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꼭두각시
* * *
문신에 관련한 건 동대륙의 라스타에 가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인원을 분배했다. 나와 최세린, 그리고 이재홍은 라스타에 가서 왕을 만나기로.
디안은 문신에 대한 기억을 지웠으니 따라오지 않고 비이린에서 대기하기로, 암두시아스와 함께 말이다.
“진! 비이린에는 언제 오는 거야?”
“곧? 정령왕님이랑 요정족 공주님이랑 놀고 있으면 어느샌가 와 있을 거야 히히. 외로워도 좀만 참고 있어.”
“우음... 알겠어. 그럼 바비룬은?”
“곧 오겠지 뭐.”
“쳇... 쌀쌀맞아.”
속 편한 암두시아스와는 달리 디안을 설득하는 게 문제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곧 데리러 올게. 그 사이 게으름피우지 말고 꾸준히 서클 늘리는 수련 하고 있어.”
“마탑주님. 언제 제가 게으름 피운 적이 있던가요?”
“그냥 하는 말이지... 아무튼 다녀올게.”
“올 때 선물이라도 사오세요.”
마왕성 때와는 달리 같이 행동한 시간이 한 달이 넘는다.
사이에 신뢰가 생겼다는 거겠지. 그녀는 투정부리지 않고 나와 용사 일행이 움직인다는 것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암두시아스와 디안의 마중을 받으며 라스타로 이동했다.
플라금의 국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 나오는 라스타.
이번에는 차원문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니거니와 용사 시절부터 사용했던 훌륭한 이동 수단을 오랜만에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야, 경치 좋다~!”
최세린이 흩날리는 머리칼을 손으로 붙잡으며 소리쳤다.
간혹 물방울이 튀기지만, 그마저도 청량하고 시원하단 기분을 받았다.
촤아아아
플라금과 라스타의 국경은 거대한 강을 끼고 있다. 그 강을 건너는 게 까다로운 문제인데 우리에겐 최강의 드루이드가 있었다.
[......]
“덕분에 편하게 갑니다 상어 씨.”
그는 할 말이 많아 보였는데, 물 속에서 입을 여는 건 아무리 드루이드라도 힘든 일이었다.
지금 이재홍이 사용한 형변(??)은 사어(??)였다. 바다의 포식자 상어다.
나와 최세린은 그의 매끌매끌한 등에 올라 타 거대한 지느러미를 붙잡고 있었다.
그냥 상어 치고는 크기가 너무 거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건 고대에 멸종했던 바다 최강의 포식자 메갈로돈이 모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몸 길이만 10M가 넘는다. 우리가 발 디딜 공간은 여유가 넘쳤다.
그에 편안하게 강을 절반 쯤 건넜을 때쯤, 이재홍이 돌발적으로 행동했다.
[...옘병, 못 해먹겠네!]
“꺄악!”
촤악!
그 거대한 상어가 갑자기 몸을 흔들더니 우리를 허공에 집어던졌다.
몸이 붕 뜬 감각과 함께 시선을 내려보니 푸른 바닥이 우리에게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미친놈이 기어코 이상한 짓을 벌였다.
나는 시퍼런 마법진을 바닥을 향했고 그 마법진에서 나온 냉기가 바닥에 얼음 바닥을 만들었다.
콰작!
그곳에 착지했다. 최세린은 어쨌을까 싶었는데 그녀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곤 내 뒤에 얼음 발판을 밟고 서 있었다. 하긴, 바다 한가운데에 던져도 머리칼 한 가락도 젖지 않을 여자다.
그녀는 거대하고 흉악한 이빨을 들이밀며 씩씩거리는 이재홍에게 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러는데요?”
[내가 왜 너네랑 어울리고 있는 거냐?]
진심으로 황당하단 어투였다. 저게 무슨 말일까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정신병이야?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
[아니,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됐지만 나는 문신이고 뭐고 알 바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 동행은 여기서 끝이야. 나는 라스터 왕이든 뭐든 관심 없으니까 알아서들 가라.]
