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차원포(???)
* * *
메일리는 양고기로 유명한 도시이다.
그 중에서도 가슴살을 달콤한 설탕 기반 소스와 자극적인 조미료를 같이 버무려 특유의 비린내를 없앰과 동시에 소스 특유의 맛을 잘 살려낸 양구이가 메일리의 대표적인 지역 음식이다.
이렇게만 보면 맛이 거기서 거기일 것 같지만, 그 소스에 어떤 조미료를 추가하거나 대체하는 것. 또한 구이를 얼마나 적절한 불세기로 굽느냐가 요리사의 실력을 적나라하게 판가름하기 좋다.
그 미세한 차이에 따라 맛의 차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
우리는 양구이 가게 중 가장 호평이 자자한 가게에 들어와 2인분을 시켰다. 미리 예약해두었기에 대기열은 없었고, 곧장 예약석이자 룸으로 된 방에 편히 엉덩이를 붙였다.
“양꼬치랑 비슷하려나. 칭타오 마시고 싶네.”
“칭타오가 뭐죠?”
“나 원래 살던 곳에 있던 맥주. 양고기랑 기가 막히게 어울리거든.”
“맛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참모장님 원래 사시던 세계도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밖에선 참모장이라 부르지 말라니까.”
“아... 호칭이 수상하긴 하네요.”
디안은 골똘히 무언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미리 나온 밑반착을 깨작거리다가 종업원이 들어와 조심스러우면서도 능숙한 손놀림으로 발화 마도구에 점화했고, 양고기를 세팅해주던 때에 입을 열었다.
“오빠라고 부를까요?”
“푸흡!!”
물을 마시던 차라 그 입에 넣었던 물들이 바닥에 왈칵 쏟아졌고, 나는 사례가 들려서 캑캑거리고 있었다. 그를 본 디안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고, 점원은 재차 내게 괜찮냐며 물었다.
“괜, 괜찮...아요 콜, 콜록!”
점원을 손으로 무르며 숨을 골랐다. 디안의 표정은 한 대 쥐어박고 싶었으나 먹음직스러워보이는 양고기의 존재감이 너무 컸기에 불판에 고기를 올렸다.
치이이이...
고기 익는 소리가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디안은 괜히 음료를 홀짝거리며 기다리고 있었고, 직원이 다시 찾아와 최적의 타이밍에 고기를 뒤집고자 온 신경을 할애하고 있을 때쯤 또다시 문이 벌컥 열렸다.
“실례합니다.”
점원과 비교해 나이가 2배는 많아보이는 중년 남성.
매끈한 머리 덕에 음식에 머리카락으로 트집 잡힐 일은 없겠다는 잡생각을 이어가자 그는 입을 다시 열었다.
“송구스럽지만 고기에 문제가 있어 다른 고기로 바꿔드리겠습니다.”
“상한 겁니까?”
겉보기엔 그렇지 않고, 향도 상한 음식이라기엔 제법 좋았다.
양념장 덕에 말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터. 이런 문제가 아니다.
고기 색깔이 양념장을 제하더라도 아주 좋다. 불판에 올렸을 때 육즙이 질질 흐르는 게 아무리 봐도 상한 고기는 아닌데, 저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내는 잘못된 고기라고 명칭했다.
“상한 고기는 아닙니다만, 우리 직원이 실수를 해서요.”
“잘 굽고 계시는데요.”
“그게 아닙니다. 고기 자체에 몇 년간 일했던 직원이 다른 양념장을 펴발랐습니다. 10분 내로 새로운 고기로 바꿔드릴 테니 번거로우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냥 귀찮은데 먹어도 됩니다.”
요리에 자부심이 있는 자일까.
대충 어떻게 흘러가는 일인지 상상은 갔다.
직원이 실수인지 자의인지 어쨌거나 다른 양념장을 고기에 펴발랐고,
그걸 알게 된 주인장이 자신의 레시피를 따르지 않았기에 분노했을 터.
그 분노 수치가 요리에 대한 진심이 얼만큼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아 이 사람이 요리장으로 제격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일부러 그의 자존심을 긁었다.
“이것도 맛있을 것 같은데요. 그 직원 옹호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귀찮아서 그래요.”
“...아니요. 제 자존심이 허락 못 합니다. 그렇다면 이 고기값은 받지 않을 테니 본래 레시피대로 조리된 고기를 새로 드리지요.”
“가격이 제법 되는데 서비스로 덜컥 내놔도 되는 겁니까?”
“본래의 맛과 조금이라도 다른 고기를 손님에게 돈 받고 팔 수는 없어서요.”
점원은 고기를 뒤집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멀뚱멀뚱 눈치만을 보고 있었고, 디안은 재밌다는 듯 내 얼굴을 살폈다.
