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차원포(???)
* * *
콰당탕!! 쨍그랑!!
손님이 들어도 될 법한 소리는 아니었다. 실수라기에는 너무나 크게 소리가 났고, 이어지는 주방장의 괴성은 그가 분노했음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 새끼야! 그럴 거면 내 주방에서 나가라니까!!”
그는 얼굴빛을 짙붉게 물들이곤 분노를 쏟아냈다.
대상은 쓰레기통과 같이 엎어져 처량한 행색을 하고 있는 왜소한 청년이었다.
“...어떻게 그래요.”
“레시피 건드리지 말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그래놓곤 뭐?! 어떻게 그래요?!!”
“제 레시피가 더 맛 좋다고 누누히 말했잖아요.”
“그럼 네가 식당을 차리라고!! 썩 꺼져 배응망덕한 새끼야!!”
지금 말대꾸하는 직원이 양념장을 건드린 직원이었음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나는 디안과 눈빛을 교환한 후 천천히 주방으로 움직여 팁을 줬던 직원을 손짓으로 몰래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아, 그게... 사장님은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저 녀석이 결국 자기 레시피대로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요.”
“월권 아닙니까? 한낱 직원이 무슨 수로 사장 겸 주방장에게 레시피를 지적한다는 겁니까?”
“그게 말이죠... 둘이 부ㅈ”
다시끔 사장이 소리친 건 그때였다.
“내 주방, 아니! 내 집에서 썩 꺼져! 꼴도 보기 싫다!!”
“...좋을대로 하세요.”
쾅!!
청년은 화를 못 이긴 건지, 대화가 안 통한다고 판단한 건지 과격하게 주방 뒷문을 열고 가게 밖으로 벗어났다.
가게는 어수선해졌으며, 직원들은 일제히 손님에게 죄송하다며 연거푸 사과를 내뱉었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과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곧 나온 건 사죄의 의미로 나온 디저트였다. 과일 샤베트(파인애플이 아닐까)를 작은 티스푼과 같이 내왔고, 그걸 조금씩 입에 멀어넣으며 생각을 고쳤다.
“주방장은... 고기 맛만 본다면 저 청년이 더 좋을 것 같아.”
하지만 그의 태도는 거슬린다.
“어째서 주방장을 거슬렀을까? 상관 알기를 개 같이 아는 놈이라면 없느니만 못한 존재지.”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한 번 찾아가 볼까요?”
어디 사는 줄 알고?
마나도 지독하리만큼 느껴지지 않던 놈이다.
독희 진 키아라같은 느낌이 아니라 진짜 절망적으로 마법에 재능이 없는 부류.
아까 돈 밝히던 직원을 불러내 집주소를 알아내볼까. 그렇다기엔 아까 사장이 집에서 나가라고 말했다. 그에게 얹혀사는 것 같은데, 지금쯤 방황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디 있는지 알아낼 수 있어요.”
“어떻게?”
“{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κρυφτ(술래잡기). }”
우웅
디안의 손 안에서 어떤 빛나는 물체가 둥실 떠올랐다.
그것에 디안은 숨결을 불어넣었고, 머잖아 그녀가 원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따라가면 그가 나와요.”
화살표였다. 새 오너 후보가 어디로 갔는지 시각화한 물건.
언제 ‘표식’을 남긴 거지?
디안의 시그니처는 그녀가 직접 상대방에게 접촉하여 표식을 남겨야 발동 가능한 것들이다.
만지지 못하면 발동 자체가 안 되는 마법인데, 어느 순간에 접촉했었단 말인가. 의구심이 가득 피어올라 물었다.
“언제 만졌어?”
“그림자 수색대 대장님한테 투척술을 좀 배웠거든요.”
그녀는 품 속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 내 앞에 흔들었다.
“이걸로 만져뒀어요.”
작은 구슬이었다. 비비탄 총알과 비슷한 크기.
그녀는 빙긋 웃었고, 내 부관이 능력 하나는 확실하다고 느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좋아, 가보자.”
우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덜컥 열었고, 그때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 4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순간 행동을 정지했다. 그리곤 마나가 터져나오려는 걸 겨우 억눌렀다.
디안도 마찬가지였다. 험악한 표정을 지었고, 순간 마법진을 장전했으나 내가 손을 뻗어 강제로 그녀의 마법을 종료시키자 아차 싶었는지 냉정을 되찾곤 멈춰섰다.
“용사 일행분들 아니십니까?”
“하하... 아직 용사라는 이름에 걸맞진 않아요.”
마법 용사 장이 말했다. 본명은 이기장.
기다란 머리를 뒤로 묶어올린 녀석을 보자 무표정을 고수하기 힘들었다.
“이야, 가게 넓은데? 향도 끝내주네.”
