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 차원포(???)
* * *
바닥이 붉게 얼룩진 엉망인 가게는 차마 두 눈 뜨고 봐주기 어려웠다.
사장은 또 마왕군에게 지독하게 당했기 때문에 이 가게와는 인연이 없다 생각했다.
그는 피눈물을 머금었다. 가게를 버릴 생각이 완고했다.
그때 파리오가 그를 막아섰다. 그때 그의 나이가 17.
하지만 사장은 그만둘 생각이 다분했다. 그렇게 파리오 혼자서 가게를 운영했다,
그 다음부터는 뻔한 얘기다. 9명이서 운영하던 가게를 혼자서 할 수 있을 리가.
전전긍긍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사장이 그 모습에 뭉클했는지, 시간이 지나 파리오와 둘이서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몇 년이 흘러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까지를 기억을 더듬으며 알아냈어도 별 감흥은 없었다.
하여간 양념장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예전부터 파리오는 양념장에 많은 관심이 많았지만, 절대로 월권을 하지는 않았다.
양부모 사이이지만, 주방장을 거슬러서는 안 되는 법이다. 권유까진 해볼 수 있어도 그 이상은 안 된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그는 양념장을 제멋대로 바꾸기 시작했다.
한 3달 전부터다. 그 시기가 무슨 시기냐면.
“세금이 대폭 상승했던 시기. 사실 세금이라기보단 탈취에 가까워. 그것도 꽤 많은 금액. 서민은 내기 상당히 힘든 금액이야.”
“결국 다 엮여 있네요. 아까 봤던 건축물이랑 연관되어 있는 건가요?”
“응. 정식 명칭은 차원포. 우리가 예상했듯 마왕군을 견제하기 위한 병기.”
자세한 것은 파리오가 일반인인지라 아는 정보가 많지는 않았기에 캐낼 수는 없었다.
결국 높은 관직의 머릿속을 읽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요리사를 구하러 나왔는데 더 큰 사건을 알아채고 말았다.
“차원포 얘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첫 번째 목표는 절반 완료. 파리오가 거스른 건 그에게 반항한 게 아니야.”
사장이 벌어들인 가게 매출은 직원을 월급을 제하곤 모두 빈민가에 기부하는 데에만 쓰인다.
옛 추억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겠다. 그 경위는 잠시 넣어두고, 중요한 건 어째서 둘이 싸웠느냐는 거다.
파리오는 따로 월급을 받는다.
그 돈을 거절했든 말든 사장은 기어코 그에게 월급을 지급했고, 파리오도 마찬가지로 그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으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파리오는 세금을 내기에는 충분했었다는 거다.
하지만 파리오의 세금을 사장이 기어코 내겠다며 고집을 부렸고, 그에 파리오는 격분했다.
어째서 이렇게 흘러갔을까?
사장의 수명이 얼마 안 남은 게 이유다. 그는 병을 앓고 있었다.
세간에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마왕군이 가게를 헤집어 놓을 때 마왕군에 맞섰다가 마기에 노출되었고, 그 마기는 스멀스멀 번져 현재는 그의 등을 모두 뒤덮었다.
머리가 빠진 것도 그 영향이다. 그리고 그의 수명은 대략 1년도 안 남았다.
그러기에 파리오가 모아둔 돈으로 새출발을 할 수 있게끔 사장은 무리하면서까지 돈을 내는 것일 테고, 더 은혜를 입기 싫었던 파리오는 일부러 양념장을 건드려 그의 입에서 집에서 꺼지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덤벼들었던 것이리라.
감정표현이 서툰 놈들이로군, 턱을 짚었다.
“감이 잡혔어. 이들을 마왕군에 데려갈 수 있는 방법을.”
“협박인가요? 아니면 돈으로 매수?”
“아니야. 병이 아니라 마기에 찌들었을 뿐이잖아.”
마기에 조금 노출된 것 가지고 불치병이라 떠든다라... 우스웠다. 내게 있어선 고민으로도 취급하지 않을 일이다.
넬피.
그녀에게 부탁해 마기를 치유하고, 그를 빌미로 이들을 마왕성에 데려간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파리오 씨, 일어나요.”
하지만 이 사내가 잠에서 깨어나야 뭘 하든 말든 할 텐데.
“...으어어... 쓴 거는 제자리에 두라고 했...잖아요...”
“꿈나라네 아주.”
지금은 불가능해 보였다.
*
별 거 아닌듯 말했지만 차원포 자체는 아주 위협적인 무기다.
다시 건설한 마왕성은 북대륙에 위치한다. 그리고 이곳은 그와 정 반대로 떨어진 남대륙이다.
포가 발포한들 공격이 닿을 리 없는 거리다.
그래서 차원석이 쓰였다.
차원석의 역할은 먼 거리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만큼이나 확 좁힐 수 있다는 것.
