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마왕군은 부활한다
* * *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형 부상이 너무 심해.”
넬피와 최세린이 조심스레 김철수에게 다가갔다.
치료가 목적이었다. 지혈도 해야 할 것이며, 끊겨가는 생명력을 어떻게든 복원시켜야 한다.
“...마법 용사.”
“이름도 안 부른다더니, 재홍이 말이 맞네.”
입가에 쓴맛이 느껴진다. 거진 3년하고도 몇 개월 만에 마주한 김철수는 날 반기지 않는 듯하다. 애초에 내게 마법 용사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알아보기나 했으련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섭섭한 건 지금 따지고 들 문제가 아니겠지.’
마법진의 크기를 키워 김철수에게 겨눴다.
그럴수록 궁지에 몰린 사냥감처럼 그는 더욱 강하게 검을 움켜쥘 뿐이었다.
“일단 검 내려놔.”
설득력이 하나도 없는 달램.
“그대도 주술 용사처럼 내 앞길을 막는가.”
먹힐 리가 없었다.
“말투가 왜 중세풍이 된 거야.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더 궁금해지는데.”
김철수는 검을 내려놓기는 커녕,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걸어간 자리에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장소도 과거 전쟁터로 쓰였던 폐허인지라 저 모습은 전쟁에서 막 살아나온듯한 살인귀 같았다.
“앞을 가로막는다면 죽일 수밖에...”
“형이 강한 건 누구보다 잘 알지만, 우리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니야?”
나와 넬피, 최세린만을 경계하는 김철수.
이재홍은 움직이기 힘든 몸이니 경계 대상에서 제외하는 듯했다.
요점은 그의 신경은 오로지 우리에게만 쏠리고 있었다는 거다.
“지금이야!”
내 수제자를 잊으면 서운하지.
“{ πρωττυπη μαγεα(시그니처 매직) παιχνιδιρικα(장난질). }”
촤라라락!
뒤에서 디안이 마법진을 손에 머금고 달려들어 김철수의 몸에 붙였고, 사슬 마법에 디안의 색을 입힌 마법, 반투명한 사슬이 김철수의 몸을 뒤묶어 그를 잠시동안 제압했다.
그에 오러를 터트리며 반응했으나, 우리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최세린의 열 번째 사슬이 괴수를 묶듯 김철수를 휘감는다. 내 마법이 그의 몸을 얼렸다.
머잖아 그는 기력을 잃고 쓰러졌다. 애초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으로 이정도나 버틴 게 용하고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존에 힘을 빼둔 드래곤들 덕분에 손쉽게 김철수 제압이 끝났다.
나는 차원문을 열어 라스타와 플라금 사이 강가에 있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
한 시간 가량, 넬피는 땀을 닦으며 오두막에서 나왔다.
그녀에게 다가가자 넬피는 한시름 돌렸다는 듯 서두를 열었기에 조금은 안심되었다는 기분을 느꼈다.
“검술 용사분의 상태는 그냥... 무언가에 잡아먹혔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쉽사리 넘기기 어려웠다.
“잡아먹혔다고? 에고 소드를 말하는 거야?”
“그 가능성도 검토해봤는데, 딱 잘라 말해서 아니에요. 에고 소드는 그의 정신 지배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어요. 영향을 끼친 건 이거죠.”
넬피는 김철수의 앞섬을 풀어해쳐 가슴팍의 맨살을 가리켰다.
오른쪽 가슴이었다. 그곳에 있는 문신을 보자 표정이 급격히 굳었고, 체력을 회복한 이재홍은 대차게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좆같은 일에는 항상 이 문신이 엮이네, 안 그래 마법 용사씨?”
“...제길, 현기증 나는 것 같아.”
“무슨 일 있으시나요 마탑주님?”
“아니야, 디안 너는 보지 마. 스승으로서의 명령이야. 다가오지 마.”
디안은 풀 죽은 표정을 지었으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달래 다시 밖으로 물렸다.
그녀가 다시 오두막에서 나가자 입을 연 건 최세린이었다. 예삿 느끼기 힘든 심각한 어조였다.
“공주님, 이 문신이 아저씨를 조종했다고요?”
“조종한 건 아니에요. 단지... 정신력을 희석시키고 본능에 충실하게 설계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죠.”
“이 문신이 뭔데 도대체?”
“응? 바비룬님도 모르셨나요?”
