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최초의 수집가
* * *
케다시와 카티골은 큐(Q)의 사체를 수습했다.
하지만 에이브(AYV)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체이든 뭐를 얻어내든 복수를 이룬 만큼이나 허망감만이 그를 휘감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무기력함에 빠져 있었다.
심연에 있었던 그 시절보다도 더 생기 없는 표정에 괜히 케다시와 카티골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어떻게하면 에이브(AYV)가 기뻐할 수 있을까에 대해 극진히 고민했다.
수백년이 흐르고 나서야 케다시와 카티골이 내린 답은 오락에 관련한 것이었다.
[나더러 인간들의 삶을 관찰하라고?]
침착한 카티골은 준비한 말을 뱉었다.
“예, 아버님. 비록 그들이 미개할지라도 그들의 삶은 다채롭고 행동거지는 꽤나 변칙적입니다. 한 명에게 관찰 마법을 걸어두고 구경한다면 제법 좋은 유흥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점찍어둔 이가 있는가?]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들은 지도자를 내세우며 사회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각을 드러내는 이는 남대륙에서는 ‘이코’라는 나라를 이끌고 본인을 왕이라 칭하는 ‘노젤루스 라 파리에르’. 드물게 빛 마법을 사용하는 인간으로서 치유와 신체를 강화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나 전쟁에서 그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빛 마법을 변형시켜 요정족의 축복과 비슷한 ‘빛의 세례’라는 신체 강화 마법을 완성했고, 그 마법을 걸어둔 군대를 필두로 큰 승리를 거두어 작은 지역을 나라, 대륙 단위로 성장시키고 있는 우수하고 수완이 넘치는 인간입니다.”
[뭐,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만 인간들의 전쟁은 흔하고, 그들의 무력은 나와 형제자매에 비해 너무나도 낮지.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봐야 악마 한 명만 풀어두면 그에게 잡아먹힐 터, 그럴 바에 악마를 ONE(?)에 다시 푸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제안은 고맙지만 그들의 전쟁은 내게 오락거리가 되지 못해.]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 이는 장난기 넘치는 케다시였다. 이번만큼은 장난기를 거두고 있었다.
“그래서 한 가지만 더 제안하려고요. 노젤루스에게 능력을 쥐어주고, 그에게 대적하는 인간을 세워두어 저희가 조종해 싸움을 붙인다면 재밌지 않을까요?”
[그들을 싸움을 붙인다라? 투견이랑 다를 게 뭔가.]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거예요. 가령... 노젤루스에게 힘을 쥐어주어 천하를 손에 넣게끔 한 후 무난히 대륙을 통치하게 만들어요. 그리곤 아버지가 그 녀석을 찾아가는 거죠.”
주먹을 관자놀이 위치에 가져가곤 입으로 ‘푸슥’ 소리를 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에이브(AYV)가 보기에 마치 뇌를 잡고 으깬다는 제스처 같았다.
“그리곤 미친 사상을 주입하는 거죠. 가령... 인간을 모두 마나로 변환시켜 이코국의 영원한 번영을 이루게끔 한다던지?”
[그걸 막아서는 인간을 만들자는 건가?]
“네. 3명 정도가 괜찮지 않을까요?”
케다시가 손짓하자 카티골은 점찍어둔 인간을 알려줬다.
“현재 노젤루스의 밑에서 마법군 장관을 맡고 있는 아콜드 프리브룩스.”
“그와 마찬가지로 노젤루스 밑에서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단을 이끄는 홀라 파티킬리아.”
“그리고 동대륙 파라소스에서 용족을 이끄는 레드 드래곤의 수장 블레드.”
말을 마무리했다.
“이들이 적합합니다.”
[흠...]
“계획이 마음에 드십니까?”
[생각보다 괜찮을 건 같군. 그 계획이라는 건 언제 실행하는 거지?]
“지금부터입니다.”
피슉
카티골의 손짓에 맞춰 창판의 몸을 뜯어먹은 케다시가 흑색 차원문을 열었다.
“노젤루스에게 힘을 주면 계획은 가속됩니다.”
