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권선징악(????)!
* * *
검술 용사 케일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눈이 고장이라도 난 듯 눈물을 주르륵 쏟았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내뱉는 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물은 흘리진 않았으나 곧 울어도 이상하진 않을 표정이었다.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7서클에 해당하는 마법 차원문, 그 차원문의 크기를 보아 이번 습격은 8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관여했다.
그럴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이었다. 참모장 악쿤 토든.
얼음 마법에 도가 트였다는 뜻과, 언제나 냉철한 판단을 내린다는 뜻으로 마왕에게 하사 받은 절대빙결(??)이라는 이명.
냉철한 사고나 얼음 마법은 잘 모르겠고, 그의 마법 수준은 엄청났다.
거대한 잔해물, 자세히 보니 돔과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었다.
이런 건물을 북대륙 너머에 위치한 마왕성에서 동대륙 플라금에 단박에 보낼 수 있는 마법 실력이라면, 그 안에 코볼트와 고블린을 왕창 싣고도 아무런 문제 없이 전송을 완료할 수 있는 실력이라면.
마왕군이 악인 이상 용사 일행으로서는 거대한 벽을 마주한 셈이다.
저 경지를 따라잡으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어제부로 막 2서클에 도달한 장으로서는 감히 가늠가지 않았다.
“만약 오늘 습격한 몬스터가 고블린 따위가 아니었더라면...”
궁술 용사 빈의 말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 레벨이 현저히 낮고 제압하기 쉬운 최하급 몬스터가 아니라 웨어울프나 다크 엘프들, 초토화시킬 목적으로 웜이나 와이번 등을 대동하였더라면,
이프카리스토... 아니, 플라금은 멸망했다. 어쩌면 동대륙이 멸망했을 수도.
이 문장에는 한치의 과장도 없다.
“이제 대답할 수 있겠군.”
퀸이 장에게 다가왔다.
“마왕군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마법 하나만으로 수백명이 죽었다. 궁술 용사의 말대로 저 건물 안에 있던 게 최하급 몬스터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막아서지도 못했겠지.”
고블린 코볼트로도 수백명을 희생한 다음에야 막아설 수 있었다.
“자, 우리는 마왕군이 마음먹는다면 금방이라도 죽을 수 있는 존재다. 이따위 저급한 몬스터들에게도 고전하는 수준이다.”
철퍽!
몬스터 사체를 발로 찼다. 그녀의 맨다리와 신발에 붉은 피가 방울이 되어 튀겼지만 신경쓰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그들이 마음먹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강해져야한다는 내 생각에 근거가 더해졌군.”
“......”
“장, 대답해라. 용사 존재 의의는 뭐지?”
안개가 걷힌 듯 확실해졌다.
마왕군을 악이라는 프레임 하나만으로 증오할 수 있는가?
헛된 소리였다.
“사, 사람이... 사람이 죽, 죽었어요.”
“퀸처럼 수련에 매진했더라면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을까...”
눈물을 왈칵 쏟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멘탈이 터져버린 퀸과, 현기증이 나는지 건물 외벽에 기대어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붙들고 자책에 빠진 빈.
이들만 보아도 명확했다.
마왕군은 악이다.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명확한 악이다.
플라티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용사의 의의? 마왕군의 괴멸이다. 용사는 그들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너희가 보다 강했더라면, 안일한 생각을 버렸더라면 몇몇은 구했겠지. 건물에 깔려 팔이 절단된 채 고블린에게 곤죽이 되어버린 저 10살 꼬마, 자식을 구해달라고 기사단에게 달려가는 중 무너진 건물에 허리가 으깨진 모녀, 다리가 불편해 저항도 못 하고 코볼트의 창에 목이 뚫린 저 영감.”
“...그만하세요.”
“저들을 구할 수 있었을 거다. 저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마왕군이 아니라 우리다.”
“그만하라니까요?!”
“분한가? 무력감에 치가 떨리나?”
퀸은 피식 웃으며 주먹에 묶인 붕대를 풀었다.
그녀는 빈과 장을 머저리 보듯 바라보더니 말을 끝냈다.
“그럼 강해져야지. 마왕도 죽일 수 있을 만큼.”
*
마왕군은 플라금 침공 이후로 잠시간은 잠잠해졌고, 평소대로였더라면 일행은 시시덕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들은 달라졌다.
