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 최초의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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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낯선 언어를 가르치던 20대 중후반의 사내.
남영선, 집 안에서 배달되는 음식으로 삶을 연명하던 제법 잘 나가는 사업가의 포기한 아들.
임성진, 고등학교라는 곳에서 괴롭힘을 받아 등교를 거부하던 조금 음침한 학생.
이들을 점 찍었다.
[김진영이라는 사내는 마법사로서의 자질이 뛰어나군. 저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이 상당해.]
[남영선이라는 사내는 고질병을 앓고 있군. 천식이라고 불리던데 조금만 힘을 쥐어주면 날라다닐 거다. 오러 개념을 다루는 게 좋겠군.]
[임성진이라는 아이는 저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꿈꾸고 있다. 그가 자주 보는 만화들도 비슷한 내용이더군. 다른 세계에 전송된 전송자가 영웅이 되어 삶을 역전하는 그런 이야기를. 비록 재능은 없지만 ONE(?)에 데려다놓으면 누구보다도 간절히 본인을 갈고닦을 터.]
케다시를 가리켰다.
[이 무리에 자연스레 섞여라. 이 어쓰(Earth)라는 행성인에 걸맞게 행동해라.]
“...예전 세대보다 더 어려운 주문을 하시네요.”
[너는 똑똑하니까 금세 익숙해질 거다. 그리고 조력자는 상당히 준비했다. 너와 카티골이 열심히 움직여준 덕분에 내 수족이 늘어났다는 거지.]
전 용사 세대부터 전대륙에 실렉티스는 암세포처럼 숨어 있었다.
각 대륙의 주 정치층부터 드래곤이나 요정 같은 고위 종족까지. 종족에 구애받지 않고 에이브(AYV)의 이야기 완성을 도울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두 종류였다.
에이브(AYV)에게 자진해서 충성을 맹세한 자들 에텔론티코스(εθελοντικ).
사실 이들 중 태반에게 ‘자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종족의 평화나 대륙의 평화를 위한다면 에이브(AYV)를 도울 것을 권했으니 협박에 가까웠다. 물론 에이브(AYV)의 전능함을 깨닫고 먼저 고개를 숙인 자들도 있었기에, 결국 단합력이 좋으리라는 걸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자진이라는 표현을 써야 다른 종류의 실렉티스를 설명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의식도 잃어버린 채 에이브(AYV)의 꼭두각시로서 움직이고 있는 자들 롤로스(ρλο)다. 대부분 에이브(AYV)에게 굴하지 않겠다 주장했으나 그의 힘을 이겨내지 못해 정신이 파괴된 자들이었지만 에텔론티코스였으나 에이브(AYV)가 새겨둔 뱀 모양의 낙인(문신)에 잡아먹혀 의식을 잃어버린 자가 롤로스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나 정신력이 나약해져 정신이 오락가락해질수록 문신에 잡아먹히는 경우가 많았다.
나약해진다는 건 나이에만 국한된 표현이 아니었다. 어떠한 계기로 무너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전 용사가 그러했다.
카티골을 제외한 용사 일행 중 두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에 자아가 무너졌고, 이들은 완전히 에이브(AYV)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사천왕이자 장난감 병정이 되어 있었다.
다른 두 사천왕의 자리를 메꿔야 했다. 그리고 이들은 악마와 몬스터로 대처했다.
하나는 웨어울프 중 가장 지성도 짙고 힘도 강한 그들의 두목 루나릭(Lunalic).
하나는 2위 악마이자 노인의 외형을 하고 있는 아가레스(Agares).
이들을 지배하는 건 3대 마왕 아스모데우스였다.
그녀를 필두로 3대 마왕군은 완성되었고, 어쓰(Earth)라는 곳에서 강제로 ONE(?)에 전송된 3명의 용사는 김찬호 브룩이라는 이름의 드루이드 용사와 함께 남대륙 대마장의 집무실에 전송되었다.
[세 용사가 사용할 이곳에서의 이름은... 저들이 정하게끔 두는 게 좋겠군.]
그들은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국왕과 대마장의 지독한 권유 끝에 이름을 정했다.
김진영은 메이블 토진이라는 이름을,
남영선은 토텔리 프리온이라는 이름을,
임성진은 긴이라는 이름을.
이렇게 4번째 용사이자 3번째 마왕군에 대응할 용사들은 준비를 마쳤다.