*
힘을 얻은 노젤루스가 전대륙을 통합하고 ONE(?)을 하나로 만들었다.
신은 모두 죽었고, 몬스터도 그에게 대적할 바가 못 됐다. 악마만이 그에게 대적하기 유일했지만 그들은 지옥에 있기에 ONE(?)은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하고픈 걸 모두 할 수 있다. 권력의 맛에 취해 기이하거나 괴팍한 정치를 해도 모두 용인된다. 어느 누구도 그의 세력을 막을 수 없으니까. 그가 천하를 거머쥐고 있으니까.
하지만 노젤루스는 어진 왕이었다.
그는 전대륙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쳤고, 언제는 직접 민가에 방문해 부상자를 빛 마법으로 치유해주거나 가난한 지역에는 식량을 지원을 해주는 등 국민들에게 인기도 상당했다.
모두가 그를 찬양했다. 이코는 평화로운 나라였다.
그러나 평화는 지속되지 않았다. 사건은 노젤루스가 민간 마을에 방문했을 때였다.
어느 아이가 그에게 싸구려 쿠키 하나를 건넸다. 본인의 간식이었는데, 노젤루스 덕에 부모가 병을 고쳐 은혜를 갚고 싶어서 몰래 꽁쳐뒀다가 노젤루스를 보자마자 주머니에서 꺼내 건넸던 것.
지저분한 쿠키였다. 흙먼지 가득한 주머니에 있었기에 청결할리가 없었다.
하지만 노젤루스는 과자를 받았다. 그리곤 아이를 보며 빙긋 웃었다.
“정말 고맙구나. 짐을 이토록 생각해주다니.”
그 시각 아이의 부모는 왕에게 서슴없이 다가간 자기 자식이 혹여나 무례하게 굴까 노심초사하며 노젤루스의 행렬을 둘러싼 인파에 다가갔지만 다행히도 노젤루스가 인자한 표정으로 쿠키를 받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짙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노젤루스는 말했다.
“이건 보답이다.”
퍼석
한순간. 노젤루스의 손이 샛노란 빛줄기에 휘감겼고, 아이의 머리가 수박을 떨어트리듯 한순간에 박살나며 붉은 피와 살점을 거리에 튀겼다.
“...에일?”
“꺄아아악!!”
비명이 거리를 뒤덮었고 아이 부모의 무릎이 절로 꿇리며 주저앉았다.
허망한 표정으로 아이의 이름만을 되새기는 부모를 보자 노젤루스가 그들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콜드, 홀라. 내가 나서기보단 그대들이 내 검과 지팡이가 되어 힘 써주길 바라오.”
내키진 않았지만,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노젤루스다.
그토록 현명하고 어진 노젤루스가 민간인을 학살하라는 건 숨은 뜻이 있지 않을까.
대마법사 아콜드는 지팡이를, 홀라는 검을 꺼냈다.
“...본부대로.”
아콜드와 홀라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여럿의 목숨이 잘려나간다.
꾸득 꾸드드득
거리는 아콜드의 얼음 마법에 지배되어 모조리 얼어붙었고, 그 가운데에서는 거대한 얼음 장미가 조용히 봉우리를 띄고 있었다.
퍼석
홀라의 검이 역광을 받아 휘둘릴 때마다 핏줄기가 동시에 솟구쳤고, 이미 그녀의 갑주는 피로 뒤덮여 있다. 그 모습은 마치 귀신 같았다.
이 날은 매드킹의 탄생이자 최초의 초월자의 탄생이라고 불린다.
매드킹 탄생의 실상은 노젤루스가 케다시와 카티골의 정신지배를 받아 인간을 멸종시켜 무로 되돌리리라 다짐한 날이었다. 세계 멸망은 시작되었다.
*
이코군에도 균열은 있었다.
특히나 아콜드와 홀라는, 시간이 흐를수록 계획은 진행되었으나 세계 평화를 위한다던 노젤루스의 말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죄 없는 자들만 죽어난다고 생각됩니다. 저들이 어찌 반란을 꿈꾼단 말입니까? 어찌 검은 속내를 감추고 있단 말입니까? 너무나 나약한 국민일 뿐인데.”