좌표와 좌표를 연결하는 신비한 마석 중 하나다. 등급이 높을수록 그 거리는 늘어나고, 이 차원포에 쓰이는 건 최상급 차원석이다. 내가 대륙 대 대륙으로 차원문을 만들 때에나 쓰던 물건.
이 무기가 완성되면 남대륙에서 북대륙 마왕성까지 공격을 순간이동시켜 쑥대밭을 만들 수 있다.
방어 마법을 펼친들 무한정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차원포의 중심에는 순수 마석 중 최상급인 흑수정이 무더기로 쓰일 예정이니까.
“어째서 만드는 걸까요?”
남대륙은 마왕군의 위협에서 그나마 가장 안전한 대륙이다.
아까 파리오의 기억을 읽으며 전례를 톡톡히 봤지만, 개인이 아닌 대륙으로 봤을 때 남대륙만큼이나 피해가 적었던 대륙은 없다. 한 술 더 떠서 다른 대륙의 지역과 남대륙을 비교해도 견줄 수 있는 지역은 몇 없다. 그런데 남대륙이 마왕군을 견제한다라. 도대체 왜?
“첫 번째 가설, 실렉티스가 개입했다.”
에이브(AYV)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미심쩍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먼저 의심되는 건 당연하게도 실렉티스다.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모든 아리송한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뜬금없다. 남대륙에 있는 실렉티스를 만나봐야 할까, 아니면 에이브(AYV)에게 기도를 빙자한 보고를 올리며 물어보는 게 좋을까.
설령 이 가설이 아니라면 떠오르는 다른 가설이 있다.
“두 번째 가설, 이곳의 영주를 비롯해 누군가가 진정으로 마왕군에게 원한을 지녔다.”
사실 첫 번째 가설에 비해 내 속에서 의견이 떨어진다.
무언가 짚이는 일을 벌인 적은 없다. 동대륙과 남대륙의 국경에서 터널 공사부들을 최세린과 마왕군 몬스터들을 통해 학살했던 적이 유일하다.
마왕군의 존재 자체가 민간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인 건 맞다. 하지만 맞아봐야 아픈 줄 알지, 말로만 들어서 체감이 될 리가 없다.
신 마왕군은 메일리는 물론, 에볼로기아에도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분명히 터널 인부 중에는 에볼로기아 사람이 없었다.
탁 까놓고 말해 뜬금없다는 얘기다.
신 마왕군이 창설된 이후 가장 지독하게 당했던 동대륙에서 이러한 병기를 만든다면 이해는 하겠다만, 남대륙중 하필이면 에볼로기아에서 차원포를 만들 이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두 가설 중 정답이 뭡니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메일리의 영주가 내 눈앞 의자에 두 팔과 다리가 얼어붙은 채 묶여 있었다.
그의 해마를 뒤적거리며 기억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누가 기억을 지워둔터라 그닥 소득은 없었다.
누가 기억을 지웠는지도 기억 더듬기 마법을 통해서는 알아내지 못하게끔 손을 써둔 듯했다.
이래서야 수확이 없다. 에볼로기아의 국왕을 심문해야 할까?
“날 아무리 고문한들 소용 없을 거다. 나는 마왕군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으나 세상이 그대들을 평생 저주할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멋대로 떠들기는.”
메일리 영주는 실렉티스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을 뿐이라는 거다.
문득 작년 데미투의 영주가 떠오른다.
그도 실렉티스는 아니었지만 실렉티스에게 놀아나고 있었지.
이번에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더 심문해봤자 별 소득은 없을거라 생각하며 그의 입 안에 조그마한 마법진 하나를 집어넣었다.
“당신을 죽이면 차원포 완성도 늦어지겠죠.”
“으, 읍읍! 으으읍!”
“저도 개인적인 원한은 없는데... 그냥 상황이 야속하네요.”
마법진의 회전이서서히 멈춘다.
그곳에 쓰인 문자는 ρ 폭발과 ε 연속성 부여.
연달아 터지는 마나 폭탄이라고 한 줄로 설명할 수도 있는 간단한 마나 방출.
서클 1의 마법사도 사용할 수 있는 간단한 마법이지만, 무방비한 사람 하나 죽이기에는 되려 과분하다.
“{ Ελευθρωση 방출 ( ρ, ε) }”
치이이이
그에게 마법을 걸어두고 조용히 차원문을 만들었다.
[드디어!]
그때 무언가 반응이 왔다.
방 전체에 울리는 목소리, 마나를 담아 말하는 것 같은데 나름 익숙한 목소리였다.
[꼬리가 잡혔구나 쥐새끼 같으니라고!]
“이게 무슨 소리죠?”
[네놈은 몰라도 기집년에게서 느껴지는 마나를 보아하니 용사의 경험치도 못 되겠군. 안타깝도다 안타까워.]
“스피커를 설치했나? 아, 저기 있구나.”
퉁 퉁
허공에 마나 조작으로 발판을 만들어 뛰어올라 천장에 투명하게 그려졌던 마법진을 손으로 붙들었다.
