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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57화 (57/152)

〈 57화 〉 권선징악(????)!

* * *

정의란 무엇인가!

‘그냥 모두가 평화롭게 웃으면 그게 정의이지 않을까란 모호한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닐 테지.’

서울에 위치한 대학교 문예창작과를 다니는 마법 용사 로서는 합당한 감언이설을 섞어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을 수는 있었으나,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정의나 평화라는 것은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법 용사는 말을 아꼈다.

아직은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에 이 세계에 적응을 못 했다. 이게 그의 대답을 미룰 수 있는 근거였다.

마법 용사 장. 본명은 이기장.

세계를 마왕군에게서 구해낼 용사 중 하나.

촌스럽지는 않은 5 대 5 가르마를 고수하는 장발의 훤칠한 사내는 일행의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행을 이끌고 있다는 느낌은 든다만, 그는 자신에게서 리더로서의 자질을 찾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일행은 자꾸만 용사의 비전과 존재 의의를 되물었다.

이들의 인품을 보아 괴롭히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그 때문인지 마땅히 호응하기 어려웠다.

이들에게까지 사람 좋은 척 가식을 떨고 싶지는 않다. 솔직한 그대로의 심정과 이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를 내놓고 싶은데, 아직 그는 생각을 미처 정리하지도 못 한 채다.

마왕군, 세계를 위협하는 마왕 일각공 암두시아스.

그녀를 필두로 야욕을 내비치는 사천왕. 그 중 마법 용사인 이기장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사천왕이자 마왕군의 참모장인 악쿤 토든이다......라고는 하는데.

말만 들은 게 다다.

아직 마왕군이 세계에 무슨 위협을 끼쳤는지 장은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어찌 나쁜 놈들이라는 프레임 하나만으로 이들을 진정으로 원망하고 미워할 수 있겠는가?

시간이 필요했다. 용사가 마왕군을 물리쳐야 할 이유를 확실히 찾아야 했다.

아직은 아니다. 장은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허나, 일행은 자꾸만 장에게 대답을 요구한다. 어째서 용사가 마왕군에게 적대심을 내비쳐야 하는지 말이다. 이 세계의 주민도 아닌, 지구에서 전송된 인간일 뿐인데, 어째서 정의감과 용사로서의 사명감을 지녀야 하는지 이유를 묻는단 말이다.

장은 난감하단 표정을 지으며, 플라금의 국왕에게 하사받은 지팡이에 몸을 기댔다.

“저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강정 같은 놈인데, 어째서 당신들이 제게서 해답을 찾으려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아직도 모르겠다는 게 제 솔직한 심정이에요. 마왕군이 세계를 지배할 야욕을 내비치고 있다지만... 우리는 이들의 악행을 목격한 게 없는 걸요.”

그를 지켜보는 샛노란 머리, 뿌리는 다시 검게 물들고 있기에 조금은 지저분해 보이지만, 그녀의 미모가 그 지저분함을 패션이라는 두 글자로 승화시킨다.

검술 용사 케일, 본명은 이지혜. 그녀가 갸우뚱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왜 오빠한테서 이유를 찾냐면... 그야, 오빠가 제일 똑부러졌잖아요? 저도 기장 오빠처럼 마왕군이 어째서 우리의 적인지 이유를 잘 모르겠거든요. 다른 오빠 언니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플라티넘 국왕님이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러니 더 신중하자는 말이죠.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입니다. 단지 국왕님이 마왕군은 악이라고 지정했다는 이유만으로 마왕군이라는 거대한 세력에게 적대심을 풍기기에는 우리 신변도 위험해져요. 왜냐, 일주일 전 까지만 해도 우리는 일반인이었으니까요. 지금이야 검술 용사니, 마법 용사니 말한다지만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좀 주세요. 저도 매일 같이 숙제 검사받듯 대답하기 버겁습니다. 그럴 의무도 없고요.”

“아이고, 우리가 기장이를 너무 몰아세웠구나.”

