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마왕군은 부활한다
* * *
“{ πγο αλυσδα 얼음 사슬 }”
[ 다르칸 류 방어술 제 2식 우산 털기 ]
우선 몸을 묶어두기 위한 사슬 마법.
그걸로 김철수의 몸을 휘감으려 했으나, 그는 몇번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그 사슬을 모조리 깨부쉈다.
‘역시 조금은 힘을 빼둘 필요가 있나.’
일단 소모전으로 가는 게 이롭다는 판단이 섰고, 나는 김철수에게 클론을 연달아 보냈다.
내 마력의 일부를 건네받은 클론들, 이들은 내가 집중하는 정도에 따라 나와 비슷한 움직임을 취할 수 있다. 혹여나 근접전이 가능할까 싶어 첫 번째 클론에게는 얼음 검을 쥐어주며 김철수에게 덤비게 하는 테스트를 진행했지만,
퍼석
손에 식은땀이 흐른다.
단칼에 목이 잘려나갔다는 걸 확인하곤 육탄전은 포기했다.
괜한 변수를 둘 바에야 원래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가는 게 좋겠지.
이번 전투에서 가진 이점은 오러보다 더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 마법을 다룰 수 있다는 거.
그리고 나는 마법에 있어서 스승을 제하곤 전대륙에서 정점에 우뚝 서 있다.
김철수의 오러는 강력했으나, 결국에는 검을 통한 기술, 혹은 접근전에서나 유용한 기술이다. 멀리서 마법만 폭격해도 김철수의 체력을 빼둘 수 있다.
김철수를 제압하는 것이 목표다.
죽이지 않게끔 살살 힘조절하겠다는 뜻이다. 그럴 능력도 된다.
자, 사냥감이 난동피우지 않게 힘을 빼보자.
닭 대신 꿩,
내 마법은 마취총의 역할을 하기에 지나치게 강력했다.
그 전략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다. 수많은 클론과 나 자신이 냉기 속성의 마나 구체를 던지며 조금씩 김철수를 갉아먹고 있다.
“끝도 없네 진짜!!”
김철수가 지쳐가는 게 이 멀리서도 느껴진다. 내 클론을 베어낼 때마다 터져나오는 냉기도 야금야금 그의 체온을 빼앗고 있을 터.
사실 옛부터 클론 마법을 이런식으로 사용해왔으나, 위력이 달라졌다.
내 아티팩트인 자이키릭의 심장,
그 심장을 기존 심장과 교체하니 댐이 무너지듯 폭발적으로 마나가 샘솟는다.
원래 지금 내가 하는 짓은 굉장히 소모적인 마법이다.
허나 마나가 마르지 않는다면 어떨까, 상대방 입장에서는 절망의 연속이다.
감지 마법을 쓸 수도 없다면, 수많은 클론 속에서 나를 찾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설령 찾아낸들, 내게는 첫 번째 푸른 방패가 있으니 회심의 일격 한 방은 막아낼 수 있다.
“허억... 거기에서 안 내려올 거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김철수의 검이 내게 닿는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난다.
김철수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팔로 닦으며 가쁜 숨을 뱉는 채다.
이미 두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쌓인 피로와 이재홍과의 육탄전에서 지쳐 있었다.
업친데 덮친격이라고 하던가.
나는 이미 지친 그를 상대로 전면 승부를 5분이 넘게 피하고 있다.
이대로 조금만 더 몰아붙인다면 손쉽게 그를 제압할 수 있으리라.
‘남은 클론은 54개... 아, 방금 하나 사라졌다.’
김철수는 귀신처럼 검을 휘둘러 내 클론을 차근차근 부수고 있지만, 실상 아직 절반도 채 죽이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문득 김철수가 아니라 메이블이었다면, 이런 전략은 썩 먹히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상대가 검사가 아닌 마법사였다면 광범위한 마법을 클론이 모여있는 곳 중앙에 터트려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럼 김철수가 메이블보다 못하다는 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관련은 없지만, 김철수는 메이블에 비할 바가 못 됐었다고 제멋대로 저울질했었던 게 사실이다.
그의 검이 첫 번째 방패를 뚫고 내 심장을 꿰뚫은 순간부터는 저울이 기울었지만.
