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필요악
* * *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αντικατσταση τη καρδι(심장 교체)
Ver χιονδη παλι, δρκο!(설산의 고룡, 자이키릭!)
쿠구구구구!
부작용은 신경쓸 바가 못 된다.
일행의 행방? 알아내려면 단순한 방법이 있다.
놈을 죽여버리면 이 아공간이 파괴되고, 일행도 자연스레 구출할 수 있겠지.
시퍼런 마나가 폭풍처럼 몰아친다.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고, 내 건너편에는 시커먼 형태의 인영이 있었다.
그 녀석을 향해 곧장 전력의 마법을 퍼부었다.
단숨에 죽이리라.
반드시 죽이리라.
ανσα δρκου 용의 숨결
싸아아아아
놀랍게 조용한 냉기가 그에게 다가간다.
허나 위력은 얌전하지 않을 것이다.
9서클의 마법. 시그니처를 발동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그에게 쏟았다.
이 냉기에 휩싸이면 온몸의 감각이 없어진다. 그뿐일까, 당했다는 자각도 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
그 냉기가 놈에게 닿았고, 시퍼런 안개가 폭발하며 방을 뒤덮었다.
탁자는 냉기에 뒤덮여 형태 그대로 얼어붙었고, 내쪽에 있던 의자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무서운 놈이야. 전 마법 용사는 진작에 넘어섰어.”
하지만 에이브(AYV)는 조그만치도 타격이 없었다.
놈은 너무나도 느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못 볼 걸 봤다는 눈빛이군.”
[그걸 어떻게 가지고 있지?!]
“그야, 나는 신이니까.”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자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놈은 내 표정이 웃겼는지 쿡쿡거리곤 손에 들린 물건을 흔들었다.
“πρτη μοβ ασπδα 첫 번째 자줏빛 방패. 네가 가진 물건과 동일한 물건이지. 아, 물론 색깔은 다르지만.”
[...있을 수 없어. 불가능해.]
“불가능이라는 영역을 초월한 존재니까 신이라고 떠들 수 있는 거지.”
그는 손가락으로 얼어붙은 의자를 가리켰다.
“이런, 이래선 앉을 수 없겠지. 내 생각이 짧았어.”
후~
입김을 그 의자에 불어넣는다.
그러자 내 냉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1초도 지나지 않아 원상태의 의자로 되돌아갔고, 나는 이 상황을 너그러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또한 환상이 아닐까... 이런 얼굴이야.”
내 생각이 읽혔다. 아니면 예측한 말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어느 무엇도 불쾌한 감정을 삭힐 수는 없었다. 나는 다음 마법을 준비하며 녀석을 겨냥했다.
하지만.
“그 무서운 마법 좀 치우지그래.”
딱!
핑거 스냅, 그 간결한 동작에 갑자기 내 비늘이 사르르 쏟아져내렸고, 머리에 자란 뿔과 등에 자란 날개, 꼬리마저도 덜렁 잘려나가 바닥에 쿵쿵 떨어졌다.
“그건 무슨 표정이지? 내 마법이 단숨에 파훼되다니, 있을 수 없어. 이런 얼굴인가?”
“...닥쳐라 에이브(AYV).”
가방에서 또 다른 심장을 꺼냈다.
붉은기와 시커먼 기가 뒤섞인 물건.
암시장을 통해 비싸게 얻어냈던 악마의 심장이다.
〔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
〔 αντικατσταση τη καρδι(심장 교체) 〕
〔 Ver 32ο Δαμονα, 13η Ασμοδαο.(32위 악마, 아스모데우스(13대). 〕
꾸득꾸득, 어깨죽지에서 시커먼 날개가 자라났고, 시커먼 마기가 몰아친다.
흑마법이다. 심장을 악마의 것으로 교체했으니 내 마기는 굉장히 더럽고 역했다.
단탈리온 전의 마왕 13대 아스모데우스. 그녀의 심장을 박아넣자 내 자아가 위험해질 정도로 불쾌한 마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지금은 되려 괜찮다는 생각으로 전환됐다.
에이브(AYV)를 향한 억누를 수 없는 살의는 인간 형태 때도 마찬가지다. 급격히 짙어지는 잔혹성은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
가슴팍이 부풀어오른다는 게 이 형태의 단점이지만, 이까짓 단점은 안고 갈 수 있다.
상대는 신이기에.
나는 기꺼이 악마가 될 수 있었다.
“호오, 그건 처음 보는 형태인데. 심장의 종류에는 제약이 없는 건가? 가령 짐승의 것을 박아넣으면 그 짐승으로 변하는 건가? 주술도 아닌 마법으로 이런 형태 변화를 구축하다니, 자네에게 더욱 흥미가 샘솟는군.”
[멋대로 입을 놀릴 수 없게 갈기갈기 찢어주지.]