빈은 손에 피멍이 들 정도로 활시위를 당겼고, 케일도 어느 대검호가 정리해둔 검술 교본을 기반으로 온몸에 근육통이 올 수준까지 검을 휘둘렀다.
장도 어느 대마법사가 정리해둔 마법 문서를 지독하게 연구하며 마법 이해도를 최대한 올렸고, 퀸은 애초에 잠과 밥시간을 제외하곤 수련에만 몰두하는 이였다.
이들의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몬스터를 죽이는 것보다야 레벨 상승폭은 적지만 기술적인 면모나 정신적인 면모는 확실히 상승 중이다.
용사로서 이들은 완성되고 있었다. 두 번째 침공이 펼쳐진 건 레벨이 막 50에 도달했을 때였다.
“용사님들, 한시라도 바삐 이동해야 합니다. 장소는 동대륙과 남대륙 국경에 있는 기다란 터널이에요.”
플라티넘의 가신이 우리를 마차(??)에 태워 공용 차원문으로 성급히 이동했다.
“출현한 몬스터는 포이즌 슬라임과 폭탄을 던지는 붐버에요. 원거리에서 공격하면 공략이 쉬울 겁니다. 검술 용사님과 격투 용사님은 특히나 조심해야 할 거예요.”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잖아요...”
“알아서 할 테니 운전에나 집중해라.”
퀸이 톡 쏘아주자 가신은 입을 다물고 차원문까지 운전에 몰두했다.
행인은 우리를 응원하며 손을 흔들었고, 차원문의 일렁임이 멎을 때까지 환호성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3터널, 그 인근 차원문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공사를 진행하던 인부들은 피범벅이 되어 도망치고 있었다.
다리가 폭탄에 절단 되어 팔로 기어다니는 인부를 보법을 통해 케일이 구해냈고, 우리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다.
막 터널 개설을 완료하기 직전, 벽과 바닥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니, 폭탄이 수차례 터지고 포이즌 슬라임의 독액이 터널을 모두 뒤덮어 인부를 불 앞 설탕처럼 녹였다.
이 몬스터들은 사천왕이자 그림자 수색대의 대장인 진 키아라의 수하들이었다.
이명은 독희(??), 독을 주로 사용한다는 뜻과 그림자처럼 자연스레 어느 집단에 섞여놓고서는 독처럼 어느샌가 그 집단을 서서히 무너트린다는 뜻에서 따온 이름.
암살자에 가까운 그녀는 종종 폭탄도 주로 다룬다.
그 결과가 이 두 개의 몬스터다. 그녀의 독을 투여받아 탄생한 포이즌 슬라임과 그녀의 수제 폭탄을 무장한 조그마한 임프들.
확실히 위협적인 몬스터들이다.
슬라임의 경우에는 몸을 오러로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한 맞닿는 즉시 피부가 녹아내릴 것이며, 봄버의 폭탄은 직격당하는 순간 뼈도 추리지 못 할 것이다.
레벨도 고블린, 코볼트와는 궤를 달리한다. 대략 70~80 레벨.
그러나 이번에는 1차 침공 때처럼 많은 희생자를 낳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 폭풍(?風)의 화살! ˚
[ 태극 류 검술 제 1식 출근길 ]
“{ φλγα Κολνα 불기둥! }”
빈의 맹렬한 칼바람을 휘감은 화살, 케일의 노을처럼 주황빛을 띄는 오러가 담긴 검격, 장의 폭발적인 화염 기둥,
“{ 파열권(???) ]”
퀸의 마나 오러 뒤섞인 충격파까지.
비록 터널은 무너졌지만, 몬스터는 태반 죽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레벨도 급속도로 상승한다. 몬스터를 죽였다는 것만으로 장의 레벨이 70에 도달했다.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는다. 일행은 자신감을 가지며 터널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그때 케일이 검을 척 뻗곤 일행 앞을 가로막았다.
의아함을 느끼며 왜 그러냐 묻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몬스터를 죽였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일까, 혹은 지쳤으니 쉬고 싶다는 뜻일까.
그런 걱정을 머금고 케일을 부축하자 그녀는 발작하듯 검을 잡고 벌떡 자세를 잡아 전방을 향했다.
