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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은 돌고 돈다-19화 (19/152)

〈 19화 〉 플라금

* * *

이프카리스토의 자랑이라 함은, 마도구 시장에 있다.

전대륙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하고 발전된 마도구 시장!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직접 들어가면 알 수 있겠지.

나는 최세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야, 너 돈 좀 있냐?”

“이 자식이 꽃다운 20대를 할머니 만드는 걸로도 모자라 삥까지 뜯으려고 하네. 오빠 양아치야?”

최세린의 눈매가 날카롭다. 깨갱 꼬리를 말곤 디안을 노골적으로 쳐다봤다.

“허허... 디안 돈 좀 있어?”

“제 돈은 곧 마탑주님 돈인걸요.”

너무 헌신적인 대답이었지만, 나중에 갚아주면 그만이니 대충 생각했다.

마도구 시장의 입구, 그곳에는 우락부락한 가드 두 명이 있었다.

그들은 육중한 철퇴와 대검을 들고 서 있었는데, 등 뒤에는 휘황찬란한 마법진이 회전하고 있었다.

저 마법진의 의도는 무엇일까, 디안을 시험할 겸 물어봤다.

“저건... 마법 문자에 분석 ­ γ, 약화 ­ δ, 전송 ­ ζ이 붙어있는 걸로 봐서 출입자 마나 성분을 분석하여 어딘가로 전송해 출입자 명단을 확보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또 약화를 통해 소동을 피우지 못하게끔 제약을 걸어두는 거죠.”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눈도 초승달처럼 휘곤 최세린에게 거들먹거렸다.

“봤어? 얘가 내 수제자야.”

“언제는 내 집에서 제자들은 진심으로 하면 죽느니 뭐라니 수준 낮다며 궁시렁거렸잖아.”

“얘는 달라. 알려주는 족족 흡수하는 모습 보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너는 모르겠지.”

내 제자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디안이다.

첫 번째 제자라고 한들 그녀는 다른 제자보다 출발점이 우월하지 않았고 되려 뒤떨어졌다.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그녀는 내 제자가 되기 위해 피땀나게 공부하고 온 다른 있는 집 자제들과는 격차가 극심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디안은 내 제자 중 3년 만에 4서클이라는 가장 높은 서클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마법의 이해도는 가끔 나를 놀래킬 정도로 빼어나다.

이런 걸 두고 천재라고 부르는 거겠지. 물론 시그니처 마법을 시험해줄 상대는 못 되지만.

“...집?”

그런 디안이 내 옷깃을 꾸우욱 잡아당긴다.

장난치는 건가 싶어 그녀에게 고개를 갸웃하자 디안은 음침하게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마탑주님. 암기 용사님 집은 무슨 소리죠?”

“아아, 잠깐 들렀어.”

“......”

옷깃을 잡아당기는 손에 힘이 유독 들어간다.

제자 수준 낮다고 말한 최세린의 대사가 신경 쓰이는 것일까, 메이블이나 스승 정도의 강자에게 비교한 상대적인 얘기였는데 기분 나쁘다면 별로 위로해줄 말도 없으니 그냥 무시했다.

“뭐해? 옷 늘어나.”

“...”

“...뭔데?”

어색한 침묵이 드리운다. 그녀의 손을 툭툭 쳐서 떼어내곤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다시 홀몸이 돼 편안함을 느끼기도 잠시 디안은 최세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게 팔짱을 꼈다.

“더워, 얘가 오늘 왜 이래.”

“돈 빌려드린다고 했잖아요? 이 정도도 못 해요?”

“너 요즘 외롭냐? 그 누구였지, 내 제자 중에 너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 하나 있었잖아.”

“다 서클도 저보다 낮은데 무슨요.”

사춘기가 틀림없다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하곤 팔짱을 내버려 둔 채 마도구 시장 입구로 발길을 옮겼다. 그러자 뒤에서 음흉한 웃음이 들려온다.

“푸후후... 쟤 아주 저돌적이네. 그래, 쟁취하는 거지.”

의미불명의 헛소리를 뱉어낸다. 가뿐히 무시하곤 가드에게 다가갔다.

철퇴를 든 가드가 먼저 우리를 발견했다. 그는 입구를 척하고 몸으로 막아서더니 굉장히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두 명입니까?”

“아뇨, 저 뒤에 여자까지 세 명이요.”