장의 말에 대답한 건 등에 거대한 목궁을 메고 있는 궁술 용사 빈 칠리야, 본명 박성빈이었다. 그는 빼빼 마른 팔뚝으로 장의 어깨에 손을 올려 말했다.

“우리가 너한테 대답을 요구하는 이유는 우리도 불안하기 때문이야. 잘 살고 있던 사람들 멋대로 ONE(?)에 불러온 것도 억울하지만 더 억울한 건 돌아갈 방도가 없다는 황당한 대답이잖아? 그 순간부터 우리에겐 선택지라곤 없어졌다는 거지. 마왕군을 물리치기 위한 용사라고 추켜세우는 판국이고, 또한 그를 따라야 된다는 직감마저도 들지만, 너 말대로 우리는 확신이 없잖아. 마왕군이 악인지 아니면 플라금을 비롯한 나라들이 악인지는 까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고.”

“성빈 형님, 그걸 아시는 분이 왜 제게 대답을 바라시는 겁니까. 저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인데요.”

“지혜가 말했잖아? 네가 제일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을 가장 이성적이고 똑똑한 너한테서 해소하길 바라는 상태인 것 같아. 가장 먼저 해답을 찾을 게 너일 것 같거든. 그야 소설가 지망생이잖아? 너 머릿속에서 무언가 그려지는 게 없어?”

“없죠. 이 세상에 적응하지도 못했거든요.”

“알았다 알았어. 정색하기는.”

빈은 굳은 표정을 지은 장의 등을 퉁퉁 두드리곤, 묵묵히 대화를 듣는 둥 마는 둥 주먹만 허공에 내지르는 여성에게 말했다.

“너는 마왕군이고 뭐고 별 관심 없지?”

“......”

“목소리 한 번 듣기 정말 어렵네. 이봐 퀸, 우리는 팀이야, 커뮤니케이션이 돼야 뭘 하든 말든 할 거 아니냐고.”

“일방통행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칭하진 않지.”

머리를 뒤로 묶어올린 포니테일, 얼굴은 썩 미인이라는 평이 나올 정돈 아니지만 콕 찝어 어디가 못났다고 얘기하기에 애매한 미모. 화장기가 없어서 그렇지, 조금만 꾸미면 미인의 반열에 충분히 들고도 남을 것 같다는 착각은 빈의 헛된 기대심이 아닐 것이다.

그녀의 양 팔은 주먹까지 붕대가 칭칭 감아져 있었다.

짧은 스포츠 웨어 때문인지 부각되는 복근은 굉장히 날이 서 있었다. 그보다도 날이 선 어조로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마왕군을 떠나서 그쪽들과 나는 이 행성에 떨어졌고, 우리의 가치는 무력이라는 것만이 전부이지. 마왕군을 물리쳐야 할 정의든 뭐든 쓸데없는 고민에 시간 쏟을 때에 훈련이라도 하는 게 생산적이지 않겠나?”

“우리가 놀고만 있던 건 아니잖아. 하루 시간 쪼개서 궁술, 검술, 마법 훈련하는데 뭐가 아니꼬울까.”

“그 안일한 태도가 아니꼽다는 거다.”

퀸이라 불리는 여성, 본명은 일행에게도 밝히지 않은 그 포니테일의 여성은 빈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곤 그의 어깨를 잡았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그 가치를 증명치 못 하면 국왕이나 다른 대륙의 놈들이 다른 용사를 소환할 수도 있는 노릇인데 언제까지 엿 같은 친목질에 시간을 할애할 셈이지?”

“말을 꼭 그렇게 해야겠어? 너는 입이 참 사납단 말이야.”

“마왕군이 악이든 뭐든 중요치 않다. 우리는 그들을 견제할 힘을 길러야 버림받지 않는다는 거다.”

“조금 천천히 가도 되잖아? 어차피 마왕군은 움직이지 않고 있고, 우리에겐 시간이 많아. 용사라는 시스템 자체가 레벨을 올리기엔 제격인데, 뭐가 그리 급하냐고.”

“그만 싸우죠.”

