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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67화 (67/152)

〈 67화 〉 차원포(???)

* * *

난폭하게 이글거리는 녹빛 불덩이는 모든 걸 집어삼킬 것처럼 보였다.

그 불덩이는 천천히 나와 디안에게 다가오고 있다. 위력을 대폭 상승시켰으니, 저 공격은 첫 번째 방패를 대동한다 하더라도 온전히 막아내긴 어려웠다.

하지만 등가교환은 필요한 법.

위력을 대폭 상승시킨만큼 불덩이의 다가오는 속도는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렸다.

[죽음이 다가오는구나 악쿤 토든!]

허나 다행이라고 여길 성질의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헤인켈의 부하인지, 남대륙 마법사 연합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지독한 중력 증가 마법에 의해나와 디안은 팔 뻗는 것조차도 어려울만큼 끙끙거리고 있었다.

“...허어, 허억...”

항마력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메일리의 영주처럼 터져서 죽었다.

숨 쉬는 것도 버겁다. 금방이라도 장기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끄, 끄으으... 정면 승부로는 이길 수 없으니까 잔챙이들을 대동했습니까 헤인켈...!”

나는 악을 쓰며 말했다.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여러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저 멀리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불덩이와 헤인켈을 바라보며.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군. 네놈은 전송자가 아니었더라면 벌레만도 못 한 존재다.]

“노망난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 건 당신이겠지...! 아직도 내 스승을 향한 질투심에 눈이 멀었나? 나를 죽인다고 달라지진 않아 영감탱이!”

내 스승이자 3대 세력 중 한 명인 줄.

헤인켈은 그를 증오한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씻을 수 없는 굴욕을 받았기 때문이다.

[저, 저놈이? 뭣들 하는가! 계집과 악쿤의 몸을 더 강하게 짓눌러라! 멋대로 떠들고 있잖은가!!]

정곡이 찔리자 얼굴을 붉히곤 큰소리쳤고, 그 기세와는 달리 마법사들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치이이이...

화염구가 머잖아 건물에 닿는다.

한시라도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며, 이미 건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대피한 후이다.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건 예정되었다는 거다.

이들은 우리를 제압하기 위해 만발의 준비를 마쳤고, 우린 보기 좋게 덫에 걸려들었다.

참모장과 그의 부관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로 되어 있었다.

“{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

우리가 무능했더라면 실제로 그랬겠지.

“{ ρξτε ζρια(주사위 던지기). }”

슈우우­

디안의 마법진에 짐어삼켜진 화염구는 하수구 물 빨려가듯 사라지더니 다른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럴 수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ㅇ­]

헤인켈의 바로 옆이었다.

...!!

거대한 폭음과 함께 메일리의 하늘이 녹빛 화염으로 물들었다.

*

“크아아아악!!”

장은 불끈 주먹쥐곤 무전기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그 옆에는 무장한 세 용사가 함께했다. 이들 모두가 분한 심정을 거두지 못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지금 투입하면 안 되냐니까!!”

“지시가 올 때까지 대기하라는 대마장님이 말씀이 있었습니다.”

빈의 질문에 차분히 대답한 여성은 이번 차원포 제작에 가장 공헌한 6서클의 마탑주였다.

이름은 레이지아. 마탑의 이름은 별의 마탑.

용사 일행은 별의 마탑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마왕군 참모장 악쿤 토든과 그의 부관이 힘이 빠진 순간 나타나 이들을 물리치고 경험치를 회수하기 위한 대기였다.

“다른 마법사가 죽고 있잖아!! 모두가 우릴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레이지아님... 너무 괴로워요. 짐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보내주시면 안 되나요...?”

케일이 가장 불안정했다.

툭 건드리면 터질듯한 얼굴의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국경에서 봄버와 포이즌 슬라임에게 당했던 인부들이 생각났는지 조금 헛구역질을 하곤 의자에 몸을 기댔다.

