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필요악
* * *
하늘이 불을 끄듯 어두워졌다.
그리곤 일행이 하나 둘 시야에서 안개처럼 흩어졌다.
땅이 흔들린다. 하늘에선 천둥 번개가 쪼개진다.
그와 동시에 쿵 쿵쿵 무언가 떨어져 바닥에 꽂혔다.
비석이었다. 그 비석이 지진을 일으킨다. 카넬루아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당장 이곳에도 계시고요.”
쿠구구구구
비석이 진동하며 땅을 쪼갰고, 그 틈새에서 자줏빛 연기가 새어나왔다.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나는 마법진을 두르며 첫 번째 방패를 귀에서 빼들었다.
마법? 주술? 어느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상대는 신이고 일행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설마 죽었을까?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태연한 표정을 연기했지만 손에 흐르는 식은땀까지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태, 태■?%&양 을⊙¿? 마, 만¡져◎! ㅂ, 바, 봐$*◐야! 뜨˛ㄱ, 거거걱ㅇ┳§운! ㉨¢∂줄! 아! 아¡Ψㄴ, ㄱㅏ?]
주파수가 맞지 않는 것처럼 기괴한 목소리가 울린다. 섬뜩함이 온몸을 휘감았고, 김철수와 전투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표정이 우그러졌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게 호의적이 아니라는 것 하나만은 무엇보다도 분명했다.
직감이라는 게 있다. 곧 저 묘석을 덮은 자줏빛 스산한 기운은 날 덮칠 것이다.
그어어어어...!!
역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질 않는다.
그곳에선 부패된 시신이 좀비처럼 기어나와 내게 달려들었다.
“{ κρηξη 폭발 (υτ) }”
마법 단 한 번, 제압은 어렵지 않았다.
좀비들은 내 냉기에 사로잡혀 움직이질 못했고, 내 온몸에는 시퍼런 서리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긴장의 끈을 풀 수는 없었다. 이건 맛보기에 불과하겠지.
신이라는 자를 대적하려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지금부터 천천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쩌적!
자줏빛 전격이 소리보다 먼저 내 몸을 피뢰침삼아 떨어졌고, 내 주변의 땅은 시커멓게 그을려 연기를 풀풀 풍겼다.
“{ ...πρτη μπλε ασπδα 첫 번째 푸른 방패 }”
이 물건이 없었더라면 통구이 신세를 면치 못했을 터.
상대가 신이더라도 10대 마도구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직접 모습 좀 보이지 그래요?”
아직은 생각보다 순조롭기에 조급한 마음을 숨기고 그를 도발했다.
‘한낱 인간이 신에게 도전하는가!’ 등등 뻔하디 뻔한 대사를 외치며 모습을 드러내면 내 계획이 성공이다.
용사와 ONE(?)은 에이브(AYV)에게 놀아났다.
이제와 지구로 돌려보내 준다고 한들 썩 반가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지만.
단순히 메이블처럼 헛되게 죽지 않기 위해.
다음 용사는 우리 같은 꼴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기꺼이 그를 죽일 것이다.
[ㅅ!& □ㅜㄹ●━ㄹ! 준¡ㅂI 해∴∂ㅆ■지!]
알아먹지도 못할 소리는 해석을 포기했다.
그저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면 곧장 시그니처를 가동해 처음부터 전력으로 깨부술 생각이었다. 에이브(AYV)의 실체가 나타나길 고대하며 마나를 가다듬고 있을 때쯤.
싸아
급격히 모든 게 사라졌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나만 남았다.
“......어?”
온통 백색이다. 서 있다는 자각은 들지만 바닥의 감촉은 없었다.
조심스레 앞으로 손을 뻗었다.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개를 돌렸다. 세상은 여전히 온통 백색으로 뒤덮여 있다.
이건 당최 무슨 마법이지... 아니, 마법이 뭐지?
머릿속도 백지가 된 것처럼, 그저 생각을 비우고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나갔다.
저 멀리에 작은 점이 하나 보인다. 그곳에 가까워지고 싶다 생각하자 순식간에 그 점은 내게로 다가왔다.
“...문.”
낡은 나무 문이었다.
정겨운 느낌마저도 든다. 어딘가 익숙한 이 문... 어디서 본 문일까.
아,
기억 났다.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뜸 내 눈앞에 생겼던 문.
이 문을 열었을 때... 나는 굉장히 긴 잠에 빠졌었다.
자세한 건 한줌의 재 만큼도 남아있지 않다. 이 문을 열었을 때의 기억은 구름처럼 형태만 존재할 뿐 실체는 없었다.
나는 홀린듯 그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덜컹 조금 돌리고, 끼이익 살짝 당겼다.
그러자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 나를 반겼다.
살짝 어질러져 있는 신발장, 아버지의 낡은 가죽 구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
고개를 내려 내 옷을 살펴보니, 맨투맨 티에 항공 점퍼를 입고 있다.
편한만큼 자주 찾는 옷이다. 대수로울 건 없기에 신발을 벗고 현관을 지나 거실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아들 왔어?”
과일을 깎고 있는 엄마가 나를 반겼다.
“...윽 술냄새! 이번엔 누구랑 퍼마시고 왔어?!”
“거, 윤상이도 이제 성인인데 좀 놔두지 그래.”
“당신은 조용히 해요! 허구한 날 술만 퍼먹는 주제에 말이 많아!”
“...이 여편네가 미쳤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엄마에게 대적하는 자는 아빠다.
그 두 존재를 마주하자 갑자기 심장에 무언가 턱 걸린 듯 가슴이 먹먹한 건 왜인지 모르겠다.
