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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88화 (88/152)

〈 88화 〉 복수심

* * *

퍼석­!

총탄처럼 회전하며 날아가던 화살은,

끄아아악­!!

정확히 던전의 주인 오른쪽 눈에 명중했다.

놈의 비명이 들려오자 케일과 퀸은 일제히 던전의 벽을 깨부수며 진입했고, 벽 너머에는 두 손으로 눈을 부여잡고 몸부림치는 거대한 괴수가 하나 있었다.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 감히 내 영역에 침범하느냐!!]

자라 같은 머리통에 털이 수북하며 3m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몸통.

녀석의 양 손등에는 제법 날카로운 돌기가 가득했다. 발은 들짐승의 것 같았으며 등에는 튼튼해 보이는 각진 등껍질이 있었다.

“여기 서대륙인데 왜 거북이지?”

“형, 사담은 그만. 지원 사격부터.”

“깐깐한 놈.”

석­ 서억­

케일의 검에 따라 괴수의 털이 붉은색으로 물든다. 일직선의 흉터는 점차 늘어났고, 그 흉터가 겹치는 부분의 털은 더욱 짙게 피에 물들고 있었다.

“흐읍­!”

퍼어엉­!

그곳의 퀸의 정권이 직격했다. 거대한 몸통은 충격에 뒤로 밀려나 벽돌에 처박혔고, 그곳으로 퀸이 점프하곤 달려들어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이번 공격은 조금 성급했다. 아무리 일행이 강해졌다지만 던전의 주인은 만만치 않은 존재다.

[필멸자여!]

놈은 두 주먹을 딛고 몸을 끄응 일으켰다.

[내 등껍질을 맛 봐라!!]

몸을 돌렸다. 그러자 척 보기에도 굉장히 단단해보이는 등껍질이 훤하게 드러났고, 그 안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주먹으로 내려쳐 뚫어내면 그만이다. 혹은 파열권으로 내부에 강한 충격을 줘도 된다. 퀸은 평온한 표정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돌출!]

푸슉­!

그때 퀸이 허공에서 우두커니 멈췄다. 자세히 보아하니 멈춘 몸은 등에서 자라난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있었고, 그녀는 이를 빠득 물며 상처 부위의 가시를 악력으로 깨부쉈다.

“크으윽...”

그녀는 거리를 벌렸다. 온몸에 숭숭 구멍이 뚫린 퀸의 출혈은 상당했다.

[보았느냐 필멸자! 이게 내 자랑스러운 등껍질­]

“반대쪽 눈.”

[크아아악­!! 화살! 또 화살이!!]

쐐애액­ 푸욱­

소리보다도 먼저 주인의 왼쪽 눈에 새하얀 화살이 박혔다.

그는 양눈으로 피를 쏟으며 또다시 몸부림쳤고, 후속타가 명중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 κκκινο γερκι ­ 붉은 매! }”

끼에에엑­!

장이 만들어낸 새빨간 마법진에서 주작과 비슷한 형상의 매가 튀어나왔다.

화염 늑대와 마찬가지로 7서클의 마법. 그 마법이 주인의 몸을 그대로 지나갔고, 한 박자 후에 온몸의 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오징어 탄내가 진동한다. 케일은 코를 틀어막으며 한 손으로 검을 쥐곤 그의 품 안팍으로 재빠르게 진입했다.

[ 태극 류 공격술 제 4식 ­ 만원 통닭 ]

콰가각­!

그녀의 날카로운 레이피어는 주인의 목을 향해 뻗어졌다. 그러나 무언가 푹 찔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금속음이 울려퍼졌다.

[괴롭다! 아프다!!]

“꺅!”

일차원적인 감정을 입 밖으로 내뱉는 주인. 녀석이 손을 거하게 휘두르자 케일은 바닥에 한 바퀴 구르며 나가떨어졌고, 그녀의 검끝은 깨져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요... 근데 검이...”

“어차피 다음 아티팩트는 너야. 몸만 무사하면 됐어.”

장은 차가운 말투로 말하곤 다시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법이 주인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아티팩트를 얻어낼 때에는 그 아티팩트의 주인이 될 용사에게 시련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투기장을 열어라!!]

퀸은 아직 시련을 극복하지 않았다. 눈과 온몸이 피칠갑에 뒤덮이고, 털마저도 그을려버린 주인이 고통스럽게 소리쳤다.

쿠구구구­

그가 신호를 보내자 방의 구조가 바뀐다. 휑하니 뚫린 습기 가득한 벽돌로 된 방의 바닥이 뒤흔들리며 하나둘 분리되더니, 그대로 바닥에 벽돌들은 나뒹굴었다. 벽도 마찬가지다. 무너져내리며 바닥에 뒹굴기 시작했고, 끝내 이곳은 거꾸로 뒤집은 가마솥 뚜껑 같은 내부가 되었다.

“...아이고, 퀸아 화이팅이다.”

“언니! 저거 등껍질 조심해야 돼요!”

“안 들리는 것 같은데? 방음 처리도 되어 있어.”

구조만 바뀐 게 아니었다. 던전의 주인이 던전을 지킬 수 있었던 건 그 존재 자체가 강력해서도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던전에서는 특이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있다.

한 던전학자가 말하길,

던전의 주인이 부리는 능력은 마법, 주술, 오러와는 다른 특이한 개념이다. 마치 고대신이 부활한다면 지니고 있을 법한 터무니없는 능력을 발휘한다.

던전을 지키는 게 그들의 사명인지라 그 위치에서 벗어나지는 못 하지만, 그 공간에 한정해서 그들은 신처럼 전능하다.