“검술 용사님. 그 상태로 말씀하신들 설득력이라곤 없습니다. 독희에게 당했던 걸 잊어버리신 건 아닙니까?”

“그 지독했던 광경은 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강해졌어요. 바둑이를 통해 여러 던전을 공략했고, 그때에 비해 레벨도 많이 상승했어요! 분명 전력이 될 거예요. 그러니 제발... 하나 둘 죽어가는 게 여기까지 느껴진단 말이에요... 제발...”

“...하아.”

레이지아는 한숨을 내뱉곤 눈을 감으며 조용히 어떤 물건을 던졌다.

그걸 받은 건 장이었다. 그녀는 장에게 눈짓하곤 조용히 마탑에서 벗어났다. 그에 맞춰 장은 고개를 내려 손에 들린 물건을 바라봤다.

‘차원문 마도구?’

“서클 4이시니 마도구쯤이야 가동할 수 있을 겁니다. 가서 뭐... 알아서들 하시죠. 대마장님께는 제가 줬다고 말하진 마시고.”

“...감사합니다 레이지아님.”

마나를 불어넣자 일렁이는 차원문이 만들어졌고,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둘 건너갔다.

그곳은 아비규환이었다.

여럿 마법사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으며, 그들은 모두 장이 아는 얼굴이었다.

“내 팔! 내 팔이...!!”

마법진을 더 빠르게 회전시키는 법을 알려줬던 4서클의 마법사 듀리낙은 괴성을 지른다.

“커, 커헉... 커허억...”

원하는 마법 서적을 찾아 도서관을 뒤적거리자 조용히 뒤에 나타나 찾던 책으로 머리를 퉁 쳤던 장난기 많은 나라디악이 뭉텅이로 잘려나간 목을 붙들고 죽어간다.

“......”

말이 많아 수련에는 방해됐지만, 술자리에서는 누구보다도 재밌던 동갑내기 견습 마법사 사이키온은 심장에 구멍이 뚫린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더는 수다를 떨 수 없었다.

“장... 왜 벌써 왔는가... 아직 제압이 끝나지... 않았는데...”

장에게 마법을 알려줬던 스승, 서클 7의 대마법사이자 해의 마탑주인 펙튼 포르시아.

때로는 엄하게 꾸짖었고, 때로는 마법은 몸으로 부딪혀야 깨닫는 거라며 마법을 폭격했고, 때로는 대련을 빙자한 폭력을 행했고, 언제나 방황하던 장을 바로잡아주던.

은인이 얼음 창에 고슴도치처럼 관통된 상태였다.

그는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눈에 초점은 점점 풀리고 있었으며, 온몸에서 질질 흐르던 피는 바닥에 붉은 점을 툭툭 찍는다.

그의 자랑이었던 하얗고 기다란 수염은 볼품없이 잘려나갔다.

“스승님.”

“장... 이게 마지막 가르침이 될 것 같구나.”

하늘에 고고히 뜬 채 대마장과 마법을 폭격하고 있는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저 자가 참모장입니까?”

“마음을 추슬러라... 아니, 도망쳐라. 네가 지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저 자가 스승님을 해쳤습니다.”

“쿨럭! 마, 마지막 가르침이다. 잘 새겨듣거라.”

피를 토해낸 펙튼은 후들거리는 손을 겨우 뻗어 장의 볼을 만졌다.

붉은 피가 그의 볼에 얼룩졌다. 펙튼은 떨리는 몸과 목소리로 말했다.

“크흐... 부디 분노에 잡아먹히지 말거라. 언제나 이성적으로 판단해라... 너는 욱 하는 게 나쁜 버릇이야.”

“말을 아끼세요. 벌써 제 곁을 떠나시려는 겁니까...? 아직 배우지 못한 게 산, 산더미처럼...”

“장... 훗날을 도모해라. 내 복수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산더미처럼... 많은데...”

툭­

펙튼의 오른손이 떨어졌다. 그는 고개를 처박았고, 느껴지던 마나가 서서히 사라졌다.

“으아아아아­!!”

