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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68화 (68/152)

〈 68화 〉 시간 역행Ⅱ

* * *

디안이 미리 차원문을 만들어둔 덕에 재빠르게 마왕성으로 복귀했다.

허나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은 조그만치도 없었다. 되려 공포가 느껴진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내 양손과 몸이 벌벌 떨리고 있다.

“크아아악­!!”

부하들의 비명 몇 줄기가 울린다. 하늘은 천둥번개를 머금은 먹구름이 가득했고, 저건 골칫거리의 전력의 절반도 안 되는 마법임을 알고 있다.

“왜 이제 왔어 개새끼야­!”

“윤상! 빨리 이 사람 좀 말려줘!!”

그 마법에 대적하는 자는 이재홍과 김철수. 외상이 깊지는 않지만, 온몸이 번개에 노출당해 볼품없기는 했다.

사내가 힘조절을 했음에도 사천왕 중 두 명이 그에게 밀리고 있었다는 거다.

“여!”

그 남성이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손을 붕붕 휘둘렀다.

금보다도 더 짙은 노란색 머리칼. 촌스럽다고 그렇게나 말했음에도, 또한 마지막으로 본 지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특유의 기름진 올백 머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고, 그에 맞춰 몸집도 왜소하다. 외모조차도 10대 소년쯤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나이는 드래곤처럼 세기를 관통하는 존재이니 외견에 속아서는 안 된다.

“인마, 얼굴 좀 펴!”

겉과 속이 다른 늙다리가 말했다.

그에게서 풍기는 존재감은 이 마왕성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거대했다.

쩌적­ 쩌적­

파지지직... 파직. 파직...

하늘은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으르렁거렸고, 사내의 온몸에서는 눈에 보이는 샛노란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 오랜만이잖아! 잘 지냈냐!”

“오랜만입니... 아니,”

하마터면 그의 페이스에 휘말릴 뻔했다.

“이곳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안부차 온 거지. 그나저나 너 부하라는 놈들은 내가 기껏 찾아왔는데 다과는 못 내올 망정 덤벼들고 있더라? 대신 정신 교육 좀 해줬다.”

마왕성 근처에는 전격에 지독하게 당해 쓰러진 몬스터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에 내 눈빛과 표정이 노골적인 분노로 바뀌었다.

“요놈 눈빛 봐라? 너까지 혼나고 싶어?”

“제 부하들을 해친 겁니까?”

“그랬다면 어쩔래, 덤비기라도 할래?”

“...마왕군에게 대적하는 자라면 아무리 당신이라고 한들 제 적입니다.”

쿠릉­ 쿠르릉­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저 영역이 사내가 마나로 지배하고 있는 부분이다.

“어쭈?”

싸아아아......

그 영역의 절반을 강제로 빼았았다. 예전이었더라면 상상치도 못 했을 일이지만, 이제는 나도 머리가 컸다는 건지 대기의 주도권을 얼추 가져올 수 있었다.

“간덩이가 부었어 아주 그냥. 사춘기라도 찾아온 거야?”

그는 피식 웃으며 날 도발한다. 대기 지배 영역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마나 힘싸움에서 내게 밀릴 남자가 아니기에 나는 이를 빠득 깨물며 대마장을 상대할 때도 쓰지 않았던 자이키릭의 심장을 꺼내 오른 손에 쥐었다.

“수호대장님? 저 사람은 혹시...”

디안이 이재홍에게 다가갔다.

온몸이 시커멓게 그을린 채였다. 폭탄을 맞은 것 같은 머리는 이런 상황에 말할 건 아니지만 제법 우스꽝스러웠다.

하아.

그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 맞아.”

메이블조차도 가지고 놀았던, 대마장씩이나 되는 존재를 열등감에 찌들게 한.

과거 ONE(?)을 구해낸 영웅 중 한 명, 본인을 전격 마법 그 자체라고 자칭하는 전설의 대마도사가 내 앞에 있었다.

“스승이 찾아왔는데 반겨주긴커녕 마법진을 들이대? 딱밤 한 대 맞으면 정신이 좀 돌아오려나?”

줄.

그가 내게 딱밤이라는 이름의 시그니처 마법을 겨눴다.

하늘이 쪼개지고, 그곳에서 거대한 황색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심에서 무언가 꾸득꾸득 나오고 있었다.

“1대만 맞자. 얘기는 그 다음에 하고.”

“...세상에.”

디안의 감탄은 당연했다.

마법진에서 나오는 건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다.

콰드드드득......!!

전격으로만 구성된 샛노란 주먹. 그 주먹이 내 이마를 노리고 메테오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

“어때, 정신이 좀 들어?”

