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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87화 (87/152)

〈 87화 〉 복수심

* * *

용사가 전송됨과 동시에 ONE(?)은 그들에게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

그것의 이름은 아티팩트. 용사의 전투 방식에 맞춰 가장 최적화된 무기 혹은 물질.

용사의 능력은 아티팩트를 얻기 전 후로 나뉜다는 것은 상식에 가까웠고, 현재 6대 용사 일행 중 아티팩트를 얻어낸 건 궁술 용사 빈이 유일했다.

“이번 던전에서 얻어낼 아티팩트는 퀸. 너가 사용할 건틀렛과 신발이야.”

“정든 물건이었는데, 슬 보내줄 때가 되었나 보군. 근데 말이야... 입구는 어디지? 대답해라 검둥이.”

“끼에! 끼에에!”

“퀸 언니! 바둑이라니까요!!”

흑룡 다타리오. 그의 인도 끝에 도착한 곳은 서대륙 에톰 인근의 해안이었다.

그가 말하길 저 에메랄드 빛 바다 어딘가에 던전의 입구가 있다고 말하긴 하는데, 막상 마주하니 막막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끼룩­ 끼룩­ 갈매기 소리만이 해안에 울렸다. 그 울음소리를 듣자 어째서인지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배...를 일단 구해야 할 것 같은데... 성빈 오빠, 어떻게 못 해요?”

“나 바람 정령 부리는 거 말고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알잖냐. 주술 전문가가 아니라니까. 저는 일개 활잽이에요 활잽이.”

“쓸모 없는 활잽이.”

“여왕 씨, 말씀이 지나치시네? 화살 맛 좀 보면 달라지려나?”

“혼잣말이었는데 들렸나 보군. 사과할 테니 방법이나 찾지.”

둘이 씩씩거리는 사이, 케일은 해안가를 돌아다니며 배를 찾아 나섰으나 어째서인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무슨 날인가? 바다 끼고 있는 마을이니까 어부라도 있어야 되는 거 아니예요?”

“...흠, 수상쩍긴 해. 마을에도 아무도 없을 리가 있나.”

“마왕군 침공이 있었나?”

“그렇다기엔 너무 깔끔하잖아.”

빈의 말대로 에톰의 건물은 멀끔했다. 그 때문인지 더 이질감이 느껴졌다.

바다 속에 있는 던전... 일행 모두 오러며 주술이며 마나이며, 경지가 제법 올랐기에 잠수는 꽤나 오래 할 수 있겠지만, 무턱대고 바다에 빠져 헤엄치고 다닐 만큼 미련하게 행동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은 없었다. 선박에도 배가 없었기에 정말 만들어야 하는지 골머리를 썩고 있을 때쯤 빈이 답답한 분위기를 풀고자 입을 열었다.

“이 마을에는 슬픈 전설이 있었지. 사람만 한 물고기가 바다로 걸어나와 인간을 다 씹어먹었던 그 날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해.”

“재미 없으니 닥치시지.”

“...좀 받아주면 덧나냐.”

“근데 받아주기엔 너무 재미 없긴 했어요. 무섭지도 않고.”

“...너까지 그렇게 말하면 더 상처받아...”

빈이 투덜거리며 바닷가로 걸어갔다. ‘진짜로 뭐가 튀어나와서 사람들 다 잡아먹었을 수도 있잖아...’라고 중얼거리자 퀸은 그를 한심하게 바라본 후 케일을 데리고 해안을 한 바퀴 또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때였다.

촤아악­

“으악!! 야, 야!! 내 말 맞잖아!! 뭐가 있다니까!!”

바다 속, 무언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도 건물 한 채는 넘을 크기, 그 거대한 크기의 무언가는 바닷물에 뒤덮여 형체를 보이지 않았기에 일행은 저 정체 모를 무언가에 대적하기 위해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었다.

“끼에! 끼에!!”

그때 다타리오가 작은 날개를 열심히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곤 그 형체의 무언가를 향해 소리쳤다.

“검둥! 뭔 소리 하는 거야, 드디어 찾았냐니? 찾긴 뭘 찾아! 위험하니까 물러서기나 해 이 멍청한 도마뱀아!!”

“끼에에? 끼에에에!?”

“너 아까부터 누구한테 말하는 거냐니까!!”

“누구긴 누구야.”

소리치는 빈을 밀치곤 퀸이 성큼성큼 물기둥을 향해 걸어갔다.

그 물기둥이 푸쉭­ 소리와 함께 수분을 수증기로 만들어 사방으로 날렸고, 거대한 형태의 무언가가 존재를 드러냈다. 퀸은 말했다.