[그어어어... 드디여 핏빛 시야가 거둬지는구나.]

주인의 눈에 박힌 화살이 툭, 떨어졌고 그곳에서 짙붉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의 시선이 퀸에게 닿았다. 두 눈은 이미 재생을 마쳤다.

다른 상처도 마찬가지로 짙붉은 연기와 함께 재생되었다. 주인의 몸은 완전한 몸으로 돌아갔다. 되려 그 전보다 더욱 우락부락한 체구와 기세를 내비치고 있다.

[필멸자여. 이제 동료의 도움 따윈 바랄 수 없을 터이다.]

“별로 필요도 없었어.”

[그하하하!! 입 놀리는 건 확실히 수준급이군!]

“언니 조심해야 돼요! 저 탄탄한 등껍질 형태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요! 턱 찔렀을 때도 저 등껍질이 보호해서 제 검이 깨졌어요!”

“케일, 지금 나한테 말하는 건가?”

[신경 쓸 필요 없다. 네년의 동료의 목소리는 내 영역에 닿지 않는다. 이곳에는 너와 나 오직 단 둘이다. 그러니 내게 집중하는 게 좋을 거야.]

쿠구구구­

다시 공간이 진동한다.

[축제를 시작하지!!]

콰과과과­!!

바닥과 벽면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더니 일제히 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피투성이의 몸으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

바비룬은 후욱­ 후욱­ 숨결을 뱉으며 이상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었다. 옆에서 같이 디안이 다루는 수정구를 바라보던 다르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 했다.

“수호대장, 왜 그래? 어디 아파?”

“용사 놈들이 벌써 두 번째 아티팩트도 손에 넣었어... 하아, 그 나만의 작은 용사들이 이렇게나 커버리다니... 나만의 작은 용사들이...”

“농담할 때가 아닌 것 같아. 확실히 성장 속도가 우리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빨라.”

6대 용사가 전송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벌써 이들의 레벨은 500대에 돌입했다. 아티팩트도 순조롭게 2개나 얻었고, 벌써 검술 용사의 아티팩트인 ‘클리브 솔리스’을 향해 북대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바비룬은 순간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용사 일행 때문에 짓는 표정은 아닌 듯했다. 그는 자기 손에 시선이 고정된 채였으니까. 그는 오른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야, 그림자 대장. 검술 용사 던전 위치가 어디라고 했지?”

진 키아라의 부관이자 현 그림자 수색대의 대장 다키아가 말했다.

다크 엘프인 그녀는 종족 특성상 표정 변화가 미미했는데, 이번에는 꽤나 난감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옆자리의 다르칸은 보기 드문 광경이라 생각하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주피아와 피리나스(πυρνα) 사이에 위치합니다. 지도에선 이 반경인데, 진입 절차가 꽤나 까다로워 저희로서는 접근이 불가했습니다.”

바비룬은 오른손 엄지 손가락에 돋아난 살점을 반댓손을 호랑이의 것으로 형변하여 날카로운 발톱으로 뜯어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수호자라도 있디?”

“보고서에 적어 뒀는데... 이번에도 안 보셨습니까?”

“아, 봤지. 맞아. 수호자 있었지. 그래, 응. 설인이었나?”

“화이트 드래곤과 인간이 교배해서 탄생한 용인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절대빙결 참모장님은 꼼꼼하셨는데...”

“다키아야. 혼잣말은 안 들리게 해야지.”

“들으시라고 한 소리입니다.”

“아오, 저 싸가지를 그냥.”

바비룬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깊은 한숨을 뱉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암두시아스는 미소를 띠더니 다르칸의 옆에 있는 여성을 바라봤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15살 정도의 외견으로 보이는 그녀는 제법 영특해졌다.

“디안! 화이트 드래곤이면 그 드래곤 아니야?”

“마왕님,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죠?”

“마이티고스였나? 절대빙결한테 호되게 맞았던 그 용 말이야!”

“...아, 마티고스.”

“마티고스? 그게 누군데?”

“자이키릭의 아들이요. 화이트 드래곤들의 수장이기도 하고요.”

가능성이 높았다. 화이트 드래곤은 자이키릭과 마티고스를 비롯해 몇 안 되는 소수 집단이다.

그들은 자이키릭이 죽은 후 드래곤 로드의 자리를 채울 자가 없어 마왕성 너머의 끝 없는 빙하 지대에서 숨어 지냈다.

누구를 피해 숨었을까? 인간은 아니다. 드래곤과 인간은 서로를 적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드래곤들을 피해 지냈던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기에 드래곤들은 같은 종족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생각은 다르다. 단지 비늘 색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배척하고 때로는 공격한다.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그들만의 문화이지 않을까. 여러 드래곤이 모여 사는 집단은 파라소스를 제하곤 없었으니까.

“그 마티고스는 어디 있는데.”

“언젠가 참모장님이 자이키릭의 빈자리를 마티고스가 채웠다고 말 했어요.”

“옛날 자이키릭 심장 얻었던 데 말하는 건가?”

“맞을 거예요. 드래곤 로드가 되겠다 뭐하겠다 말했으니.”

“...좋아, 출장 좀 다녀온다. 형이 자리 좀 지켜줘.”

“마티고스 만나서 뭐 하려고.”

“부탁 좀 해야지.”

바비룬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악쿤과는 달리 용사를 성심성의껏 키워내야 한다는 언약 따위 하지도 않았다.

“용사들 지독하게 방해 좀 해달라고. 그라고 다키아. 너도 쓸만한 부하 몇 명 데리고 따라와.”

“...알겠습니다.”

“어째 반응이 떨떠름하다?”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투덜거렸지만 두 간부는 회의실에서 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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