“오빠~ 잠깐 내 방으로 와 봐~”
부모님의 언제나 있던 말싸움을 진귀하게 바라보고 있자,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동생의 목소리. 녀석의 호출을 받고 방문을 천천히 열자 침대에 머리만 쏙 내놓고 헤실거리는 뽀얀 얼굴이 보였다.
“히히, 불 좀 꺼줘.”
“......”
“...응? 뭐야, 오빠 왜 그래? 갑자기 왜 울어??”
나조차도 이유를 모르겠다.
갑자기 거짓말처럼 눈물이 주륵 흘렀다.
“누가 운다고?”
“엄마! 오빠 갑자기 우는데?”
“네가 뭔 짓 한 거 아니야? 가만 있어봐, 아들! 갑자기 왜 울어!”
“실연이라도 당했나보지. 거 참 사람이 눈치 없게.”
“딸! 네가 또 이상한 말 했지! 오빠 좀 그만 괴롭히라니까!”
“아 또 뭔 소리야! 불 꺼달라고 한 것 밖에 없어!! 그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아니잖아!!”
엄마는 나를 감싸안으며 뭐가 됐든 간에 괜찮다고 어깨를 두드렸고, 아빠는 괜시리 티비에만 시선을 고정하며 사내놈이 시답잖은 일로 우는 거 아니라는 말을 툭 던졌고, 나는 그게 아빠만의 서투른 격려라는 걸 알고 있다.
그 말괄량이 같던 여동생도 뻘쭘뻘쭘 일어나 내게 손을 슬금슬금 뻗으며 불 꺼달라 해서 미안하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엄마는 너는 좀 조용히 하라며 여동생에게 핀잔을 주었다.
“엄마는 왜 맨날 나한테만 성질이야!”
“너 지금 낳아준 부모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왜 아빠까지 그래! 나도 눈물... 흘리려 해도 안 나오네... 힝.”
가족 전체가 격분했으나,
그저 이 시끌벅적하면서도 따사로운 분위기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울컥했다.
눈가는 흐릿했고, 애써 울음을 삼키려 해봤지만, 그 때문인지 말도 내뱉기 어려웠다.
나는 이 광경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게 내게는 일상일 텐데, 전혀 대수롭지도 않은 광경인데.
어째서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 건지...
“어때 아들.”
그때 엄마가 내 어깨에 올린 손을 내리곤 천천히 내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웠어?”
꽈아아악!
내 목을 조여온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뇌가 따라가지 못했고, 나는 팔을 붙잡은 채 허둥거리고 있었다.
“윤상아.”
이번엔 아빠의 목소리. 그는 아직도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다.
하지만 조명에 비친 그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그림자는 내 발목을 시작으로 온몸을 휘감았고, 내 양팔을 묶어 날 움직이지 못하게끔 했다.
“이 풍경이 그리우더냐.”
크, 크읍, 큽!
비명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온몸이 속박당한 채 괴로움에 몸부림치고만 있었다.
억울함과 당혹감, 불안감과 공포.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뒤섞어놓은 상태였다.
나는 피가 쏠리는 걸 느끼며, 어지러움을 느끼며 눈앞을 바라봤다.
“오빠.”
여동생이 내 얼굴을 쓸어내렸다.
“슬슬 꿈에서 깨야지. 마법 용사 악쿤 토든.”
퍼어엉!!
냉기를 터트렸다. 첫 번째 방패가 내 온몸을 휘감은 채였고, 나는 목을 매만졌다.
목이 졸렸던 건 환상이었는지, 너무나도 멀쩡했다. 다만 울컥이는 감정은 그대로였다.
나는 현실을 직시했다. 이곳은 ONE(?)이다. 지금 에이브(AYV)와 전투중이었고, 방금의 그 환상은 그의 농간이리라.
“...모습을 보여라 에이브(AYV)!!”
나는 분노했다.
헛된 희망을 주어 내 감정을 가지고 논 그를 어떻게든 죽여야 분이 가라앉을 것 같다.
[...ㆀㅏ ㅇ, 잊ㅈㆎl 가, 감이 좀 잡히는군.]
녀석의 목소리가 울린다.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 선물은 마음에 들었나? 오랜만에 가족이란 걸 봤으니 감회가 새롭겠군.]
상당한 저음. 목소리 자체는 아직도 기괴했으나 이제는 그의 말이 식별이 가능했다.
개자식, 끓어오르는 살의를 느끼며 악에 받쳐 그에게 외쳤다.
“내 동료들을 어떻게 했지?! 당장 대답해라 에이브(AYV)!! 모습을 보여라!!”
[어떤 걸 들어달라는 거지? 동료의 행방을 알려달라는 건가, 모습을 보이라는 건가?]
“대답해라!!”
[똑똑한 놈인 줄 알았건만, 내 착각이었던가.]
쿠구구구
땅이 흔들린다.
그에서 그치는 줄 알았으나, 갑자기 땅이 반으로 쪼개졌고, 종잇장처럼 접혔다.
그에 첫 번째 방패로 대적했으나 접힌 땅은 거짓말처럼 180도 회전했고, 머잖아 중력이 거꾸로 됐는지 나는 당연하다시피 반대쪽 땅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일일히 마나 담아서 말하는 것도 귀찮아서 말이야.”
그곳은 살풍경의 방이었다.
전체적인 색감은 백색과 붉은색을 뒤섞어놓았지만, 가구라고는 둥근 책상. 그리고 의자 두 개가 다다.
내 건너편 의자에 형태 흐릿한 무언가가 앉아 있었다.
그 무언가는 내게 말했다.
“앉지, 할 얘기가 많아.”
에이브(AYV)다.
나는 자이키릭의 심장에 손을 가져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