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꼭두각시
* * *
“...곧 뒈질 것 같은데? 아니지, 저거 살아있는 거 맞아?”
대략 5분 정도 흘렀을까, 바비룬은 악쿤이 말한 바가 무엇인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ㄴ'자로 침대에 기대 앉아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한 10분 가량 눈 깜빡임을 제외하곤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목이 말랐는지 아들러는 천천히 움직여 단상 위의 컵에 손을 뻗었다.
이재홍이 말문을 연 건 그때였다.
“이건 뭐냐? 검버섯?”
“응?”
이재홍이 가리킨 곳은 아들러 프리브룩스의 팔꿈치였다. 물을 한 모금 마셨을 때 보였었다.
그 행동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용케도 포착했다 생각하며 화면을 확대했지만 장면은 이미 지나갔다. 이재홍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내게 말했다.
“5초만 역재생. 방금 팔꿈치에 뭐 있었어.”
“별거 아니겠죠, 방금 검버섯이라면서요.”
최세린이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암두시아스는 후식으로 시킨 쿠키를 막 2개째 우걱우걱 씹기 시작했다.
“아니, 검버섯이라기에는 모양이 이상했어. 야, 빨리 역재생해.”
이상한 모양이라, 이재홍은 확실히 무언가를 본 듯 했다.
일단 그의 요청대로 원격 시야 마법에 η반전 이라는 마법 문자를 섞어서 기록해둔 영상을 뒤로 돌렸다.
“지금.”
주먹을 움켜쥐며 영상을 정지했다. 다시 물컵을 드는 장면, 그 순간 흘깃 팔꿈치가 보였다.
그 팔꿈치에는 확실히 검버섯이라 여기기엔 좀 이질적인 문양이 있었다.
장면을 확대하고, 시야각을 바꿨다.
팔꿈치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끔 말이다. 그러자...
“S모양... 아니, 잘 보면 뱀인가?”
어디서 본 문신이다.
잿불 뒤지듯 기억을 뒤적이니 한 달 전 마도구 시장에 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키메라 상인이었던 주인장, 그의 오른손등에 분명 이러한 문양의 문신이 있었다.
그걸 본 디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암두시아스는 대화에 관심이 없는 듯 다른 쿠키를 해치우고자 손을 뻗었다.
“저 문신... 어디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키메라 상인 말하는 거지? 나도 방금 그거 떠올렸어.”
“아... 네, 하지만 그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는... 으윽! 마탑주님? 기억을 떠올리려 하니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으윽!!”
“디안?!”
대뜸 디안은 머리를 부여잡고 몸부림쳤다.
암두시아스는 곧장 과자를 내려놓곤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암두... 잠깐만 저기 가 있을래...? 끄으!!”
“아, 알겠어!”
디안이 애써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암두시아스를 돌려보냈고, 그에 이재홍이 손짓하자 그녀는 총총 걸어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 Ματαωση 캔슬 }!”
두통이 더 심해지기 전에 마법을 모두 취소해야 했다.
그러자 우리 테이블에만 있던 소음이 이 건물 전체에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손님의 이목이 쏠린다. 막 메뉴판을 건네주던 점원도 디안의 상태를 눈치챌 수 있었다.
“끄, 끄으으!”
“소, 손님? 괜찮으세요? 어머머, 이게 무슨......”
“물수건 하나만 방으로 가져다주시겠어요?”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여성 점원은 부엌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자리를 비우니 소란이 조금은 멎었다. 우리를 흘깃흘깃 보는 다른 손님은 여전히 있었지만,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나는 디안의 어깨를 움켜쥐며 다급히 물었다.
“디안, 움직일 수 있겠어?”
“아... 아니요, 조금 힘... 으으윽!”
“야 이재홍, 반대쪽 부축 좀 해줘.”
“뭐래 약골 새끼가. 그냥 방 번호만 말해.”
“2, 205호!”
푸쉬히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재홍의 입에서 김이 새어 나왔고, 그는 기도하듯 손을 모으며 그곳에 입김을 불어 넣었다.
˚ 부분 형변(??) 후!(?) ˚
작은 외침 후, 그의 손에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털이 수북하게 자라났고, 손바닥이 두 곱절은 비대해졌다.
그 손으로 디안을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그는 몸부림치는 디안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여자애 은근 무겁네.”
“......”
농담을 받을 기분도 아니어서 이재홍보다 빨리 올라가 여자 일행이 쓰는 방문을 열었다.
그리곤 침대에 디안을 눕혔다.
“디안, 정신 계열 마법의 일종 같아?”
“맞는 것 같아요, 맞는데 이게 언제부터...... 으으으!!”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움켜쥐고 침대를 발로 차며 고통을 호소했다.
즉시 양손에 마법진을 둘렀다. 정신 계열 마법. 그중 진정에 치중된 마법진이었다.
그녀의 머리를 마법진으로 휘감았다. 하지만 이건 치료가 아니라 응급처치다.
내가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재홍이나 최세린이 치유할 수 있는 외상이지, 내상은 치유 못 한다.