“인격은 심장의 주인을 따라가는 것인가. 하기야, 자이키릭이랑 자네는 성격이 크게 다르진 않았으니 표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어.”
감상 따위나 듣자고 이 마법을 펼친 게 아니다.
곧장 놈의 머리 위에 시커먼 차원문을 만들었다.
〔 Κλαση ικρωμα 지옥의 심판 〕
퍼석! 퍼석! 퍼석! 퍼석!
거대한 흉측하면서도 울퉁불퉁한 톱날이 놈의 머리통에 폭우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멈추지 않았다. 첫 번째 방패가 있다고 한들 막아내기 버거운 공격을 이를 악 물고 마나를 짜내어 쏟아냈다.
[......]
정신을 차려보니 톱날에 난도당한 시뻘건 고깃덩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렇게 했는데도 쓰러지지 않는다면 난감할 뻔했다. 다행히도 첫 번째 방패만 믿고 오만하게 굴어준 덕분에 제압할 수 있었다.
〔 Ματαωση 캔슬 〕
치이이...
이 형태를 더 유지하기엔 마나도 마나거니와, 마기에 잡아먹힐 위험성이 있었다.
그 전에 마법을 종료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에이브(AYV)의 사체를 바라봤다.
“...후우. 힘들었어.”
[그럴만도 하지.]
...?!
어디선가 울리는 놈의 목소리에 자세를 잡고 마법진을 만들어 사방을 겨냥했다.
어디지? 어디에 있는 거지?
사체는 미동 조차 없다. 제길, 빠져나간 건가?
주먹을 불끈 말아쥐며 마른 침을 삼키자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내 육체를 죽일 줄은 몰랐어. 첫 번째 방패로도 막아내지 못 할 줄이야.]
“...에이브(AYV)!!”
[그렇게 외쳐주지 않아도 내 이름쯤은 알고 있다.]
약올리는 말투에 열이 바짝 올라 사방에 마법진을 갈겼다.
어딘가에는 있겠지. 저 사체가 아니라면 투명 마법이라도 걸고 숨어서 날 지켜보고 있겠지.
반응이 오는 곳에 남은 마나를 쥐어짜내 폭격할 것이다.
[그것도 허튼 짓이니까 그만두고.]
푸쉬이...
놈의 목소리와 동시에 내 마법진이 모두 역산되어 사라졌다.
그때 마법진은 붉게 물들었다. 내 앞에 잔뜩 깔린 톱날 더미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온다.
“오랜만이군 악쿤 토든.”
“메이블?”
당혹감을 머금기도 잠시,
겨우 냉정을 찾은 나는 곧장 메이블 토진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그는 내 손에 죽었다. 이건 환상이다. 이건 환상이야.
“뭐든 의심하는 건 네놈이 ONE(?)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강점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칭찬할 바가 못 돼.”
메이블 토진은 슬며시 웃음을 짓고는 내게 다가왔다.
그의 뒤에 네모난 일렁임이 진다. 챱챱챱 다시는 듣기 싫었던 그 소리마저도.
“{ πρωττυπη μαγεα Trump. }”
트럼프 카드가 나타나 사방에서 날 노렸다.
“게임은 제안하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 마력도 바닥을 치는 네놈의 상태로 내 마법을 견뎌낼 수 있을까.”
“...거짓말이야.”
“보여줘야 믿나 보군.”
치이이이
트럼프 카드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시커먼 화염을 머금었다.
그 중심에는 내가 있다.
“...쾅.”
작은 목소리가 울리자,
메이블의 마법진이 불을 뿜었다.
“......”
난 그 마법에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있었다.
메이블의 흑염은 날 뒤덮었지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녀석은 환영이 맞았다. 내가 작은 얼음 창을 던지자 메이블은 연기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어째서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혹여나 메이블이 진짜였더라면 죽었다. 그건 분명하다.
[담력도 상당하군.]
그냥 감이었다.
단순히 배짱부린 건 아니다. 왜냐, 아무리 신일지라도.
에이브는 반푼이다. 형제에게도 버림받는 존재.
창조신 큐(Q)도 아닌 이상에야 어느 방면에서나 전능하지는 않겠지. 그 도박성 짙은 판단은 맞았다.
넬피가 말하길 에이브(AYV)가 김철수를 조종했을 때에도, 실상 조종은 아니라 본능을 극대화시키는 정도의 수준에서 그쳤다고 말했다.
이 전례를 믿고 메이블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메이블은 죽었고, 그 영혼을 당신이 부릴 수는 없었을 거야.”
[흠, 재밌군. 근거가 있는가?]
메이블과의 최종 결전. 그가 목숨을 잃었던 그 전투.
그때 녀석은 후드티를 입고 모습을 보였다. 지구에나 있는 평상복을 입고 말이다.