“...악취가 느껴져요. 엄청난 악취가... 저 앞에...”
“그래봤자 저급한 몬스터겠지.”
퀸이 벌벌 떠는 그녀를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터벅, 터벅, 터널에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울린다. 주먹을 꽈악 쥐곤 붕대를 다시 메며 주먹을 내지를 준비를 하자,
푸슉!
퀸의 어깨와 목 사이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일행은 화들짝 놀랐으나 이내 전투 자세를 잡으며 이 의미 불명의 공격에 반응했지만, 빈이 대뜸 털썩 주저앉았다.
“화, 활이...”
퍼석
깔끔하게 절단되어 덜렁거리는 활, 그와 동시에 빈의 손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흩뿌려진다.
장은 다급한 어조로 말을 뱉었다.
“퀸 씨! 성빈 형!! 당장 물러나세요!!”
방어 마법진을 준비하며 자세를 잡는 장에게 케일은 후들후들 떨며 딸꾹질을 연신 내뱉었다.
“지, 지독한... 악취가...”
“악취? 화약 냄새만 나는데, 어디에 적이 있다는 겁니까?!”
“악취가... 우웁! 우, 우웁!!”
“지혜 씨! 정신 차리셔야 돼요!!”
너무나도 빨리 찾아온 위기, 장도 온몸이 벌벌 떨리며 지독한 공포를 느꼈지만 그가 정신차리지 않는다면 저 보이지 않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다.
그는 겨우 정신줄을 붙들었다. 이 공포에 굴복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공포란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너는 침착하구나.”
터널에 선명히 울리는 목소리 한 줄기, 그와 동시에 어둠에서 인영이 하나 드리운다.
또각, 또각. 구둣발 소리가 울렸고, 케일은 코를 확 틀어막으며 다시 토사물을 뱉었다.
“악취! 저, 저사람한테서 악취!!”
언어 능력을 상실한 듯 말을 끊어서 하는 케일의 눈은 이미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냄새로 상대방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케일, 그녀에게 있어서 저 여성은 너무나도 두려운 존재라는 거다. 생리적으로 몸이 반응한다.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상대라고.
“어머, 제법 잘생겼네? 머리카락만 좀 자르면 되겠어. 머리 긴 남자는 안 좋아해서.”
“...당신은 누굽니까.”
냄새는 느낄 수 없지만,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장이 지팡이를 콱 부여잡았다.
퀸은 피를 틀어막으며 바닥에 엎어져 있었고, 빈도 손목이 절단면을 중심으로 덜렁거리기에 도저히 전투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한시라도 바삐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결론에는 도달했으나 앞의 존재를 상대로 도망치기가 가능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케일이 어째서 구토를 할 만큼 지독한 악취를 느꼈는지 얼추 감이 잡혔다.
“초면이지? 반가워 용사님들.”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얼굴을 마주한 순간부터 진작 알았다.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검은 단발, 눈처럼 새하얀 피부,
양손에 각기 들린 바늘과 단검에서는 피가 뚝뚝 흐른다.
“기척을 정말 조금만 흘렸는데 알아채다니, 이 금발 여자애 무서운데? 언젠간 날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차가운 말투로 말하지 말아줘~ 잘생긴 남자한테 미움 받기는 싫거든.”
철컹
그녀는 바늘과 단검을 집어넣곤 무언가를 허벅지에서 꺼냈다.
질량 따위는 무시하는 건지, 그녀의 허벅지에 달린 조그마한 가방에서 무한정 기다란 쇠사슬이 주르륵 나온다.
“내 이름을 기억해줬음 좋겠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쇠사슬에서 느껴지는 것은 범상치 않았다.
스멀스멀 먹구름이 지듯 사슬을 중심으로 검은 아우라가 풀풀 풍긴다.
더군다나 이곳은 터널이기에, 그녀의 옷마저도 검은색이기에,
피부를 제하곤 모두 보호색을 띄고 있었다. 시야에 의존해선 좋은 꼴 못 본다.
오로지 기척을 느끼고 상대해야 한다.
그 기척을 느낄 수도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장은 눈앞의 여성에게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압박감을 받았다.
“독희 진 키아라. 사천왕 중 한 명이야. 잘 부탁해.”
촤라라락!
쇠사슬이 장을 덮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