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악(?)!
* * *
콰과과과!
이재홍의 부리가 바람을 찢는 파공음을 내며 글락을 향해 다가갔다. 이미 글락은 자신의 가슴팍에 거대한 마법진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βρχο τεχο.
“재홍아! 암석 소환진이야!”
쿠구구구...!
정윤상의 말대로 땅에서부터 글락의 앞까지 수많은 돌덩이가 순식간에 떠오르곤 이재홍의 경로에 쫘르륵 깔렸다. 그럼에도 이재홍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바위를 모두 깨부수며 마침내 글락에게로 다가갔고, 그의 부리가 글락을 덮치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내가 너 같은 드루이드를 처음 상대해봤겠나.”
이재홍의 몸이 글락을 통과했다.
꿰뚫은 게 아닌, 허공을 가르며 반대편으로 자기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날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위에는 한 인간이 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갈색 머리의 남성. 중년으로 보이는 장정은 주먹을 꽉 쥐곤 그곳에 마법진을 장전하고 있었다.
“...저게 용족의 마법.”
정윤상이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글락은 주먹을 휘둘렀다.
σκπτρο!
콰아앙!
이재홍은 땅바닥에 운석이 떨어지듯 처박혔다. 그가 떨어진 자리는 철퇴로 내려친 것처럼 쩌적쩌적 금이 갔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새 모양의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πτση!
쐐애애액!
글락이 공중에서 어깨 옆면을 밑으로 향하곤 자세를 바꿨다.
어깨에서 자라난 날개를 펄럭이며 떠있던 그가 날개를 접곤 천천히 떨어지다가 미리 깔아둔 마법진을 통과할 때마다 비이상적으로 추진력을 더해 육안으로 쫓기도 힘들 속도로 바닥을 향해 수직 하강했다.
!!
정윤상은 이어지는 폭음과 충격파에 옷깃과 머리를 가린 모자를 꽉 붙잡았다.
하지만 구경거리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쐐애액!
전대륙의 검술과 홀라의 검술을 내 편의대로 개조한 검술, 그중 공격술 제 4번.
칼로 꿰뚫어 만원 통닭처럼 만든다는 의미로 작명한 검술, 그 식대로 내 검끝은 눈부신 황색 오러를 가득 머금으며 카이루스의 턱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σκοτδι ασπδα!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해줄 놈이 아니었다. 과연 최강의 핏줄이라는 건가.
카이루스의 턱에 중심적으로 시커먼 결정이 모여 방패를 이루었다.
콰드드득! 귀가 찢어질듯한 소리가 공기를 진동시킨다. 내 검끝과 카이루스의 결정이 맞부딪치며 스파크를 이뤄냈다.
“재주는 끝인가?”
정윤상이 말하길 지금 카이루스가 한 것은 신체 강화였다.
그는 방패를 만드는 마법과 동시에 신체에 시커먼 마나를 휘감으며 스산한 기를 풍겼다.
물론 오러로 몸을 강화하는 것보다야 급이 떨어지지만, 애초에 지독하리만큼 튼튼한 신체를 지닌 용족이다. 그에 신체 강화가 뒤섞였다. 그 튼튼함은 배가 되리라.
그 카이루스는 한쪽 팔에 시커먼 마나를 휘감고는 내 목덜미를 노리고 손을 휘둘렀다.
그에 검을 고쳐잡으며 방어술을 준비하고 있을 때쯤,
[둘 다 그쯤하자.]
눈앞에 붉은 화염이 시야를 휘감았다.
그 화염을 베어가며 시야를 확보하니 이재홍이 처박혔던 곳에도 붉은 기둥이 요동치고 있었고글락과 카이루스는 우리에게서 재빠르게 벗어났다.
[이 시발! 당장 안 내려와?!]
이재홍은 강제 종료된 전투에 불만이 가득했지만, 나를 포함한 일행이 그를 뜯어 말렸다.
용족 진형도 마찬가지였다. 카이루스야 콧방귀를 뀌는 게 전부지만, 글락은 아직 조금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타나토스가 그에게 말했다.
[자격은 충분히 증명했잖아. 삼촌 밑에 깔린 드루이드 녀석 잔상처 말고는 멀쩡한 거 보이지?]
“흥, 확실히 더럽게 튼튼한 몸뚱이군.”
[카이루스, 너도 저 검 쓰는 용사에게서 자격을 느꼈을 것이고.]
“아버님 말씀대롭니다.”
