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악(?)!
* * *
최세린은 분한 표정을 지으며 단(?) 같은 구체를 여러 개 던졌으나, 그 역시 긴의 몇 번의 손놀림에 모두 허공에서 잘려나갔다.
“고작 이게 전부야?”
“...폭(?)!”
콰앙!
그 단에 붙여놓은 기폭제를 향해 최세린이 성냥을 던졌고, 정윤상은 솜씨 좋게 첫 번째 방패를 펼쳐 일행에게는 아무런 위해가 가지 않도록 했다.
그리곤 모두가 바닥에 엎어진 사내를 바라봤다. 울컥울컥 피를 쏟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이재홍. 그는 비수를 뽑으며 털썩 주저앉았고, 흐릿해지는 눈빛으로 말했다.
“...나 좀 잔다.”
풀썩
그에게 곧장 달려들어 최세린이 해독제를 치덕치덕 발랐으나, 곧장 일어나기란 불가능하다고 진단을 내렸다.
맥주와 함께 마신 수면제와는 수준이 다른 아주 강력한 수면독이었다. 드래곤도 잠재울 수 있을 지독한 약이라 이재홍은 이번 전투에서 열외되는 게 당연하다며 최세린이 덧붙였다.
그때 긴이 허공에서 단검을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며 말했다.
“좋아, 이제 3명 남았”
[ 다르칸 류 발도술 제 1식 출근길 ]
서걱!
내 검이 순식간에 긴의 목을 노리고 휘둘렸고, 분명히 무언가 베는 감각이 느껴져 이번 전투에서 승리했으리라 직감했는데, 뒤를 돌아보자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는 마네킹이 끼익 기울며 목을 툭 떨궜다.
“토텔리가 말한 게 사실이었네. 검술 용사가 강하다는 거 말이야.”
그리곤 정윤상 방의 침대에 팔자 좋게 누워있는 긴.
그걸 확인하자 최세린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잡담할 시간이 있어?”
퍽!
최세린이 뒤에서 그를 덮쳤고, 동시에 바닥에 미세한 빛을 내뿜는 정윤상의 마법진에서 두꺼운 사슬이 튀어나와 그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그대로 최세린의 단검이 푸욱 소리와 함께 긴의 등을 찔렀고, 그 단검을 뽑자 이번에는 붉은 선혈이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고, 긴의 몸은 무릎을 털썩 꿇곤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요, 용사들... 나는 너희를 즈, 증오한다.”
“허, 허억... 허억... 얌전히 죽어...”
최세린은 벽을 짚으며 비틀거리곤 말했다.
“단검에 독까지 묻힌 건 과투자였네.”
“확실할수록 좋지.”
저주를 퍼부은 긴의 시체는 미동조차 않았고, 이렇게 사천왕 중 한 명인 긴은 물리쳤다.
생각보다 별 것 없는데? 이런 생각에 취한 채 난장판이 된 숙소를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견적을 짜고 있을 그때.
푹.
“...어라?”
뒤를 돌아보자 최세린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에 당황감이 확 몰려왔고, 그다음으로 내가 받아들인 것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내, 내가 한 게 아니야... 이 무슨...?”
언행불일치, 최세린은 팔목에 힘을 주어 날 더욱 깊숙히 찔렀다.
그에 오러를 터트리며 방어하고자 했으나 온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쿠웅.
나는 인형처럼 부자연스럽게 앞으로 엎어졌다. 그대로 희미한 눈으로 최세린을 바라봤다. 기울어진 최세린의 모습은 공포에 질린 채였다.
“정신 계열 마법? 아니야, 마나의 기척을 느끼질 못했는데...!”
“이, 이제는 멀쩡해졌...는데?”
최세린이 팔을 붕붕 휘두르고 발을 몇 번 구르더니 물끄러미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시뻘겋게 물든 손, 모든 게 긴의 피였다.
그에 몸을 부르르 떨곤, 주먹을 꽉 쥐며 공포를 떨쳐낸 듯했다.
머잖아 최세린은 재빠르게 내게 다가오더니 이재홍과 마찬가지로 치료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어, 어? 괜찮아요 아저씨?”
“...잠시만.”
내가 무릎을 짚고 일어선 건 그때였다.
‘......아, 이래서 그랬구나.’
그리곤 바닥에 엎어진 에고 소드를 움켜쥐었다.
‘달라, 달라! 너 누구야!’
그 에고 소드가 울부짖는다.
