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역은 돌고 돈다-59화 (59/152)

〈 59화 〉 권선징악(????)!

* * *

“??(속박), ??(압박).”

“끄으으으악­!!”

꽈아아악­

살이 터져나올 정도로 꽉 묶인 쇠사슬을 더욱 조여 장을 완전히 휘감았고, 장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잘생긴 얼굴은 찌푸려도 잘생겼단 말이지...”

“...{ φλγα Κολνα ­ 불기둥! }”

붉은 마법진이 진 키아라의 머리를 노린다. 그 마법진이 천천히 회전하며 아지랑이를 피워낼 때,

“떽!”

진 키아라는 손을 휘휘 젓는 것만으로 마법진을 부숴버렸다.

“마법 용사님~ 내가 아는마법사가 몇 명인데, 2서클 마법 파훼 하나 못 할까봐?”

장은 떨리는 동공으로 그녀의 얼굴을 마주했다.

팔에서 느껴지는 격통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너무나도 극심한 수준 차이, 그 강하던 퀸도 단박에 나가떨어졌고, 빈은 말할 것도 없다.

케일은 코를 틀어막으며 눈물 범벅이 된 채 바닥에 토사물만 쏟고 있으니 전력이 될 수 없었다.

자신만이 유일한 희망이었고,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강력한 것을 쏟아냈다.

그런 줄 알았으나, 그 희망이 철저하게 무너졌다.

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목에서 피맛이 난다. 침을 꿀꺽 삼켜 진을 바라봤으나 그녀는 마네킹처럼 생기 없이 웃고는 장의 볼을 어루만졌다.

“마음 같아서는 마왕성에 데려가 기르고 싶지만...”

어느새 사라진 진은 퀸의 옆에 나타나 있었다.

흥흥~♬ 실컷 콧노래를 부르곤 양손을 허리춤에 올려 깍지를 끼곤 퀸에게 다가갔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서 말이야.”

홱­!

그녀는 퀸의 포니테일을 붙들어 고개를 젖히곤 말했다.

“너 워록(Warlock)이라면서? 위험한 애구나~?”

“...이것 놔라, 빛이 비추는 곳에선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음탕한 년아.”

“얘 말하는 것 좀 봐? 우리 수호대장님이랑 수준이 비슷하네.”

스르릉­

단검을 꺼내 퀸의 목에 세웠다.

“끄으, 끄으으!!”

안간힘을 써 움직이려 해보지만, 쇠사슬은 너무나도 견고했다. 마법진을 어떻게든 만드려고 해봤지만 마나가 고갈 직전 상태였기에 만들어지는 도중에 사라져버렸다.

“제발, 제발!”

빈도 장과 사태가 비슷했다. 그는 화살을 집어 진에게 달려들려 해봤지만, 그의 손목의 힘줄이 끊어진 건지, 자꾸만 화살을 놓쳤다.

덜그럭 소리와 함께 바닥에 우수수 떨어진 화살들,그것을 향해 뻗는 손마저도 덜덜 떨린다.

진에 대한 공포도 감미된 것일까?수전증 따위와는 수준이 다른 떨림이었다.

“끄, 끄으으... 우, 우웁...”

적에 대한 기척을 냄새로 알아차리는 케일,그녀가 가장 극성이었다.

진은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일행 중 제일 무력한 건 케일이었다.

그녀는 검을 붙들고는 있으나 한 발짝 내딛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애초에 다리나 팔이 멀쩡하더라도 계속된 구역질에 현기증을 느끼고 눈물을 주륵 흘리며 금방이라도 죽을 듯 보였다.

사천왕이라는 벽은 이다지도 높은 걸까.

가늠치도 못하겠다. 진의 표정은 산책이라도 나온 듯 너무나도 평온했으니까.

진은 엄밀히 따지면 전투력이 강한 사천왕은 아니다.

소리이며, 시각적이며, 어느 면에서나 알아차리기 어려운 보법은 그녀의 놀라우리만치 느껴지지 않는 기척과 더해지면 너무나도 위협적이다.

그게 그녀의 강점이다. 암살에 있어서 그녀보다 뛰어난 자는 ONE(?)에 없다.

그럼에도 진은 지금 용사를 가지고 노는 중이다.

장난치듯, 어린애들 놀이처럼.

‘우리가 죽는 순간은 진이 이 놀이에 싫증을 느꼈을 때겠지.’

마지막이 노리개가 되어 죽는 거라니.

부질없는 삶이었다. 용사 일행의 결말은 너무나도 조촐하게 끝났다.

[ 태극 류 발도술 제 1식 ­ 출근길 ]

[ 태극 류 발도술 제 3식 ­ 마늘 빻기 ]

두 검사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콰자자작­!

