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투기장
* * *
“빈 수레일수록 요란한 법이지.”
양과 퀸의 전투에 대해 헤인켈이 내린 평가.
쾅! 콰앙! 쾅! 콰아앙!
지금도 폭음이 연속하여 터진다. 가세하러 가고 싶지만, 눈앞의 사내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듯하네만... 퀸을 돕고 싶다, 이런 거겠지.”
그녀는 양에게 밀리고 있었다. 오러를 사용하여 방어하곤 있지만 시간 문제다.
양이 건틀렛을 휘두르고 던지고 발로 차서 퀸을 맞출 때마다 폭발이 터진다.
퀸이 보여준 화염구보다는 현저히 위력이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가소로히 넘길 수 있는 공격은 단언코 아니었다. 한 방 한 방이 치명상이다. 오러가 없었더라면 퀸은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터져 죽었을 것이다.
“아주... 건방져. 어딜 감히...”
그에 시선이 뺏겨 있던 장에게 헤인켈은 초근거리 순간이동으로 다가왔다.
방어막을 펼치며 마법진을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킨다. 하지만 그 마법진의 회전이 어느 순간 멈추었고, 오히려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더니 서서히 사라진다.
반면 장을 겨누는 녹빛 마법진은 완성되고 있었다.
헤인켈은 입가를 씰룩거렸다.
“본좌를 앞에 두고 한눈 판단 말인가?”
화륵 화르르륵!
녹빛 화염이 난잡하게 장을 감쌌고, 구렁이가 담을 타고 기어오듯 서서히 장의 온몸을 조인다. 방어막은 펼쳐뒀지만, 지글거리며 녹아내린다. 따스하다. 따뜻하다. 약간 뜨겁다. 뜨겁다. 아주 뜨겁다. 무척이나 뜨거웠다. 녹아내릴 정도로.
화륵!
녹빛 화염은 장의 온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감싸안았고, 헤인켈은 혀를 차더니 화염을 거두었다.
“장, 나를 짓누른다고 실컷 떠들었잖은가.”
그에게 다가가 턱을 잡았다. 그리곤 위로 올렸다.
다 죽어가는 눈빛이 헤인켈을 향한다. 손을 뻗었지만 부르르 떨린다.
그 손을 지팡이로 강하게 쳐냈다. 툭, 떨어진다. 죽었을까? 아니다. 하지만 곧 죽는다.
“펙튼은 훌륭한 제자였다.”
장을 놓아주었다. 그러자 허공에 둥실 떠 있던 그의 몸이 추락한다.
가속도가 붙는다. 퍼석! 땅에 강하게 처박힌 그는 흙먼지를 튀기곤 처량하게 엎어져 있었다.
쿨럭! 피를 토한다. 서서히 그에게 다가갔다. 지팡이의 끝으로 그의 목젖을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어느새 녀석과 같은 서클이 되었군. 전송자의 성장력은 참으로 탐나는구나... 하지만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겠지.”
“쿠, 쿨럭!”
“괴로우더냐? 녀석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이가 갈리더냐?”
허, 허억...
지팡이의 끝을 거뒀다. 여전히 혀를 차며 지팡이에 몸을 기댔다.
“그 까닭에 악착같이 강함을 추구하는 거겠지. 사실 본좌도 네녀석을 조금이나마 두렵다고 느낀다네. 몇 년만 지나면 나를 추월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허, 허억... 마, 마치 그래선 안 된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군요...”
“음? 그건 오해일세. 용사가 강해지는 것이 곧 마왕군의 궤멸을 앞당기는 일이 아닌가. 본좌는 무척이나 기쁘다. 속뜻 없는 순수한 내 진심이지.”
“그, 그럼... 어째서 내 앞길을...”
“질투일세.”
멋쩍은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스스로도 헛갈렸지. 이 감정이 무엇인가. 용사가 차근차근 마왕 토벌에 가까워지는 것은 경사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나 무슨 까닭에 가슴 한 켠이 철근이라도 올린 듯 무겁고 갑갑한 것인지.”
이젠 상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는 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본좌는 네녀석을 질투한 모양이더구나. 그 경외로운 성장력을 말이다.”
물끄러미 자신의 지팡이로 시선을 내린다.
애인을 대하듯 소중하게 쓰다듬다가 일순 표정을 찡그리곤 저 구석에 던져버렸다.
“그건 선천적인 것이다. 아무리 용쓴들 바꿀 수 없다는 것이지. 허나, 아티팩트는 어떠한가?”
검은 촛불. 마왕군에 대적하기 위한 마법 용사의 아티팩트.
“그것이 없어도 네녀석은 9서클에 도달할 것이다. 용사라는 족속들이 그렇다. 전에 보아온 자들도 그러했지.”
“...전대 용사?”
“그들에 대해 궁금한가?”
“어떤 서적을 뒤져도... 그들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어...”