마도구 시장으로 들어가는 절차는 내가 주로 가던 시장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방문 목적과 간단한 신원을 밝히고 입구로 들어가면 그게 끝이었다.

이들도 그 이상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디안이 말했듯이 그 입구에서 내 마나 성분을 추출하고 어딘가로 보고한다. 그보다 확실한 신원 조사는 없다.

허나 상대를 잘못 만났다. 누가 설치했는지는 몰라도 저따위 저급한 마법진 하나 속이기는 누워서 떡 먹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다.

순간적으로 마나 성질을 바꿨다. 디안도 혹시 몰라 성질을 바꿔뒀다.

3초도 안 걸린 일이었다. 나와 디안은 정체를 숨긴 채 마도구 시장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자, 잠깐만. 이 사람 마나가 없다고 뜨는데?”

“뭐? 마법진 고장 난 거 아니야?”

반면 최세린은 조금 소란이 있었다.

그녀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일부러 조금만 기척을 흘렸다. 그제야 마법진은 최세린의 마나 극히 일부를 감지할 수 있었다.

“고장 맞았네.”

“이상하다...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가드의 멍청한 소리가 귀엽게 느껴진다. 실상 저것도 최세린의 마나는 아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의 것을 따라 한 것일 테지. 이로써 세 명은 모두 마도구 시장에 무사히 입장했다.

“되게 어두컴컴한 거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밝네. 넓기도 엄청 넓고.”

“마트랑 똑같아. 고객층은 주로 마법사나 주부지.”

최세린의 감상이었다. 1층은 재밌는 물건이 많았다.

대부분 남대륙에서 들여온 것들이 가득인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자동 청소기도 있었고, 음식 재료를 넣으면 입력된 레시피를 바탕으로 요리해주는 기계도 있었다. 가끔은 실패하지만 대부분 맛이 좋아 주부들 사이에서 호평이 자자하다고 알고 있다.

“우리가 볼 건 여기에 없어.”

이런 완성된 것들 말고 조금 더 원초적인 물건을 사야 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최상급 차원석이다. 넉넉하게 다섯 개 정도 사면 좋겠다며 혼잣말같이 디안에게 말했으나 그녀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몰라도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우리는 지하로 이동했다.

1층에서는 우리가 살림을 차릴 것도 아니기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 어두컴컴한 조명이 가득한 음침한 장소가 나왔다.

1층과는 반전된 분위기에 디안이 흠칫 놀랐으나 내 팔을 더 꼬옥 끌어안는 것으로 진정한 듯했다.

“괜찮아?”

“아... 네.”

내 질문은 중의적 의미였다.

차원석 다섯 개를 사도 지갑이 괜찮겠냐는 것과 지금 몸을 떠는 게 괜찮냐는 것.

빙긋 웃는 걸로 보아 후자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지갑 쪽은 모르겠다.

정 안 되면 돈 되는 선에서만 사고 나중에 다른 마도구 시장에 들리면 되니까 큰 상관은 없었다.

‘...여기 재밌네.’

나도 마법사는 마법사라는 건지 고귀한 재료들이 쫙 널린 지하 매장에 도착하니 장난감 매장에 도착한 꼬마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디안의 눈치를 살펴보니 그녀도 은근 즐기고 있는 듯하다. 아까 몸을 흠칫 떨었던 기색은 아예 없었다.

“흐, 흐흥~♪”

콧노래까지 부르는 것을 보니 더 확실해졌다. 그녀도 나처럼 들뜬 상태였다.

매장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어 차원석 말고는 살 게 없을까 잠시 고민해봤다.

기왕 동대륙까지 온 거, 이곳만의 특색 있는 물품도 더러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으니 디안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도 그녀에게 흘깃 눈길을 보내곤 내게 부족한 물건 검토를 재개했다.

“오빠! 디안! 이것 좀 봐!”

그때 선명하게 울리는 목소리 한 줄기.

고개를 돌려보니 최세린이 폴짝폴짝 뛰며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허리쯤 오는 진열장에 장식된 상품이었다. 이 진열장이 다른 진열장과 다른 점이라면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는 것인데, 숨구멍인 듯하다.

크하앙!

그곳에는 대략 50센치 되어 보이는 새가 작은 불을 뿜으며 진열장이라는 이름의 유리관 안을 총총 걸어 다니고 있었다. 발은 새 답지 않게 두꺼운 비늘로 덮인 두툼한 발이었다.