“...왜 찾아온 거냐니까요.”

마왕성과 내 부하들이 파괴돼서는 안 됐기에 방어막을 굉장히 광범위하게 펼쳤고, 그 결과 내 몸까지 건사하기는 꽤나 힘들었던 지라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그 기절한 내 몸의 볼을 장난스럽게 툭툭 건드려 깨운 건 지독한 괴짜 스승인 줄이었다.

그는 이미 다 넘겨진 올백머리를 다시 넘기며 소년처럼 웃었다.

“부하들 안 죽였다고 몇 번을 말하냐. 슬슬 얼굴 좀 풀라니까. 그리고 스승이 제자 한 번 찾아오는 게 그렇게 잘못됐냐? 왜 이렇게 사춘기 소년이 엄마 대하듯 틱틱거리는 거야.”

“참나, 찾아오지 말라고 단단히 못 박아둔 게 어디 사는 누구입니까.”

“못 본 사이에 싸가지가 많이 없어졌네. 꼴에 9서클 달성했다고 기고만장해가지곤 뺀질뺀질 거리는 거 우습다 우스워.”

그는 끄응 허리를 피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마왕성에서 떨어져나온 거대한 돌덩이을 발견했다.

그 돌덩이로 성큼성큼 다가가곤 신발 밑창에 마법진을 둘렀다.

그 상태 그대로 돌덩이를 발로 차더니 그 부분에서부터 눈 뜨기도 힘든 방대한 전격이 폭탄처럼 터졌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의자가 필요하더라고.”

외견상 10대 소년이 나이를 운운하는 건 꽤나 이질적인 광경이었지만, 본인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노인처럼 허리를 퉁퉁 두드리곤 전격에 파괴되어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돌덩이에 앉았다. 연기가 조금 사라진 다음 보니 꽤나 고급스러운 모양의 의자였다.

“아무튼 잘 지냈냐?”

“어째서 찾아오신 거냐니까요. 안부차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줄은 사람을 싫어한다. 나도 출신은 다르지만 본질은 인간인지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몬스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집단을 싫어한다고 봐야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한때 가르쳤던 제자가 마왕군 참모장인 게 심기에 거슬렸겠지.

“우리 제자놈 얼굴 보니까 옛 생각이 나네. 때는 바야흐로... 7년 전이던가? 그때쯤 제자로 받아달라고 엉망진창이 되어서 찾아왔었지. 내쫓아도 끈덕기게 따라오던 게 얼마나 귀찮았던지... 그래도 그때는 귀여웠는데 지금은 귀여운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네. 재미 없는 녀석.”

“결국 다시 내쫓았잖습니까.”

“사내 자식이 옛날 일 가지고 아직도 삐져가지곤.”

그는 돌 의자가 딱딱했는지, 표정을 찌푸리며 일어나 엉덩이를 매만졌다.

“푹신한 데에 앉아야 쓰겠다. 너 방으로 안내 좀 해봐라. 마왕이라는 애도 좀 데려오고.”

시간상 암두시아스는 마왕성 꼭대기에서 곤히 잠들어있다.

마나 장벽을 설치해뒀기에 줄이 요란하게 난리를 쳐도 그녀는 미동도 없었을 터.

반대로 줄은 내 마나 장벽 너머의 암두시아스를 눈치챘다. 역시 이 남자쯤 되면 어떤 마법을 쓰든 벌거벗겨진 기분이 든다.

“맞아, 걔는 어디 갔어? 드루이드랑 검사는 지금 부하들 치료하러 간 거 알고는 있는데, 한 명 더 있었잖아. 단검 던지던 애.”

그는 다른 한 가지를 또 눈치챘다.

마법사인들 예민한 오러 유저이든 알아차릴 수 없는 귀신 같은 여성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진 키아라 말씀이십니까?”

“그래. 맨날 밤하늘보다 시커먼 아우라 풀풀 풍기던 여자애 말이야.”

“잠시 임무 나가 있습니다.”

용사들이 공략할 수 있는 던전 점검 및 아티팩트 위치 확보.

최세린은 현재 서대륙을 들쑤시고 있다.

“그나저나 예전 사천왕들마저도 그녀에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아우라는 무슨 말씀이십니까.”

“있어 그런 게. 너는 어려서 말해줘도 몰라.”

그는 날 비웃곤 방으로 데려가달라 말한 주제에 앞장서서 마왕성으로 들어갔다.

저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었지만 뒤에도 눈이 달린 것 같은 사내이기에 속으로 고개를 흔들곤 재빨리 그의 뒤를 쫓았다.