“싸우는 거 아니야. 이봐 퀸,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거잖아. 우리가 막 전송됐을 때 플라티넘 옆에 있던 가신들 반응 기억 안 나? 쩔쩔매던 거 말이야. 이들로서도 용사를 소환하는 데에 어떤 자원을 필요로 할 거란 말이야. 우리가 완전 폐급짓만 안 하면 내쳐질 일은 없다는 거지.”

“확실치도 않은 걸 근거로 세우다니, 대답할 여지가 없군.”

퀸은 까탈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다시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오러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에 빈은 방금까지 꽉 잡혀있던 어깨를 어루만지며 불쾌한 표정을 짓곤 홱 돌아섰다.

“뭐가 저리 열심히인지...”

“그래도 좋은 영향이죠. 퀸 씨 말투는 경직되었지만 하는 말에 허무맹랑한 소리는 없잖아요. 마왕군이 악이든 뭐든 따지기 전에 먼저 우리 가치를 증명해야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쾅­!!!!!

그때였다. 하늘에서 거대한 자주색 차원문이 열리고 무언가가 쿵 떨어져 플라금의 수도, 이프카리스토의 마도구 상권을 짓눌렀다.

“...이게 무슨...?”

끼이이이­

쿵­!!!

건물은 무너졌고, 그 잔해에 짓눌려 여럿 사람이 피반죽이 되어 고통에 호소했다.

뇌가 깨져 피가 범벅이 된 이들로 인해 거리는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물든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봤지만, 그 도망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꾸엑, 꾸에엑!

전송된 잔해물의 문을 열고 고블린과 코볼트가 튀어나와 사람들을 쳐죽이기 시작했으니까.

우리 일행은 잠시 넋이 나가 있었고, 검술 용사 케일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을 머금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않았다.

장도 당혹스럽긴 매한가지였지만, 누군가는 이 상황을 빠르게 직면하고 타파해야 했다.

그건 용사였다. 용사 일행의 데뷔 무대가 막 정해졌다.

“......가자! 지혜씨, 성빈 형, 퀸 씨! 당장 저 몬스터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해요!”

장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고, 마나 조작으로 케일을 일으켜 검을 쥐어줬다.

그리곤 고블린과 코볼트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건물의 잔해를 꽉 잡곤 휘두르며 하나둘 제압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살인극이 벌어졌지만 제법 빠르게 냉정을 찾았다.

“한 놈, 두 놈! 세 놈! 네 놈! 다 죽어라 몬스터들아!!”

빈도 마찬가지로 활을 꺼내들어 화살에 바람 정령의 기운을 받아 원거리에서 화살비를 내렸다. 그가 활시위에서 손을 놓을 때마다 몬스터는 하나둘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는 웅덩이가 졌다.

“히, 히익! 징그러워!!”

케일도 이들의 모습을 보곤 겨우 정신을 붙들었는지, 검을 후들거리는 손으로 꼭 잡곤 고블린에게 휘둘렀다. 피는 솟구치지 않은 걸로 보아 검날이 아닌 검등으로 타격했으리란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등장이 화려하네.”

장은 주먹에 무언가를 휭 두르며 몬스터가 밀집된 곳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그녀의 뒤에 건물 잔해가 마나에 뒤덮여 날아다니고, 바람을 머금은 맹렬한 화살이 날아오고, 샛노란 검격이 작열한다.

“별로 강한 놈들 같지는 않은데,”

휘이이­

양손에 무언가가 휘감긴다.

주황색 은은한 빛, 그리고 짙푸른 구름 같은 기운이 자연스레 뒤섞여 그녀의 주먹에 맺혔다.

“역시 호들갑들이 심해.”

휘이이이­!

말을 끝맺음 함과 동시에 그 두 가지 기운이 폭발할듯 몰아친다.

“{ Ενσχυση του σματο ­ 신체 강화 風, 플라금 격투술 1번 ­ 형상 맺기 ]”

마나와 오러, 그것 두 자원을 모두 다루는 괴물(Warlock).

역대 용사 중 그 누구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는 천재라 칭송받는 격투 용사 퀸.

그녀가 살짝 웃으며 고블린 무리에게로 다가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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