장은 소리치며 마나를 터트렸다. 주황빛 마나가 대지를 휘감았고, 그에 바닥에 있던 시체들이 서서히 밀려나간다. 그에 허공에서 마법을 폭격하며 헤인켈을 밀어붙이던 악쿤 토든이 고개를 내려 사내를 바라봤다.

‘...벌써 그 경지에 도달한 건가.’

서클 5.

138이라는 레벨에 비해서 굉장히 높은 서클이었다.

[본좌를 앞에 두고 감히 한눈을 팔다니­!!]

“당신은 좀 조용히 해봐.”

싸아아아­

하늘에 검은색 차원문이 열렸고, 그곳에서 무언가가 달려들어 헤인켈을 노렸다.

〔 Κλαση κυνηγσκυλο ­ 지옥의 사냥견 〕

크르렁­!!

동굴처럼 깊은 포효, 그곳에는 머리 세 개 달린 기괴한 괴수가 침을 흘리며 온몸에 화염을 머금고 있었다.

당분간은 저 마법으로 헤인켈을 묶어둘 수 있기에 한순간에 성장한 마법 용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옆에는 세 용사가 각기 무기를 치켜들고 악쿤 토든을 노리고 있었다.

‘세린이에게 지독하게 당한 지 석 달은 됐어. 제법 강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너무 수준이 낮아.’

그는 첫 번째 방패를 다시 귀걸이의 형태로 바꾸어 장착했다.

저들에겐 방패도 과분하다. 일반적인 방어막마저도 충분하다못해 과하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

“끼에!!”

근거는 있다. 용사 옆에 떠다디는 흑룡.

카이루스의 아들 다타리오이다.

과거 다르칸이 다크 드래곤의 둥지를 습격했을 때는 따지고 들자면 용사들이 다크 드래곤들에게 빚을 하나 진 것이다.

카이루스가 말하길, 그 빚을 갚고 싶거든 자신의 아들에게 넓은 세상을 구경시키라고 말했다.

용의 나이로 치자면 갓난애기에 불과하지만, 실제 나이는 서른이 넘는데 혼자 보내기엔 걱정된 걸로 추정된다.

‘과보호야. 그들의 수장이자 카이루스의 아비인 타나토스(피아)는 15살 때부터 기사단 생활을 했던 걸로 아는데.’

하여간,

그 다타리오는 마왕군이 심어둔 스파이이자 용사에게는 가이드이다.

악쿤 용사 세대 때는 넬피에게서 얻어낸 지도를 바탕으로 던전을 공략해왔다면, 이번 세대 용사는 다타리오가 인도하는 길에 따라 던전을 공략한다.

서로 좋은 것이다. 우리는 용사의 위치를 언제나 파악할 수 있기에 좋고, 저들은 성장을 가속할 수 있기에 좋다.

그 다타리오 덕에 악쿤은 저들의 전력을 아주 상세하게 알고 있다.

격투 용사 퀸은 건틀렛을 사용하지만, 아티팩트도 아니기에 위협적이진 못하다.

오러와 마나 둘 다 다룬다는 것은 확실한 잠재력을 나타내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확실히 두려운 존재가 될 터. 3대 세력조차도 상대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만큼이나 두 양립하기 어려운 자원을 모두 다룬다는 것은 괴물이라는 뜻이니까.

다음은 검술 용사 케일.

그녀가 용사 일행 중 최약체인 건 정평이 나 있다. 마왕군 내에서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그녀가 가장 약하다는 걸 알고 은근 무시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 모두가 궁술 용사에게 어깨죽지가 뚫렸지만.

하지만 마왕군 입장에서 가장 까다로운 건 케일이다. 왜냐면 그녀는 특이한 능력을 하나 지니고 있다.

악쿤이 가끔 불길한 예감을 느끼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에게 누가 될 사람에게서 지독한 악취를 느낀다. 진 키아라가 그녀를 습격했을 때 지독한 악취를 느꼈던 게 반증이다.