마법 용사, 검술 용사, 주술 용사, 암기 용사라는 것과,
그들은 마왕 단탈리온에게서 세계를 구했고 종적을 감췄다는 구절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마왕군 궤멸이 언제였는지, 그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 세대에 있었던 사천왕은 어떤 이들었는지조차도. 수상하리만큼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 의구심을 지니고 파고들수록 허무함이 남을 뿐이었다. 괜한 삽질할 시간에 마법 연구를 하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하여 그 이후로는 용사 관련 문서를 찾아보지 않았었다.
“...사실 본좌도 그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네만... 잊지 못할 게 단 하나 있었지.”
그의 미간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마법 용사 놈들은 모조리 건방지다는 것.”
쿠구구구 땅이 뒤흔들린다.
헤인켈의 몸에서 마나가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나온다.
“그놈들의 강함은 순전히 전송자라는 축복에 의한 것이다. 노력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다. 무식한 놈들. 상종하기도 싫은 놈들이 본좌와 어깨를 견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감히 9서클에 도달해? 이 얼마나 불쾌한 일인가?”
“내가... 노력을 안 해...?”
콜록거리며 일어나 목을 매만졌다.
마나를 조작하여 온몸 곳곳에 그을린 부분을 덮었다. 공기가 스치는 것마저도 쓰라리다못해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인간성을 버리고, 동료를 팔아넘겨가며 겨우 도달한 8서클이다!! 감히 네놈이 그 경지를 넘봐? 마학에 입문한지 고작 1년을 겨우 채워가는 놈이?!”
초점이 흔들린다. 격분하는 그를 보자 장은 뒤로 주춤 물러났다.
대화가 통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장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그분께서 허가하셨다! 검은 촛불을 얻고 본좌가 직접 부수리라! 세상의 중심에 오를 것이다! 전세계가 헤인켈의 이름을 듣고 전율하리라!!”
“그분?”
“아무것도 모르느 병아리야. 이 세계를 아우르는 그 위대한 존재를”
장은 몸을 떨었다.
“커, 커헉”
헤인켈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두손으로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그리곤 붙들었다. 마법진을 만들었다. 얼음 속성 마법진. 머플러를 두르듯 목을 감싼다. 하지만.
“아, 안 된다. 안, 아니 되는 것이 크 크헉, 크허어억!”
“헤인켈!!”
“내, 내 최후가 이따위... 크, 푸흡 푸, 커 커허억 컥 컥”
목을 붙들고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눈가가 충혈된다. 장은 엉금엉금 기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고, 헤인켈의 얼굴에 핏줄이 올라온다.
푸쉬이이익! 목을 감싼 얼음 줄기 사이로 한줄기 선이 솟아오른다.
푸쉭! 푸쉬이이익!
그 선이 하나둘 더 많아진다. 그의 목이 덜렁거린다. 그는 악에 가득찬 목소리로 뱉었다. 발음이 웅얼거려 알아들을 수 없었다.
“카, 카흐 저적 저주악, 저, 저, 저주악”
“정신 차려요!!”
“가, 가믹, 가, 가... 가학”
핏기가 불그스름하게 온몸을 휘감는다.
장이 그의 목을 같이 붙들고 얼음 마법을 휘감았을 때
푸확
장의 양손이 붉게 물들었다. 시야가 가려진다. 축축하고 끈적한 것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손으로 닦아본들 닦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시야는 붉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뜬들 눈알을 타고 무언가가 흘러들어온다. 입가에 짭짤함이 느껴진다.
“...대마장님?”
“......”
“대마장님?”
“......”
“...시발, 농담하지 마.”
“......”
“......장난하지 말라고.”
감은 눈으로 더듬거리며 바닥을 짚었다.
끈적이는 무언가가 만져진다. 아니, 매끄럽다. 그것들을 어루만지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대마장 헤인켈이 자폭했습니다!! 아아, 대마장도 마법 용사를 상대로는 어쩔 수 없었단 말인가?! 무슨 마법이죠? 폭발 마법? 사람을 폭탄처럼 터트리는 것도 가능합니까? 참으로 대단하군요!!]
와아아아아!!
귀가 저릿한 환호성이 겹친다. 장은 손을 허우적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슬픔이 아니었다. 분함이었다.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야...... 왜, 왜?!”
죽일 생각도 품었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었다.
비장의 수를 숨겨두었었다. 그 전에 헤인켈은 사라졌다.
눈앞에서, 터졌다. 부풀어오르며 터져 바닥을 붉게 적셨고, 팔과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만져지는 것은 헤인켈의 장기들과 끈적한 핏물들이다.
화르륵
조용히 무언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뭔지 볼 필요도 없었다. 저것은 심장일 것이다.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전혀 뜨겁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점차 작아진다.
왜?
어째서 죽었을까.
[이로써 팀명 용사가 선취점을 획득합니다!!]
어지러웠다. 귀에 삐 소리가 울린다.
축축했다. 장은 엎어졌다. 두 팔을 딛고 겨우 일어났지만 힘에 부쳐 다시 엎어졌다.
온몸을 부들거렸다. 아직도 헤인켈에 당한 상처가 얼얼했다. 너무나도 생생하다.