그 녀석의 얼굴은 도마뱀과 같았다. 이건 키메라다.

그 키메라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최세린에게 턱수염 지저분한 주인장이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그의 오른손등에는 S 알파벳 모양의 문신이 있었다.

“아가씨, 안목이 좋네. 이 녀석 늠름하죠?”

“이름! 이름이 뭐예요?”

“원래 주인이 지어주는 건데... 나는 드래곤(Dragon)이랑 새(Bird)를 합쳐서 드라이드(Draid)라고 부르죠. 어때, 이 녀석이 마음에 드시나?”

“안녕 드라이드야~ 언니는 세린이라고 해~”

주인장의 말을 가뿐히 무시하고 손을 짝짜꿍하듯 움켰다 피며 한껏 콧소리를 섞는 최세린을 보자 괜한 헛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마저도 무시하곤 그녀는 드라이드와 한껏 교감하고 있었다.

크항! 크하앙!

최세린에게 불을 뿜으며 마구 위협하는 걸 보면 일방적인 교감인 것 같지만 태클 걸지는 않았다. 나도 눈앞의 키메라에게는 좀 놀랐다. 생체 마법에 깊은 조예는 없지만 척 보기에도 제법 괜찮은 솜씨로 만든 키메라였다.

목과 몸통 부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울음소리에도 이질감이 없고 무엇보다 드라이드는 본인 몸에 완전히 적응했다는 걸 보여주듯 푸드덕거리며 잠시 날았다가 다시 불을 뿜는 등 자연스러운 동작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오... 완성도가 높은데요.”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디안도 키메라에 신경이 팔려 내 팔짱을 푼 채 주인장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때 디안의 시선이 간간이 주인장의 문신으로 힐끔힐끔 옮겨지는 게 보였다. 얘가 설마 문신에 관심 있는 건 아니겠지? 괜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리자 머잖아 주인장이 녀석을 직접 보여주겠다며 서랍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 오른손에만 꼈다.

문신이 가려지자 조금은 안심했다.

그 장갑을 낀 손으로 진열장을 열어 녀석의 목덜미를 콱 잡아 들어 올린다.

놀라우리만큼 드라이드는 아무런 반항도 없었다. 디안은 염려된다는 듯 조심스레 말했다.

“그... 괜찮아요? 물거나 불 뿜으면 어떡해요?”

“하하! 괜찮아요, 괜찮아. 내 생명 마법 학자 짬밥이 있지, 이깟 귀여운 놈 하나 못 다룰까 봐? 지금도 봐! 아무렇지도 않잖아!”

말대로였다. 드라이드는 주인장의 호쾌한 포부에 상응하듯 아주 얌전했다.

하지만 모두에게만은 아니었다. 최세린에게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덜컥 손을 뻗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턱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앙 깨물려 했다.

“어이고? 어이고! 이 녀석이 왜 이래?!”

“...날 물려고 해?”

주인장의 호들갑 때문이 아니어도 당연히 성공하진 못했을 게 뻔했다.

깨물기의 실패는 최세린의 화만 돋군 꼴이 됐기에 그녀는 도끼눈을 뜨며 녀석에게 위압을 걸었다. 머잖아 강아지 풀죽은 소리마냥 드라이드는 끼깅,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곤 주춤 물러났다.

“옳지, 착하네, 착해~”

그다음 그녀의 손은 아무렇지 않게 드라이드의 몸을 쓰다듬을 수 있었다. 놈은 조금 떨고 있었다.

“허, 허어... 이 녀석이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건 진귀한 광경인데...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요.”

“괜찮아요. 지금은 착하게도 얌전히 있잖아요?”

저 말은 전제부터 잘못됐다.

애초에 드라이드에게는 위압을 맞았을 때부터 선택지가 없었다. 착하고 자시고를 따질 여력이라고는 없었다.

“그래도 날 물려고 한 건 봐줄 수가 없네요. 괘씸해서 이만 가볼게요.”

“아이고... 다른 녀석도 있는데 더 보고 가시는 건 어때?”

“아뇨, 괜찮습니다!”

확실히 거절하곤 가벼운 발걸음으로 촐랑촐랑 지하 매장을 쏘다닌다.

어느 부분에서 기분이 좋아진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우리도 가자.”

나는 디안을 툭툭 건드리곤 이번에야말로 마석을 취급하는 가게를 찾아 나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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