설령 그러지 못했더라도 그가 난관을 겪고 있는 건 메이블보다 못나서가 아니다.
그의 전투 방식을 내가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기에 이런 구도가 나오는 것이다.
‘그토록 가까웠던 나를 적으로 돌린 순간부터 각오했었어야지 철수 형, 속으로 생각해본들 전해지지는 않겠지만.’
본론으로 되돌아와서,
김철수가 조금만 집중하여 오러를 쾅 터트리거나 강렬한 검격을 날리는 등 광범위한 공격을 퍼부으면 내 클론은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숨통이 끊긴다.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공격을 준비할 틈 따위 주지 않는 거다.
절묘한 타이밍에 내 클론은 그에게 마법을 던지거나 달려들어 꾸준히 그를 괴롭히고 있다.
김철수 입장에서는 이토록 지독한 전투를 겪어본 적은 몇 없을 것이다.
아니다, 철언.
몇 없기는 무슨. 내가 유일하겠지.
[ 다르칸 류 공격술 제 1식 퇴근길 ]
퍼석
그렇다고 내가 무한정 유리한 입지에 서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김철수는 내 클론 마법의 파훼법을 찾았다.
분명 그는 요령 좋게 움직여 클론을 베고 있었지만, 하늘에 떠 있는 클론에게 미처 닿기 힘들다는 것과, 그 클론에게 직접 다가서지 않는 한 체력만 소모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김철수는 전투 방식을 조금 바꿨다.
허공에 도약하여 내 클론에게 달려들곤 벴다.
그 클론의 잔해를 밟고 또 도약하여 다시 클론을 베기 시작했다.
‘미친, 감탄만 나오네.’
그의 검은 부드러웠다.
검에 있어서 문외한인 내가 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면, 지금 그의 경지가 얼마나 아득하다는 걸까.
김철수의 움직임은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극한의 극한이었다.
추락하는 클론의 어깨를 밟은 채 불안정하면서도 구부린 자세로 재도약하여 검을 휘두르는 건 정말 기예에 가깝다.
대뜸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역시, 지금의 김철수는 메이블을 넘어섰다.
잠시만, 비유가 잘못됐나? 비교 대상을 토텔리로 바꿔봤지만 별반 다름은 없었다.
거듭 말한다. 그는 사천왕을 넘어섰다.
김철수는 내가 여지껏 만나본 적들 중 가장 두려운 존재다. 이견은 없다.
“...허억, 허억...”
김철수도 같은 걸 느끼고 있겠지만.
“허, 허억... 이 클론이 다 죽으면, 그때 너에게 내 검이 닿겠지, 안 그래 윤상?”
허세가 아니다. 그는 정말로 100개의 클론을 모두 죽여낼 기세다.
공중에서 불안정한 발판을 밟고 재도약하는 요령이 생겼는지 점점 클론이 줄어가는 속도가 가속된다.
‘이제... 24개.’
석 퍼석!
그의 검이 불을 뿜을 때마다 여러 클론이 바닥에 떨어져 눈속에 파묻힌다.
처음에는 무덤덤했으나, 클론의 수가 줄어갈수록 내가 느꼈던 미약한 공포가 선명해졌다.
조금은 이질적인 감각. 방금 나는 팔에 드리운 용의 비늘이 내게 신호를 보낸다는 걸 확인했다.
‘...드래곤의 본능 같은 건가?’
내가 유리하다고 느꼈었지만, 김철수가 도약한 순간부터 이 구도는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건가...?
‘아니야.’
아직도 분명히 내가 유리하다.
클론이야 더 만들면 그만이다. 마나도 아직 넉넉하다.
김철수가 용쓰고 있다지만 그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고, 그보다 더 한정적인 건 그의 기(?)다.
오러를 방출하지 못한다면 구렁이 앞 쥐처럼 단박에 내 마법에 잡아먹힌다.
더군다나 나는 지금 전력이 아니다. 더 높은 서클의 마법을 구사하거나 마법진의 갯수를 늘려 그를 옭아멘다면 김철수는 풍전등화나 다름없다.
‘귀신 같아. 홀라랑 싸우면 이런 느낌이려나.’