일행은 넬피의 말을 듣고도 김철수를 내려다보다가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들었다.
일제히 넬피를 바라보자 그녀는 잠시 당황한듯 했으나, 애써 진정을 찾곤 말을 이었다.
“실렉티스... 어머니가 말 해주지 않으셨을 줄은 몰랐는데...”
“실렉티스가 뭐죠?”
“수집가들이라는 뜻이에요. 그 뜻보다는 이들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죠.”
넬피가 잠시 눈을 감고 집중하자 그녀의 주변에 청아한 녹빛 기운이 스멀거렸고, 머잖아 여러 영상을 띄웠다.
“‘그분’이라는 자의 뜻을 대변하는 자들,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이들은 그분의 꼭두각시가 된 자들이에요.”
“그분... 그분이 뭔데?”
종교 같은 개념일까? 이재홍이 먼저 말을 꺼내줬기에 내가 말할 수고는 덜었다.
“하아...”
그걸 말하지 않았다는 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넬피는 얼간이를 바라보듯 이재홍을 눈에 담다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조용히 한숨을 뱉었다.
“그걸 알려달라는 건 저보고 죽으라는 말과 같아요. 저는 그분에 대해서 얘기할 수 없어요. 용사님들이 직접 알아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거죠.”
그에 최세린이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넬피는 숨을 고르곤 말을 이었다.
“그분이 누구인지는 말 못해주겠지만 힌트는 드릴 수 있어요. 그분의 권능함은 너무나도 뛰어나기에 지금도 이 세계를 관망하고 있어요. 하늘 위에서인지 어디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방팔방에서... 아차, 방금 마법 용사님 말투 같지 않았나요?”
“계속 얘기해.”
“...칫, 어쨌거나 실렉티스는 그분의 뜻을 받드는 자들이에요. 그분이 원하는 세상을 그리기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죠.”
“김철수가 그들 중 하나라는 건가요?”
“네, 다르칸님도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들 중 하나가 되셨네요.”
혼란이 뇌리를 휘감는다. 그보다 이 이야기가 도출하는 답이 더 머리를 싸매게 된다는 게 골치아프다.
정신이 지배당한 상태이기에 몬스터를 학살하고, 드래곤에게 덤벼든 게 아니라면... 그 행동들은 모두 김철수의 본성이라는 것이지 않은가.
“...끄응”
그때 김철수가 신음을 뱉으며 살짝 움직였다.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디안도 오두막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안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오랜 잠을 잔 것 같은... 히익!”
쿵!
김철수가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떨어졌고, 그는 팔로 뒷걸음질치며 우리에게서 벗어나 오두막의 벽에 몸을 박았다.
오두막은 잠시 흔들렸고 김철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우리를 훑다가 삿대질로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윤상...이랑 재홍이, 세린이? 그리고 그... 이름이 뭐더라...”
“넬피요. 실망이 크네요 검술 용사님.”
“맞, 맞아요. 요정족 공주님.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는 두리번거리곤 무언가를 집었다.
그의 에고 소드 먹보였다. 그걸 손에 쥐자 안정을 찾았는지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저 바보 같은 모습을 보자 고민은 씻은듯 사라졌다.
다행이다. 내가 아는 철수형이 맞구나.
“왜 시발, 또 ‘주술 용사... 내 앞길을 방해하는가...’ 이지랄 하지 왜.”
이재홍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그랬어?”
“형, 저한테도 ‘마법 용사...’ 어쩌구 하면서 말했어요.”
“...진짜로?”
“저한테도 ‘암기 용사... 널 찢어죽여주지...’라고 저주를 퍼부었는데...”
“......”
“세린이 말은 거짓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요. 세린이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히야... 놀랐잖아 세린아.”
“원래 아저씨로 돌아온 거 맞네.”
최세린의 말에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디안만이 초면일 터인 검술 용사에게 쭈뼛거리고 있었다.
“괜찮아 디안, 이게 이 형 본성이니까. 형, 소개할게요. 제 수제자 디안이에요.”
“마법 용사의 제자가 검술 용사님을 뵙습니다.”
“앗, 반가워요. 그보다 그런 거 하지 마세요. 너무 부담스러워서...”
“어째 3년 전보다 더 멍청해진 것 같은데.”
“형한테 말버릇 하고는.”