“왕이시어, 대답해주십시오. 저와 마법군 장관은 감히 왕의 뜻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깨우쳐주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될 걸세. 서두르지 말게.”
“아니요. 지금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그대들은 끝까지 날 따라와주리라 믿었건만 이렇게 배반을 할 줄은 몰랐는데.”
싸아
그 의구심에 여러 근거를 지닌 채 반박하자, 노젤루스는 그들에게 닿는 모든 걸 소멸시키는 빛 마법을 펼쳤고, 아콜드와 홀라는 간발의 차로 도망쳤다.
“다음은 동대륙이다.”
이렇게 두 주 전력이 탈영했음에도 매드킹 노젤루스의 행보는 멈출 줄 몰랐다.
그의 손에 죽은 사람만 보더라도 이로 말할 수 없다. 평화나 사랑이라는 단어가 아닌 학살과 절망이라는 단어가 그의 뒤에 따라붙기 시작했다.
물론 전세계에 그의 악명이 떨쳐졌다. 자연스레 그에게 반하는 반란군도 생겼다.
하지만 그의 군대는 아콜드와 홀라가 없어도 강했다. 반란군은 노젤루스에게 너무나 간단히 제압되었다.
홀라나 아콜드도 이제라도 그를 막아서야겠다 생각했지만, 그 둘이서는 역부족이었다.
그의 빛마법은 닿는 즉시 무기물 유기물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소멸시켜버리는 신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그보다는 마신이라 칭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조용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때 큐(Q)를 받드는 신관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했다. 절대악 매드킹 노젤루스를 막을 용사가 필요하고, 그 용사는 당신들이라며.
그리곤 한 명이 더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파라소스에 있는 용족의 수장 블레드가 그 용사라며 말이다.
“그와 힘을 합쳐야 해요.”
“어리석은 소리. 그는 인간을 증오한다는 걸 자네도 알지 않는가.”
홀라는 블레드를 당장이라도 찾아가야 한다 생각했고, 아콜드는 결사반대했기에 우여곡절 둘의 의견 충돌은 존재했으나 결국은 블레드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노젤루스를 막으려면 맞불이라도 질러야겠다는 걸 아콜드가 인정한 거였다.
[더러운 인간들이여! 무덤으로 걸어들어왔구나!!]
하지만 아콜드의 예상대로 블레드는 인간에게 증오가 가득한 채였다.
노젤루스 이전 동대륙을 지배하던 왕이 이미 파라소스를 쑥대밭을 만들고 그의 자식까지 죽어버린 채였으니 말이다.
당연한 것처럼 아콜드와 홀라, 그리고 블레드는 격돌했다.
그들의 싸움은 수없이 많은 밤낮이 바뀔 동안 지속되었고, 마침내 블레드는 이들을 인정하곤 전우로 삼았다.
하지만 그는 협력할 생각은 없었다.
두 전우는 믿을 수 있지만, 다른 인간들을 위해 본인의 힘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무슨 우연의 일치인지 그때 제발로 노젤루스가 차원문을 열어 파라소스를 찾아왔었다.
블레드는 말했다.
[네놈이 매드킹인가?! 또 내 동포를 학살하려 든다면 나도 서슴없이 네놈을 잿더미를 만들어주마!!]
아콜드는 말했다.
“노젤루스 씨, 한때는 왕으로 모셨지만 이제는 당신을 막아서게 되다니. 거 참, 삶이라는 게 야속해. 그러니까 착하게 좀 살지 그랬어.”
홀라는 말했다.
“저 또한 제 검이 당신을 막아설줄은 몰랐습니다.”
세 용사 후보는 서로 하던 행동을 멈추고 당장에 노젤루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케다시와 카티골의 손아귀 안이었다.
신관은 테다리아의 몸을 뜯어먹은 카티골의 변장이었고, 파라소스에 노젤루스를 의도한 건 그의 옆에서 새로운 마법군 장관인 하이큘이자 창판의 심장을 뜯어먹은 케다시가 의도한 것이었다.
