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신살법(???)
* * *
신을 죽이는 방법.
첫 번째, 그의 육체를 무력하게 만든다.
두 번째, 그의 정신을 무력하게 만든다.
세 번째,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강력한 공격으로 단숨에 죽인다.
“이게 가능한 건 너희 둘이야. 오러와 마법이 지닌 특성이라고나 할까.”
줄은 주황빛으로 가득한 어느 공간에서 선생 코스프레라도 하는 건지 고리타분한 정장을 입고 말을 이어갔다. 앳된 외모 때문인지 꽤나 이질감이 있었다.
“역접적이게도 몸 쓰는 놈들이 사용하는 기(?)는 정신과 연관되고, 중장거리에서 마법을 폭격하는 나 같은 놈들이 사용하는 마나는 육체와 연관되어 있지.”
악쿤의 심장에 손을 얹었다.
“심장은 주축일 뿐이야. 그곳에서 마나를 전신으로 흩뿌려 마법진을 만들어내는 거야. 알고 있지?”
악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이어진다.
“기에 대한 건 사실 나는 잘 몰라. 그저 정신력에서 파생되는 마나와는 다른 자원이라는 것 밖에. 하지만 전문가가 있지.”
휘익♪
줄이 휘파람을 불자 저 멀리에서 인영이 하나 다가온다.
“선수 입장! 모두 쌍수들고 환영해주세요! 할망구 용사님 납십니다!”
“...입을 닥치는 게 좋을 거야.”
주황빛 머리칼,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외모. 얼굴에는 상흔이 여럿 있었지만 결코 추하지는 않았다. 전신을 가죽 갑옷으로 뒤덮은 그녀는 다르칸을 보곤 흐음 고개를 갸웃했다.
“...홀라?”
“나를 아는가?”
“아닙니다. 그저 얘기를 많이 들었을 뿐이라...”
“싱겁기는.”
초대 용사이자 검성으로 불리는 초월자. 줄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그녀는 허리춤에서 차분하면서도 우아한 동작으로 검을 뽑았다.
그 간결한 동작마저도 어딘가 공포가 느껴졌다. 검의 경지에 있어서 극에 달한 자이기 때문인지, 오러가 아니더라도 풍기는 아우라가 심상치 않았다.
“자자! 본격적인 수련 시작이야! 옛적 악쿤 너 가르쳤던 때처럼 챕터를 나누어줄까?”
감상이 이어지기도 전, 줄의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주황빛 공간에 울린다.
악쿤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생각했다.
‘안 봐도 눈에 훤하지. 홀라는 다르칸에게 검을 휘두를 것이고, 나는 스승과 마법으로 전투를 펼치겠지.’
살짝 긴장한 표정, 손에 땀이 맺힌다.
마왕성에서는 단박에 제압되었지만, 마력 장벽을 펼치고 싸운다면 그토록 무력하게 당하진 않을 터. 버거운 싸움이 되겠지만, 에이브(AYV)를 죽일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싶어 각오를 다졌다.
“이미 예상했지? 챕터 1은 우리는 각기 나눠져 이 시간도, 공간도 무한정한 램프 속에서 전투를 펼치는 거야.”
역시나.
혼잣말을 내뱉으며 다르칸과 시선을 교환했다.
악쿤은 천천히 마법진을 그렸고, 다르칸도 시커먼 기와 황색 기를 뒤섞으며 홀라에게 검을 치켜세웠다.
“근데 시작도 안 한 지금, 너희에겐 벌써부터 지적할 점이 있구나.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됐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평소처럼 다르칸은 검을 꽈악 잡았다. 자신의 검술은 홀라의 것을 보고 배운 모방에 불과하기에 각오를 다져야 했다. 오러로는 밀리지 않을지언정 검술 자체로는 급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지레 겁 먹은 채였다.
“썩은 뿌리는 빨리 없앨수록 좋은 거지. 너희가 지금 뭘 잘못했는지 알려줄게.”
줄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다르칸과 악쿤을 바라보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라보는 곳이 틀렸어.”
빠직......!
줄의 전격이 다르칸을 뒤덮었다.
쐐애애액!!
홀라의 폭풍을 머금은 검격이 악쿤에게 맞닿았다.
*
“어때, 해볼만 해?”
“.......”