글라디우스 형태의 검이 진의 단검에 부딪치며 스파크를 이뤄낸다.

진에게 대적하는 자는 케일의 검술 스승 양이었다. 그는 불똥을 튀기며 진을 밀어냈고, 그 사이 퀸의 격투 스승 음은 일행을 모두 어깨에 들쳐메고 동굴 밖으로 나갈 것을 권했다.

“마법 용사님,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사슬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다리는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럼 얼른 벗어나시죠. 저 여자의 영역에 더 있다간 저랑 양도 목숨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쿠구구구구­!

터널 안쪽에서 엄청난 오러가 폭발하듯 터진다.

양의 오러였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진에게 대항했다.

“꼬마 많이 컸네,오빠 두 명한테 박살난 자존심은 회복했어?”

“...옛날 일입니다.”

플라티넘이 용사를 살리기 위해 투입한 것이리라.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몇 분만 늦었어도 용사는 전멸이었을 테니, 일행은 천운을 겪은 것이다.

하지만 역시 사천왕을 상대로 양 혼자서 대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진에게는 여유가 넘쳤고, 양은 험악한 표정으로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걸 알렸다.

“다음에 봐 잘생긴 용사님!”

“...독희.”

터널에서 벗어나는 장에게 진은 손을 붕붕 휘두르며 인사했다.

와중 한 손으로 가볍게 양을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은 가히 사천왕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

“......”

진 키아라에게 지독하게 당한 탓일까, 일행의 분위기는 초상집과 다름 없었다.

실제로 죽은 이도 많다. 터널에서 공사하던 인부 중 절반은 슬라임과 봄버에게서 살아남았음에도 진에게 독살 혹은 폭살을 당했다.

용사가 벗어난 이후, 진이 양을 쓰러트리고 밖에서 대량 학살을 펼친 것이다.

그리곤 유유히 국경을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실마리조차 남기지 않고 애초에 없었던 사람이라는 듯 사라진 걸 보면그림자 수색대라는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확실히 뇌리에 각인되었다.

“...잃은 것만 있어. 결국 또 사람들을 지켜내지 못 했네.”

장이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보다 얼마나 강해져야 하는 걸까요. 저는 진 키아라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전투불능이었어요. 다음에 마주했을 때, 스승님들이 없더라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케일이 분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둘 다 재수 없는 소리라기엔 너무 현실성이 짙었다.

그 훈련광이던 퀸 마저도 침대에 걸터앉아 침묵을 지켰다.

아직 부상이 다 낫지도 않았지만, 너무나도 큰 격차를 느꼈기에 정신적인 피해가 더욱 컸다.

입가가 썼다. 레벨은 충분히 상승했다지만, 아직 용사는 우물 안 개구리만도 못 한 신세다.

자만하지는 않았다. 진 키아라를 마주한 순간부터 전력을 다해 덤벼들었으나,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더 강해져야 한다.

레벨도 레벨이거니와, 경험적인 면과 장비도 절실하다. 빈의 활은 부러진 채니까 말이다.

그러려면... 여지껏 훈련했던 방식을 조금은 바꿀 필요가 있을 터.

퉁퉁­

유리창을 향해 무언가가 부딪힌 건 그때였다.

처음에는 바람이라도 분 것이겠거니와 일행 모두가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죽상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퉁퉁퉁­!

그 소음은 멈추지 않고 지속했다.

그제야 케일이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드래곤?”

“끼에, 끼에에­!!”

그곳에는 날갯죽지가 피범벅이 된 시커멓고 조그마한 용 한 마리가 있었다.

피를 질질 흘리는 그 용을 케일이 재빠르게 창문을 열고 들여보내 소파에 눕혔고, 녀석은 숨을 헐떡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떡해, 용은 뭘 먹여야 되죠?”

“고기아닐까?”

“치료가 우선이다.”

“그럼 일단 의료반부터 요청해!”

“...아뇨, 잠시만 기다리세요.”

장이 녀석의 동공을 열어보거나 이리저리 몸을 둘러보곤 말을 이었다.

“검은색 용, 그리고 짙붉은 눈동자. 이 녀석은 다크 드래곤입니다. 의료반을 불러서는 안 돼요.”

“다크 드래곤? 그게 어쨌다고?”

“의료반을 불러온 순간, 이 왕국에서 이 녀석을 처형할 거란 말입니다. 왜냐면.”

다크 드래곤, 그를 이끄는 최악의 용 타나토스.

그의 핏줄임에 틀림 없다. 몸집이 작은 걸로 보아 카이루스는 아닐 테고, 그의 아들 쯤 되겠지.

