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악(?)!
* * *
계속된 언쟁에 언성이 높아졌다.
“이 씨발, 그럼 그 애새끼를 살린 게 잘한 거냐? 걔가 나중에 다른 사람 죽이는 건 인간 우월주의에 벗어나는 거 아냐?”
“갱생의 여지가 있을지 어떻게 알아?”
“존나 궤변이잖아. 방금 형이 죽였던 몬스터가 갱생의 여지가 훨씬 다분하지.”
“그래봤자 몬스터잖아. 인간에게 비할 바가 있을까.”
“눈에 훤하다 시발. 회사 짤린 것도 그 꽉막힌 사고 때문이겠네. 나 같아도 형 같은 새끼랑은 일 안 하고 말지.”
그때 이재홍이 내 역린을 건드렸고, 최세린과 정윤상은 말을 멈췄다.
분위기가 고조된다. 사르륵 흐르는 낙엽이 바닥에 닿았을 때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멋대로 떠들지 마.”
“모를 리가 있나. 술 처먹고 좋다고 헤벌레 떠든 게 어디 사는 누구인데.”
“재홍,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철수 형 생각이랑 우리 생각이랑 다른 건 맞지만, 과거는 왜 건드리는”
“입 닥쳐. 너까지 처맞기 싫으면.”
정윤상이 애써 만류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이재홍은 내 멱살을 붙잡은 채 놓아줄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우리 싸움은 몸싸움으로 번졌다.
“인간 우월주의? 상관 없어. 나도 지금은 드루이드라지만 분명한 인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상을 남에게 강요해선 안 되지.”
이재홍이 날 강하게 잡아당겼다. 나는 녀석의 손목을 콱 붙잡아 강제로 떼어내며 밀쳤다.
“내가 강요한 적이 있던가.”
“자기 좆대로 안 되면 썩창 얼굴 짓는데, 그럼 우리가 눈치를 안 볼까? 형은 언제나 몬스터를 잔혹하리만큼 죽였어. 인간한테는 시발 존나게 관대하고. 그리곤 그게 당연하다는 마냥 행동했어. 마왕군 소속이 아닌 몬스터를 죽인 건 뭐 때문인데?”
“그들이 몬스터기 때문이라니까, 말이 어려워?”
“또 좆 같이 말하네.”
“너 성격대로 덤벼보던가. 이번에는 유야무야 안 넘어가고 피떡을 만들어 줄게. 너 다혈질은 언제 봐도 지겹다.”
“...그래? ˚ 형변(??) 랑!(?) 모델 회색 늑대 ˚”
쾅!
밀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먼저 달려든 건 이재홍이었다.
나는 오러를 터트리며 그에게 반격했고, 내 뜻을 더 강경하게 밝혔다.
언제나 인간 우월주의의 편에 설 것이며, 이 생각을 바꿀 일은 결단코 없다고.
그러자 이재홍은 더 생명력을 쏟아 몸집을 부풀리며 내게 달려들었고, 나도 오러를 터트리며 놈에게 대응했다. 내 기에 주변 땅이 부르르 떨린다. 이재홍의 포효에 공기가 뒤흔들렸다.
[나도 이젠 드루이드니까 인간이 아니잖아. 나는 왜 안 죽이는 걸까? 그 좆 같은 논리가 모순되기 때문이지 아닐까 예상되는데.]
“내가 너랑 말싸움이나 하게 생겼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으면 입 다물고 있어.”
[싫은데 시발아? 몬스터랑 나랑 다를 게 뭔데. 짐승으로 변해서 이빨로 물어뜯고 발톱 휘두르는 게 어떻게 인간이야. 그러니 나도 죽여봐.]
“너는 내가 못 할 것 같구나.”
잠시 합을 나눈 후 서로의 기에 밀려 거리가 벌어진 지금, 우리는 성큼성큼 서로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떨림은 심해졌고, 내 검과 이재홍의 거대한 몸집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 가운데에 커다란 얼음 줄기가 우리 사이를 갈랐다. 그 마법의 주인은 말했다.
“둘 다 그만해.”
정윤상이 마법진을 회전시키며 우리를 겨누고 있었다.
그에 이재홍은 콧방귀를 뀌곤 주춤 물러났고, 나도 검집에 검을 꽂아 뒤로 돌았다.
그리곤 미련없이 앞으로 걸어갔다. 내 어깨에 손이 올라온 건 그때였다.
아직 냉기가 미처 가시지도 않은 차가운 손, 정윤상은 내게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형, 어디가는 거야.”