그 마법진에 쓰인 문자를 거꾸로 영창함과 동시에 마나도 섬세하게 조작하여 마법진 자체를 역산했다. 나름 신경쓴 마법진이었지만, 내게 있어서 그닥 복잡한 건 아니었다.
[무, 무어라? 본좌의 마법진을 이리도 쉽게 역산한다고라?!]
“말투나 목소리 보니까 누군지 확신이 드네. 잘 지냈어요? 아, 그쪽은 나 기억 못 하려나. 노망난 대마장님.”
[본좌가 마왕군 졸개 따위의 마법에 기억을 잃겠는가?]
“당연히 안 통하겠죠. 대신 치매가 왔을 줄 알았거든요.”
[악쿤 토드은!!]
이 목청 떨어지게 소리치는 노인네는 마법이 가장 발달한 남대륙에서도 특출나게 마법을 잘 쓴다하여 대마장이라는 명예직을 맡고 있다.
본명은 헤인켈 타라킷. 옛적 이어받은 고룡의 피를 이어받은 용인이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별종이었다.
용인의 마력이 인간보다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봤자 3배를 못 넘는다.
심지어 헤인켈은 용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은 것도 아니다.
먼 선조가 용이었으니 그에게 용의 피는 많이 흐르지 않는다.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그럼에도 헤인켈은 누구보다도 용의 마력에 가까웠다. 애초에 마력이 많은 사내인 것일까?
어느 무엇도 확실치는 않다. 더군다나 그의 실력은 진품이다.
마법을 다루는 센스가 무척이나 뛰어나다. 결국 대마장의 자리에 올랐다.
남대륙에서 그보다 마법을 잘 다루는 자는 한 명을 제하곤 없다.
“당신은 언제나 절 싫어했죠.”
[그 태도 때문이다!!]
“무슨 소리세요. 먼저 시작한 건 대마장님이시잖아요.”
그 한 명이 내 지인이기 때문인지 헤인켈은 용사 시절부터 나를 정말이지 극도로 싫어했다.
어쩌면 차원포는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별 상관 없다.
도망치면 그만이다. 차원문은 완성됐고 헤인켈과의 담소는 끝났다.
“안부차 물어보는 건데 아직도 남대륙 2인자로는 만족을 못 하세요?”
[그 얘기는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다 화병으로 쓰러질까 걱정되네요. 나이도 나이일 텐데 고정하시죠. 뭐, 아무튼 즐거웠습니다. 기회 되면 한 번 보자고요.”
우웅 우웅
차원문이 일렁인다. 전송 위치는 아까 파리오가 있던 숙소.
나는 디안에게 손짓하며 따라오라 권했다. 그리곤 차원문을 향해 한 발짝 내딛었다.
“...엥?”
스르륵 소리와 함께 차원문이 무너졌다.
그뿐일까 차원석도 으깨졌고, 갑자기 방 전체에 흐르는 중력이 몇 십배나 무거워졌다.
[네놈의 스승은 뭣도 모르는 애송이일 뿐이지! 한치 앞도 볼 줄 모르는 풋내기.]
헤인켈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와 동시에 중력은 더욱, 더더욱 무거워진다.
“...끄, 끄으......”
디안이 괴로움에 살짝 흐느꼈다. 나도 몸이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마법임은 확실했다. 나는 곧장 { Ματαωση 캔슬 } 마법진을 발동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대처는 좋다! 하지만 필히 자네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터!]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헤인켈...!”
[여러 준비를 좀 했지, 덫이 왜 덫이겠는가? 빠져나갈 수 없으니까 덫인 게다! 그대의 마법 실력은 본좌의 상정 내였다.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몸이 짓눌렸다.
그러자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 창문을 밑에서 올려다보자 겨우 보이는 수많은 마법사들이 말이다.
모두가 마법진을 밟고 허공에 떠서 마법을 겹겹히 쌓고 있었다.
중력 증가라는 단순한 마법. 하지만 그걸 수십 명이서 반복하여 사용한다면 얘기는 다르다.
해제 마법 하나당 해제할 수 있는 마법은 한 개다.
내 영창 속도가 아무리 재빠른들 수십 명을 상대로 해제가 더 빠르기는 힘든 일이다.
쿠구구구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미 의자에 묶인 영주는 형체를 잃어버리고 핏덩이가 되어 터져버려 바닥에 피웅덩이가 되었다.
디안도 저 꼴이 되기 전에 내가 어떻게든 수를 써야 한다.
[본좌가 직접 마무리해주마!! 네놈은첫 번째 토벌된 사천왕이 될 것이다!!]
헤인켈의 목소리와 함께 저 멀리에 울려퍼진 건 그때였다.
동시에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에는 거대한 녹색 마법진이 생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꾸득꾸득 무언가가 기어나왔고, 그건 8서클 마법인 드래곤 형상의 불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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