내가 느끼는 건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섬뜩함, 귀신... 토텔리의 얼굴과 만나본 적도 없는 홀라의 이름이 떠오른다.
검을 다루는 자들은 모두가 닯은꼴이라는 걸까?
섬뜩함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비단, 검은 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풍기는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보이지도 않는 것, 볼 수도 없거니와 미신으로 취급해야 마땅한 성질의 것.
솔직하게 말해 나는 지금 그의 가공할법한 전투력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걸 떨쳐내야 김철수를 상대로 이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나는 심장에 손을 얹었다.
내 기이한 행동에 내가 본체임을 알아낸 김철수가 쏜살같이 방향을 틀어 달려들었지만 내 남은 클론이 그의 몸을 하나둘 잡으며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형, 기껏 열심히 했지만 미안해.]
남은 클론은 8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그에게서 느껴지는 정체불명의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κλνο! 클론!
다시 클론 마법을 발동했다.
내 등에 달린 날개에서 하나둘 세포가 분열하듯 클론이 꾸덕꾸덕 모습을 드러냈고, 김철수는 클론이 뭉쳐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기존의 클론에게 몸이 묶인 주제에도 불구하고 검을 손바닥이 아릴 정도로 강하게 잡으며 강력한 한 방을 준비했다.
콰아앙!
그 공격을 그의 몸에 달라붙어있던 클론을 폭발시키며 미연에 방지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터진다.
잠시간 시퍼런 연기 때문에 김철수가 건재한지 확인할 방도가 없었기에, 연기가 걷힐 때까지 마나를 가다듬으며 잠시 대기했다.
“허어... 허억...”
연기 속에서 검을 쥔 채 터덜터덜 걸어오는 인영이 보인다.
김철수의 몸이 지쳐간다면, 나는 정신적으로 지쳐가고 있었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기괴함.
전투가 이어질수록 작고 큰 상처가 많아지고, 체력이 빠져가며 땀으로 갑옷을 흠뻑 적시는 건 김철수다.
내가 불안할 요소는 없다. 그가 내 상정외로 강했지만 대책이 많다.
이보다 더 추하게 싸울 수도 있다. 디안마저도 비겁하다 외칠 수 있을 정도로, 모두가 입을 내두르며 나를 욕보일 정도로 밑바닥 전투를 보여줄 수 있다.
알고 있다. 지금도 썩 멋진 전투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일행 중 가장 강했던 건 언제나 김철수였다.
막 ONE(?)에 전송됐을 때에도, 레벨 50을 달성했을 때에도,
첫 던전을 공략했을 때에도, 마왕군 부관과 사천왕, 마왕마저 죽여냈을 때에도.
가장 강했기에, 때문에 가장 듬직했고 신뢰할 수 있던 동료가 김철수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언제나 나보다 한 발짝 앞서 있는 듯한 그의 강함은 강한 믿음이 되었다.
내가 못 이길 상대라도 김철수라면 승리할 수 있을 거야.
이런 부담감을 멋대로 투영할만큼 그는 너무나도 듬직한 동료였고, 나는 은연중에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하아. 그 클론마저도 다 베면 너한테 닿을 수 있는 건가?”
그 가장 강했고, 언제나 내 앞에 있던 동료가 뒤돌아 검을 들이밀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다.’
그의 압도적인 강함이 실렉티스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상관 없다. 그분이라는 놈에게 아양을 떨어서 얻게 된 힘인들 상관 없다는 말이다.
이 세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우리는 평화와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다.
그에서 김철수가 우리를 보호해줬다는 건 다름 없다.
우리는 동료다. 같은 전송자이며 용사는 4명이 하나다.
비록 지금은 그분이라는 놈에 의해 내게 검을 휘두르지만, 나는 그를 포기하지 않을 거다.
“살살 하다간 네가 죽게 될 거야.”
퍼석
이런 내 생각이 머쓱해지게,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다시 소환한 클론들이 썰려나간다.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고, 움직임이 현저히 둔해지고 있다.
모두가 내 승리를 예감하리라. 하지만 그의 눈매는 조그만치도 위축되지 않았다.
인정했다.
그의 말이 맞다. 살살 하다간 죽는 건 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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