나도 느꼈다. 지금 내 몸을 움직이는 건 내 자아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겨우 목소리를 짜내며 외쳤다.
“유, 윤상아 피, 피해!”
“...이 무슨!”
카가각!
정윤상의 첫 번째 푸른 방패와 내 에고 소드가 맞부딪치며 요란한 소음을 내뱉었다.
이제야 어찌 된 일인지 감이 잡히는 듯했다.
긴은 죽지 않았다. 그는 최세린의 몸을 조종했었고, 이제는 내 몸을 조종하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κρηξη 폭발 (τ,θ) }”
까드드득!
정윤상의 마법진이 날 휘감았고, 강렬한 냉기와 함께 내 몸이 얼어붙었다.
그제야 가위에 눌린 것처럼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던 내 신체가 자유로워진 듯하다. 얼음에 갇혔으니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지만.
‘이제 완전히 물리친 건가?’
최세린을 바라보자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나와 자기 손을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우리는 한 명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부분 형변(??) 호!(虎) ˚
푸슉!
정윤상의 어깨에서 붉은 핏줄기가 치솟았다.
그 뒤에는 얼룩진 털에 날카로운 발톱으로 팔을 변화시킨 채 동공이 풀려있는 이재홍이 있었다.
“으, 주술 용사한테는 독을 너무 많이 썼나...”
이재홍이 말했고, 그는 털썩 앞으로 쓰러졌다.
그리곤 몸부림치기 시작한 건 정윤상이었다.
“비, 빌어먹을... 꺼, 꺼져. 꺼지라... 고오...!”
그는 만취한 사람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앞뒤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정신력으로 어떻게든 긴의 신체 제어를 버티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정윤상이 시간을 벌고 있자 최세린은 자기 팔에 묻은 긴의 피를 모두 닦아내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분석해보니까 긴이 사용한 건 환각제와 비슷한 성분이야!”
그녀는 허벅지에 탁자에 놓인 병 중 하나를 꺼내 벌컥 마셨고, 즉시 바늘에 마비독을 바르며 정윤상에게 다가갔다.
“그, 그럴 필요 없... 어...!”
정윤상의 눈동자가 각자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도 잠시, 정윤상은 시퍼런 마법진을 본인의 배에 올리곤 주문을 읊었다.
내게 사용했던 것과 같은 마법이었다. 까드득 소리와 시퍼런 냉기와 함께 그의 온몸은 얼어붙었곤 머잖아 기절했다.
“...아파. 그래도 이제 1대1이네 암기 용사.”
정윤상이 쓰러짐과 동시에 처량하게 누워있던 긴이 피가 울컥거리는 상처에 점토같은 걸 바르며 일어났다.
구울 같은 기괴한 움직임. 그는 고개를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방향으로 꺾거나 단검으로 자기 몸을 푹푹 찌르는 등 해괴망측한 행동을 하더니 뿌드득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
“휴우, 이제 좀 살겠네.”
“감히 오빠 아저씨들의 몸을... 죽여버릴 거야...!”
“혼자서는 힘들 텐데. 봐봐.”
어둠에 녹아들은 긴의 기척이 사라졌고.
카가각!
그는 최세린의 뒤에서 귀신처럼 나타나 단검을 내리찍었다.
“넌 나를 느끼지도 못하잖아?”
“으으으...!!”
최세린이 그의 단검을 자신의 바늘을 교차하여 막았고, 그녀는 긴의 힘에 의해 무릎을 꿇었다.
퍼석
그대로 땅바닥이 꺼져간다. 단검은 서서히 최세린의 얼굴을 향해 가까워지고 있었고, 긴의 목소리가 격양되어간다.
“너희 네 명이 달려들어도 나 한 명도 이기지 못하잖아! 그런데 너희가 용사? 세계를 구원할 상징? 웃기는 소리!”
긴의 눈에서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무언가가 툭 떨어진다.
“이 지긋지긋한 역할 놀이가 드디어 종지부를 향해가는구나. 참으로 비루한 삶이었어. 끝이 정해져있다는 게 얼마나 절망적이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지 너희도 머잖아 알게 되겠지...!”
그것은 최세린의 볼에 닿았다.
그녀의 얼굴 윤곽을 따라 그것은 또르르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뱉던 긴이 목을 가다듬곤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희는... 너희는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ONE(?)으로 향하는 부름에 응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며어언......!”
“끄으으으...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콰작
분한 표정의 긴은 갑자기 힘이 빠진 건지 최세린의 힘에 밀려 뒤로 엎어졌다.