이재홍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고, 우리는 멍한 표정으로 그가 호수에 남긴 파동을 바라봤다.
최세린이 저 사람 기분 들쑥날쑥 하는 게 하루이틀이냐며 언짢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고, 나도 그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수 위에 얼음으로 된 길을 깔았다.
관문을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프카리스토와 마찬가지로 신분증을 조작하고 일루전 마법으로 정체를 숨겼다.
플라티넘이 말했던 라스타의 국왕, 그를 정식적인 절차를 통해 찾아보려면 관문을 통과하는 것에는 비교조차 안 되게 귀찮은 짓이었기에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곤 잠입, 수면독과 마왕성에서 썼던 가면의 조합은 잠입에 있어서는 강력한 것이었다.
우리는 라스타 국왕의 침실에 들어왔다. 그리곤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
둘 다 할 말을 잃었다. 최세린은 라스타 국왕의 맥을 짚더니 고개를 절렜다.
“...이게 무슨 장난일까.”
그는 죽은 채였다. 아주 평온하단 얼굴로 침대에 몸을 기댄 채 말이다.
그의 목을 살펴보니 플라티넘의 말대로 뱀 문신이 있기는 했다.
다만 누가 손으로 잉크를 문지른 듯 꼬리 부분이 살짝 지워진 채였다.
*
독살은 아니었다. 독을 누구보다 잘 다루는 최세린이다.
그녀가 직접 맥을 짚었고, 눈꺼풀을 강제로 들어올려 동공을 확인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그녀가 독살에 대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독살은 그가 죽은 이유가 아니었다.
자살도 아니었다. 외상도 없었을 뿐더러 자살할 이유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혹여나 심적으로 힘들었을까 싶어 그의 시종 몇몇을 몰래 어디론가 데려가 기억을 읽었다.
그는 가끔 플라금이 라스타를 습격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조공을 어떻게 조달해야하나 고민에 빠져있긴 했지만 결코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준의 걱정까지는 아니었다.
“누가 우릴 놀리는 기분이야.”
날이 밝고, 최세린이 숙소에서 침대에 걸터앉아 말했다.
“동감.”
문신에 대한 걸 알아내려던 행위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을까, 뜻대로 풀리는 게 없었다.
나는 아깝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그 단어는 최악의 단어다.
결실을 맺기 직전까지의, 혹은 결실을 맺을 만큼의 노력이 가미됐음에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깝다는 단어다.
모든 게 아까웠다. 코앞에서 모든 걸 놓쳤다.
노파, 키메라 상인, 라스타의 왕.
선택지는 여러개였으나 라스타의 국왕이 죽음으로서 우리에게 남은 길은 외길이 되었다.
그마저도 망설이다가 놓칠 수는 없었다.
“가야겠지?”
“진작에 이랬어야 했어.”
차원문을 가동했고, 그 너머에는 오래됐지만 결코 해지진 않은 거대한 구조물이 있었다.
붉은색으로 도배된 벽돌로 쌓아올린 거대한 출입문이자 하나의 관문.
그 속에는 아주 높은 여러 방첨탑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는 둥글게 여러 뾰족한 건물이 공생하고 있다.
그곳 중 가장 큰 건물의 천장의 끝을 바라봤다.
저기에 푹 찔린다면 아픈 걸로는 끝나지 않겠다는 생각은 갑자기 왜 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발길을 옮겼다.
“아들러 프리브룩스.”
그를 다시 만나러 왔다.
이번에는 일방적인 만남이 아니라 직접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다.
하지만 데미투 영주의 방이나 라스터와는 달리 이곳의 경계는 아주 산엄했다.
마왕성에서 내 원격 시야 마법을 제외하곤 들키지 않았던 이유는 마계와 현세를 잇는 차원문과 마법진 덕이었다.
지금은 그게 없었고, 다른 마법을 병행하면 즉시 내 존재를 알아챌 까다로운 왕의 검과 방패가 이 성에 잠들어있다.