나 또한 그 방면에서 전문가가 아니지만 이 일행 중에서는 그나마 내가 정신 계열 마법에 있어서 빠삭했다.
내가 해야 한다. 상황이 급작스러웠지만 진정을 찾아야 한다.
후우... 숨을 가다듬었다. 문이 열린 건 그때였다.
“손님, 물수건 가져왔는데요!”
이미 마법진은 디안의 머리를 감싸고 있었으나, 점원에게 내가 마법사라는 걸 들킨다고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조금 놀라는 눈치이긴 했지만, 이재홍이 그녀에게 재빠르게 물수건을 건네받으며 관심을 돌렸다.
그걸 최세린에게 던졌고, 허공에서 착 받아들인 그녀는 디안의 이마와 볼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냈다.
“헉... 허억......”
디안은 아직도 헐떡이고 있었다.
“괜찮은 건가요?”
“아마도요. 이제 저희끼리 알아서 할게요. 감사합니다.”
“앗, 네!”
점원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고, 나는 곧바로 감사 인사를 함으로써 그녀를 물렸다.
부외자는 방해 된다. 사람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물릴 필요가 있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려는 짓은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이재홍이나 최세린은 눈치 좋게 입을 다물겠지만, 점원은 솔직한 말로 방해였다.
물수건을 건네준 시점에서 그녀의 역할은 끝났다.
“그,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부르세요!”
쿵
머잖아 점원은 요란한 몸짓과 말투와 함께 사라졌다.
이제 방 내에는 디안의 흐느낌 말고는 아무런 소음이 없었다.
덕에 마법과 추리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디안이 보인 반응은 정신 계열 마법과 완전히 흡사하다.
‘어떤 기억을 꺼내려고 할 때 쓰러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는 증상까지 똑같은 걸 보면 더 확실하지... 아마 그 기억은 문신에 관련한 거일 테고.’
그녀는 S자 뱀 문신을 봤을 때 고통을 느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기억을 안 떠올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당장 정신 계열 치유 마법 전문가를 불러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녀의 머리를 붙잡고 조용히 집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 두통을 잠재우는 방법은 덧씌우는 것 말고는 없다.
정신 계열 마법에 정신 계열 마법을 건다.
문신에 대한 기억은 모조리 잊는다. 내 마법진이 종료되면 디안은 문신에 대한 걸 떠올리지도 못한다.
디안의 머리를 감싼 두 손, 그 손 틈을 확 넓히자 그녀의 뇌가 영상화되어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떠올랐다.
그중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인 해마, 푸른 애벌레와 같이 생긴 그것에 양손을 각기 뻗어 뇌를 움켜쥐듯 매만졌다.
암두시아스가 그 모습에 눈을 둥그렇게 뜨곤 최세린의 옷깃을 잡아 당겼다.
“진! 디안은 괜찮은 거야?”
“괜찮을 거야. 그러니 쉿, 지금은 방해하면 안 돼.”
빠르게 그녀의 기억을 쏘다니고 있었지만, 절대로 성급하지는 않았다.
신중하면서도 속도를 올린다. 하나라도 기억을 놓쳐서는 안 됐다.
‘문신... S자의 문신... 어디 있는 거지?’
디안이 이불을 콱 움켜쥐며 더 괴롭게 소리친다.
편안히 쉬어도 모자랄 판에 내가 뇌를 더듬고 있으니 고통은 배가 될 것이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 내 마법을 덧씌우지 않는 이상 그녀의 두통은 멈추지 않는다.
“...찾았다!”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그 기억을 붙잡아 기억 가장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그제야 디안의 비명과 흐느낌이 멈춘다. 온몸이 땀범벅이 된 그녀는 침대에 쓰러졌다.
“푸후... 푸후... 푸후... 푸... 후...”
그녀는 규칙적인 숨을 뱉더니 머잖아 새근새근 잠에 빠졌다. 뇌가 피곤한 탓이리라.
상황은 진정됐고 일행도 모두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
하지만 나는 방금까지 디안의 뇌를 매만지던 양손을 콱 움켜쥐고만 있었다.
조금만 더 강하게 쥐면 손에서 피가 나올 것 같았지만 주먹은 펴지지 않았다.
분노에 볼이 파르르 떨린다.
누군진 몰라도,
“찾아내면 죽여버리고 말겠어.”
진심을 담은 분노였다.
이것에는 디안의 옆에 계속 있었는데도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섞여 있었다.
내 예상대로 뇌의 주인이 문신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기를 원하면 갖은 고통을 동반하게끔 정신 계열 주문이 섞여 있었다.
저급한 것도 아니었다. 그 마법에 쓰인 것은 아주 고등적인 주문이었다.
사용된 문자도 하나 같이 초보자는 감히 사용할 엄두조차도 내지 못할 어려운 문자들.
‘누구지? 그동안 우리가 접촉했던 사람이...’
키메라 상인? 고개를 저었다. 그는 디안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을 실력이 못 된다.