그대로 최세린은 이를 꽉물며 날카로운 바늘을 그의 목구멍에 쑤셔박았다.
그리곤 그 목구멍 상처를 단검으로 헤집어 크게 벌리곤 그곳에 독액을 가득 들이부었다.
“아까 시간차로 증상이 나타나는 독액을 묻혀두길 다행이었어... 그렇지 않았더라면... 모두 죽었을 거야.”
최세린은 끔찍한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머리를 양옆으로 붕붕 휘두르더니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곤 힘이 다했는지 비틀거리며 침대에 몸을 박았고, 그대로 고개를 앞뒤로 흔들더니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는 사천왕 중 한 명을 물리쳤다.
*
전대륙에 사천왕 긴의 명이 다했다는 소문은 급속도로 퍼졌고, 우리는 다음 사천왕을 찾아 이동하고 있었다.
긴은 아주 까다로운 상대였었다. 우리의 레벨과 그의 레벨은 큰 차이가 나지 않았었지만, 빙의라고 해야 할지, 몸을 빼앗기는 건 제법 진귀한 경험이었다.
다신 경험하기 싫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지만.
“나는 너희가 참 흥미롭더라.”
그와 동격의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장소는 남대륙의 수많은 마탑 중 하나, 필립스라는 마법사가 지었던 마탑.
그 꼭대기에 걸터앉아 우리를 내려다보는 꽤나 뚱뚱한 사내.
“꺄아아아!”
“밟지 마! 밟지 말라끄아악!! 부, 부붑... 붑...”
도시는 아수라장이었다.
대피를 주도하는 자도 없었기에 짓밟혀 죽는 사람도 제법 나왔다.
크르르륵...
안타깝지만 우리는 그들의 대피를 도울 수 없었다.
마탑의 1층에서는 고약한 피냄새를 풍기는 마왕군의 키메라들이 호시탐탐 배 채울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저 키메라들의 입가가 시뻘건 걸로 보아 마탑에 있던 자들은 모두 저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더 민간인 피해를 더 늘려서는 안 된다. 저 키메라와 다른 사천왕이 나서지 못하도록 이곳에서 모두 막아야 한다.
“간식이 있네?”
째짹!
그는 날아다니는 참새를 콱 붙잡아 생으로 입에 집어넣곤 깃털째로 우걱우걱 씹기 시작한다. 머잖아 그는 꿀꺽 목젖을 움직이더니, 이에 낀 깃털을 손가락으로 쭉 뽑았다.
그에 확신했다. 광포의 드루이드 브룩.
지금까지 그의 몸에 상처낸 자는 아무도 없다고 널리 알려져있다.
그 단단함의 상징이 말했다. 이재홍을 바라보며 말이다.
“너희 중에도 드루이드 하나 있지 않냐? 세계수의 수액을 지니고 있더랬나.”
[그거 나일걸?]
화르륵!
이재홍이 지닌 가장 강력한 형변 중 하나인 주작의 형태.
그는 화염을 가득 내뿜는 날개를 우아하게 펄럭이며 브룩을 마주하고 있었다.
“오오! 확실히 용사라고 떠들 수준은 되네! 위압감 장난 아닌데?”
[주절거리지 말고 형변이나 해. 아무것도 못 하고 뒈지기 싫으면.]
“짜식 입 사나운 거 봐라? 하긴! 그 정도 생명력이면 무서울 건 없겠지.”
브룩은 몸을 구부리곤 말을 이었다.
“근데 주술 용사야... 격(?)이라는 말이 있거든?]
펄럭
˚ 형변(??) 신(?)! 모델 두 번째 신살자(??者) 창판 ˚
브룩의 등에서 거대한 날개가 쭉 뻗어나왔다.
검은 박쥐같은 날개, 마치 악마를 보는 듯했다.
[여지껏 겪어본 적 없는 공포를 뇌리에 각인시켜주마!]
형변을 완료한 브룩의 외형은 우락부락했으며, 그 얼굴은 그간 보아온 무엇보다도 흉측했고, 그 크기는 이재홍보다 세 배는 거대했다.
그의 날개가 펄럭일 때마다 마탑을 중심으로 하늘은 시커먼 어둠에 잠식된다.
빛은 어둠을 밝힌다지만, 더 거대한 어둠 속에서는 티끌일 뿐이다.
이재홍의 화염은 브룩이 만드는 무저갱 속에서 너무나도 보잘것 없어 보였다.