하지만 전투에서는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케일은 악쿤에게 위협이 될 요소가 없었다.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궁술 용사 빈.

그는 던전을 공략해내 궁술 용사의 아티팩트인 스톰브링거를 얻어냈다.

윈드 드래곤의 뿔과 송곳니로 만들어낸 그 활은 바람을 찢으며 적을 공격해내는 흉기.

그 막강한 무기가 빈의 손에 들려 있었고, 그는 바람의 정령을 부릴 줄 알아 공격 궤도도 꽤나 괴랄하다.

피하기도 어려운 공격을 아티팩트의 괴팍한 공격력을 담아 비처럼 쏟아낸다.

지금 가장 위협적인 적은 빈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변수는 아니었다. 얼만치 위협적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악쿤 토든!!”

아래서 소리치는 장.

스승을 잃었다는 슬픔에 그는 포효하고 있었다.

‘ONE(?)에 도착한지 1년도 안 돼서 서클 5를 달성했다라...’

감히 참모장에게 포효할 정도의 재능은 있었다.

하지만 그 서클값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를 아는가? 아아, 그대가 마법 용사인가.]

마나를 담아 말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와 어깨에 돋아낸 검은색의 날개.

마법사들에게서 마나를 빼앗은 탓에 마기가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것이다. 악쿤의 현 외형은 아스모데우스의 심장을 박은 형태와 조금이나마 유사했다.

“당신이 만악의 근원이라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드리도록 하죠!!”

[기세는 좋으나 상대 수준을 가늠치도 못하는군. 네놈 스승이 도망치라고 훌륭한 조언까지 해줬는데, 어째 명을 재촉하는지 알 수가 없어.]

지금 용사들 중 전력을 가장 가늠하기 어려운 건 마법 용사였다. 근 몇 분 안에 그는 성장했기에.

[덤빌텐가?]

악쿤은 얼마나 힘조절을 해야 안 죽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서클 5의 마법사이니 서클 3 ~ 4 정도의 마법으로 괴롭히면 알아서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좋아, 그게 적당하겠군. 악쿤은 마법진 하나를 회전시켰고 하늘에서 땅까지 그의 마나가 이어진다.

“참모장님!”

디안이 소리친 건 그때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전장에서 보이지 않더니, 이제야 저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장 복귀하셔야 합니다!”

“엥, 무슨 소리야. 아직 해결 못 한 일들이 많아. 요리사를 설득하지도 않았고, 차원포를 부수지도 못했는데 무슨 복귀.”

“그건 다 해결했습니다! 차원포와 파리오, 그의 사장을 통째로 마왕성에 전송했습니다.”

그녀는 속삭였고, 그를 듣던 악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바뀌며 상황이 심각함을 증명했다.

“이런 미친.”

그는 주섬주섬 무언가를 정리하곤, 마법진 두 개를 헤인켈과 용사 일행에게 겨눴다.

[이 자리에서 죽여둘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가 바빠서 말이야. 운 좋은 줄 알라고 마법 용사.]

대사 자체는 여유가 넘쳤지만, 악쿤은 굉장히 급박하게 말하고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치이이이­

마법진의 회전도 굉장히 빨랐다. 그곳에서 냉기가 휘몰아치며 폭풍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 본좌에게서 도망치겠다는 건가 악쿤 토든!!]

헤인켈은 막 지옥의 사냥견을 물리치고 전투에 복귀하려던 때였는데, 타이밍 좋게 차원문이 완성되었다.

“도망치지 마십시오 악쿤!!”

덩달아 마법 용사도 소리친다. 그들에게 마법을 던지며 차원문에 몸을 밀어넣었다.

[더 강해진 뒤 직접 찾아와라. 도망이라는 불쾌한 표현은 사용치도 말고 풋내기야.]

푸슉­

차원문은 닫혔고, 악쿤의 마법진은 가동했다.

{ χιονοθελλα ­ 눈보라 } 마법이었다. 금세 에볼로기아는 새하얀 눈더미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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