘반격? 반격하는 거야? 그렇지! 백뢰도 네가 잡아야지!! 넌 용사잖아!!’
혹여나 백뢰의 표적이 다시끔 자신으로 바뀔까 속으로만 응원하며 수줍게 두 주먹을 콱 쥐었는데, 장이 펼친 마법을 보자 몸이 그대로 굳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백뢰도 마찬가지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가 펼친 마법은 눈이 내리는 마법이었다.
새하얀 눈송이가 헤인켈의 시체를 뒤덮는다. 대련장이 새하얗게 물든다.
장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는 투명인간 취급입니까 마법 용사?”
“......이것도... 관련있는 걸까.”
“아까부터 영문 모를 소리만 하는군.”
백뢰가 손을 휘둘렀다. 전격의 창이 장에게 다가섰다.
“...”
“......”
“...항복한 줄 알았는데.”
“......씨발.”
빠지지직!
전격의 창을 부여잡은 건 패이였다. 두 손에 마나를 가득 두르곤 그의 창을 저편으로 다시 던졌다.
패이는 아랫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폐인이 된 것처럼 멍하니 있는 장에게로.
그를 보며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개 같지만, 이 사람 지키는 것도 임무 중 하나거든.”
“길드의 개야. 분수는 알아야지.”
“알아, 내가 널 어떻게 이기겠냐. 원래는 나도 항복할 생각이었다고.”
하지만 얘기가 달라졌다.
바닥과 하늘을 뒤덮은 눈, 장의 마나가 어찌나 많은지 당분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패이에게 있어서 최적의 필드였다.
그가 사용하는 마법은 냉기 마법이었으니까.
“냉기 마법사들 싫어한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지가 냉기 마법 쓰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듣지 못한 백뢰는 전격을 튀기며 패이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귀찮은 벌레 따위 치워버리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제는 봐주지 않을 거다. 비켜서는 게 좋아.”
“무서운 소리 좀 그만해...”
화아아악
패이가 손을 움켜쥐자 하늘에서 떨어지던 눈송이들이 주위로 몰린다.
그의 몸을 둘러싸며 소용돌이친다. 그러자 백뢰도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의 마력이 급격히 상승했다. 아니, 마력이라기보단 신체 강화의 박력이라고 할까.
“같이 산책이나 하자. 용사님들 방해하지 말고.”
“헛소리를.”
빠직 빠지직!
살의 가득한 투기.
휘이이이이......
조용히 휘몰아치는 투기가 맞붙는다.
*
“허억... 허억...”
케일은 만신창이가 된 채였다.
음은 클리브 솔리스를 어루만지며 감탄했다.
“이정도일 줄이야... 이 물건이 있다면 마왕군 토벌도 꿈만은 아니겠군요.”
“도, 돌려주세요... 스승님이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아무렴요. 용사에게 선택받은 아티팩트를 감히 저 따위가 다룰 수는 없겠죠.”
우웅 우웅
클리브 솔리스가 고통스럽다는 듯 진동한다.
그를 콱 움켜쥐곤 오러를 터트리며 진정시켰다. 참으로 난폭하기 그지없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기준은 누가 정해놓은 겁니까?”
이상한 말을 뱉었다.
아티팩트의 기준?
“아니요. 용사라는 배역을 누가 정해놓았냐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가 당신과 퀸, 장, 빈을 용사라고 정해놓았습니까?”
“그거야... 저희는 전송자니까요.”
“전송자라고 모두 용사는 아닙니다. 전송자는 당신들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 그게 무슨...”
“시시한 얘기를 잠시 해볼까요.”
그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음은 양과 여럿 아이들과 함께 플라티넘에게 거둬졌다.
그곳에서 글이나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생명을 해치는 법부터 배웠다.
처음에는 쥐였다. 쥐를 움켜쥐어 터트리는 것을 시작으로 동물의 크기는 점차 커졌다.
고양이, 개, 늑대, 호랑이, 괴수, 오우거, 헤츨링 등등... 그리고 인간.
마지막에는 같이 지내왔던 동료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끝내 살아남은 건 음과 양 둘이었다. 그 둘은 플라티넘의 검이 되어 영토를 넓히는 데 활약했다.
“알고 계셨을 겁니다.”
“......알고 있죠.”
“그런 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준 당신에겐 언제나 감사를 표합니다. 진심으로요.”
그래서 그런지, 더 알려드릴 게 많습니다.