그들은 에이브(AYV)에게 말했다. 용사와 매드킹은 이곳에서 격돌한다.
어느 한 쪽은 죽을것이며, 이 순간을 위해 흘러온 사건의 경위는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과정 자체에 재미를 부여했다.
꽤나 유치하지만 에이브(AYV)는 이 선역, 악역 놀이에 꽤나 재미를 느꼈다.
케다시와 카티골도 그것에 만족했다. 에이브(AYV)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벌레와 다름없는 인간따위 수백, 수천, 수만이 죽어나가도 아무렇지도 않다.
불쌍하게도 최초의 용사들은 두 신 포식자가 에이브(AYV)를 만족시키고자 판을 짰다는 것도 모른채 서로 죽일듯 싸웠다.
결과는 노젤루스의 승리였다.
“...자네라도 도망쳐라.”
[원통하다! 원통하다!! 나는 네놈들을 평생 저주할 거다!! 비록 지금은 죽을지언정 간밤의 악몽이 되어 죽을때까지 네놈들을 괴롭히리라!!]
아콜드는 그의 빛줄기에 몸이 잘려 턱과 몸이 분리된 채 죽었고, 레드 드래곤 블레드는 날개가 모두 잘려나가 이코군에게 온몸이 결박되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억... 허어억......”
홀라는 간발의 차로 겨우 탈출했다. 순간적으로 아콜드가 차원문을 열어준 덕이였다.
그렇지만 온전한 몸은 아니었다. 그녀의 출혈은 상당했다.
어깨와 허벅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온몸에는 이코군이 남긴 검흔이 가득했다.
온몸은 노젤루스의 흑마법에 당해 시커먼 기운이 가득했고, 두 눈도 그의 빛 마법에 멀어 실명에 가까워졌다. 사물 분간도 꽤나 어려운 상태였다.
이때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눈의 기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홀라는 곧 죽어도 당연한 몸이었다. 되려 지금껏 도망친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빛 마법이 아니었더라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터. 초점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복수를... 이루지 못하고......”
홀라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옆에 누군가가 없더라면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한줌 흙에 가까워진다.
그녀의 몸이 기운다. 땅이 점차 가까워진다. 쿵 그녀는 지팡이 삼던 검을 놓치자 쓰러졌다.
[여기서 인기척이...]
하지만 아콜드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가 차원문을 연 곳은 그린 드래곤, 정령, 요정이 살고 있는 비이린이었으니까.
쓰러진 홀라를 보고선 상급 빛의 정령 이그니스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인간이 어째서 비이린에 온 겐가!! 그보다 이 상처는 무어란 말인가!]
가장 뛰어난 요정인 카넬루아가 한심하다는 듯 이그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그니스님. 귀가 아파요. 조금만 조용히... 환자 앞이잖아요. 치유부터 하셔야죠.”
[그, 그렇지! 카넬루아의 말이 맞네! 그, 그런데 누가 치유한단 말인가?! 그린 드래곤 베이리프! 지, 지금 이 인간 여성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당황한 어투의 이그니스. 그를 향해 그린 드래곤 베이리프가 짜증 가득한 표정을 내세우며 말했다.
[치유는 빛 마법 분야인데 당연히 네가 치유해야지. 멍청한 놈아.]
홀라가 살기 위해선 외상이 지독했기에 이그니스의 치유는 필수적이었다.
끝이 아니다. 노젤루스의 흑마법의 검은 기운도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기에 카넬루아의 축복이 그의 흑마법을 거둬내야 했다.
하지만 이 치유를 받기엔 그녀의 기(?)가 많이 없었기에 몸이 버틸지 의문이었기에 그린 드래곤의 정기가 필요했다.
[어지간히 운 좋은 계집이군.]
다행히 이그니스, 카넬루아, 베이리프는 인간을 싫어하지 않았기에 그 모든 걸 홀라에게 쏟아부었다.
노젤루스를 이어 두 번째 초월자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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