이곳의 주인장? 가장이자 사장인 토미 씨는 마법을 조금 다룰 줄은 알지만, 그도 디안에게 위해를 가할 실력이 못 된다. 다른 점원도 마찬가지다.
용의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수정했다.
마법 실력으로 디안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인물... 이곳 동대륙에서 만난 자들을 모두 종합해봐도 단 한 명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최세린을 바라봤다. 그녀는 내 얼굴은 보곤 마른 침을 삼키더니 주춤 물러났다.
“세린아. 디안한테 정신 계열 마법을 살펴봤거든.”
“그런데?”
그녀는 계속 뒷걸음질친다.
거울을 안 봐서 모르겠는데 꽤 험악한 얼굴이어서가 이유이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마도구 시장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마주한 괴팍한 노파, 직접 가게로 찾아오라고 신신당부한 주제에 당일날 찾아가보니 다른 상인에게 차원석을 맡기고 가게를 없앴던 그 노파.
정황상 그녀가 가장 수상쩍다.
또한 그녀가 최근 보아온 마법사들 중 가장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마도구 시장에 있던 노파. 너도 기억하지?”
“...어어. 얼추 기억나. 그 사람이 디안에게 정신 마법을 걸었다고?”
“아무래도... 그녀 말고는 디안에게 마법을 걸기 쉽지 않을 테니까.”
그녀의 마법 경지는 디안의 것을 웃돈다. 느껴지는 것만 해도 6서클은 가뿐히 넘었다.
지식은 얼마나 방대할까, 일곱 번째 렌즈를 지닌 사람인 만큼 겉으로 보이는 나이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어쩌면 나보다도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호들갑 떠는 것 같지만, 10대 마도구가 갖는 파급력이 그러하다.
그저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위험 인물이다. 그 노파도 마찬가지다.
“그 노파도 문신 있는 사람이냐?”
이재홍의 질문이었다.
그는 의자에 암두시아스를 앉히곤 그 등받이와 암두시아스의 머리에 팔을 올리고 있었다.
“...어, 그녀일 거야.”
“어떻게 생겼는진 모르지만 그 늙은이가 문신에 대한 걸 들킬까 봐 미리 수를 쓴 거다?”
“아마도. 아직 심증뿐이지만.”
마도구 시장에 단서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곳에 악마인 암두시아스를 데려가는 건 나에게도 조금 버거운 일이다.
또 디안을 간호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걸 저 새파랗게 어린 암두시아스게에 맡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혼자서 다녀와야 할까? 이재홍에게 디안의 간병을 맡기기에는 어째 불안하다.
“가자.”
“응?”
그런 생각이 머쓱해지게 이재홍이 벌컥 문을 열며 말했다.
그는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그에 내가 멍하니 서있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노파 찾으러 가보자고.”
“뭐 잘못 먹었냐? 너 일도 아니잖아.”
“그럼 시발, 너 제자의 일인데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이딴 오그라드는 멘트 한 번 쳐주면 되냐? 나도 시장 쪽에 볼일 있어서 가는 거야.”
“그렇다면야... 그럼 세린아. 디안 간병 좀 부탁해도 돼?”
“그러지 뭐, 남정네들 사이에 끼고 싶지도 않고, 디안도 걱정되고, 암두시아스랑 얘기도 하고 싶으니까.”
이재홍의 제안 덕에 인원이 딱 좋게 분배됐다.
허나 이재홍의 얼굴의 일그러짐은 여전했다.
“걱정? 진짜 그런 개소리가 없네.”
“저 오빠는 항상 내 성질을 돋구네... 됐으니까 빨리 꺼져요.”
안 그래도 그럴 거야.
그는 혼잣말을 남기곤 콰앙!! 내가 방을 나설 때까지 문을 잡아줬다가 있는 힘껏 문을 닫았다.
누가 본다면 문을 부수려는 의도가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다른 방에서도 무슨 일인가 문틈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 정도였으니 말이다.
“죄송... 죄송합니다. 바람이 불었나 봐요.”
내가 그들에게 연거푸 사과하자 이재홍은 관심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계단을 내려갔다. 저 재수 없는 뒤통수에 발차기라도 꽂아주고 싶었는데 참느라 애썼다. 대신 말을 걸었다.
“너 대체 뭐가 문제냐?”
“쟤 모든 게 문제야.”
“옛날에는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잖아.”
“3년이라는 시간이 바꿔놨나 보지.”
1층에 내려오자 테이블을 물수건으로 닦던 점원과 마주했다.
그녀는 일행은 괜찮아졌냐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고, 그에 고개를 숙이며 덕분에 괜찮다고 말해줬다.
이리 말하긴 했으나 되짚어보면 그녀에게 인사를 했는지도 안 했는지도 기억이 희끗했다.
이때의 나는 이재홍에게 품은 의문과 노파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했기에 다른 생각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지금도 발은 걷고 있지만 무의식에 가까웠다.
“...야.”
그때 앞에서 걷던 이재홍이 우두커니 멈춰 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