내 핀잔을 듣는 시늉도 안 하는 이재홍이 성큼성큼 김철수에게 다가가 심장에 손을 얹었다.
그에 김철수는 물음표를 띄웠으나, 이재홍이 말하자 수긍할 수 있었다.
“몸상태는 괜찮네. 넬피 고생했다.”
“별말씀을요.”
“아, 공주님이 절 치료해주신 겁니까? 으, 감사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꿈을 꾼 그 시간동안 제가 원한 살 짓을 많이 했나 보네요. 몸에 흉터가 늘어난 거 보면요.”
“형한테는 꿈 같은 개념이었나봐요. 마지막 기억이 언제인지는 떠오르세요?”
“어... 음... 플라금의 영주가 두 꼬마랑 같이 동대륙 일부를 통합했을 때...인 것 같은데.”
“세상에, 2년 전에서 기억이 멈춰있구나.”
2년이라는 말에 김철수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일행이 무표정으로 그를 일관하자 그는 현실을 겨우 직시할 수 있었다.
“내가 2년 동안 놀아났다고...?”
“형이 원한다면 기억을 되살려줄 수는 있어요. 몸이 자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마나, 그것의 기억을 읽어 형에게 정보를 전달해주면 되는 거거든요.”
“......별 일 있었을까. 갑자기 두려운데...”
“술 처먹고 필름 끊겼는데, 다음날 전여친한테 ‘깼어?’라고 연락온 경우랑 비슷한 건가? 통화내역엔 자기가 걸었던 기록이 15통 정도 있는 거지.”
이재홍의 비유가 내 코드에 잘 맞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이만한 비유가 없다고 속으로 인정하며 피식 조소를 흘렸다.
“철수형, 비록 우리가 지금 얘기는 가볍게 하고 있지만, 형은 자아를 잃은 동안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야겠지.”
“잘 생각했어요. 잠시만 눈 감고 있겠어요?”
나는 김철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곤 그의 몸이 지닌 기억과 뇌가 지닌 기억을 모조리 훑고, 뼈대만 남은 기억에는 살점을 되살리며 그가 기억을 선명히 떠올릴 수 있게끔 도왔다.
“...크아악!”
김철수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우리나 철수형이나 알아야한다.
그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앞으로 몬스터 해방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함께할 수 있는지를.
최악의 경우지만, 그가 내 계획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지도 말이다.
‘...안 좋아.’
기억을 더듬을수록 나는 최악의 경우의 수가 점점 선명해진다는 것을 느꼈다. 아까 느꼈던 안정감은 서서히 거멓게 물들고 있었다.
그의 기억은 되짚을수록 비위가 상할 만큼 오로지 몬스터를 죽여온 것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기억을 잃기 전 기억마저도, 마왕군을 막 토벌했던 때부터 기억을 잃기 전 그 순간도.
그때에도 김철수는 아무도 모르게 몬스터 학살을 일삼았다. 그렇다면... 마왕군 토벌때에도 저 위험한 사상을 숨기고 지냈었다는 건가?
“...허억, 허억.”
생각이 결론에 도달하기도 전에, 김철수의 기억 되살리기는 모두 끝났다.
내가 모르는 자원, 기 때문에 그의 기억을 계속 강제로 읽어내기는 어려웠기에 나도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강제적이었다.
빌어먹을,
괜히 기억을 살린 걸까라는 불안감이 몸을 뒤덮는다.
최세린이 가쁜 숨을 내쉬며 온몸의 구멍으로 땀을 내뱉는 김철수에게 물수건을 건넨 건 그때였다.
“아저씨 괜찮아요?”
“...어, 응... 괜찮아. 윤상이 덕에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다 알 수 있었어.”
끄응
김철수는 검을 지팡이삼아 바닥에 꼽곤 일어났다.
땀이 굴곡진 그의 몸을 타고 흐른다. 그에 불쾌한 표정을 짓곤, 김철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화아악!
샛노랗고 방대한 기를 방출하며 땀방울을 모조리 바닥에 버렸다.
마법 { Ελευθρωση 방출 }과 비슷하다고 느끼며 김철수의 상태를 살피던 그때.
“천만다행이야.”
불길한 예감은 어째 빗나가질 않는 건지,
죽인 몬스터만으로 산을 쌓을 수도 있는 사내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너희에게 한 거 말곤 후회될 짓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아서...”
충격적인 말을 뱉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