동대륙에서 다크 드래곤의 이름은 꺼내서는 안 된다.

다크 드래곤은 인간들에게 매년 한 명씩 제물로 바칠 것을 막강한 무력을 기반으로 협박하니까.

그 제물은 동대륙에서 나온다.

심지어 이 신세 지고 있는 동대륙에서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선택해야 합니다.”

장은 지팡이를 들어 용의 얼굴 앞에 세웠다.

끼에? 무슨 행동인지 갈피를 못 잡은 새끼 용은 고개를 갸웃했다.

“죽이거나.”

치이이이...

지팡이에서 그려진 새빨간 마법진이 천천히 회전하며 새끼 용을 노린다.

케일이 그의 앞을 두 팔을 벌려 가로막았으나 마법진은 그녀의 뒤쪽에도 생겼다.

케일은 기겁하며 검을 들고 마법진을 향해 뒤돌았다. 새끼 용은 불안한 눈빛으로 이 구도를 담고 있었다.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지혜 씨, 끝까지 들으세요. 죽이거나... 혹은.”

치이이이...

촛불 꺼지듯 마법진은 서서히 사라져 검은색 연기만을 남겼다.

“숨기거나.”

*

“오빠~ 나 다녀왔어~ 아니, 참모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입에 잘 붙지는 않네.”

철컹­!

허벅지에 매달려 있던 작은 가방을 모조리 풀어 바닥에 던지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은 살짝 찌그러졌다.

“......”

그에 고풍스러운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수많은 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 키아라는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그의 업무실 중앙에 있는 소파에 몸을 뉘였다.

“마왕님은?”

“주무신다.”

“역시 애라서 그런가, 잠이 참 많아. 아무튼 임무 마쳤습니다!”

“수고했어. 슬라임과 봄버에겐 명복을 빌어줘야겠지. 곧바로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지시해놨어. 2시간 후에 시작이야. 너도 꼭 참석하도록.”

“참석해야지내 부하들인데. 대의를 위해 희생했으니 편히 눈 감으면 좋겠네,”

“...그랬으면 좋으련만.”

가슴 한 켠이 무척 무겁다.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건 다름 아닌 참모장이었다.

용사가 상대하기에 적절한 레벨이었다는 게 이유였다.

조금 힘들 수는 있지만, 결코 못 물리칠 상대는 아니다.

레벨을 올리기에, 경험을 쌓기에 제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종류의 몬스터는 용사의 양분이 되었다.

“몇몇은 병신을 만들까 싶었는데, 꾹 참았어. 잘했지?”

진 키아라는 싱글벙글 웃으며 장난삼아 벽에 바늘을 던졌다.

퍼석­

벽에 바늘이 꽂힌다.

콰창­!

또 던진 바늘에 기존에 박힌 바늘이 무너진다.

콰창­! 마찬가지로 바늘을 바늘로 또 쪼갰다.

이 기행을 여러 번 하더니, 별로 재미가 없었는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성큼성큼 참모장에게로 다가갔다.

“마음 같아서는 한숨에 죽일 수 있었는데... 그래서는 오빠가 ‘그분’에게 거역하게 되는 거잖아?”

“......”

“무척 모순된 삶이야 그렇지?부하들 때문에 밤마다 눈물 흘리면서도, 더군다나 언젠가는 본인을 죽이러 올 천적을 제 손으로 기르는 꼴이라니.”

왈칵­

그의 산더미 같은 서류를 손으로 툭 쳐 책상에 무너트렸다.

그 중 하나를 집어 읽기 시작했다. 문서 상단에 적힌 날짜에는 오늘이 적혀 있었다.

“용사 성장도 보고서~ 현재 평균 레벨은 75에 도달했으며, 독희 진 키아라를 보내 사천왕이라는 벽을 통감시켜 성장통을 부여함~ 그 성장통을 이겨내게 할 가이드를 보냈고, 그건 카이루스의 아들 다타리오이다~ 그를 통해 던전 및 여럿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게 인도할 것이며, 그가 이루어졌을 때 용사의 성장도는 몇 곱절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서류를 바닥에 내려놓곤 참모장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추정됨.”

“손 치워.”

“고생이 많아, 우리 윤상 오빠.”

이만 가볼까~ 혼잣말을 내뱉곤 바닥에 내팽겨친 가방을 어깨에 들쳐메고 문을 향해 다가갔다.

“오빠야, 좀 있다가 봐~”

으으음~ 쪽!

진 키아라는 손키스를 보내곤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에 참모장 악쿤 토든은 썩은 표정을 짓더니, 마법진을 그려 문을 향해 소금을 왈칵 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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