[죽음이 널 기다리리라!]
[만화 속 대사같네. 3류 엑스트라가 내뱉고 뒈질 법한 대사.]
......!!
이재홍과 브룩이 격돌했고, 마탑은 장난감처럼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시커먼 구름은 망치로 후려친 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크르르륵!
키메라가 달려든 건 그와 동시에였다.
허나 키메라는 시간끌기 그 이상의 용도가 되지 못했다.
내 검이 불을 뿜을 때마다 키메라가 두부처럼 썰려나갔고, 이재홍의 마법진이 완성될 때마다 얼음에 갇힌 키메라들은 쪽을 못 쓰고 엎어져 전투 능력을 상실했다.
가장 활약하는 건 최세린이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여럿 키메라가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엎어졌고, 머잖아 모든 키메라를 해치울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긴 우리는 이재홍 쪽을 바라봤다.
긴과의 전투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분해 몸을 부르르 떨던 그는 한을 풀고 있었다. 브룩과의 전투에서 생명력과 주술의 레벨은 밀릴지언정 정신력만큼은 앞서고 있었다.
[입만 번지르르한 머저리 같은 새끼. 뭐, 죽음이나 공포가 어쩌고 무저갱이 어쩌고... 좆 같은 대사랑 전투력은 비례하나봐. 왜? 더 지껄이지 않고서 가만히 있어?]
[...징그러운 놈.]
대사와는 역접되게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건 이재홍이었고, 멀끔한 건 브룩이었다.
그러나 지친 건 브룩이었다. 이재홍은 이글거리는 시뻘건 화염과 그 못지않게 이글거리는 맹수 같은 눈빛으로 브룩을 노려보고 있는 반면, 브룩은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듯했다.
˚ 형변(??) 견!(?) 모델 지옥의 수문장 케로베로스 ˚
급기야 브룩이 날개를 접고 바닥에 내려앉아 모습을 변환했다.
머리 세 개 달린 짐승, 목에 달린 징은 꽤나 날카로워 보인다. 가장 주목할 건 몸집이었다. 웬만한 건물보다 거대한 육중한 몸집. 그 거대한 몸집으로 뒤를 돌아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 형변(??) 랑!(?) 모델 펜릴 ˚
투웅
그 뒤에 곧장 따라붙은 건 이재홍이었다.
상처 가득한 늑대가 바닥에 착지했고, 그는 잠시 현기증이 일었는지 비틀거렸지만 곧장 자세를 잡았다.
모델 펜릴, 우리도 자주 보아오던 듬직한 이재홍의 형변 중 하나.
허나 브룩보다야 크기나 기, 위압감 면에서 압도하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너 뒈질 때까지 꼭 형변 풀지 마라! 그 더러운 몸뚱아리 돼지우리에 갈아서 넣어줄 테니까!!]
그러나 기세만큼은 뒤지지 않았다.
[징그러운 놈... 그래도 괜찮다! 쫓아오지도 못할 거 아니냐!]
분명히 주술적인 면에서 이재홍은 브룩에게 밀렸고, 그 결과는 온몸의 상처로 나타났다.
그의 추격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재홍은 기세에 비해 몸이 온전치 못했다.
브룩의 도주는 당연히도 성공적이었다.
“{ πγο αλυσδα 얼음 사슬 }”
[ 다르칸 류 오의 땅 고르기 ]
정윤상의 얼음 사슬과 내 검격이 없었더라면 말이다.
[끄아아악!]
브룩이 내 오러에 균형을 잃곤 바닥에 엎어졌고, 그의 온몸을 정윤상의 사슬이 붙들었다.
최세린은 재빠르게 달려들어 그의 여섯 개의 눈을 단검으로 푹 찔렀고, 그곳에 독을 뿌려 눈을 멀게 만들었다.
[살려줘! 살려줘어!!]
여지껏 전투에서 작은 흠집조차 나본 적 없다는 단단함의 상징인 사천왕.
그가 공포에 질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는지 사슬에 묶인 몸을 뒤흔들었지만, 그럴수록 최세린의 독이 퍼지는 속도만 재촉할 뿐이다.
[이로써 두 마리 사냥 완료.]
콰드득!
이재홍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자 브룩은 고개를 처들며 포효했고, 그 충격파에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그의 포효의 기세는 전의를 상실한 놈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력했다.
허나, 계속된 출혈과 최세린의 독, 정윤상의 냉기에 체온을 빼앗겨 점차 몸부림과 포효는 줄어들었고.