“한심한 활잽이. 동료도 못 알아채다니.”

“...아이씨. 말을 하지. 놀랐잖아. 진짜 괴물인 줄 알고.”

“그거 아직 포기 못 했어요?”

“너도 검 들고 내 뒤로 숨었잖아. 피차일반 아니야? 그보다 검사가 왜 궁수 뒤로 숨냐? RPG게임 안 해봤어?”

“...흠, 크흠! 저도 순간적으로 놀라가지고요.”

일행은 무기를 거뒀고, 거대한 형체에서 인영이 하나 빠져나왔고, 그것은 둥실 떠오른 채 말했다.

“무거워서 옮기느라 시간 좀 걸렸어.”

“어디로 사라졌나 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단독 행동 많이 하냐?”

“미안해. 그냥 질질 끌기 싫어가지고.”

인영의 정체는 어느 순간 사라졌던 장이었다. 그는 젖은 머리칼을 손으로 탈탈 털고는 반대손을 휘휘 저으며 비킬 것을 권했다. 그 태도에 빈은 더 불만을 토하려다가 그가 마나로 붙들고 있는 게 꽤나 무거워 보이기에 입을 다물고 위치에서 벗어났다. 장은 손을 휘둘렀다.

콰아앙­!!

거대한 형체는 건물이었다. 그 건물을 해안가에 집어던졌고, 모래가 요란하게 피어오르며 먼지를 자아낸다. 바람과 오러로 각자의 몸을 지켰기에 콜록이는 자는 없었다.

“퀸, 너한테 맞춰진 던전이니까 네가 잘 해야 돼.”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지혜도 퀸이랑 같이 전방에 서. 나랑 성빈 형이 뒤에서 보조한다. 포지션은 정해졌고, 당부해야 할 사항 하나. 던전 진행하는 중 지혜가 냄새 난다고 신호하면 일시 정지. 더 말 안해도 되지?”

“던전 깨부수는 게 하루이틀이냐. 아마추어 같이 왜 이래?”

“그래, 질질 끄는 거 싫으니까 입구부터 찾아.”

해조류가 덕지덕지 붙은 건물, 석재 벽돌로 이루어진 그 건물은 마치 신전 같았다.

하지만 실상 진입하기는 꽤나 까다로웠다. 이곳에는 입구가 없었다.

“뒤에도 없어!”

빈이 말했다. 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은 웬만해선 파손하는 거 아니랬는데, 별 수 없나.”

“너 지금 뭐 하냐?”

치이익... 그의 손에 붉은 마법진이 휘감긴다. 그 마법진의 가운데에는 ρ ­ 폭발 룬 문자가 거대하게 적혀 있었다.

“다 비켜.”

“야, 야!”

치이이이...!!

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법진은 터질 듯 빛을 내뿜는다. 장은 손을 앞으로 척 뻗었다.

“입구가 없으면 만들어야지.”

*

던전을 파손해서 안 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던전이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 붕괴의 이유는 건축학이나 중력 따위의 개념이 아니다. 던전은 크게 분류하자면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다.

어느 한 곳에 이상이 생기면 던전의 핵은 스스로가 위험하다 판단하여 방어책으로 스스로를 무너트린다. 던전을 파손한 이유가 단순한 던전의 파괴였다면 되려 좋은 수단이 되겠지만, 그 속에 있는 아티팩트나 금은보화를 목표로 한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다.

“너 점점 괴팍해지는 거 알고는 있냐?”

실시간으로 무너져내리는 던전 속을 달리고 있었다. 빈의 바람 주술 덕분에 속도는 붙었지만, 여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그대로 건물에 깔려 압사당할 것이다.

“무슨 상관이야. 던전의 주인을 빨리 죽이고 아티팩트만 얻어내면 탈출은 손쉬워. 차원석을 구비해뒀거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조금만 신중했어도 순조롭게 깰 수 있었다고!!”

“지금도 빠듯하진 않잖아. 우리는 더 시간을 아낄 필요가 있어. 여기서 아티팩트를 얻어도 두 던전이나 더 돌파해야 돼. 형 아티팩트 던전처럼 어물쩍 거리면서 시간 낭비하는 거 이제는 질색이야.”

“급하면 체한다고 인마.”

“요령껏 먹으면 안 체하지.”

구구구구­

던전이 빈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듯, 요란스럽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붕괴의 징조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진행중이었고, 어떤 던전이더라도 거대한 충격이 있지 않는 한 붕괴가 급속도로 가속되는 일은 없었으니까. 저 멀리에서 느껴지는 진동은 다른 문제였다. 그 문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전방에 악취!”