어떻게든 이길 거였다. 더러운 수단을 쓰더라도, 방심을 유도해서라도 이길 생각이었다.
이렇게는 아니었다. 경기는 용사에게 기울었다. 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계속 울었다. 애처롭게 울었다. 한탄스러웠다. 이따위 것은 승부가 아니다.
눈을 감고 있으니 풍선처럼 부풀던 헤인켈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아른거린다.
어째서일까, 펙튼 포르시아의 환한 얼굴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와아아아!!
관객은 장을 찬양했다. 도끼눈을 뜨며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재밌어? 사람이 죽었는데 재밌어? 그렇게 즐거우면 내가 모조리 죽여줄까. 과연 그래도 웃을 수 있을까? 난폭한 생각이 머리를 휘감으며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시야는 여전히 붉었다. 두 눈에 마법진을 둘렀다.
물 마법이었다. 씻어냈다. 잠시 깜빡이자 시야가 안개가 걷히듯 깨끗해진다.
장은 의도적으로 헤인켈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곤 관객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들은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사회자도 장을 마주하고 있었다. 가면 속 비릿한 웃음이 느껴진다.
마법진을 만들었다.
이 대련장 자체를 깨부술까?
마력을 쥐어짜내면 가능할 터.
“......”
이를 빠득 깨물었다.
바닥에 철퍽 주저앉았고, 눈물은 서서히 멎었다.
고개를 처들었다. 무언가 살랑살랑 내려온다.
눈.
눈이었다.
하늘거리는 눈송이가 바닥에 가라앉는다.
피에 얼룩져 붉게 물들다가도 더욱이 쌓이자 새하얗게 뒤덮인다.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는데.”
착잡한 기분을 느끼며 눈더미에 몸을 푹 기댔다.
주피아도 아닌데 눈이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장의 오른손등에는 새하얀 마법진이 회전하고 있었다.
*
“으아아악! 퀸 씨! 장 씨!!”
다급하게 불렀지만 그들도 흘깃 보기에 바빠보였다.
얼마나 긴박한 상황인지 가늠할 수는 없었다. 제 코가 석자였으니까.
콰직!
벽에 새하얀 창이 박혔다. 조금만 더 느리게 움직였더라면 가슴팍을 꿰뚫었을 전격의 창.
빠지직 거리며 벽을 시커멓게 태운다.
‘씨, 씨발... 저런 거 맞으면 분명 즉사야. 방어 포함 모든 부가적 룬어를 모두 배제했다고.’
말인즉, 그 부가적인 룬어에 쓰이는 마나 분량만큼 속력에 쏟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겨우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그 유명한 백뢰를 상대로.
“쥐새끼처럼 살랑살랑... 적당히 리타이어만 시킬 테니까 그만 도망쳐. 안 아프게 조절할게.”
“좆까 등신아! 전격화부터 풀고 말해!!”
하지만 그는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고, 공장에서 뽑아내듯 자꾸만 지글거리는 새하얀 창을 만들어 패이에게 던지고 있었다. 애초에 태도부터가 건성이었다. 그는 패이를 상대로 인식하지도 않는 것이다.
“가뜩이나 기분도 안 좋은데... 별 시답잖은 놈이 귀찮게...”
치지지직......
전격 튀기는 소리가 조금 멀어진다. 일정 거리를 벌리고 패이는 벽에 가속 문자를 박아넣으며 그의 상태를 살폈다.
지쳤을까? 슬슬 피곤해서 그만두려는 건가?
시답잖은 희망을 품고 그를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는 안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새하얀 머리칼을 왼손으로 올리곤 안대를 한쪽만 올렸다.
고요히 감긴 오른쪽 눈이 보인다. 그는 오른쪽 눈을 움켜쥐곤 무언가 중얼거렸다.
“{ ...τ 출력 강화 }”
의외로 간단한 룬어였다. 하지만 그의 온몸에 튀기는 스파크가 예사롭지 않았다.
결단코 출력 강화 문자로 강화되는 수준이 아니다.
‘그 이상의... 룬어 τ를 10개 정도 새겨넣으면 저 정도이려나? 아니, 지금 팔자 좋게 감탄할 때가 아니지. 저 새끼 지금 뭐 하는 거야?’
패이는 가속 발판을 여러 개 겹쳐 만들며 그에게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백뢰는 손을 거뒀다. 오른쪽 눈은 뜬 채였다.
“...너 설마.”
그 눈알을 보자 무언가가 떠올랐다. 흉물을 본듯 입가를 가리며 겨우 입을 뗐다.
“키메라냐?”
“...어째 용병 놈들은 하나 같이”
백뢰의 오른쪽 눈,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것이 있었다.
룬어 τ였다. 그의 눈알이 전격에 휩싸인다. 그리곤 그의 몸이 모습을 감췄다.
“배려심이라곤 없는지.”
콰직!
패이의 머리 위에 모습을 드러낸 백뢰는 새하얀 창을 던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