“맛집이라는 게 사실인가봐요. 그렇죠 언니?”
“치근덕거리지 마라.”
“힝...”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얼굴이 구겨질 것 같다. 그 옆에 있는 다른 세 용사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증오심이 피어오른다. 언젠가는 내 일행을 모두 죽일 운명을 지닌 자들.
에이브(AYV)와의 언약이 없었더라면 이 자리에서 도륙을 내놨을 터.
아니, 진작에 죽였다. 이들이 오늘날까지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다.
“대표 메뉴가 양구이죠? 우선 이걸로 4인분 주세요!”
“용사님들... 그 전에 악수 한 번만 가능할까요?”
“저희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부끄럽게 그러지 마세요. 악수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죠.”
저 양구이를 주문한 자들에게 내 부하들이 죽었다.
내가 지시했고, 저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몬스터를 죽였을 뿐이지만 이들의 무지함에 화가 났다.
지금 에이브(AYV)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해맑은 표정을 짓는 걸 보면 이가 빠득 갈린다. 메이블도 내게 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오빠?”
“......”
“정신 좀 차려봐요!”
“아, 아... 응. 미안.”
디안이 내 몸을 흔들고 나서야 정신을 되찾았다.
아까 디안을 말린 주제에 이성을 잃은 게 나라니, 퍽 머쓱한 광경이었다.
“사인 같은 건 따로 준비를 안 해둬서요. 하하.”
“나는 사인 있는데! 어디다가 해드릴까? 모자에다가 해드리면 되나?”
“부끄러우면서도 괜히 기분 좋아지고 그러네요... 헤헤...”
“썩 꺼져라. 내게 연예인 행세라도 바라는 건가?”
용사들은 직원들과 손님들의 이목이 끌린 채였고, 몇 년만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해맑은 표정으로 악수를 받던 건 나와 일행들이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과거의 나를 보는 듯한 기분. 어영부영 세월만 흘러간다면 너도 언젠간 나처럼 마왕군을 창설하겠지.
그럴 일은 없게 할 거다.
그전에 에이브(AYV)를 죽임으로써 이 지독한 운명을 끝내주리라 다시끔 다짐했다.
“움직이자.”
“알았어, 오빠.”
“디안, 소름돋으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
“...너무하세요 진짜.”
나는 흘깃 용사 일행을 바라봤다.
그들을 둘러싼 인파는 까칠한 격투 용사의 말투에 서서히 물러서고 있었고,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가게 밖으로 나가 디안의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하네.”
“뭐가요 지혜 씨?”
“순간 저쪽 방향에서 엄청 좋은 향기가 났는데... 지금은 아니네요. 기분탓이었나.”
“음식점 향기 아닐까요?”
“그런가?”
검술 용사 케일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자 여러 개의 마탑과 거대한 건물을 비롯한 번화가를 지나갔다.
갈수록 의아함을 느끼며 화살표를 계속 따라가자 조금은 으슥한 골목이 나왔고, 화살표는 직선 방향이 아닌 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은 허름한 여관의 3층이었다.
저곳에 머물고 있다는 건가, 눈을 감고 마나 기척을 감지하자 3층에만 놀랍게도 티끌 정도의 마나를 지닌 인간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나는 빙긋 웃음지으며 디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역시 유용해. 너 시그니처.”
“더 칭찬해줘요 오빠.”
“그거 하지 말라니까?”
“......”
여관으로 들어가자 심드렁한 표정으로 만화책을 읽는 점원이 보였다.
손님이 들어와도 아랑곳않고 만화에 고개를 파묻는 그의 안내 데스크를 툭툭 두드려 우리에게 집중토록 했고, 그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가격은 여기 써 있고, 선불입니다~”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태도.
순간 불쾌감이 몰아쳤다. 안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아까 들어온 왜소한 체격의 손님. 악취도 났을 겁니다. 몇 호실로 갔죠?”
“숙박 안 할거면 나가세요~”
다시 고개를 파묻은 태도에 욱 하는 감정이 몰아쳤다.
그때 디안이 내 옷깃을 꾹꾹 당기곤 고개를 설레설레 휘둘렀다.
스슥 스스슥
그녀는 조용히 마법진 두 개를 만들어 사내를 겨눴다.
그리곤 검지를 입가에 가져갔다. 수상한 기척에 다시끔 고개를 든 사내는 마법진이 자기를 겨누고 있다는 걸 인지하자 의자채로 뒤로 자빠졌고, 디안은 그에게 마법진을 가까이 했다.
“마스터 키.”
“네, 네?”
“두 번 말 안 해요. 마스터 키.”
“아, 네, 네!!”
조금은 과격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일이 잘 풀렸다. 마스터키를 얻었고, 우리는 화살표를 따라 사내를 만나보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마왕군은 대외적으로 악의 무리다.
