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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52화 (52/152)

〈 52화 〉 마왕군은 부활한다

* * *

“스승님­!!!!!”

디안이 소리쳤고, 무너진 오두막을 향해 달려가자 진 키아라가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뜯어말렸다.

“디안! 네가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야!!”

“스승님!!! 스승님!!!!”

디안이 울분을 토하며 무아지경으로 앞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진 키아라는 기어코 그녀를 붙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굉장히 이상적인 행동이었다. 다르칸은 일반인이 요행으로라도 승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악쿤 토든마저도 단칼에 죽였다. 지금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는 대륙에 손꼽아 몇 없다. 당연히 그 몇몇에 디안이 포함될 리 없다.

“미, 믿을 수 없어...”

넬피는 이재홍의 머리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절망했다.

눈가에서 주르륵 눈물이 흐른다.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않고 앞의 상황을 바라보며 이재홍의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아야! 아프잖아!”

“검술 용사가... 마법 용사님을... 죽... 죽였...어요...”

현실을 직시시키는 한마디, 넬피는 패닉에 빠졌고, 디안의 슬픔은 머잖아 분노로 뒤바뀌었다.

“저 새끼가 스승님을!! 저 빌어처먹을 검잡이가 감히 스승님으을!!!”

“오우, 얘 몰랐는데 입 되게 더럽네.”

“...이 상황에 할 말은 아니지만, 오빠 입에서 입 더럽다는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네.”

“세린아, 너는 아직 날 모르는구나.”

크르륵...

동굴 처럼 깊은 소리가 울리자 바비룬 필라이트의 머리에서 넬피가 떨어졌고, 그의 뒤에 있던 디안의 몸이 저절로 밀렸다.

“난 진짜 화나면 욕 별로 안 해.]

크륵, 크르르륵...!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세우며 자세를 잡곤 울먹이는 다르칸을 조준했다.

크르러엉!!!

쩌저저적­!!

괴성과 동시에 바닥을 쪼개며 바비룬은 도약했고, 재빠르게 다르칸을 덮쳤다.

그 달려나가는 기세에 흙바닥이 완전히 뒤집어져 갈색 먼지가 풀풀 풍겼다.

“콜록, 콜록! 저 오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식하... 디안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흙먼지 속 진이 말했고, 그녀의 염려는 디안의 손에서 회전하는 마법진에 있었다.

“...만져두길 잘했어.”

그 마법진을 가동한다.

진은 문득 그녀가 시그니처를 완성한 마법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 κρυφτ(숨바꼭질)! }”

채앵­!!

다르칸의 뒤에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 여러 날카로운 검이 그에게 달려들었으나, 그 오러에 막혀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

그에 분한 표정을 짓던 디안은 거대한 마법진 하나를 발동한다.

그녀의 몸이 휘청거린다.

디안은 시그니처 매직이 없었더라면 4서클의 마법사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잠시만 디안? 그거 8서클 마법 아니야?”

그녀는 본인 서클보다 4단계나 높은 마법을 발동하고자 이를 악 물고 있었으니까.

분에 안 맞는 기술이었으니 몸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죽여, 죽여버리겠어...!”

디안은 제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는 거대한 마법진을 다르칸에게 조준하곤 주문에 쓰인 모든 문자를 입으로 직접 영창하여 강제로 마법진의 완성을 서둘렀다.

“{ Τολμστε να πω, θα καταστρψω τον ξιφομχο. ­ 감히 말하건대, 나는 저 검을 든 자를 파괴할 것입니다. }”

“{ Διακινδυνεω τη ζω μου να ρξω αυτν την υπροχη μαγεα. Κοτα πνω απ την ψυχ μου ­ 그를 위해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부디 제 영혼을 굽어살피소서. }”

“{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 λωποδτη(소매치기) + Μεγλη κρ­(대폭ㅂ­!) }”

디안이 주문을 완성하기 전,

Ματαωση ­ 캔슬.