멀쩡한 줄과 홀라와는 달리 두 사천왕은 대자로 누워 주황빛 천장만을 바라봤다.
휴식의 용도로 만든 여섯 번째 잿빛 램프. 확실히 온몸의 피로는 금방 풀렸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마저 회복할 수는 없었다.
‘...또 쪽도 못 쓰고 당했다.’
다르칸은 줄의 마법을 겨우 쳐내기만 반복하다가 끝내 지쳐 마법에 노출되었고, 그 순간부터는 샌드백 그 이상의 기능을 해내지 못했다.
악쿤은 다가오는 홀라를 떨쳐내고자 자신의 경험을 살려 블링크도 써 보고, 강렬한 냉기를 대기에 흩뿌려보기도 하고, 함정을 바닥에 설치해보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고자 노력했지만, 홀라는 그 모든 걸 미래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가볍게 타파해내 검등으로 악쿤을 마구 내려쳤다.
분함에 치가 떨린다. 그보다는 두려움일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너희는 강해.”
멍하니 누워있는 터라 얼굴은 못 봤지만 줄의 목소리였다. 신나서 복날 개 잡듯 팬 주제에 잘도 말한다 생각했지만 그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마력 수치나 기의 정도로만 보면 우리와 동급이야. 악쿤 너는 9서클, 나 또한 9서클. 할망구는 그랜드 마스터. 검 쓰는 사천왕 씨도 그랜드 마스터지.”
“할망구니 뭐니 한 번만 더 입에 올리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정정할게. 할망구가 아니라 누님으로. 하여간 분야는 다르더라도 각기 최정점에 선 동등한 존재끼리 어째서 이렇게 일방적인 결과가 나왔을까. 당연하겠지만 경험의 차이야. 너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는 이미 초월자였어. 메이블이나 토텔리 따위 비교도 안 되는 극악무도한 노젤루스 새끼를 상대로 싸워 승리한 존재였다고.”
줄은 분한 표정으로 부들부들 몸을 떠는 악쿤에게 다가갔다.
“너는 마법사가 오러 유저를 상대할 때의 대처법은 확실히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수가 모두 읽혀버리니 미칠 지경이지?”
악쿤에게서 다르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도 마찬가지야.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내게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든 건 확실히 칭찬할만해. 근데 말이야. 나라고 그걸 모를까. 내가 아무리 잘나봤자 오러 유저에게 거리를 주면 당연히 불리하지. 그러니 거리를 내줄리가 없잖아? 나도 목숨이 하나인 걸.”
간단한 공식이다.
마법사는 오러 유저에게 거리를 주면 안 된다. 오러 유저는 마법사에게 거리가 벌려져선 안 된다.
그 공식대로 행동했다. 하지만 상대방은 그 공식을 타파했다. 오로지 실력으로, 경험으로 찍어눌렀다.
뭘 어쩌란 말인가. 당연하게도 더 강해지라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챕터 1이라고 했지? 다음 챕터로 가기 위한 조건은 간단해. 우리는 이제부터 10분씩 전투를 치룰 거다. 다르칸 너는 나에게 3번 이상 접근할 것. 악쿤 너는 홀라에게 3번 이상 거리를 주지 않을 것.”
말로는 무척이나 간단하지만, 쉽지는 않으리라 자연스레 예상되었다.
줄의 전격 마법이 까다로운 점은, 그는 전격을 아주 미세하게 조종하여 위력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신경까지 감전시킨다. 그의 마법에 조금이라도 스치는 순간에는 몸에 남은 미세한 전류가 저 스스로 증폭하여 그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준다. 다르칸은 접근 전에 줄의 공격에 단 한 번이라도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홀라의 접근을 막을 수 없던 이유는 노련한 경험 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지닌 괴팍한 오러에 있었다. 그녀는 초월자로 등극한 후 바람의 정령과 계약을 맺었다. 그것도 그냥 정령도 아닌 정령왕 에리얼(Ariel)과 말이다.
그 정령왕은 홀라를 지극히도 아껴 안 그래도 강한 그녀의 오러를 바람으로 휘감아준다.
그 바람은 때로는 방패가 되며, 때로는 가속도를 더해주는 부스터가 된다.