그게 무슨 의미였을까, 일지를 모두 읽고 신마저 영접한 지금의 나는 대답할 수 있다.
그는 내게 알리고 싶었던 거다.
“그는 ONE(?)의 주민이 아니었으니까. 전 마법 용사 메이블 토진. 본명은 네놈이 알고 있을 테지.”
[...하하하!”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다시 사체가 있던 곳을 바라보자 톱날을 과자 부스듯 으깨며 나오는 에이브(AYV)가 있었다.
“본명은 김진영, 학원 강사를 하던 사내였지. 영어라는 언어를 가르치더군?”
“...대체 우리한테 무슨 원한을 지녔길래 이러는 거야.”
“글쎄, 김진영이 자네에게 말하지 않았나? 재미를 위함이라고.”
놈과의 문답을 떠올린다.
어째서 마왕군은 용사를 살려두냐고 했을 때의 대답.
재미를 위해서라는 얼토당토 않는 소리가 당사자의 입에서 밝혀진다.
“그건 내 재미를 뜻했다. 나는 용사와 마왕군의 대립 구도를 굉장히 좋아하거든.”
“...우리에게 원하는 게 뭐냐.”
“이미 눈치챘으면서 의뭉을 떠는 건가? 자네답지 않은 언행인데.”
드르륵
바닥 끌리는 소리에 뒤를 바라보자 어느샌가 의자가 하나 있었다.
다시 앞을 바라보자 탁자가 하나 있었고, 그 건너편에는 연기처럼 일렁이는 에이브(AYV)가 자연스레 앉아 있었다.
“내가 대화를 권했잖은가.”
“......”
“날 너무 미워 말게.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
“...제 일행은 어디 있습니까.”
“지금쯤 환상 속에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내가 마음먹는다면 단숨에 죽이는 것도 일은 아니다만, 자네와의 평화로운 거래를 위해 강경책은 멀리하고 싶네.”
흐릿한 그의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모습을 잡아간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머잖아 내 앞에는 새 얼굴 가면을 쓴 흑발 남성이 있었다.
“흠, 흠흠!”
그는 연신 헛기침을 내뱉곤 목소리를 정돈했다.
그리곤 사뭇 달라진 어투로 말했다.
“네가내 말을 따랐으면 좋겠어.”
“...거절한다면?”
“강경책은 아껴두고 싶다고 방금 말했잖아.”
둥 둥 둥 둥
내 눈앞에 4개의 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김철수, 이재홍, 디안, 최세린이 곤히 잠들어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중 그나마 누가 제일 마음에 안 들어? 그 사람부터 편히 내 곁으로 보내줄테니 골라봐.”
“환상일 뿐이잖습니까.”
“목소리 떨리는 건 숨기고 말해야지. 그렇게 감정 못 숨겨서야 몬스터 해방이고 뭐고, 신살(??)이고 뭐고 하겠어?”
“바라는 게 뭐냐고 물었습니다.”
“알고 있잖아~ 답답하게 왜 그래?”
스르륵
독사 네 마리가 각자 일행의 목에 날카로운 독니를 들이민다.
나는 입술을 빠득 깨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에이브(AYV)는 손짓으로 내 움직임을 억제했다.
“마왕군을 부활시켜. 그리고 새로운 용사를 너 손으로 길러내.”
“......”
“아, 걱정 마! 진영이도 실렉티스가 되진 않았어. 단지 나와 언약을 하나 맺었을 뿐이지.”
쿡
그는 검지 손가락으로 내 심장을 찔렀다.
“심장에 걸고 약속해. 마왕군을 부활시키겠다고. 그리고 용사를 성심 성의껏 기르겠다고. 마침내 강해진 그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
“머리 잘 돌아가는 애가 왜 이럴까? 한 명 죽여야 말 들을 건 아니잖아.”
“...잠시만 시간을......”
“머리 굴리는 소리 여기까지 난다. 하나 말해주자면 인질은 너 친구들 뿐만이 아니야.”
그는 짝! 손뼉을 쳤고 내 머리 위에 수많은 영상이 시간차로 나타난다.
그 시간차는 점점 좁혀진다. 5초에서 4초, 4초에서 3초, 3초에서 2초, 2초에서 1초... 그런식으로 점점 줄어들어 감히 세기도 어려울 정도의 영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네가 어지러울까봐 다 보여주진 않았지만 ONE(?)에 사는 사람들이야. 모두 내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지.”
어린아이처럼 담백한 웃음을 짓곤 말을 잇는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는 마! 그냥 너는 마음 편히 고르기만 하면 돼.”
양 손바닥을 내게 펼치며 무겁지 않은 분위기를 억지로 연출해낸다.
“내 뜻을 따라! 만약 네가 그게 싫다면...”
흐흥,
코웃음을 치곤 말을 마무리했다.
“기다리는 건 ONE(?)의 절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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