용언,

드래곤이 마법을 사용할 때처럼 고고한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

[디안, 내가 가르쳤던 거 기억 안 나? 주제 넘은 마법을 사용하지 말 것.]

“마탑주님...?”

[아까는 스승이라고 잘 부르더만, 왜 이제는 또 마탑주야... 아무튼 너 조금 있다가 혼 좀 나야겠다.]

진은 올 게 왔다는 듯 씩 미소를 지었고, 다르칸과 육탄전을 벌이며 대적하던 바비룬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악 시발!]

다르칸의 검에 머리를 맞고는 꽥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히, 히끅!”

넬피는 디안 앞에 고고하게 떠 있는 빛에 휩싸인 사내를 보곤 연신 딸꾹질을 뱉었다. 사내는 그녀를 바라보곤 말했다.

[아까 너 울더라? 그렇게 날 아끼면서 비이린에서는 왜 그랬던 거야?]

“그... 애정표현의 일부...... 그보다 살아 계신 거 맞죠...?”

[그래도 같은 용사인데 단칼에 죽으면 쪽팔리잖아.]

그는 마지막으로 바비룬에게 빙긋 웃음지었다.

그러자 진이 고개를 휘두르곤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조마조마했어. 나만 오빠 죽은 거 공감 못 하는 싸이코패스 되는 줄 알고 얼마나 겁났는데.”

[야, 나를 그렇게 모르냐. 내가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잖아.]

“그렇긴 하지. 이제 부작용은 없나봐?”

[없는 건 아니야. 그래도 뭐... 괜찮겠지.]

사내는 시선을 돌려 샛노란 눈동자에 다르칸을 담곤 방금 시전한 주문을 재영창함으로서 확실히 발동을 마쳤다.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αντικατσταση τη καρδι(심장 교체)

Ver ­ χιονδη παλι, δρκο!(설산의 고룡, 자이키릭!)

화아아악­

공기가 차가워졌고, 강을 포함한 풍경이 하얀 배경으로 뒤바뀐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무언가가 하늘에서 툭, 투둑 떨어졌다.

눈이었다.

하늘을 뒤덮으며 천천히 떨어지는 뽀얗고 뽀송뽀송한 눈송이들.

퍼석­

어느새 발을 내딛으면 바닥에 발자국이 새겨질 정도로 눈이 쌓였고, 디안의 이마를 타고 무언가가 주륵 흘렀다.

그녀는 머리칼을 만졌다. 눈송이가 녹아 그녀의 머리를 적시고 있었다.

[주피아에서도 말했지?]

사내,

품위마저 느껴지는 새하얀 날개를 펄럭이는 사내가 디안의 목 뒤에 대롱대롱 걸려 있던 모자를 집어 그녀의 머리를 덮고는 장난스럽게 꾹 누르며 말했다.

[미련하게 눈 맞고 있지 말라고, 이 멍청아.]

외형은 변했지만 같은 사람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자 디안의 온몸이 들썩이기 시작했고, 목 맨 소리가 눈송이를 해치며 사내에게 닿았다.

그녀는 그 울먹이는 모습이 스스로 추하다고 생각했는지 모자를 당겨 사내에게서 얼굴을 완전히 가렸다. 사내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짓곤 그녀의 모자를 강제로 벗겼다.

“하, 하지 마세요...”

[평소에는 너무 예쁜데, 우니까 완전 못생겼네.]

“...지, 짓궂게 굴지 마, 마세요...”

[크크큭... 그래, 알겠으니까.]

사내는 다시 모자를 덮어주며,

[나 안 죽어. 울음 그쳐.]

“...네에.”

디안의 볼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그 볼을 타고 뜨거운 액체가 주르륵 쏟아지며 어느새 바닥을 뒤덮은 눈에 점을 찍었지만, 사내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는 그 점이 찍히는 빈도가 줄어든다.

[형, 아까는 잘도 날 죽였잖아요.]