[이,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는... 데...]
10분 쯤 흘렀을까.
숨통이 끊어지는 사냥감처럼 브룩은 점차 힘을 잃었다.
그리곤 고개를 떨궜다. 죽은 생선처럼 초점이 사라진 눈은 차마 마주하기 힘들었다.
*
“이미 두 명의 사천왕을 죽였고, 그들이 나눠준 경험치는 우리를 한층 더 성장시켰어.”
정윤상의 말대로 레벨을 살피자 정확히 810에 도달해 있었고, 가장 레벨 성장이 더뎠던 최세린도 798에 도달했다.
“남은 사천왕은 두 명이야. 게다가 최종 토벌 대상인 마왕까지 더하면 마왕성에는 아직도 거대 전력이 3명이나 존재하는 셈이지.”
그는 체스판 위의 말을 움직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는 각기 룩(이재홍), 나이트(나), 비숍(정윤상), 폰(최세린이 자처했다)이다.
“우리는 단탈리온의 목을 취해야 해. 하지만 두 명의 사천왕의 보호를 받는 단탈리온을 과연 죽일 수 있을까? 또한 그녀도 전투에 가담할 테지.”
킹(단탈리온)의 옆에 있는 퀸(메이블 토진)과 나이트(토텔리 프리온).
“세 명의 거대 전력과 정면 승부라... 평균 800레벨을 겨우 달성한 주제에 경솔하게 나섰다간 큰코 다치기 십상이지. 그리고 두 명의 사천왕들이 긴이나 브룩보다 강할 수도 있어.”
일사분란하게 우리 쪽 말을 움직여 왕에게 다가가는 듯 했으나, 어느 순간 정윤상은 손짓을 멈췄다.
“우리 중 누군가 죽을 수도 있겠지. 아직 마왕성에 처들어가는 건 딱 잘라 말해 무리야.”
체스판 검정 진영에 다른 말을 양식에 맞춰 척척 쌓는다.
머잖아 검은 장기말 진영에는 8개의 폰이 쌓였다.
“이 두 개를 빼봐도... 결코 유리한 구도는 아니라는 말이지.”
비숍(긴)과 룩(브룩)을 치웠으나 압도적인 수 차이는 여전했다.
“근데 이러면 어떨까?”
덜그럭
검은색 나이트를 멋대로 움직여 하얀색 진영에 가져다두곤 하얀 말들로 그를 힘차게 쳐서 바닥에 떨궜다.
그리곤 자이키릭의 심장이 박힌 지팡이를 들었다. 그의 반대손에는 대량의 차원석이 있었다.
“메이블은 두 명의 사천왕을 잃었다는 것 때문에 더는 용사 사냥을 나서지 않을 거야. 대신 마왕성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겠지.”
와르르
체스판을 엎었다.
“허튼 소리, 그 계략대로 움직일 생각은 이만치도 없어. 되려 우리가 끌어낼 거야.”
스슥 스스슥
마법진 그리는 소리, 허공에 차원문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준비해.”
그는 차원석을 바닥에 흩뿌리곤 주문을 읊었다.
윤곽이 잡혀가는 차원문, 하지만 여지껏 본 적 없는 이색적인 문자 세 개가 섞여 있었다.
“{ ψ 강제, ζ 전송, η 반전. }”
쩌어억
차원문이 입을 벌렸고, 무언가가 이끌려 나오기 시작했다.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여지껏 느껴본 모든 것중에서 가장 강렬한 기척.
‘긴이나 브룩보다... 훨씬 강하다.’
그리고 소름 끼친다.
등줄기가 오싹해졌고, 더러운 감정이 날 휘감는다.
늪에 빠진 기분, 누군가가 내 머리를 짓눌러 그 늪에 더욱 밀어넣는 듯한...
‘홀라?’
그녀의 검술, 그것은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는 귀신 같은 기괴함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가 저 존재는 홀라가 아님을 증명했다.
“...상정 외.”
음정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귓잔등을 간지럽힌다.
차원문에서 무언가가 꾸멀꾸멀 나오고 있었다.
“반가워, 마왕군 군단장이자 귀검사, 토텔리 프리온.”
“...난감.”
철컹
토텔리의 허리춤에서 묵직한 대검이 자태를 드러냈다.
*
한편 마왕성에서는,
“미안... 미안하다... 긴, 브룩, 토텔리...!!”
메이블은 단탈리온의 치마폭에 고개를 처박곤 굵은 눈물 방울을 쏟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