*
에이브(AYV)는 이들을 전송자라 칭했고, 이들은 ONE(?)의 주민이 아니었기에 어항 속에 자신을 가둔 물고기가 아닌 드넓은 바다를 활개치는 생기 넘치는 물고기처럼 한계가 없는 성장력을 보여줬다.
홀라, 줄, 피아가 아닌 전 세대 용사들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레벨 상승폭이 높았고 어쓰 지구에는 없는 개념인 마나와 오러, 주술 등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린다는 점을 빼면 이들은 완벽에 가까웠다.
메이블 토진의 경우에는 마법을 다루는 센스가 굉장히 탁월했다.
두 속성의 마법을 섞어서 사용하는 복합 속성 마법을 곧장 이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화염 마법을 강화시켜 더 질 높은 불꽃을 구사하는 걸 봤을 때에는 그에게 마법을 가르쳤던 대마장 헤인켈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만치도 놀랍지만 그의 특기는 이게 아니었다.
마법진을 끝에서부터 거꾸로 영창하여 그에 걸맞는 마나를 불어넣으면 아예 무(無)로 돌려버리는 기술인 역산. 감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뇌가 깨질 것만 같은 기예에 가까운 기술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다. 마력과 시간만 따라준다면 초월자인 줄조차도 넘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텔리 프리온의 경우, 그는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특히나 오러 상승치가 굉장히 더뎠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두 번째 경지인 소드 유저의 오러를 터득한 건 이례적인 일이 맞았지만 냉정히 말해 메이블 토진의 성장력에 비하면 주목받을 만한 정도의 성취도는 결코 아니었다. 이건 메이블이 너무 뛰어난 탓도 있었다.
그의 그림자에 가려져 토텔리는 기대받던 용사는 아니었다. 메이블만이 모두의 기대를 한껏 받고 어깨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토텔리가 의도치 않게 본인의 가치를 증명시킨 사건이 있었다. 서대륙의 소드 마스터가 토텔리를 실컷 얕보고 오러를 두르지 않은 순수 검술 대련을 신청했을 때였다.
“...짐의 눈이 잘못된 건가?”
실렉티스이자 서대륙의 국왕인 아들러 프리브룩스가 입을 내둘렀다.
토텔리는 물 흐르듯 매끄러운 몸동작으로 소드 마스터를 검술로 압살했다.
물론 둘 다 오러를 두른 대련을 펼쳤더라면 소드 마스터의 몸에 흠집조차 낼 수 없었겠지만, 오러를 다루는 자에게 있어 검술은 기본기와 마찬가지다. 그 기본기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소드 마스터를 고작 소드 유저가 이겼다는 것은 전대륙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면 마지막 긴은?
그는... 가장 보잘것 없었다.
그는 오러를 다루는 것도 아니며, 마법이나 주술을 다루는 것도 아니다.
수련을 거듭하여 세 성질의 것 모두 다 조금은 다뤄낼 수는 있겠지만, 사천왕과의 전투에 써먹을 수준은 아니다. 있으나 없으나 그의 강함에 보탬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때문에 그는 역대 용사 중 최약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다. 그걸 뒤엎을 수 있을만한 포텐셜은 없다. 그의 유일한 특기라봐야 순간적으로 양발에 마나를 흘려넣어 가속하는 것 뿐이니까.
제아무리 레벨을 올려도 그는 재빠르기만한 용사일 뿐이니까.
허나 발상의 전환이었는지, 긴은 모두가 예상치도 못하게 그 특기를 끝없이 갈고닦아 소드 마스터조차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운 보법을 완성했다. 용사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은밀히 이동하여 적의 등을 찌르는 암기 용사가 탄생한 것이다.
그는 지독히도 모자란 자신의 공격력을 보충하기 위해 독과 폭탄 제작 및 무기 세공술도 갈고 닦았다. 무척이나 예리한 단도를 집어던지며 몬스터를 사냥했고, 기척을 숨기는 기술을 연습하였다.
긴은 어찌 보면 가장 비루한 재능을 지녔음에도 끝없는 주제 파악과 생각, 그리고 노력 끝에 용사 일행에 없어서는 안 될 감초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주 좋아. 어느 하나 모자란 녀석이 없군.]
에이브(AYV)는 첫 번째 용사들 만큼이나 이들을 마음에 들어했고,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메이블 일행이 아주 뛰어난 용사인 만큼이나 마왕 토벌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사천왕이 있다.
아스모데우스를 알현하기 전, 과거 용사이자 현 사천왕을 연기하는 카티골은 그럭저럭 케다시에게 쓰러지며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또 다른 과거 용사는 긴과의 싸움에서 순수 실력으로 밀려 패배했다.