글락과 카이루스가 다시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 성의 외곽에 자리잡으러 간다.
우리를 죽어라 노려보던 용들을 살펴보자 그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는 분위기다.
글락의 공격을 맞고도 사지 멀쩡한 주술 용사.
카이루스가 진심으로 방어하게 만들었던 검술 용사.
그걸 보여주자 용족에게 자격이라는 것을 증명한 듯하다.
[아버지의 송곳니가 거기 검 쓰는 용사의 아티팩트라고 했었지.]
타나토스는 입을 쩍 벌리곤 마법진을 우리에게 향했다.
분위기는 분명 누그러졌지만, 마법진을 겨누고 있자 긴장감을 떨쳐낼 순 없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정윤상을 보자 저 마법진에 공격의 의도는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져가라.]
머잖아 타나토스가 우리를 향해 주문을 읊었고, 우리 앞에 어떤 물체가 새빨간 화염에 휩싸여 날아왔다.
콰작!
내 바로 앞의 땅에 그것은 처박혔고, 나는 그 시뻘건 무언가를 향해 오러를 두르곤 손을 뻗어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레드 드래곤 로드이자 내 아버지. 최강의 용으로 불리었던 블레드의 송곳니다.]
화염은 사그라들었고, 나는 내 손에 착 감긴 것을 살폈다.
송곳니의 뿌리 부분이 딱 검의 손잡이처럼 모양새가 잡혀 있었지만, 검이라기에는 조금 둔탁하고, 폼멜 부분과 가드 부분이 부자연스러워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유명 대장장이에게 맡겨 조금만 손 본다면 괜찮아지려나.
이런 생각도 잠시, 이 송곳니를 계속 쥐고 있으니 익숙한 물건처럼 손에 착 감긴다는 걸 느끼자 대장장이와 가공에 대한 생각은 씻은듯 확 사라졌다.
[외형이 신경쓰여?]
“...예, 조금은 신경쓰이네요.”
[걱정 마. 아버지의 송곳니는 에고 소드거든.]
Ego Sword, 자아를 지닌 검이라는 뜻.
타나토스의 말대로 검에 신경을 집중하면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 같기는 하다.
아직은 검과 친해지지 못했다는 건지, 저 구석에 꼭꼭 숨어있는 느낌도 동시에 받았다.
[참고로 나도 넙죽 넘기기는 싫으니까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파라소스를 떠나. 특히 내 삼촌이 마음이 많이 아프신 것 같다.]
“지금도 속에서 무언가 끓는 기분이다.”
[들었지? 알려주자면 반납은 죽기 전에만 하면 돼. 어차피 너네 수명 따위야 우리 용족에게 있어서 눈 깜짝할 순간이니까.]
그 말을 뱉은 타나토스의 표정이 조금은 씁쓸했다.
그는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무언가 중얼거렸다.
[저들이 만약 어머니나 줄처럼 초월자가 된다면 얘기는 다르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거리가 멀어 듣지는 못했지만, 상관 없을 말이지 않을까.
일행은 씩씩거리는 이재홍의 옷을 질질 끌며 성급히 파라소스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다음날, 귀신같이 마왕군이 날뛰기 시작했다.
아티팩트는 모두 모았다. 우리는 바삐 움직였다.
그전에 카넬루아에게 듣기를, 내 검의 이름은 ‘파멸의 송곳니’가 정식 명칭이었다. 허나 나는 이 명칭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1년 동안 검술을 완성시켜 각 식에 이름을 붙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럴듯하고 폼나는 이름은 내게 와닿지 않았다. 그보다 오그라드는 걸 더 싫어하는 게 컸지.
카넬루아는 날 엄청 타박했지만, 퇴근길이며 출근길이며, 만원 통닭이라던지, 내게 익숙한 이름을 지었고, 그게 기억하기 쉬워서 좋았다.
이 얘기를 왜 굳이 꺼내냐면, 내가 지닌 검은 몬스터의 기를 흡수할수록 내게 익숙한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있다.
내가 언제나 끼고 있던 철검, 마왕군을 상대할수록 그와 외형이 비슷해지고 있었고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내 허리춤에 있던 철검은 검집만 덩그러니 남기고 사라졌다.
‘...퉤퉤, 맛 없어. 싸구려 철이네.’
그리곤 이상한 목소리가 우리 야영지 전체에 울렸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데, 첩자인가?
에고 소드를 들고 경계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최세린처럼.