“그렇다면야 그렇게 해주시죠.”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사라진 주인장을 보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곤 책상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속으로는 웃음이 만개했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이 오너로서 적합한 사람이다.
생각보다 편하게 찾았다. 이만큼이나 자기 요리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마왕군 오너 역할도 톡톡히 해낼 수 있을 터.
돈으로 매수해보고, 그게 실패한다면 협박을 가장해 마왕성에 끌고가리라.
이후 이 사람의 신변까지 보장해줄 연극도 준비했고, 에이브(AYV)에게 말해 실렉티스도 이 사내를 견제하지 말아달라고 한다면 양심에 찔릴 일은 없다.
그렇게 다음 고기를 기대하며 어리둥절한 점원의 집게를 빼앗아 고기를 내가 직접 뒤집었다.
“이건 서비스 고기니까 제가 구울게요.”
“아, 아닙니다! 제가 할게요.”
“괜찮아요. 일 보세요. 다음 고기만 잘 부탁합니다.”
“하, 하하... 감사합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고 나가려했고, 그를 휘파람으로 다시 세웠다.
“어... 필요하신 거라도?”
“제가 필요한 건 아니고, 그쪽이 필요한 거죠.”
그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는지 또 특유의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나는 그를 손짓으로 부르곤 앞치마 주머니에 지폐 몇 장을 꽂아 넣어줬다.
“가서 일 보세요.”
“감사합니다!!”
*
양구이는 내가 구웠음에도 상당히 맛있었다. 여지껏 ONE(?)에서 먹어본 어떤 음식보다도 더 끝내줬다.
디안도 내 의견에 동조했다. 여지껏 이렇게 맛있는 건 먹어본 적 없다며, 년도로만 따지면 나보다도 긴 ONE(?) 생활을 보냈던 그녀도 동의했으니 이 가게의 이름값이 허울뿐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재료가 끝내주는 거려나, 아니면 기본 양념에 직원이 무슨 장난질을 했음에도 이 정도인 거려나.
이게 잘못된 고기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본래 레시피대로의 고기가 더 기대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고, 나는 입가에 침이 고이는 걸 느끼며 텅 비어버린 양구이 접시를 치우고 문만을 바라봤다.
드르륵
선수 입장, 아까 봤던 매끈한 머리의 주인장과 아까 팁을 받았던 점원이었다.
“이게 원래 레시피대로의 고기입니다. 맛과 풍미가 훨씬 좋을 겁니다.”
겉보기에 크게 다른 건 모르겠지만, 그는 호언장담하며 쿨하게 나갔다.
점원은 서비스 정신 가득한 얼굴로 고기를 열심히 굽기 시작했고, 잠시 고기를 불판에 그을리기만 할 막간에 나와 디안은 질문을 시작했다.
방금 그분이 사장이라는 질문,
역시나 사장이자 오너였다.
이 가게가 얼마나 됐냐는 질문,
24년 째 호평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메일리에 있는 모든 양구이 집들 중 최고라고 자부한다 말했다.
방금 그 고기가 어째서 잘못된 거였냐는 질문,
직원 중 사장과 최근들어 마찰이 잦아진 직원이 있는데, 그 직원이 사장 몰래 멋대로 자기만의 레시피로 고기를 다뤘고, 그에 사장이 격분하여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새로운 고기로 바꿔줬다.
“보셨다시피 사장님이 인상이 좀 험악하시잖아요? 본인은 의도한 게 아니었겠지만, 아마 고기를 바꿔주겠다는 사장님의 뚝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직원 녀석이 다룬 고기를 입에 댄 손님은 아무도 없어요.”
“하루이틀 일이 아닌가요?”
“네, 자주 있습니다. 손님이 그 녀석 고기를 맛본 처음 손님이세요. 아, 직원은 제외하고요.”
오너 몰래 레시피를 바꾼다라... 그것도 상습범이란다.
어째서 데리고 있는 걸까? 머리가 커진 직원은 주방에서 방해만 될 뿐이다.
조직에서는 독단적인 행동이 모든 시스템을 망친다. 주방에 대해 잘 알지만 못하지만, 어딜 가나 통용되는 진리일 것이다.
나였더라면 곧장 내쫓았을 텐데, 사장의 성격이 좋은 건지 미운정이라도 든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신경쓸 건 이 고기의 맛 뿐이다. 때마침 고기가 다 구워졌고, 직원이 이번에 진짜 잘 구웠다며 기대해도 좋다고 사족을 덧붙였다.
“고맙습니다.”
“헤헤......”
“?”