“서로 이해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동행은 서로에게 독일 뿐이야. 당분간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겠다. 나나 재홍이나.”
[병신 같이 회피를 하네.]
“괜히 대답 안 하련다. 언젠간 다시 만나겠지. 그때 다시 얘기해보자고.”
일행은 갈라섰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이재홍은 동대륙 변두리 마을로, 정윤상은 스승인 줄을 다시 찾아 떠났고, 최세린은 북대륙 어딘가로 떠났다.
이때 내가 처음 찾아간 곳은.
“어머?”
요정, 정령, 엘프가 모여 사는 비이린이었다.
종족간의 화합이 가능한지 나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고, 이들은 몬스터로 취급하지 않는다지만 정윤상이나 이재홍의 말마따나 큰 테두리 안에서 보면 이들도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몬스터와 큰 차이는 없었다.
[그게 그토록 어려웠던가, 나는 마법 용사 편에 손을 들어주고 싶네만.]
빛의 정령왕 이그니스는 나를 타박하는 투였다. 엘프 종족의 왕은 부재중이었기에 딱히 코멘트가 없었고, 대신 그를 보좌하던 여성 엘프 나이샤가 내게 말을 건넸다.
“검술 용사, 당신의 뜻대로라면 길거리에서 절 마주하면 검을 뽑으실 건가요?”
“그건... 아닐 겁니다.”
“다크엘프는 몬스터로 취급합니다. 인정하기 거북하지만 피부 색을 제하면 외형상 똑같은데, 그들과 저희 종족의 차이점이 뭐죠? 선? 악?”
“그냥 저는 그 기준이 중요한 거예요. 몬스터냐 아니냐 나누는 그 기준점. 누가 정의했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그냥 그래요.”
모두가 다크 엘프를 몬스터로 취급하니 다크 엘프는 몬스터고, 나는 그들을 망설임없이 죽인다.
엘프는 몬스터로 취급하지 않으니 나는 이들에게 비교적 호의적일 것이다.
그게 끝이었다. 엘프도 몬스터로 취급했다면 비이린에 나는 손님이 아닐 터였다.
“이게 잘못됐다는 건지 스스로도 헷갈리는군요. 인간이기에 인간의 대립된 구도에 있는 몬스터를 특별한 까닭도 없이 증오하는 게 말이죠.”
그에 대한 답을 얻으러 비이린에 정착한 거였다.
다른 얌전한 몬스터를 만나는 것도 어렵고 그들에게 검을 내가 안 휘두를지 의문이 든다.
이 몬스터에 대한 끝없는 혐오의 정체는 모르겠다. 이 세계에 정착한 순간부터 나는 몬스터를 죽여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이유가 뭘까, 현명한 이그니스나 요정족의 여왕 카넬루아라면 내게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혼란을 겪고 계시네요.”
그때 내 앞에 조그마한 요정 한 명이 봄바람처럼 하늘하늘 날아왔다.
그녀는 내 어깨에 척 하니 앉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귀에 속삭였다.
“오랜만에 바깥 세상 구경이나 할까 하는데, 보디가드 좀 해주시겠어요?”
“어머님!”
옆에서 경악한 건 꽤나 통통한 모습의 요정족 공주 넬피였다. 그녀는 카넬루아의 발언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녀를 만류했으나, 카넬루아는 강경했다.
“세계를 구할 용사님이 정처없이 떠돌고 계시는데, 내가 도움을 드려야지 않겠니?”
“그, 그럼 요정은 누가 통치하나요?”
“네가 있잖니?”
그녀는 빙긋 웃으며 내게 지혜를 줄 테니 이곳에서 벗어나자 지시했고, 나는 조금 떨떠름했지만 마땅한 수도 없었기에 그녀의 요구를 받들었다.
그렇게 카넬루아와의 동행이 시작됐다. 그녀가 맨 처음 가자고 한 곳은 동대륙의 작은 마을, 플라금이었다.
“그곳의 인간과 영주를 만나 얘기해보는 걸 추천해요.”
그들이 내게 답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안 될 것 같다.
인간은 몬스터를 이해하지 못한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태생이 다른데 어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나처럼 인간 우월주의를 지녔던 자들인가?
지금은 몬스터와 화합하여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구축해둔 것일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영주와의 만남은 나름 괜찮은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플라금 영주의 생각은 내 예상을 시원하게 빗나갔다.
“무슨 소리시오? 몬스터는 죽여 마땅한 존재가 맞소.”