‘모른척 하기야? 농담이라도 하는 건가.’
그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소리쳐 놈에게 경고를 보냈지만서도 일행만 무슨 일이냐 물어볼 뿐, 여전히 목소리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 여기 있잖아 멍청아.’
“어디에 숨은 거냐!”
‘진짜 일부러 그러는 거야? 손에 꼭 쥐고 있잖아.’
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내 손으로 떨구자 부르르 움직이는 에고 소드가 보였다.
‘이제야 날 보는구나. 어쨌거나 반가워 파트너. 근데 뱀 새끼들이랑 함께라는 건 썩 내키진 않네.’
“...설마 네가 말하는 거야?”
‘그럼 누구겠어? 됐으니까 이름부터 지어줘. 파멸의 송곳니는 오그라들어서 싫다며.’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이재홍이 드디어 정신이 나갔다며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곤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한모금 시원하게 털어냈다.
*
“드디어 에고 소드가 가동하기 시작했나보지.”
“15살도 아니고, 서른 넘어서 무기랑 말을 한다고? ‘부름에 응하라 듀란달!’ 뭐 대충 이런 거냐? 생각만 해도 괜히 내가 부끄럽네 크크큭....”
“ONE(?)에서 뭐가 불가능하겠냐, 너도 짐승으로 변하고 그러잖아. 무기랑 말하는 것 정도야 뭐...”
“흠, 그것도 그런가? 아무튼 보고 있기 힘들다고.”
정윤상과 이재홍의 말은 신경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나는 정좌로 앉아 내 무릎에 검을 올리고 녀석과 대화에 열을 쏟고 있었다.
‘내 이름은 정했어?’
“흐음... 모든지 먹어치우고 내가 원하는 형태에 맞춰 강해지는 게 너 능력이라는 거지?”
‘그래, 나는 뭐든지 될 수 있어. 물론 네가 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래, 이름 방금 막 정했다.”
기를 먹는 게 영혼을 먹는 것 같아 ‘소울이터’라고 지을까 생각했으나, 이재홍이 놀릴 것 같아 별로라는 의견이 곧장 나왔다.
식탐이 엄청나다는 점에서 인간의 7대 죄악 중 하나인 식탐 ‘글러트니’라고 부를까 했으나, 그것도 ‘소울이터’랑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여 이것도 후보에서 탈락했다.
“넌 언제까지 처먹고 있을 거냐? 이 ‘먹보’ 년아.”
그때 이재홍이 최세린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에 곧바로 내 에고 소드의 이름이 딱 정해졌다.
“먹보. 먹보가 좋겠다.”
‘으음... 귀엽고 괜찮네.’
먹보는 알겠다고 답하며 몸을 부르르 떨곤 잠시 쉬겠다며 잠들었다.
나도 정좌를 풀고 기존 철검의 검집에 녀석을 넣었다. 외형이 거의 똑같이 변했기 때문인지, 사이즈가 딱 맞아 안정감이 들었다.
“오빠는 진짜 입이 더러운 것 같아요. 내 신발 밑창보다 더. 아니, 오우거 똥 만도 못한 것 같아요. 그냥 접시에 코 박고 죽으면 안 돼요?”
그때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기 산적을 입에 집어넣곤 눈을 가늘게 뜬 최세린이었다.
“내가 괜히 시비 걸었냐? 언제나 네가 식량 다 거덜내니까 하는 말 아니야.”
“안전을 위해 먼저 길 탐색하는 게 저인데 당연히 에너지 많이 쓰지 않겠어요?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을 텐데 오빠는 언제나 용감하기만 하네요.”
“뭔 개소리야. 뭐가 용감해.”
“무식하면 용감... 이라는 말 아닐까.”
“저 싸가지가 뒈질라고 진짜.”
이재홍이 발톱을 세웠고, 최세린이 바늘과 단검을 양손에 쥐고 그에게 대치했다.
그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잠깐만. 둘 다 그만.”
같이 웃던 정윤상이 멈칫 표정을 굳히곤 무거운 목소리로 뱉은 건 그때였다.
그는 손에 쥔 꼬치를 내려놓곤 4개의 마법진을 휘감아 허공을 향했다.
“큰 놈 온다.”
그의 말에 반응해 나도 눈을 감고 기에 모든 걸 집중하자 저 허공에서 무섭도록 빠르게 다가오는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놈의 마기는 굉장히 막강했다.
지금까지 상대해온 마왕군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