“고리타분한 함정 반대! 야이 던전 주인 새끼야! 창의력이 그렇게도 없냐?!”

거대한 철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뒤에는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고, 옆길은 없다.

사면초가. 이대로 쥐포가 될 신세에 놓이자 일행의 다급함은 곱절이 되었다.

“호들갑 좀 그만 떨어.”

치이익­

장은 발을 끌며 급정거하곤 양손을 동그랗게 모으곤 마나를 불어모았다.

“λκο φλγα ­ 화염 늑대 ( υ , τ )”

크르륵­!!

마법진에서 짙붉은 늑대의 머리부터 꾸득꾸득 튀어나왔고, 그것은 철구를 향해 돌진했다.

송곳니를 들이세우며 달려들었고, 그 철구와 격돌하자 그대로 짓뭉개질 것 같던 늑대는 온전했고, 철구는 처참하게 녹아내려 바닥에 시뻘겋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 그 마법 뭐냐?”

“나중에 말할게. 그보다 뒤.”

하지만 시간이 조금이나마 지체되었기에, 붕괴되는 잔해물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쿠구구구­! 바닥과 천장이 동시에 무너진다. 발을 디딜 곳이 사라진다. 균형을 잃었다. 빈이 바람의 정령을 부려 떨어지는 잔해물은 어떻게든 붙들었다지만, 급기야 퀸과 케일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 발판.”

하지만 이런 난관을 수없이 헤쳐왔던 일행이다.

장은 침착하게 자신의 마나 속성에 ‘η ­ 반전’ 룬 문자를 뒤섞어 냉기 마법을 펼쳤고, 떨어지는 잔해물을 모두 얼음으로 엮어 굉장히 불안한 형태의 발판을 만들었다.

이제부턴 케일과 퀸의 능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몸놀림에 있어서 이들은 장과 빈이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른지 오래였기에, 이들은 가볍게 발판을 딛고 도약하여 다시 위로 올랐다.

간발의 차이로 모두가 무사했다. 이들은 녹아내린 철구 사이로 몸을 숙여 들어갔고, 뒤를 돌아봤을 때에는 이미 붕괴는 코 앞에서 멈춘 상태였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일행은 지겹도록 잘 알고 있다. 퀸은 손에 감긴 붕대를 더욱 꽉 죄였다.

“이 앞에 던전의 주인이 있는 모양이군.”

“얌마 퀸, 너 방금 죽을뻔한 주제에 왜 이렇게 침착해?”

“호들갑 좀 그만 떨라니까. 지금 형만 시끄러워.”

“호들갑 안 떨게 생겼냐? 다 죽을뻔 했어!”

“우리 이제 이 정도로는 안 죽어요. 오빠가 괜히 정신 사납게 말 하니까 우리까지 급해지잖아요.”

“너, 너 이지혜 이 자식... 너는 나처럼 쫄보 듀오였잖아. 어느새 성장한 거야.”

“형이 정체한 건 아니고? 아티팩트에 정신 지배 마법이 걸려있을지도 모르겠네. 다음에 넬피 공주님 찾아뵈야 하려나.”

“헛소리 마. 초심 유지 중이니까. 그보다 아까 마법 뭐였냐고. 그거 붉은 늑대.”

“7서클 되니까 쓸 수 있더라고. 어딘가의 대마법사가 마법 정리를 아주 잘 해뒀어. 그 사람 아니었더라면 아직도 5서클 쯤이지 않았을까. 언젠가 한 번 보고 싶네.”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며 앞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어어어.....

일정 범위에 들어서자 일행 모두가 멈칫했다.

어느새 레벨 500을 넘긴 지라 모두가 탐지 수단 정도야 겸비하고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예민한 케일이 빈에게 조용히 말했다.

“음... 오빠 지금 위치에서 우측으로 15°에서 20° 정도 꺾어요.”

“이만큼?”

“네. 이제 살짝만 위로 올려요. 진짜 살짝만.”

“음... 됐나?”

“네, 쏘면 정확히 오른쪽 눈에 맞아요.”

“오케이, 하나, 둘, 셋. 하면 쏜다. 다들 준비해.”

치이이익... 장의 주변에 붉은 마법진이 넘실거렸고, 퀸과 케일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고 벽에 몸을 기댔다.

“하나... 둘...”

빈이 활을 당긴다. 그의 아티팩트가 맹렬한 칼바람을 머금고 요동친다.

“셋. 뿅!”

앙증맞은 신호와는 달리,

콰직끈! 콰직끈!! 콰지지직!!!

빈의 화살은 모든 걸 찢어버릴 기세로 날아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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