사내가 날개를 펄럭이며 오두막으로 다가가자, 바비룬이 ‘나 따라하네 개새끼...’라 중얼거리곤 형변을 풀더니 터덜터덜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그에 사내는 시원하게 웃더니 이내 진정을 찾고 다시 다르칸를 마주하며 말했다.

[이젠 내 차례니까 각오하라고.]

사내,

마법 용사 악쿤 토든은 용과 인간을 반쯤 뒤섞어놓은 듯한 모습으로 다르칸에게 다가갔다.

*

마탑에서 3년간 전세계의 마법 서적을 뒤적이며 지독히도 연구했던 마법.

시그니처가 무사히 가동됐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인간의 마법이 드래곤의 마법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흑마법이 악마의 것을 따라한 것에 불과하다, 대충 이런 틀에 박힌 지겨운 글귀를 입으로 곱씹다보니 ‘차라리 용이나 악마랑 몸을 똑같이 하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시작된 마법이었다.

“그게 너 시그니처구나.”

[어때, 메이블이랑 비교해서 꿀리지 않는 것 같아?]

“기세만 봐서는 엄청난데? 그분도 놀라고 계셔. 마법 용사는 확실히 물건이라면서 말이야.”

김철수가 다가온다.

나도 마법진을 준비했다. 새하얀 마법진을.

“윤상아, 날 넘어서야 해. 그게 그분이 네게 원하는 거야.”

[그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치가 떨리네.]

“어쩌겠어, 난 그분의 꼭두각시인 걸.”

검을 잡은 채 자세를 잡는다.

검도 기초 자세와 같이 나를 향한 채 꼿꼿이 검을 잡은 그 상태,

저 간단한 동작이 이토록 두려운 건 내가 김철수라는 자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곧 거대한 공격이 온다. 저건 그의 오의 중 하나니까.

[ 다르칸 류 오의 ­ 직선 베기 ]

콰가가가가­!

단순히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두른 것뿐인데, 그 공격의 여파는 거대했다.

살갗이 찢겨나가는 것만 같다. 조금만 정신을 놓아도 검격에 온몸에 터져버릴 것만 같다.

시그니처를 발동했어도 김철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며 첫 번째 방패를 들지 않았더라면, 날개 채로 찢겨 나가 죽었다는 사실에 등골이 서린다.

“정윤상! 아니, 악쿤 토든!! 통감해라! 네가 넘어서려는 벽이 고작 그분의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걸 느껴라!!”

[...그래, 형을 넘어서지 못하면 몬스터 해방이든 뭐든, 이루지 못할 거라는 건 잘 알겠­]

퍼석­

말하기가 무섭게 내 몸이 잘려나간다.

날개가 찢겼고, 목이 떨어졌다.

바닥에 온몸이 데굴데굴 구른다.

“허, 허억... 허억... 이토록... 싱겁게... 끝날 줄은...”

그에 김철수는 숨을 헐떡이며 승리를 직감한 듯했지만, 아쉽게도.

이 마법을 발동한 순간부터, 상대방은 악몽을 꾸게 되리라.

κλνο ­ 클론

바닥에 떨어진 내 몸이 녹아내리며 눈바닥에 스며들었다.

그에 아차하는 표정을 짓곤 검을 다시 들어 뒤에서 달려드는 나를 노렸고, 또다시 단박에 내 심장을 찔렀지만,

[형은 강하지만... 마법에 대해서는 너무 몰라.]

본체인 나는 하늘에 날개를 펄럭이며 떠오른 채였다.

내 양쪽 손에는 새하얀 마법진과 짙푸른 마법진을 머금은 채다.

“...신이시여.”

김철수는 나를,

...아니지, 나와 클론들을 바라보곤 짙게 탄식을 뱉었다.

검을 고쳐잡고 방어 자세를 준비했지만, 이걸 다 막아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형이 종교를 믿었던가, 아니면 그분을 말하는 거야?]

양쪽 팔에 두 마법진을 머금은 100여개의 클론이 하늘을 뒤덮는다.

마법진에서 선명한 빛이 새어나오자 김철수는 검을 꽈악 잡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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