그는 임무를 마쳤음에도 나가보지 않고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의 의미를 알 것 같아 손가락을 튕겨 마나를 조작했다.
드르륵
문이 내 마나에 반응해 자동으로 열린다. 마법사가 넘쳐나는 남대륙이니 대수롭지는 않을 터.
이만큼 깔끔한 마나 조작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펼치기 힘들지만, 일반인으로 보이는 점원이 알아차릴 일은 없을 거다.
“이제 가보시죠?”
“...네. 맛있게 드세요.”
풀죽은 어투로 말하는 점원을 붙잡고 거세게 혼낼까 잠시 고민했지만, 괜히 소란을 피우기는 싫다. 우리는 여기서 오너를 데려가야 하니까 아직은 좋은 인상으로 남아야 한다.
문은 닫혔고, 나와 디안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고기를 입에 넣었다.
그리곤 눈을 감고 향과 고기의 질감을 음미했다. 음...
“별론데요?”
디안이 먼저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거가 더 맛있어.”
“네, 이것도 맛있지만... 전의 고기가 훨씬 맛있어요.”
거진 요리 프로그램 심사위원처럼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내뱉은 말이다. 절대로 가볍게 말한 게 아니다.
배고팠기에 더 맛있게 느꼈을까?
아니다. 그리 배고픈 상태도 아니었거니와 다른 메뉴도 먹어보고 싶어 일부러 고기를 조금 주문했다.
처음 먹은 감동에 기준치가 상승한 것일까?
그래도 맛은 기억한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 알싸하게 퍼지던 그 향과 지금의 향은 확연한 차이가 났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지만, 너무 차이나면 굳이 대볼 필요는 없는 일이다.
나는 방금의 점원을 다시 불러 혹시 남은 고기가 있다면 가져와달라고 말했다.
그는 그건 곤란하다며 고개를 휘저었지만, 다시 손짓으로 불러들여 앞주머니에 지폐를 꽂아주자 그는 조금 고민하는 척 하더니,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주방으로 달려가는 듯했다.
머잖아 도착한 고기.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는 않았는지, 고기는 아주 깔끔했다.
“직원들끼리 몰래 구워먹으려고 남겨둔 거거든요. 제 몫만 슬쩍 빼왔습니다.”
“그쪽 거라면 팁 좀 더 줄까요?”
“괜찮습니다! 더 주신다면 말릴 방도는 없지만... 헤헤.”
‘돈 엄청 밝히네.’
차라리 내숭 떠는 것보다 솔직해서 나았다. 그에게 다시 지폐를 찔러주고 양구이를 비교하고자 다른 버전의 고기를 동시에 구웠고, 정확히 2등분해 디안과 나는 그 고기를 연달아 먹어봤다.
“...역시.”
직원이 실수한 버전이 맛이 훨씬 좋다.
얼핏 느끼기에는 근소한 차이일지 모르지만, 자극적이면서도 비린내를 완전히 잡았고, 특히 끝에 멤도는 여운이 젓가락질을 재촉한다.
와장창!!
“....끼가 진짜!! 그럴 거면 내 주방에서 나가!!!”
주방에서 괴성이 들려온 건 그때였다.
문을 열고 나가 주방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엎어진 쓰레기통 위에 처량하게 누워있는 왜소한 사내가 보였다.
대머리 주인장은 그에게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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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오빠, 여기가 맛집이래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가게인데, 예약 같은 거 안 했지 않았나요?”
“그건 대마장님이 어떻게든 해주시겠다고 호언장담 하시던걸요? 다크 드래곤을 보여준 답례로는 이걸로도 부족하다라나 뭐라나.”
“우리 검둥이 덕에 득을 많이 보네.”
“끼에? 끼에!”
“성빈 오빠, 검둥이라 부르지 말라니까요! 왜 자꾸 혼자만 다르게 불러요!!”
“바둑이나 검둥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정말!”
투덜거리는 검술 용사 케일, 그리고 그녀의 투덜거림을 여동생 보듯 흡족한 얼굴로 바라보는 궁술 용사 빈. 그 사이에 껴서 실랑이를 중재하는 마법 용사 장.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격투 용사 퀸까지.
용사 4인방은 에볼로기아의 수도 메일리에 있었다.
이 도시의 대표 음식, 더군다나 가장 맛 좋기로 유명하다는 양구이 집에 다가가고 있었고, 장은 퀸을 재촉하며 빨리 따라오라고 말했다.
‘...가끔은 괜찮겠지. 고기는 에너지 효율이 좋으니.’
오늘자 던전은 완벽하게 공략했고, 얻어낸 것도 상당하다.
물론 수련은 중요하지만, 오늘 정도는 회식이라는 명목 하에 이들과 어울려도 될 것 같아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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