다른 두 사천왕도 마찬가지다.
루나릭과 아가레스도 무척이나 강인한 몬스터와 악마지만 이번 용사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토텔리의 오러가 담긴 검술에 두 동강이 났고, 메이블의 진득한 화염에 뒤덮여 잿더미가 되었다.
“네년만 죽이면 ONE(?)에는 다시끔 평화가 찾아오겠지.”
“저 여자가... 만악의... 근원...”
“힘들었어, 정말이지.”
“그래? 나는 괜찮았는데.”
네 명의 용사가 아스모데우스를 보자 각기 내뱉었던 첫 마디이다.
너무나 평안한 모습의 그들을 보기도 전부터 꽤나 격분한 아스모데우스가 악에 받쳐 외쳤다.
[...비루한 운명을 지닌 자들이여.]
“비루한 건 당신이지, 왜 우리가 비루하다는 거지?”
“비루하긴 하지... 나 지구에서 재벌가였다고 말... 했었나...? 아무튼간... 여기 와서 개고생이잖아......”
“너는 웬만하면 입 열지 말라니까. 답답하다고.”
“...너무하네......”
메이블과 토텔리가 시시덕거리며 아스모데우스의 말에 반응하고 있었고, 아스모데우스는 그것에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그녀가 온몸을 벌벌 떨며 두 주먹을 꽉 쥐고 마기를 풀풀 방출하는 것은 현 용사에게 분노해서가 아니다.
‘......다 나만 두고 어딜 간 거야.’
비록 빌어처먹을 에이브(AYV)가 맺어준 인연이라지만, 몇 년간이나 동고동락해왔던 동료가 모두 죽었다. 그것도 용사를 지지하는 인간들에게 질타를 받으며 말이다.
그들을 따르던, 아스모데우스를 따르던 몬스터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용사에게 모두 죽었다.
그리곤 역사서에 기록될 것이다. 악독했던 3대 마왕군은 용사의 손에 해치워졌다고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죽인 현 사천왕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고, 전 마왕군에게 대적했고, 시간이 흘러 새로운 마왕군의 간부가 되었다고.
당신들도 같은 운명을 지녔다고. 그 옆에 있는 브룩이라는 드루이드가 사실은 신을 먹은 에이브(AYV)의 아들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모조리 죽여주마!!]
허나 마경의 평화를 위해선,
현 용사들에게 아무런 말을 뱉을 수 없었다. 허튼 소리를 뱉었다간 브룩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케다시가 즉시 에이브(AYV)에게 보고할 터이다.
아스모데우스는 죽는 그 순간까지 악역을 연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강했다.
4명의 용사를 상대로 십여 분을 버텨낼 정도로 강했다.
어찌 보면 이건 그녀의 분노였다. 처절하리만큼 애처로운 전투에 용사들은 꽤나 고전했다.
하지만 끝내,
카가각
토텔리의 검에 어깨가 관통되었고,
촤아악!
브룩의 발톱에 등짝이 찢어졌다.
푹.
긴의 단검에 눈알이 푹 찔렸고,
치익... 치이익.....
메이블의 마법에 온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메이블이 말했다. 그녀의 삶을 동정하기라도 했던 건지, 조금은 상냥한 어투였다.
아스모데우스는 이미 기능을 잃어버린 시야 때문에 목소리의 방향만을 바라봤다.
허망한 표정으로 메이블이 있을 곳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과는 달리 그녀는 피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오른팔을 뻗으며 말했다.
[그대들의 삶에... 부디 평화가 오길...]
툭.
그녀의 오른팔이 부들부들 떨리곤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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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다음 용사들이다.]
화면 속에는 후드티라 불리는 옷과 항공점퍼라는 이름의 외투를 입은 20대 남자와 청자켓에 군데군데 찢어진 검은 바지를 입은 마찬가지로 20대의 남성이 있었다.
그 다음 화면에는 정장을 입고 술을 연신 마시며 깊은 한숨을 내뱉는 20대 후반의 남자가 있었다.
이들을 가리키며 에이브(AYV)는 말했다.
[이번에는 어떤 용사를 연기할 거지? 카티골.]
“암기 용사입니다. 긴처럼 저 세계에서의 고등학생을 연기할까 합니다.”
이름은? 에이브(AYV)의 질문에 카티골은 나지막히 대답했다.
최세린, 그리고 진 키아라.
라고. 이번에 연기할 용사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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