나처럼 단순한 생각도 아니었다. 그의 몬스터 혐오는 탄탄한 근거로 구성된 것이었다.
“첫 째, 마왕군 태반은 몬스터이오. 더 설명도 필요 없겠군.”
“둘 째, 몬스터는 마왕군을 제하더라도 옛적부터 인간과 적대해왔소. 엘프와 다크 엘프의 차이를 물었는데, 단순한 것이오. 엘프는 인간과 우호적인 관계였고, 다크 엘프는 언제나 적대하는 관계였소. 그 기준이 잘못 됐다는 게 잘못 됐다는 거요. 인간에게 언제나 악이었던 종족만을 몬스터로 구분지었소.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이지. 어쩌면 눈앞에 계신 여왕님이 태어나시기도 전의 일일 수도 있을 것이고.”
“셋 째, 몬스터야말로 인간을 배려하는가? 인간에게 호의적인 몬스터, 있기야 하겠지. 허나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오. 가령... 고체에 열을 가하면 액체가 되고 기체가 되는 건 상식이자 진리오. 그러나 계란은 어떻지? 액체에 열을 가했는데 고체가 되지 않소? 이렇듯 모든 진리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오. 마법 용사와 주술 용사가 마지막으로 죽였던 몬스터는 착한 몬스터였다 주장했는데, 그놈은 계란일 뿐이오. 아주 드물게 있는 예외.”
이 말고도 말을 쏟아놓았는데, 요약하자면 몬스터를 혐오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는 사상이었다.
그의 말을 듣자 내 주장이 더욱 굳건해지는 느낌만을 받았다. 플라금의 영주 플라티넘은 말했다.
“나는 검술 용사의 사상은 당연한 것인데, 어째서 고치려 하는 건지 모르겠군? 일행을 고칠 순 없는 것이오?”
“그게 어렵더라고요. 자칫 몸싸움으로까지 번지고.”
“흠... 골치 아프군... 용사가 마왕군을 토벌해주어야 하는 건 기정 사실인데...”
“흐음? 뭐가 어렵나요? 결론은 이미 나온 거 아닌가요?”
카넬루아는 민들레 씨처럼 살랑거리며 날아가곤 플라티넘의 머리 위에 앉았다.
그녀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생각을 고칠 필요는 없지만, 일행과 함께하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럼 숨기면 되죠! 어차피 마왕군을 토벌할 때까지는 싫어도 함께해야 하는데, 굳이 사상을 내비치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마법 용사가 인간을 죽여야겠다 주장하면 죽이세요! 주술 용사가 몬스터를 살려야겠다 주장하면 살리세요! 마왕군을 토벌하고 갈라서면 그들은 검술 용사님의 의견에 토를 달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때 살렸던 몬스터를 죽여도 되고, 마음대로 하시면 되지 않겠어요?”
카넬루아는 빙긋 웃었다. 그녀의 밑에 있는 플라티넘도 마찬가지로 호쾌하게 껄껄 웃었다.
“명답입니다! 역시 요정족 여왕님은 저와는 결이 다르십니다!”
“과찬이세요. 그래서, 검술 용사님의 대답은?”
나는 우물거리지도 않았다.
이들의 얘기를 듣자 내 안에 무언가가 확실히 잡히는 기분이었다.
“...그게 좋겠습니다. 모든 인간은 제 품에서 지켜낼 것이고, 모든 몬스터는 제가 죽일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계의 몬스터는 모두 내 손으로 죽일 겁니다.”
그때였다.
내 심장에 무언가가 휘감기는 기분이 들었다.
“끄, 끄으으!”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끔찍한 고통에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엎어졌다.
독? 아니다, 무언가를 먹은 기억은 없다.
마법? 그것도 아니다. 정신 계열 마법에 당해본 기억이 있으나, 지금의 감각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잘 말하셨어요. 그 고통은 우리와 함께한다는 약속과도 같은 거예요.”
“끄아아아아!”
“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신의 뜻을 이행하는 집단, 실렉티스(συλλκτε)에 온 걸 환영해요. 그분의 뜻에 따라 같이 이 세계를 수호해봐요. 검술 용사님은 실렉티스에서 롤로스(ρλο)에 해당해요. 역할을 위해 신의 꼭두각시가 된 자를 뜻하죠.”
서서히 멎어가는 고통. 웃옷을 잡아 당겨 그 심장 쪽을 바라보자 S자의 문양이 화두로 내 가슴을 지진 듯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그 문양은 점차 검어진다. 자세히 보니 S자가 아니라 뱀의 모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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