아티팩트와 용사들, 그리고 전송자와 그 뒤를 조종하는 존재들에 대하여.
음이 말하는 것의 태반은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장이라면 모르겠지만, 케일은 눈앞의 마왕군만 바라보고 직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세계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전송자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스승님도?”
“네, 저와 양도 전송자입니다.”
설마 하던 생각이 맞아떨어진다.
그럼 양과 음도 용사 후보였단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 저와 양은 용사가 되기엔 그릇이 부족합니다. 아직도 소드 익스퍼트 등급에 머물고 있잖습니까? 그리고 고향도 다릅니다. 결국 저희와 당신들은 격차가 심하죠.”
“무슨... 그토록 강하시잖아요. 아티팩트도 다룰 수 있을 만큼요.”
“그래요 아티팩트. 아티팩트는 용사의 전송과 함께 생겨난다고 플라금의 교육자가 말해줬을 겁니다.”
“그랬었죠.”
“헛소리라는 게 여러분의 아티팩트로 증명됐잖습니까? 클리브 솔리스는 고대에서부터 전해져오던 물건이었고, 어느 기사사단원의 녹슨 건틀렛도 마찬가지로 옛적부터 있던 물건이었습니다. 가장 터무니없는 건 검은 촛불입니다. 이번 투기장의 우승 상품.”
“......”
많은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온다. 케일은 머리를 감싸쥐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은 잠시 입을 멈추었다가 케일의 표정이 괜찮아지자 다시 열었다.
“전전 세대 용사의 물건입니다.”
“...전전 용사? 그들은 어떻게 됐죠?”
“죽었습니다. 그들은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그게 무슨... 그들도 세계를 구했잖아요! 버려졌단 거예요?!”
“틀린 말도 아니군요. 그들은 버려졌습니다. 그리고 당신들 차례가 왔죠.”
할 말이 끝났다는 듯 클리브 솔리스를 콱 움켜쥔다.
케일도 흠칫 몸을 떨더니 음의 검을 살짝 잡았다.
음으로부터 케일에게로 바람이 불었다. 이 공간은 음의 지배영역이다.
“버려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와 양보다도 훨씬 강한 그들도 무참히 죽어났는데... 이 운명을 어떻게 부숴야 할까요. 그것이 같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인 겁니다.”
“너무 어려워요. 마왕군을 깨부수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존재 가치가 사라진 당신들이 설 자리가 있을지... 저는 그게 걱정입니다.”
그러니 더 강해져야 합니다.
지금보다도 더욱, 아귀처럼 끝없이 원해야 합니다. 강함을.
버려지지 않게끔. 어쩌면 그조차도 죽일 수 있게끔.
“그가 누구죠?”
“말할 수 없습니다.”
“암두시아스를 말하는 건가요?”
“글쎄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하나입니다.”
기도하지 마세요. 신은 죽었습니다.
동료조차도 믿지 마세요. 저조차도 믿지 마세요.
어느 누구도 믿어선 안 됩니다. 믿을 건 본인입니다.
“검을 쥐세요.”
“제발...”
“절 죽여야 이 공간이 사라집니다.”
그리 말하고 두 검사의 사이에는 수많은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이 전투 자체가 오래가지는 않았다.
합을 스무 번도 나누기도 전에 음이 먼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클리브 솔리스를 콱 쥔 그의 손은 시커멓게 물들었고, 그 검은 기운은 어느새 목까지 차올랐다.
음의 온몸을 뒤덮은 기운은 그를 사지로 내몰았다.
케일은 눈물을 왈칵 쏟으며 그에게서 검을 빼앗고 순수하고 맑은 오러를 터트리며 치료에 전념했지만, 음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온몸의 구멍으로 피를 토하며 죽었다. 공간은 사라졌다.
겁에 질려 주위를 둘러봤다.
새하얀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에 장이 보인다.
그에게로 다가서다가 허벅지까지 올라온 눈더미에 몸이 걸려 넘어졌다.
차가웠다. 감각이 사라진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음의 시체를 짊어지고 장에게로 조금씩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그는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시커먼 손이 하나 있었다.
잠시 음을 내려놓고 그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그리고 굳었다.
섬뜩함을 느끼며 그 손을 쭉 당기자 몸통이 눈을 부수고 나온다.
“......흐, 흐흑...”
패이였다. 온몸에 시커먼 구멍이 뚫린 채 죽어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