황금, 백금 기사단의 단장. 그리고 그 기사단원들.
그들이 왕을 지키고자 이 성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이들의 눈과 귀 등의 오감을 속여 아들러의 방에 잠입하는 건 최세린은 몰라도 내게는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귀찮은 점은 내가 아들러를 만나봐야 한다는 것에 있었다. 암살이 목적이었다면 2분 내로도 달성할 수 있겠지만, 기억을 읽어야 하는 것인만큼 마법 용사인 내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면돌파는 어떨까? 불가능하진 않지만 아들러를 살려둬도 서대륙과 척을 지게 될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란 심정으로 동대륙 플라금에서처럼 막무가내로 나가볼까. 썩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최세린은 성 외곽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등을 기댄 채 아들러의 방에 설치했던 원격 시야를 바라봤다. 그곳의 아들러는 죽은 듯 자고 있었다.
혹여나 라스타의 왕처럼 죽은 게 아닐까 불안한 생각과 함께 소리를 최대한 키웠는데 약간의 새근새근한 숨소리가 들려와서 가슴이 쓸어내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최세린에게 차원석 하나를 건넸다. 이미 사용했던 최상급 차원석은 등급이 떨어진다. 그리고 이건 서대륙에서 주피아로 이동할 때 사용한 차원석이다. 그 때문에 그녀에게 건넨 건 중급 차원석으로 등급이 내려간 채였다.
내 손에 들린 다른 차원석도 중급 차원석이다. 주피아에서 비이린까지 이동했을 때 사용했던 것. 이 중급 차원석은 최상급 차원석처럼 먼 거리를 이동하지는 못 하지만, 고작 몇십 미터 남짓을 이동하기에는 충분하다.
“1분 30초. 조금 꼬이면 2분 15초.”
그녀가 침실에 잠입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신호하면 가동할게.”
그녀가 지닌 차원석과 내가 가지고 있는 차원석을 연결하겠다는 뜻.
최세린이 어둠에 몸을 숨기고 머잖아 그녀에게 건넸던 마도구가 부르르 진동했다. 시간은 2분 약간 안 되는 시간이었다.
지팡이를 휘둘러 공간을 연결했다.
“반갑습니다.”
“어, 어어...”
눈앞에는 잔뜩 겁 먹은 아들러 프리브룩스가 있었다.
“문이 안 열린다!”
“마나 장벽이야! 깨부숴!!”
그의 침실 건너에서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차원문의 마력에 반응해 침입자가 생겼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하지만 저 문이 열릴 일은 없었다. 두 명의 기사단장이 오기 전까지는 내 마력 장벽을 깨부술 인재는 없다.
아마 그들이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아봐야 5분이다.
많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미 침입한 마당에 예를 차리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약속하고, 한 가지 궁금한 정보를 건네줘야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목숨을 보장해줄 수는 없습니다.”
“...어어.”
마치 정박아를 대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생각보다 그는 순순했다. 과거 나와 용사 일행이 이곳에 전송됐을 때 마주했던 근엄한 모습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란 착각마저도 받았다.
“약속할 건 앞으로도 전쟁 계획을 포기하십시오. 기껏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줬잖습니까?”
“...어,어어.”
“그리고 알려줘야 할 건, 당신의 오른쪽 팔꿈치. 그곳에 있는 문신에 대한 겁니다.”
아들러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지만 마땅한 대답이 돌아오진 않는다. 공포에 언어 기능을 상실한 걸까?
그래도 문답을 진행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나는 그의 뇌에 마법진을 둘렀고 남은 시간 동안 멋대로 기억을 뒤적였다. 전쟁 계획이 어쩌다가 세워졌는지, 문신을 지닌 자의 정체는 무엇인지.
“......”
그러길 5분. 문답이 종료되자 혼란만 남을 뿐이었다.
“...이게 뭐야?”
이재홍이 화면 속 아들러를 가리키며 살아있는 것 맞냐고 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들러의 기억속에는 전쟁과 문신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