“별 짓을 다 하고 다니더라. 마탑 건설하곤 잘 사는듯 했는데 데미투 영주 살해이며, 몬스터 해방이며, 검 쓰는 친구랑 쌈박질도 하더니.”

“다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렴 그러시겠죠. 사실 애들 싸움은 관심도 없고, 마왕군은 왜 또 만든 거야? 언제는 마왕을 죽일 힘을 기르고 싶다고 내 바짓가랑이 붙잡았던 주제에.”

“부탁은 했지만 바짓가랑이 붙잡은 기억은 없는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간 유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요. 쯔쯧.”

그는 마왕성을 처음 방문했을 터인데,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어느 방 문을 열었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역시.’

나는 감탄을 겨우 삼켰다. 기가 막히게 내 방으로 곧장 찾아온 것이다. 동선마저도 아주 깔끔하게, 마치 마왕성 내부를 꿰뚫고 있다는 듯이.

“여기서 너 마나 향기 풀풀 느껴지더라. 못 찾아오는 게 등신이지.”

그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의문에 답해주곤 마나를 조작해 문을 쾅 닫았다.

농담이나 주고받으러 온 것도 아닐 텐데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장난스러웠다.

“놈은 어떻디?”

“누구 말씀이시죠.”

“누구긴 누구야. 너 골머리 썩게 하는 녀석.”

“대마장 헤인켈? 아니면 새로운 용사를 말하는 겁니까.”

“넌 나를 아직도 모르냐. 그런 머저리들은 관심도 없다는 거 알잖아?”

줄은 척 하고 하늘을 가리켰다.

“에이브(AYV). 그 아웃사이더 녀석 말이야. 요즘 말로는 아싸라고 하던가?”

“......”

“머리 굴리지 마. 그냥 있는대로 말해. 다 알고 온 거니까.”

“...하아. 그래, 속일 사람을 속여야죠.”

나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차피 숨겨봤자 어떻게든 알아낼 사람이다.

*

에이브(AYV)에 관련한 얘기.

그와의 언약 등 내게 불리하게 다가오는 것들을 얘기했고, 마왕군을 부활시킨 것과 새로운 용사를 기르는 얘기 등을 쏟아냈다.

제법 긴 얘기였지만 구구절절 말할 수고는 덜었다.

줄을 이 이야기에 끌어들여도 될까 고민하고 있을 때에 그가 내 생각을 앞서나가 먼저 말을 꺼내 망설임을 없애준 덕이다.

곁다리 같은 얘기는 모두 생략하고 대화의 속도를 올렸기에 과거 회상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고 끝났다.

“그럼 암두시아스 그 꼬마애는 잘 알지도 못하고 데려온 거였어?”

“예. 진 키아라가 어떻게든 데려오고 싶어하길래 저도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현세로 데려왔습니다.”

“세상에, 내 제자라지만 이 정신머리 나간 놈 좀 봐라. 이그니스 그 양반은 뭐라고 안 하디?”

“난리도 아니었죠.”

“너 그짝한테 안 죽은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 그리고 너는 내 기대를 언제나 저버리는 구나. 나는 마왕군 부활까지 다 계산하고 데려온 줄 알았는데 그 모든 게 단순한 우연이었다니, 널 과대평가한 내가 멍청이지.”

머쓱함에 잠시 시선을 피했다.

말마따나 암두시아스를 마왕으로 만들고자 데려온 게 아니다. 최세린의 떼를 못 이겨서 데려왔는데 마침 그녀가 마왕 역할로 제격이였던 거다. 단순한 우연이 맞다.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가? 어찌됐든 대책 없다는 건 잘 알겠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충분히 부끄러우니까 채찍질은 그만 하시죠.”

“그래 못난 놈아. 아무튼 내 제자가 구멍가게 하나 차렸다는데 선물이라도 하나 보내야지 않겠냐. 그거 때문에 찾아온 거야.”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손톱보다도 조그만 무언가를 꺼냈다.

후­ 그 무언가에 입김을 불어넣자 급격히 비대해진 그 무언가는 손바닥을 다 덮을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책?”

책상에 올려둔 걸 마나를 조작해 내게 밀었다.

“나중에 읽도록 하고, 이 위층이 마왕 있는 곳이지?”

“예, 맞습니다만.”

“{ 전격 }.”

파지직­!

쿠구구구......

샛노란 전격 한 출기가 천장을 관통했고, 그 중심부터 무너져내리더니 거대한 구멍이 되었다.

나는 황당함에 줄의 얼굴을 바라봤으나, 어깨를 으쓱하더니 마나를 조작해 천장 잔해를 허공에 둥실 띄우곤 계단처럼 올라 위층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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