이제는 용사가 아니기에, 때로는 방금 디안처럼 어물쩡거리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기에 디안이 더 내 부관으로 적합한 것일까. 나는 그러질 못하니.
“강압적으로 나갈까요? 설득해볼까요?”
그녀는 방문을 앞두고 내게 말했다.
하나하나 그녀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였다.
“간단하게 가자. 수호대장씨한테 연락도 왔어. 업무 많으니까 후딱 정리하고 오라고.”
“제가 할까요?”
“아니야.”
덜컹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가만히 침대에 누워 생각에 잠겨있던 청년은 벌떡 일어나 누구냐고 물었다.
그에 대답해주기보단 단거리 순간이동 블링크로 그와의 거리를 좁혀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어지는 건 자주색 마법진, 다짜고짜 그의 머리에 관통시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우선.”
사장과 이 청년, 둘의 관계부터.
열악한 빈민가 게토에서 생활하던 사내, 이름은 파리오.
그는 음식을 구걸하며 다니고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나가던 건 험악한 표정의 사장이었다.
인상이 조금 젊은 걸로 보아 과거 일이라 그럴 터, 하기야 10년도 더 전의 기억을 읽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다.
그를 만나 음식을 얻고, 청년은 호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같은 게토 아이들과 음식을 나눠먹고 다음날 또 사장을 찾아갔다. 또 음식을 얻었고, 그 생활을 반복했다.
사장은 멋쩍게 웃으며 언제나 음식을 주었고, 그를 받아 또 빈민가 아이들과 나눴다.
아이들은 대략 7명 정도. 그들 모두 청년과 비슷하거나 더 어린 나이였다. 대략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이들의 행색은 모두 꼬질꼬질했다. 배는 조금 부를 수 있어도 생활이 윤택해지는 건 아니었다. 음식을 주고 나눠받는 관계가 지속되길 대략 한 달쯤. 이 아이는 가난한 생활에 질렸는지 급기야 뻔뻔해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음식 뿐만 아니라 돈을 요구한 것.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이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아니면 지독한 가난함에 이리 된 것일까?
굳이 찾아보자면 이유는 있었다.
그와 같이 생활하던 빈민가 아이들 중 한 명이 씻지를 못해 피부병에 걸렸는데, 놔두다간 겉잡을 수 없이 피부병은 악화될 성질의 것이었다.
그에 치료비가 필요했고, 그에게 있어서 돈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사장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흔쾌히 돈을 내줬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되려 시작이었다. 사장이 말했던 대사가 이 사내의 뇌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기에 다른 대사보다 더욱 선명히 들렸다.
“대신 너 내 가게에서 일해라.”
그 가게는 옛날에 유명했던 양구이 가게였다. 하지만 간판이 허물어지고 있었고, 가게 안에는 거미줄이 가득했다.
가족과 운영하던 가게였고, 메일리에서 가장 잘 나가던 가게였다.
허나 이 가게는 망했다. 마왕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사장만이 살아남았던 게 이유.
그 이후부터는 가게를 운영할 생기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게를 허물기엔 가족의 빈자리를 추억할 장소가 가게만이 유일했다.
아픈 손가락, 그 손가락을 이 청년과 지내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치고 싶었던 것일까.
청년을 받아들였고, 가게는 부활했다. 그 빈민가에서 지내던 아이들또한 거둬들여 운영해나갔다.
가게는 생각보다 빨리 부활했다. 청년은 요리에 대한 재능이 있었고, 하나를 가리키면 둘을 할 줄 아는 사내였다.
다른 아이들은 요리에 대한 재능은 없었으나, 거두어줬다는 은혜를 갚기 위함인지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수어 년이 흘렀다.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 있을 때 남대륙 유일의 침공이었던 8차 침공이 펼쳐졌다.
토텔리의 부관이 이끈 기마부대. 그 부대가 차원문을 통해 남대륙 에볼로기아를 헤집었고, 꽤 많은 인명이 죽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용사 일행은 이들을 금방 구해냈다. 역대 침공 중 가장 피해가 적었던 침공은 그렇게 끝났고, 토텔리의 부관과 그의 군대는 철수했다. 대략 100명 정도만이 죽었던 침공. 우리는 축배를 들었고, 남대륙은 우리를 구원이라 여겼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아니었을 것이다.
“......”
“괜찮으세요?”
“어, 그냥 생각이 많아지네.”
가게에서 일하던 사장과 청년. 이들을 제하곤 모두 죽었다.
소중했던 사람이 죽었기 때문일까, 청년의 기억은 아주 선명했다.
바닥이 붉게 얼룩진 엉망인 가게는 차마 두 눈 뜨고 봐주기 어려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