미칠 지경이었다. 이동 경로는 예측하더라도 체감상 빛만큼이나 재빠른 속도를 따라잡는 건 정말 곡예나 다름없는 수준의 묘기다. 그를 터득하기 전까지는 검등에 얻어터질 게 지당하여 절로 골머리가 아파왔다. 그보다 아픈 건 온몸이었지만.
“스승이자 용사 선배님의 가르침이다. 잘 따라오도록!”
줄이 허리춤에 손을 척 얹곤 가슴팍을 피며 말했다.
저 가슴팍을 발로 걷어차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전기 통구이가 될 것이다.
“그러니 잘 좀 해봐들. 얻어맞기 싫으면.”
아직도 온몸에 검은 김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다르칸과 시퍼런 멍자국이 가득한 악쿤.
이들을 보며 줄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손바닥에 주먹 밑을 탁 치곤 말했다.
“아 참. 휴식 시간은 3분이다.”
시계를 바라봤다. 전투가 끝났던 건 10시 24분.
그리고 지금은...
‘10시 27분...?’
묘한 기척에 고개를 드니 달려드는 홀라가 보였다.
*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두 사천왕은 도저히 챕터 1을 넘기질 못했다.
‘...격차가 이토록 심하다고?’
이쯤되니 자존감이며 자신감이며 모든 게 무너질 것만 같다.
악쿤은 홀라의 전투 패턴을 분석하여 마법 영창 방식도 바꾸어봤지만 결코 그녀를 막아낼 수 없었고, 다르칸도 줄의 마법의 경로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양 발에 오러를 집중해봤지만 그의 공격 범위와 시야는 굉장히 넓었다.
‘장애물이라도 있다면 변수라도 만들 수 있겠지만,’
이곳은 허허벌판이다.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장소. 그저 조그마한 램프 속.
잿빛 램프의 주인이자 이 공간의 지배자인 줄이 원한다면 지형을 바꾸거나 여러 장애물이 생길 수 있겠지만, 그는 절대로 장애물따위 허락하지 않았다.
평지에서의 전투. 그것만을 고집했다.
그 고집의 이유도 알고 있었기에 불만을 표할 수는 없었다.
“알려나 모르겠는데 에이브(AYV)는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알다마다. 직접 겪어본 기억도 있다.
새하얀 공간에서 속수무책으로 놀아났던 그날은 다시끔 떠올려도 간담이 서늘하다.
‘시그니처를 사용했을 때만큼은 압도한 줄 알았지만...’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는 마치 갓난아기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여유 가득했다.
악쿤은 그에게 자그마한 상처조차도 남기지 못했다. 줄은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지. 그는 마나, 오러, 주술마저도 다룰 줄 알아. 그것도 수준급으로. 마법으로 예를 들자면 나보다 나을 수도 있어.”
에이브(AYV)의 전능함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줄도 당해봤기 때문일 것일 텐데, 줄이 누군가에게 놀아나는 그림은 악쿤으로서는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이 공간은 에이브(AYV)의 공간과 최대한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고, 첫 번째 챕터는 신을 죽이는 방법 첫 번째와 관련있지. 그의 육체를 무력하게 만들어야 조금이라도 신살에 가까워질 수 있어. 그러니 우리한테 쩔쩔매서는 곤란하다는 거야. 적어도 혼자서 우리 둘을 가지고 놀 수준은 돼야 에이브(AYV)의 육신을 쓰러트리지.”
두 사천왕은 조용히 고개를 주억였다. 한 구절도 허투로 들어서는 안 됐다. 이 훈련이라는 일방적 폭행을 통해 자신들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으니까.
다르칸이 그걸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실렉티스 시절의 그는 장난감처럼 에이브(AYV)에게 놀아나기만 했고, 악쿤을 통해 겨우 문신을 지워냈지만 그 이후로는 거짓말처럼 모든 기억이 삭제당한 후였다.
그 이후 카넬루아를 통해 에이브(AYV)를 만났을 때에 격분한 채 검을 휘둘렀지만 우스꽝스러운 몸부림에 불과했다.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깊게 잠에 들은 채였다.
“말하다보니 3분이 지났네.”
줄은 영차 소리와 함께 일어나 넥타이를 고쳐맸다.
그 옆의 홀라는 조용히 검을 지치켜세우고 악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시작.”
램프 속이 오러와 마법으로 강하게 요동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